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9권 22화 – 검술을 배운 드래곤

검술을 배운 드래곤

다크가 크루마의 황궁을 뒤집어 놓고 있을 때, 까뮤 드 로체스터 공작의 머릿속도 까미유의 보고에 의해 뒤집어지는 중이었다.

“뭐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지레느가 까미유의 옆에서 지원해 줬다. 까미유와 달리 지레느는 로체스터 공작 가문과 약간의 혈연이 있었기 때문에 공작에게 의견을 말하는 데 좀 더 편했기 때 문이다.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아저씨. 만약 그 상대가 드래곤이 아니라면 크라레스의 근위 기사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드래곤이 한 국가를 뒤집어엎는 것 을 상관하지 않고 찾아다니는 아들이라면 그 역시 드래곤일 것입니다. 원래가 드래곤이란 것들은 인간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니까 말입니다.” 로체스터 공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하지만 말이 이상하지 않느냐? 그녀가 만약 헤즐링이라면 그 드래곤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힘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그 엄청난 검술…, 그건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만약 그 아이가 헤즐링이 아니라면 그 드래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지. 드래곤은 새끼가 5백 살이 되 어 분가시킨 후에는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 종족이니까 말이다.”

“좋아요. 그렇다면, 이런 가정은 어떨까요? 그녀가 헤즐링이라고 하고, 그녀는 오래전부터 검술을 익혔다고 가정하는 거예요. 사실 드래곤의 유아기는 인간에 비 해서 엄청나게 길죠. 헤즐링이 검술을 익혔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발렌시아드 공작 전하께서도 95년 만에 완성하셨잖아요? 헤즐링이 한 3백 살쯤에 검술을 배 우기 시작해서 450살쯤에 그 정도 경지에 들어갈 수도 있잖아요.”

“그건 말도 안 돼. 드래곤은 원래 검술을 배우지 않아. 여태껏 검술을 배운 드래곤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다.”

로체스터 공작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지레느는 악착같이 자신의 의견을 펼쳤다.

“하지만 드래곤이 절대로 검술을 배우지 않는다는 법도 없잖아요. 누가 알아요? 검술 익히는 것을 좋아하는 특이한 드래곤일 수도 있죠.”

두 사람의 대화가 약간씩 언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감지한 까미유가 그들 사이에 재빨리 끼어들었다.

“공작 전하, 어떻게 되었건 그녀와 드래곤 간에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사옵니다. 그에 대한 대비도 좀 해 두시는 편이 좋을 듯하옵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대비한단 말이냐? 그녀가 속한 크라레스가 우리나라를 박살 내려 하고 있는데, 그녀와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 그냥 항복하고 끝내라는 것이 냐?”

“그런 뜻은 아니었사옵니다. 어쨌건 그녀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좀 더 조심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옵니다.”

“제기랄, 요즘 왜 이렇게 계속 문제만 터지는 거냐? 곧이어 유성이 떨어지는데 그것도 대비를 해야 하고……. 또, 이번에는 드래곤이라고?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하면 되지?”

“전하, 유성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시옵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시민을 대피시키는 방법밖에 없지.”

“어디에 떨어지는 것이옵니까?”

“흐음, 너희들은 그걸 못 들었냐?”

“예.”

“참, 조사하러 다닌다고 들을 시간이 없었겠구나. 유성은 다섯 곳에 집중된다.”

“예?”

“수도에 여섯 개, 쟈코니아의 쟈크렌 요새에 하나, 크로나사의 중심 도시 크라레인시에 하나, 스웨인의 군사 도시 스위트에 하나, 발렌시아드 공국의 수도 발렌시 아시에 하나. 그렇게 해서 열 개다. 녀석들은 수도를 제외한 모든 공격 목표를 방어 마법진이 없거나 있더라도 그것을 막기 힘든 도시에 한정시켜 놨다. 대신 수도에 는 강력한 마법진이 있으니까 여섯 개를 집중시켜 놓은 거겠지.”

“피신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조용히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수도에서도 모든 사람들을 철수시키고 있는 중이지. 물론 아직 시민들에게까지는 그 사실이 발표되 지 않았다. 귀족들과 황족들, 그리고 도서관이나 박물관, 뭐 그런 것들의 책들이나 기타 유물들의 철수가 완료되는 2, 3일 후에나 발표할 계획이야.”

“그렇다면 대 혼란이……..”

