묵향 9권 13화 – 죽는 그 순간까지 기사이고 싶다
죽는 그 순간까지 기사이고 싶다
한 3킬로미터 정도 말을 달려가다가 갈림길 안으로 들어서자 숲 속에서 우악스런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정지!”
모두들 그쪽을 바라보자 20여 명의 사내들이 숨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중 반 정도는 활을 가지고 이들을 겨누고 있었고, 나머지 반 정도는 검이나 철퇴, 전투 도 끼, 전투 망치 등 개성적인 무기들을 들고 접근해 왔다. 그들 중에서 왼쪽 뺨에 흉터가 있는 인물이 입을 열었다. 모두들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만이 철로 만 들어진 갑옷으로 상체를 가리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가 이 패거리의 우두머리인 모양이었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이 낯선 일행들을 주의 깊게 훑어봤다. 모두 깨끗한 복장에, 상당히 고급 옷들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옷 여기저기에 몇몇 문장들까지 붙어 있 는 것을 보면 절대로 평민들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했다. 그렇기에 그는 정중하게 상대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디로 가는 길이십니까?”
“성으로…….?”
뜻밖에도 가장 앞장서서 가던 예쁜 여자 애가 말을 받았기에 그는 이제 소녀를 훔쳐볼 필요도 없이 아예 대놓고 엉큼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성에 가시는 용무를 여쭤 볼 수 있을까요?”
“성주를 만나러 왔다.”
“성주님을 만나러 오셨군요. 그럼 통행증을 보여 주십시오.”
“통행증 따위는 없어.”
소녀의 말에 그 사내는 이제 본색을 드러냈다.
“헷? 웃기는 계집이군. 통행증도 없이 그리로 가겠다고? 흐흐흐…, 좋아. 데려가 주지. 이봐, 저것들을 모두 체포해 저 계집을 제외하고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덩치 큰 사내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들은 모두들 희번뜩거리는 시선으로 무기를 겨눈 채 천천히 다가왔다. 하지만 다크는 그들 쪽에서 시선을 돌려 린넨 백작을 향 해 차갑게 말했다.
“저 녀석만 살려 놓고 나머지는 해치워라.”
그 말과 동시에 린넨 백작과 그의 부하 세 명이 말 등에서 몸을 날렸다. 그들은 언제 검을 뽑았는지 모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인물들 네 명의 목이 떨어진 것도 언제였는지 알기 힘들었다. 팔시온과 미카엘, 그리고 미디아가 상대를 향해 말을 달려 접근했을 때쯤에 우두머리를 제외하고 선두에 진출 해 있던 인물들의 목이 모두 벌써 날아간 후였다.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인물들이 화살을 날렸지만 그래듀에이트 중에서도 상급의 실력에 랭크되는 린넨 백작 일행 은 간단하게 검으로 그것들을 막아내며 돌진해 들어가 끝장을 내 버렸다.
“쳇! 검한번 못 휘둘러 봤군.”
팔시온이 투덜대고 있을 때, 린넨 백작은 이미 숲 속의 적들까지 끝장낸 후, 돌아와서 다크를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
“모두 해치웠사옵니다, 전하.”
“좋아.”
그녀는 아예 사색이 되어 벌벌 떨고 있는 사내를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던졌다.
“성에는 얼마나 많은 병력이 있지?”
“5, 5백 명가량 있습니다.”
“성주는 지금 성에 있나?”
“예.”
더 이상 물어볼 것이 없다는 듯 다크는 성을 향해 말 머리를 돌렸다. 린넨 백작은 서둘러 그녀를 향해 물었다.
“이자는 어떻게 할까요?”
“죽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하는 소녀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그 사내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이렇듯 갑작스레 진행되는 그녀의 얼음장 같은 태도에 린넨 일행을 제외한 사람들은 뭔가 불길함을 느꼈다. 평상시 그녀의 행동이 제법 차가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필요한 살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 데…….
다크 일행이 성에 도착했을 때, 성 주위에는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고, 아직 적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구덩이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내려와 있었지만,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 닫혀 진 성문 앞쪽에 서 있던 세 명의 경비병들이 도끼날이 붙어 있는 기다란 창인 할버트를 가지고 그들을 향해 겨누었고, 또 다른 한 명이 그
들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 사내는 할버트 대신 허리에 장검을 차고 있었다.
“정지. 용건을 말하십시오.”
“성주를 만나러 왔다.”
