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9권 23화 – 황무지 위의 썩은 시체들
황무지 위의 썩은 시체들
넓은 황무지 여기저기에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죽어 있는 그들의 손에는 활, 검 같은 무기들이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반항도 못 하고 몰살을 당했는지, 아 니면 이들을 해치운 자들이 동료들의 시체를 치워 버렸는지 시체들은 모두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시체들이 모두 제법 고급인 듯한 청색으로 물들인 면으로 만 든 옷으로 복장을 통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산적 패거리는 절대로 아니었다. 바로 이 시체들이 크라레스를 괴롭히고 있던 코린트의 게릴라들이었다.
여기저기에 피워져 있는 불 위에는 큼직한 청동으로 만든 솥이 걸려 있고 그 안에는 음식들이 끓고 있었다. 그리고 상당수의 시체들이 그 불 주위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면 여기서 식사 준비를 하다가 기습을 당했다는 것을 대충 알 수 있었다.
“으으으윽!”
“헤헤헤…, 이 녀석 제법 입이 질긴 놈이군.”
“저, 그러지 마시고 마법을 쓰시는 편이…….”
체구가 왜소해 보이는 사람이 주춤주춤 입을 열었지만, 그 의견은 묵살되었다. 젊은 마법사가 그 잔인한 장면에 안색이 하얗게 되어 사정하는 것을 보다 못한 한 기사가 말했다.
“이봐, 그냥 놔두고 이쪽으로 와서 음식이나 먹어. 그 녀석은 포로들 족치는 게 유일한 재미니까 말이야.”
동료들이 인정했을 정도로 바로 이 센티그라는 기사는 자신을 이 황무지에서 헤매게 만든 게릴라들에게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지금 고문이란 형태로 풀고 있었다. 절대로 정보의 획득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보란 것은 복수에 대한 부가적인 산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젊은 마법사는 비위가 어지간히도 약했던지 이 시체 구덩이에서 음식을 먹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진 후 웩웩거리며 토하기 시작했다.
“야야, 센티그! 대충하고 죽여. 밥맛 떨어지게…….?”
한쪽에 모여서 음식을 먹고 있던 사람들 중의 한 명이 투덜거리자, 그 사내는 간단하게 그 말을 받아친 후 다시금 하던 일에 열중했다.
“히야, 밥맛 떨어진다는 사람이 이런 시체 구덩이에서 녀석들이 만들어 둔 음식을 먹고 있냐? 제기랄, 빨리 말해. 편안하게 죽고 싶으면 빨리 말하라구.”
비명을 질러 대는 포로는 한때 상당히 높은 직위에 있었던 인물인 듯, 아주 고급스러운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지만 지금은 걸레가 다 되다시피 한 옷을 걸치 고 있을 뿐이었다. 상대가 무작스럽게 발로 차서 뼈를 부수고 그것을 툭툭 건드리고 있자 그는 거의 이성을 상실할 정도로 심한 두려움에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으으아아악!”
상대가 자신의 무력함에서 오는 두려움과 자포자기, 그리고 공포, 고통에서 거의 발광 상태의 비명을 질러 대는 데도 기사는 매우 무표정하게 고문을 계속하고 있 었다. 오히려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는 동료들의 표정이 찌푸려들 정도였고, 마법사는 이제 더 이상 토할 것도 없는지 쭈그리고 앉아서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안 그러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주지. 흐흐흐……..”
한참의 괴롭힘을 더 당한 상대는 끝내는 입을 열었다.
“알코인… 알코인시에서 동남쪽으로 30킬로미터쯤 떠… 떨어진 곳에 듀, 듀란 남작이 사병을 거느리고……..
“호오, 봐, 족치면 다 불게 되어 있다니까. 그래, 병력은 어느 정도야?”
“2, 2백 명 정도…….?”
“2백 명이라 이거지. 흐흐흐.”
그 기사는 상대방의 가느다란 목소리를 듣기 위해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일어서며, 고문에 의해 거의 걸레가 되어 있는 상대방의 목을 밟아 버렸다. 우두두둑하는 끔찍한 소리가 들린 후 꿈틀거리던 상대의 움직임은 완전히 멈췄다. 그는 적을 처치해 버린 다음 역시 음식을 먹고 있던 몇 명의 동료들에게 유유히 다가가며 말했 다.