“그 정도는 각오해야겠지. 대신 군대와 기사단에는 거의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혼란을 막도록 지시해 뒀다. 그리고 너희들은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무리한 부탁이지만 다시 짐을 꾸려두도록 해라. 유성이 떨어질 때쯤 되면 여기에서 철수해서 바얀 요새로 사령부를 옮길 거다. 여기에도 하나 떨어질 거니까 말이야.”

“옛, 전하.”

이렇듯 총사령관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굵직한 문제들 때문에 정신이 없을 때,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의 계획대로 하나하나 일을 처리해 나 가고 있는 인물도 있었다. 그로체스 공작의 심복인 다리엔 후작은 처음부터 전쟁을 빨리 끝낼 생각은 없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완벽한 승리였다. 그리고 될 수 있 다면 현재 막강한 권력을 지닌 로체스터나 그와 관련된 기사단의 도움 없이 그 계획을 이뤄 내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다리엔 후작은 그로체스 공작의 믿음직스러 운 심복답게 그 계획을 잘 이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전세는 다리엔 후작의 계획대로 코린트군이 사실상 크라레스군을 거의 궁지에 몰아넣는 데 성공해 가고 있었다. 다리엔 후작의 지시를 통신 마법을 통해 직 접 받고 있는 마법사를 거느릴 정도로 세력이 큰 몇몇 귀족들이 효율적으로 통제되고 있었다. 그들에 의해 전방의 상황은 세세하게 다리엔 후작에게 전달되고 있었 고, 다리엔 후작은 이제 크라레스군이 붕괴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크라레스군 붕괴의 시작은 녀석들의 기사단 투입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게릴라들의 출몰에 도저히 대응책이 나오지 않으면 크라레스는 기사단을 분산 해서 게릴라 토벌에 사용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다리엔 후작이 바라는 상황이었다. 놈들의 소단위 부대들은 10개 부대 내외로 구성된 은십자 기사단을 투입해서 부숴 나가면 된다. 이렇게 한두 개 부대가 전멸당하고 나면 그다음부터 녀석들은 소단위 기사단의 규모를 늘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기사단의 수는 반대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처음에 다섯 명 단위로 10개 부대를 편성했다가 그중 몇 개가 부서지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열 명 단위로 5개 부대로 줄어들 것이고 나중에는 25명 단위의 2개 부 대가 될 것이다. 그렇게 기사단의 규모가 대형화되면 수많은 게릴라를 막기 힘들뿐더러, 이쪽에서는 30명 단위의 1개 부대만 운영해도 별 피해 없이 놈들을 제압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상황에 이르게 되면 크라레스의 기사단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뿔뿔이 흩어진 채 박살 날 것이고, 겨울이 되면 사기가 저하된 크라레스의 군대는 게릴라들 의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 분명했다.

“적들이 보급로로 사용하고 있는 길은 여기 보이는 열 가닥이 전부입니다. 지금 전체 전선에서 본국의 여러 귀족들의 분투로 말미암아 놈들은 상당히 어려움을 겪 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다리엔 후작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계획대로 되어가는 것에 매우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크라레스는 보기와 달리 대단히 강력한 기사단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것을 꼭 기사들을 가지고 하라는 법은 없었다.

“좋아. 그래, 언제쯤 보급로를 완전히 끊어 버릴 수 있겠나?”

“몇 가지 문제점만 없다면 아마도 오래지 않아 끊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령관 각하.”

“몇 가지 문제라니?”

“새로운 증원군이 도착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할 것이옵니다.”

다리엔 후작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크라레스는 벌써부터 증원군을 파병할 정도로 여력이 많지 않았다. 얼마 전에 본국의 군대를 모조리 다 긁어모아서 동원한 5개 사단 이후로 증원군이 파병되려면 새로이 용병을 모집하는 길밖에 없으므로, 최소한 한 달은 걸려야 1개 사단이 들어올 것으로 다리엔 후작은 예상하고 있었던 것 이다. 그런데 벌써 증원군이 도착했다는 것은 의외의 사건이었다.

“증원군이라고?”

“예, 오늘 거의 1개 사단급의 보병이 새로이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크라레스 본국에서는 연일 용병을 모집한다고 난리고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증원군 이 계속 도착한다면 적의 보급로를 완전히 끊는 것은 힘듭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수도에 연락해서 그 증원군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해 보라고 해.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크라레스의 군대 같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설혹 크라레 스의 군대라고 해도 용병들로 모집된 증원군을 최전선에 투입할 수는 없을 거야. 그러니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네.”