“통행증을 보여 주십시오.”
“그런 거 없어.”
“미친놈들이군. 말에서 내려! 체포하겠다.”
아래쪽을 향해 경계를 펴고 있던 성문 위쪽의 병사 네 명은 재빨리 화살을 장전하여 밑에 있는 무리들을 향해 겨누었다. 그것을 본 다크는 슬쩍 오른손을 들고는 막강한 마나를 뿜어냈다. 정확히 여덟 줄기의 시퍼런 빛이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간 그 순간, 여덟 명의 병사들은 미간에 구멍이 난 채 쓰러져 버렸다. 일단 병사들 을 해치운 그녀는 이번에는 기를 응축하지 않고 앞쪽을 향해 다시 마나를 뿜어냈다.
쾅!
엄청난 흙먼지를 일으키며 거대한 성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도저히 한 사람이 해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르티어스는 방금 그녀가 사용한 것이 도 대체 무슨 마법인지 궁리하기 시작했고, 나머지 인물들은 그저 입이 딱 벌어진 채 구경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린넨 백작을 향해 말했다.
“성주 녀석을 내 앞으로 데려와.”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린넨 백작 이하 세 명의 기사들은 재빨리 검을 뽑아 들고 구멍 난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다크는 린넨 일행의 행동을 바라보는 대신 시 선을 먼 하늘 위로 올리며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던 아르티어스는 천천히 다가서며 말했다.
“왜 그러냐?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성주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서요.”
“성주에게 물어볼 말이 좀 있다고 사람들을 이렇게 죽여? 너는 저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무사들의 목숨은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 그들은 오늘 자신들보다 강한 자들을 만났기에 죽는 것이니, 그들을 동정할 필요는 없겠죠. 그들 또한 지금껏 살아오 며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많이 죽였을 테니 피장파장이 아닐까요?”
“그야 그렇지만…, 그렇다고 쓸데없이 사람들을 이렇게 죽일 수는 없는 것이야. 그들 중에는 착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쁜 사람도 있지. 왜 그것을 생각하지 않느 냐?”
물론 아르티어스가 엄청 착한 드래곤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사실 이 몇 배가 넘는 호비트가 죽어 나간다고 해도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을 그였 으니까. 그런데도 그가 이렇게 나서는 것은 이들을 죽이는 사람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정신 상태를 가진 호비트는 이런 짓을 하지 않 는다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버지, 저는 선악 따위를 생각하며 사람을 죽인 적은 없었어요.”
“그러면?”
“제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졌을 뿐. 지금 저는 성주를 만나 물어볼 것이 있어요.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에요.”
“그렇다면 좀 더 좋은 방법도 있었을 것 아니냐? 위협을 한다든지…….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방법은 번거로워요.”
파이어해머는 부녀간에 오가는 대화를 훔쳐 들으면서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드래곤은 정말 자신이 알고 있는 최악의 생명체였다. 하지만 둘의 대화를 들어 보면 오히려 저 망할 드래곤보다 저 예쁘장한 인간이 더 지독한 것처럼 느껴졌다. 다크는 자신을 징그러운 괴물 보듯 힐끔거리고 있는 파이어해머의 시선을 느끼고 는 그를 향해 말했다.
“이봐, 드워프.”
갑자기 자신을 향해 말하자 화들짝 놀라서 파이어해머가 급히 대답했다.
“예, 예? 무슨 일이십니까?”
“드워프들도 국가를 세우나?”
“아뇨, 드워프는 그냥 마을 단위로 모여 살 뿐, 국가를 세우지는 않죠.”
“드워프들도 서로 간에 죽이고, 싸우고, 증오하고 그러겠지?”
뜬금없이 뭔 소리를 하느냐고 생각하긴 했지만, 파이어해머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물론 그런 게 있을 수도 있겠지만, 드워프들은 그렇게 큰 무리를 형성하는 일이 거의 없기에, 서로 간에 충돌이 일어날 일은 거의 없죠. 그리고 우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가 있기에 그것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웬만한 것은 별로 따지지 않죠. 보다 나은 예술품을 만드는 것, 자신의 이름이 후대에까지 알려질 만한 최고의 물 건을 만드는 것이 불과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투스(Hephaestus)를 섬기는 우리들의 꿈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네가 꿈꾸고 있는 그 일을 못 하게 막는다면?”
다크의 말에 파이어해머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즉석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놈과 사생결단을 내야죠.”