“대장, 알아냈습니다. 알코인시에서 동남쪽 30킬로미터에 듀란이라는 놈이 있다는데요? 병력은 2백 명 정도.”
기사는 의기양양하게 말했지만, 음식을 먹고 있던 대장은 씁쓰레한 표정으로 퉁명스레 대답했다.
“수고했다. 뭐 좀 먹어 둬라. 그리로 가면 아마도 저녁은 늦게 먹게 될 테니까.”
“예.”
부하에게 지시한 후에도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입속에 음식을 떠 넣고 기계적으로 씹고 있던 대장이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시선을 집중했다. 그 가 뭔가를 봤는지 그릇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재빨리 말했다.
“모두들 타이탄을 꺼내라. 엄청난 마나가 느껴진다. 한두 놈이 아니야. 빨리.”
타이탄 세대가 공간을 열고 나오는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대장은 마법사를 향해 외쳤다.
“될 수 있는 한 멀리, 안정권으로 이동해서 본국에 도움을 청해라. 그리고 너희들은 니키가 통신을 끝마칠 때까지 목숨을 다 바쳐서 보호해라. 센티그! 서둘러!”
“옛, 대장.”
그와 동시에 대장은 자신의 뒤편에 나타난 거대한 붉은색과 푸른색이 칠해진 타이탄에 올라탔다. 그리고 대장이 올라타는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센티그를 포함 한 두 명의 그래듀에이트가 마법사의 양쪽 팔을 잡아들고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니키가 통신을 할 만한 안전한 장소까지 그를 보내 주고, 또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뒤를 기사들은 헐떡거리며 전력으로 따라갔다.
저 멀리에서 먼지를 뿜어 올리며 다가오는 타이탄은 모두 여섯 대나 되었다. 5미터는 됨직한 거대한 체구에, 은색의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의 방패. 바로 은십자 기사단의 미네르였다.
“적당히 흩어져라. 포위당하면 끝장이야!”
물론 타이탄의 등급에서는 크라레스 쪽이 훨씬 위였다. 겨우 정규 출력(1.0)을 내는 미네르에 비했을 때 이쪽은 1.3이나 되는 근위 타이탄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코린트가 여태껏 세계를 제패했던 이유가 알카사스처럼 고성능 타이탄을 등에 업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들은 엄청나게 두터운 기사층을 확보하고 있 었고, 그들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자들만이 타이탄을 지급받았다. 그러니까 기사들의 등급에 있어서 세계 최고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도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일단 오너급이 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인물들은 뭔가 하나씩의 직책을 맡게 되어 있었고, 또 그런 직책에 필연 적으로 따라 다니는 각종 연회라든지 뭐 그런 행사에 참가해야 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수련할 시간이 매우 부족했는데 그에 비해서 크라레스의 유령 기사단 소속의 기사들은 정반대의 길을 갔다.
크라레스의 기사들은 당연히 코린트보다는 훨씬 얇은 기사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인구가 적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크라레스도 검술 실력을 인정받으면 기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기사가 된 후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두 부류로 나뉘게 된다.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인정받으면 유령 기사단으로, 그렇지 못하 면 콜렌 기사단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에 좀 더 우수하다고 뽑혀졌던 그들은 직위도, 명예도, 직책도 내세우지 못하고 숨어 지내게 된다. 유령 기사단에 소속되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 그들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선배들처럼 언젠가 자신들도 역사의 전 면에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끝없이 무예를 수련하는 것밖에 없었다.
검과 검이 대기를 가르고 굉음을 내며 부딪쳤다. 모두들 두터운 철판을 두르고 있었기에 웬만한 검의 타격으로는 상대방 타이탄을 박살 낼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무게가 10톤 정도 더 무거운 테세우스가 월등하게 유리했지만, 숫자 면에서는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넓게 산개해서 압박을 가해 오는 미네르들을 상대해서 테세우 스들은 방어에 전념하면서 뒤로 후퇴하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 있다가 모습을 드러낼 구원군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센티그와 그의 동료는 마법사를 들고(?) 죽자고 달린 후,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위치에 그를 내려놓고, 저쪽에서 자신들을 향해 꽁지가 빠지게 달려오는 부하들을 흘끗 쳐다본 후 센티그는 젊은 마법사를 향해 냉정하게 말했다.