다리엔 후작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다른 장교가 입을 열었다.

“또 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뭔가?”

“전체적인 작전 지휘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몇몇 중요한 귀족들과는 연락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에 그들 중 일부와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었습 니다.”

“갑자기 두절되었다고?”

다리엔 후작의 되물음에 장교는 재빨리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으며 상세히 설명했다.

“예, 바로 이 일대를 담당하고 있던 마그레인 백작, 이쪽을 담당하던 쟈코 백작, 이쪽을 담당하던 뮤카 자작입니다. 그들에게 연락을 하면 즉시 부근의 귀족들에게 연락을 넣는 형식으로 작전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일대 지방에 포진하고 있는 게릴라 전력의 핵심이 되는 귀족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그들에게서 연락 이 끊겼다는 것은 아마도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 합니다.”

다리엔 후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아마도 그렇겠지.”

“예?”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말이다. 녀석들이 슬슬 기사들을 투입할 시점이 되었다는 거지. 그 일대의 지리를 잘 알고 있으면서 기습전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상 대가 군대라면 몰라도 기사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지. 50명의 병사가 그래듀에이트 한 명을 당할 수 없다고 하지. 평지에서도 그런데, 저런 숨을 곳이 많은 황무 지라면 1백 명을 보내도 그래듀에이트 한 명을 죽일 수 없어.”

“그렇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옵니까? 빨리 대비책을 세워야만 합니다. 아무리 게릴라전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그 핵은 귀족들입니다. 귀족들이 무너지고 나면,

게릴라전을 펼칠 수가 없습니다.”

 “투르넨 후작!”

다리엔 후작의 지명에 여태껏 묵묵히 앉아 있던 투르넨 후작이 간단히 답했다.

“왜 그러시오?”

“일단 이쪽에서도 기사들을 풀어야 할 것 같소. 전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여러 명의 오너들을 함께 투입하는 것이 좋겠지요. 요 며칠 사이에 그 정도로 많 은 귀족들이 당했다면, 녀석들도 기사들을 꽤 많이 투입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겠지요.”

그런 후 다리엔 후작은 잠시 시간을 끌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좀 과하더라도 열 명 정도의 오너를 한 조로 투입하면 어떨까 싶소만, 준비해 주시겠소?”

다리엔 후작의 의견에 투르넨 후작은 불쾌하다는 듯이 답했다.

“은십자 기사단을 뭐로 보는 거요? 은십자 기사단 열 명이면, 웬만한 국가의 기사단 전체 전력과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소.”

“그래도 상대는 철십자 기사단의 타이탄들을 간단히 막아 낸 놈들이오. 간단히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크루마 전선에서도 대단히 뛰어난 무훈을 세웠다고 들었는데 내가 잘못 들었소?”

“아니, 그 말은 맞소. 좋소, 당신 말대로 열 명을 준비하리다. 마음에 안 들지만 그대가 사령관이니까.”

“좋소, 내 지시가 있을 때 당장 출동시키시오.”

“알겠소.”

투르넨 후작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찌푸린 얼굴로 앉아 있자, 그것을 보고 더욱 기분이 좋아진 다리엔 후작은 탁자에 쭉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큼직 한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자, 제군들! 이제 녀석들이 본국의 공격에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기사단을 투입해 왔다. 분명히 놈들의 기사단은 게릴라를 제압하기 위해서 매우 소규모로 분산 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상 그래듀에이트 한 명이면 게릴라 1개 부대쯤 전멸시키는 것은 쉬울 테니까 말이다. 이제부터는 기사들끼리의 전투가 시작된다. 투르넨 후 작의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동십자 기사단 제8전대의 그래듀에이트들, 그리고 마법사 전부를 다 투입해라. 상대가 적으면 그 즉시 공격을 가하고 상대가 많다면 투 르넨 후작에게 연락한다. 그러면 은십자 기사단의 정예 기사들이 적을 무찌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놈들의 기사단 전력을 각개 격파해 나간다면 이번 겨울이 오기 전에 놈들은 크로나사 평원에서 후퇴하게 될 것이다. 만약 후퇴하지 않는다면 녀석들에게 크로나사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가르쳐 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