파이어해머가 이 망할 드래곤과 함께 다니고 있는 이유도 자신의 창작욕을 절대로 감퇴시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강제적(?)으로 더욱 왕성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을 정도니까. 드워프는 최고의 예술품을 만들려고만 할 뿐, 그것에 대한 소유욕은 없었다. 그렇기에 무엇인가를 만들기 좋아하는 드워프와 소유 욕으로 뭉친 드래곤이 만났으니 서로 잘(?)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쯧, 나와 매우 비슷한 놈이군.”
그 말에 파이어해머는 마치 지독한 욕이나 들은 듯 발끈해서 물었다.
“어째서요?”
“나도 방금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을 막는 놈들을 없앴을 뿐이야. 안 그래?”
“그, 그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나는 아주 정직하게 행동하는 사람이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떠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일부러 남이 잘되는 것에 심술이 나서 방해하는 사람도 아니야. 내가 하려는 일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잘 지낼 수 있다구. 나를 그렇게 괴물 보듯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알 겠어?”
꼭 꼬집어서 뭐가 잘못 되었는지 말하기가 힘들었기에 파이어해머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예.”
이때 안으로 들어갔던 린넨 백작이 웬 사내의 멱살을 그러쥔 채 돌아왔다. 아직도 성 안에서는 요란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고, 린넨 백작의 옷 여기저기 에도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다크는 최선을 다해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 중인 그 사내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이 성의 성주인가?”
이곳 영지를 뜻하는 문장인지 웬 이름 모를 꽃이 그려진 화려한 복장에, 머리를 어깨 위까지 길게 기른 영리하게 생긴 그 남자는 자신을 향해 말을 건네 오는 매우 젊은 여자 아이의 신분이 무엇인지 궁리하며 간단히 대답했다.
“그렇다.”
“자네는 이번 전쟁이 승산이 있다고 보는가?”
사내는 매우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물론 황제 폐하의 군대는 승리할 것이다.”
“언제? 자네가 죽은 후에?”
“언제가 되었건 그건 상관없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만을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있을 이유는 없다.”
“재미있는 대답이군. 자네는 목숨이 중요하지 않나? 또 가족의 목숨도?”
“물론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황제 폐하의 명령이 우선하는 것이다. 나는 폐하로부터 이 성과 영지를 하사받았고, 이것을 관리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 고 거기에는 폐하의 군대가 오기 전까지 이곳을 방어할 책임 또한 포함된다. 그대가 강력한 기사들을 이끌고 와서 비열하게도 기습 공격을 가했기에 책임을 완수할 수 없었다는 것이 원통할 따름이다.”
“그대는 왜 황제의 명령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황제가 그렇게 무서운 인물인가? 아니면 황제에게 볼모라도 잡혀 있나? 코린트 황제는 이따위 땅덩어리 포기한 것 같은데 왜 그토록 헛되이 반항을 하나? 영지의 주민들까지 괴롭히면서 말이야.”
“하하핫! 기사도를 숭상하는 기사에게 그따위 질문을 하다니, 그 대답은 그대도 잘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다크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대답했다.
“글쎄, 나는 기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데?”
사내는 말 위에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는 여자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며 비웃듯 말했다.
“기사가 아니라고? 어떻게 기사가 아닌 인물이…, 그렇다면 황족인가? 철부지 황족이라면 잘 모를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내가 설명해 줄 테니 잘 들어라. 황제의 검(Sword)인 기사는 죽는 그 순간까지 기사도를 지켜야만 한다. 기사도를 저버린 행동을 했을 때 그는 이미 기사이기를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사도의 기본은 주군에 대한 충성, 그리고 숙녀에 대한 존경, 제일 마지막이 약자에 대한 관용이다.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 기사이고 싶다.”
“재미있는 말이군. 그렇다면 그대는 자신이 세 번째를 어기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나? 영지의 주민을 꽤나 악랄하게 착취하는 모양이던데.”
소녀의 말에 사내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런 적 없다. 농노 따위를 사람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것도 말 되네’하고 생각하면서 다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지. 그렇게도 모두가 기사도를 숭상한다면, 그래서 황제에게 충성을 다한다면 이 세계에는 새로 만들어지는 국가는 없는 가? 그리고 반역으로 인해 황제가 바뀌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나?”
그 말에 사내는 코웃음을 터뜨리며 비아냥거렸다.