“빨리 통신을 보내.”
“예, 예.”
니키가 마법진을 한참 그리고 있을 무렵 부하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착했다. 그 무거운 할프 플레이트 아머에다가 방패까지 어깨에 지고 뛰었으니 힘들 것은 당연했다. 모두들 어깨를 들썩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센티그는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명령했다.
“자 자, 모두들 주위에 퍼져서 매복한다. 자, 빨리 서둘러! 흔적을 지우라고.”
센티그의 명령에 따라 우선 자신들의 흔적을 대충 지웠다. 어느 정도 흔적을 없앴다고 생각하자 이번에는 등에 지고 있던 사각형의 방패를 꺼내어 왼팔에 장착하 고, 허리에 달고 있던 자그마한 석궁을 꺼내 들고는 각자 니키를 중심으로 여기저기에 몸을 감추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니키는 열심히 주문을 외웠다. 니키의 경우 이제 겨우 4사이클급 마법 몇 개를 배웠을 뿐인 수련 마법사였다. 그런 그가 이곳 전장에서 기사들과 함께 돌아다니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크라레스에 있는 모든 마법사와 4사이클급 수련 마법사들은 거의 다 타이탄 제작에 투입되었기 때문이 다. 전방에서 전쟁 수행을 도와야 할 마법사들을 거의 대부분 후방으로 철수시켰을 정도로 크라레스의 사정은 급박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니키가 주문을 외우는 시 간은 보통 마법사들보다 월등하게 많이 걸렸을 것은 당연했다.
마나가 모이고 희뿌연 빛이 일어나며 상대가 나타났을 때, 니키는 다급하게 외쳤다.
“적 타이탄이 나타났…….”
하지만 니키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를 향해 엄청난 불꽃 덩어리가 공중으로 날아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아마도 상대방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는 마 법사가 이쪽에서 연락을 취하는 녀석이 있는지 알아 보려 마법을 이용해서 날아다니다가 니키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마법사들이란 존재는 뷰 마나 포스나 뷰 매직 포스의 주문만으로도 상대를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바로 이때 숨어 있던 기사 한 명이 숲 속에서 뛰쳐나와 그 불꽃 덩어리를 자신이 가진 방패로 틀어 막았다.
쿠쾅!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그 충격으로 방패를 가진 그 기사는 시커멓게 그을린 채 뒤로 튕겨 나더니 니키의 근처에 자빠져 버렸다. 그 사내의 방패는 거의 박살이 나 버렸고, 남아 있는 부분도 군데군데 녹아내린 흔적이 보일 정도였다. 그 기사가 쓰러졌을 때쯤, 그의 동료들은 마법사를 향해 석궁을 날릴 수 있었다. 날카로운 소리 를 울리면서 석궁에서 발사된 작은 화살이 대기를 가르며 공중에 떠 있는 마법사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그 화살들은 마법사의 몸 주변에 이르러 뭔가 벽이라도 만난 듯 튕겨 나갔다.
상대방 마법사는 비행 마법과 방어 마법, 그리고 공격 마법의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의 ‘진짜’ 마법사였던 것이다. 마법사에게 화살이 통하지 않는 것을 알고 숨어 있던 그래듀에이트 한 명이 재빨리 몸을 날렸다. 그는 묵직한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렵한 움직임으로 나뭇가지들을 밟고 도 약하기 시작하여 공중에 떠 있는 마법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기사가 엄청난 속도로 자신을 향해 달려들자 상대 마법사는 혼비백산하여 위쪽으로 고도를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무시무시한 상대가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드는 상황에서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그의 회피 속도는 빠르지 못 했다.
바로 이때 날아오르는 기사를 향해 또 다른 인물이 공중으로 몸을 날려 왔다.
챙!
검과 검이 부딪치는 충격으로 뒤로 튕겨 버린 그래듀에이트는 재빨리 시선을 아래로 돌려 뭔가 착지할 안전한 물건이 있는지 살펴본 후 다시 앞쪽으로 시선을 돌 렸다. 바로 그곳에는 자신을 향해 몸을 날렸던 상대편 기사가 자신과 같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상대편도 그래듀에이트였다. 그것도 자신보다 늦게 도약한 후에도 자신의 검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실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일단 마음이 안정되자 떨어지 는 그 순간에 등에 지고 있던 방패를 끌러 왼손에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땅에 착지하자마자 상대방을 향해 달려들었다.