“훗, 그대는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은 모양이군. 주군에 대한 충성을 끝까지 지킨 인물이 기사다. 만약 그것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변절자나 반역자, 또는 왕이 되겠
지.”
다크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핫! 그 대답이 마음에 드는군. 역시나 이 세계도 똑같은 것인가?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은 것이었어. 한때나마 이 세계가 무척 특이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말이지. 이봐, 린넨.”
“옛, 전하.”
린넨이 전하라고 말하자, 그 사내는 자신이 대충 짐작한 것이 맞다는 것에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자네도 저 녀석이 한 말이 옳다고 생각하나?”
“제일 마지막 말은 그런대로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찬성하기는 조금 힘들군요. 나머지는 모두 제가 알고 있는 그대로이옵니다, 전하.”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글쎄다. 내가 호비트가 아닌 이상 어찌 호비트의 생리를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겠느냐. 하지만 내가 대충 그 세계를 떠돌면서 배운 것들을 꽤나 함축성 있게 요약 해서 설명한 것처럼 느껴지는구나.”
“팔시온은 어떻게 생각해?”
“글쎄, 나는 그런 것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대충 맞는 말인 것 같은데?”
팔시온이 주저리주저리 말하자 미디아가 비웃듯 말했다.
“뭐가 대충 맞는 말이야? 정답이라고 정답. 이 멍충아.”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지만, 맞는 말인 것 같아.”
“그럼 미카엘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다크가 물어 오자 미카엘은 목에 힘을 잔뜩 주고는 뻐기듯 말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그러셨지. 주군에 대한 충성은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고 말이야. 그 외에는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시더군.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 라. 나는 뜨거운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기사도라고 생각해. 충성, 관용, 복종…, 모두 다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드는 단어들 아니야? 귀부인에 대한 숭상은 으음…,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어. 으아아, 왜 우리 패거리에는 귀부인이 없는 거야?”
혼자 분위기 잡고 놀고 있자 미디아가 투덜거렸다.
“이봐, 다크. 저놈이 한 말은 그냥 지나가던 오크가 한마디 했다고 생각하고 못 들은 걸로 하라구. 들어서 도움이 되는 말은 하나도 없으니까.”
다크는 미디아의 말을 충실히 이행하려는 것인지 미카엘 쪽에는 아예 시선도 주지 않고 말했다.
“기사도를 지키지 못한다면 변절자나 반역자, 또는 왕이 된다고 생각하는 놈이 있다는 것도 꽤나 재미있군. 좋아, 목숨은 살려 주지. 린넨, 돌아가자.”
오히려 사내는 소녀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돌아간다는 것에 뭔가 배신감을 느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와서 자신의 기반을 풍비박산으로 만들었으면 다 른 후속 조치가 취해져야만 했다.
“이…, 이봐. 여기는 어쩌고 그냥 간다는 거지?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서 온 것 아니야?”
“이봐, 린넨. 저 녀석에게 뭐라고 한 거야? 나는 방금 말했던 그놈의 기사도라는 것이 뭔지를, 아무런 희망도 없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멍청한 놈에게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었어. 자네의 대답은 꽤 만족스러웠어. 이제 내 볼일 다 봤으니 자네는 이제부터 자네 볼일을 보도록 하라구.”
정말 황당스럽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이런 제기랄! 그따위 일이었다면 그냥 와서 물어보면 되잖아. 내 부하들을 학살하지 말고.”
다크는 뻗어 있는 경비병들의 시체를 가리키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나는 여기서 저놈들에게 말했지. 성주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하지만 그걸 결사적으로 막으려고 하더군. 그래서 저렇게 만들었지. 아마 나머지도 자네를 나하고 만 나지 못하게 막았기에 저렇게 되었을 거야. 이제 대답이 되었나?”
돌아서서 가려는 다크를 향해 그는 악을 쓰듯 외쳤다.
“이름을 밝혀라. 오늘의 굴욕, 자손대대로 복수해 줄 테다!”
다크는 천천히 멀어져 가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후후훗, 내 이름은 다크 폰 로니에르 공작. 크라레스 제국 치레아 지구의 총독이며 코린트 침공군 부사령관. 나는 대부분의 경우 내 영지에서 살고 있어. 내 영지 의 위치는 아무나 잡고 물어보면 잘 가르쳐 줄 테니 찾아오는 데 무리는 없을 거야. 자네의 복수를 기대해 보기로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