니키는 같은 편의 기사가 몸을 날려서 자신을 지켜 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검게 타서 죽어 있는 기사의 시체를 봤을 때,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뭘 해야 할지, 뭘 하지 말아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제 더 이상 통신이고 뭐고 할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다. 사방에 서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자신을 중심으로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대충 느끼며 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퍽!
“크윽!”
어디선가 비명이 들리더니 자신의 주위에 잘려진 팔과 함께 검이 떨어졌다. 그 손은 주인의 몸체에서 잘려진 상태에서도 끝까지 검을 잡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니 키는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아카데미 마법 학부를 졸업하고 겨우 어떤 마법사의 수련생으로 뽑혀서 방구석에 박혀 마법 실험이나 하고 있던 니키로서는 지금의 이 피 튀기는 격투를, 그것도 동료들이 죽어 가는 것을 견뎌 낼 만한 정신력이 없었던 것이다.
퓨!
갑옷과 함께 살이 잘리는 특이한 소리를 끝으로 사방이 조용해졌다. 저벅저벅하는 낮은 소리가 들리더니 부들부들 떨고 있는 니키의 옆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 다.
“하하하, 이봐, 한스. 이 꼴을 보라구. 혹시나 통신을 보낼까 봐서 죽자고 싸웠는데 이 마법사 녀석 아예 오줌을 싸고 있었어.”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말을 하는지 약간 나지막한 한스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답해 왔다.
“이봐, 빨리 없애 버리고 돌아가자. 저 소리 안 들려? 아직도 싸우고 있는 모양이야. 녀석들의 기사들은 상당한 실력인데, 마법사는 왜 이렇게 덜 떨어진 거지? 빨 리 죽이라고!”
한스가 채근하자 그 기사는 피 묻은 검을 들었다가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그때까지도 니키는 자신을 두고 말하고 있는 그 두 사람의 대화가 뭘 뜻하고 있는지 이 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때 그에게 갑자기 등에서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통증이 몰려들었다.
“으아아아아악!”
니키가 발악을 하듯 비명을 지르자 검을 쑤셔 넣은 그 기사는 얼굴 가득 비웃음을 담고 이죽거렸다. “비명은 지를 줄 아는군. 병신자식!”
그 기사는 검을 충분히 찔러 넣었다고 생각했는지 이제 옆으로 반 바퀴 정도 돌렸다. 그에 따라 우드득 하는 둔탁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그제야 검을 뽑 아 낸 후 쓰러져 있는 마법사의 옷자락에 슥슥 닦으면서 말했다.
“기사들의 실력은 대단했어. 만약 우리가 네 명이나 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해치우기는 힘들었을 거야. 마법사만 제대로 된 녀석을 가지고 있었다면…….”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자. 은십자 기사단이 겨우 이따위 3류 기사단과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시간을 끌다가 이겼다는 소문이 퍼지면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들어.”
“알았어.”
그들은 그 자리에서 타이탄을 불러낸 후, 아직도 타이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한참 격투를 진행 중이던 대장은 자신들의 동료들이 모습을 감췄던 그 방향에서 네 대의 타이탄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자 곧바로 상대 타이탄들을 향해 맹공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그의 부하들도 상관의 의도를 대충 짐작하고는 각자가 맡은 타이탄들을 압박했다.
덩치와 파워에서 월등하게 유리한 상대편이 여태까지의 수세에서 전환하여 공세로 나오자 은십자 기사단원들은 당황하여 뒤로 조금 후퇴했다. 바로 그때를 이용 해서 세 대의 타이탄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뒤로 반전하여 전속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과 싸우고 있던 여섯 대의 타이탄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최대한 빨리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덩치와 무게가 월등함에도 불구하고 상대방 타이탄의 출력은 미네르보다 뛰어났다. 서로 간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뒤쫓던 두 대의 타이탄이 검을 얄미운 상대의 등판을 향해 던졌지만, 그것은 별로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제기랄! 도망치는 것 하나는 아주 도가 튼 놈들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