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9권 6화 – 드래곤 아빠의 걱정

드래곤 아빠의 걱정

하지만 미네르바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적은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크라레스 제국을 최강의 대국으로 만들겠다든지, 아니면 이곳에서 최고의 고수가 되겠다든 지, 또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왕국을 세우겠다든지 하는 야무진 꿈 따위를 꾸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녀는 오직 자신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황제와 토지에르를 위해 약간의 도움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바다(Sea)라는 거예요?”

자신의 영지 안에 있는 ‘바다’라는 것을 보기 위해 아르티어스와 함께 나오기는 했지만, 사실 그녀는 아직까지 자신의 영지 안에 바다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아르티어스는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오잉? 바다라는 것을 처음 보냐?”

“흐음…, 그냥 얼핏 보기에는 ‘황하’나 ‘장강(양자강)’, ‘동정호’와 별로 다를 게 없네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나……. 그런데 물빛이 정말 푸르다는 것은 다르 군요.”

“뭐? 황후아? 에잉…, 너는 딴 건 다 좋은데 왜 한 번씩 혓바닥 돌아가기 힘든 발음을 해 대는 거야?”

다크는 서둘러 말에서 내린 후, 바닷가로 걸어가서 그 새파란 물을 손바닥으로 떠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녀의 안색은 곧 무섭도록 일그러졌다.

“으엑! 에퉤퉤퉤! 에잇 짜. 무슨 물맛이 이렇죠? 아주 맑아 보이는데…….”

“원래 바다라는 것이 짜지. 그렇기에 이걸 가둬서 수분을 증발시켜서 소금을 만들 수 있는 것이고.”

소금을 만든다는 말에 다크는 그제야 이 ‘Sea’라는 것이 ‘바다’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은 없었지만, 바다가 뭔지, 또 중원의 어 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아아! 바로 그거였구나. 우리 고향에도 바다가 있어요.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거기서도 소금을 만든다고 들었어요.”

“허어…, 역시 생명의 고향은 바다로군. 그건 그렇고 오늘은 어디 쓸 만한 식당에 들어가서 맛있는 해산물을 좀 먹어 볼까?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씽씽한 해산물 로 만든 요리하고, 육지에서 소금에 절이거나 말린 해산물로 요리한 맛하고는 완전히 다르지. 자, 빨리 가자꾸나.”

그들은 해안가를 따라서 쭉 걸어가고 있었고, 세린은 왠지 무서운 이 아르티어스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말을 몰았다. 아무래도 세린은 묘인족이다 보니 사람 에 비해 본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좀 더 컸기 때문이다. 세린은 꽤나 능숙하게 말을 타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녀는 이게 말을 처음 타는 것이었다. 고양이 특유 의 평형감각을 동원하여 말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속도를 좀 더 내면 말에서 떨어질 것만 같아 말의 갈기를 꽉 붙들고 있었다. 원래가 자연 속에 살고 있는 묘인족은 거의 두려움을 모르는 존재였지만, 그녀처럼 사육(?)된 경우에는 조금 경우가 달랐다.

“저리로 가자.”

그렇게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꽤 풍족해 보이는 어촌 마을이었다. 수십 척의 작은 어선들이 항구 내에 정박해 있었다. 고래 같은 큰 고기를 잡는 대형 어선들의 경우 한 번에 며칠, 또는 몇 달씩 바다를 떠돌기도 하지만, 작은 어선들이야 새벽 일찍 나가서 그물을 거둬들인 후 돌아와서 어민 조합(漁民組合)에 생선을 넘긴 후 또다시 출항하여 그물을 치고 돌아오는 것이다.

어촌 마을에 이르자 찝찌름하면서도 해초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상큼한 것 같기도 한 바다 냄새가 짙게 풍겨 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어촌의 여인들이 생선을 장만해서 소금에 절인 후 말리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선 외에도 각종 해초들을 말리고 있는 것도 보였다. 이런 식으로 말려 놔야 내륙으로 운반해도 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황제나 국왕, 또는 일부 귀족들의 경우에야 휘하의 마법사들을 부려서 싱싱한 해물을 마법진으로 운반하여 먹기도 하지만,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그런 혜택이 돌아 갈 가능성은 없었다. 물론 알카사스같이 마법이 고도로 발달한 부유한 국가는 조금 다르다. 알카사스는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는 영구 마법진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그것을 통해서 각종 물자들이 국가의 구석구석까지 보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알카사스를 제외한 모든 국가는 생산과 소비에 따른 시 간이 상당히 차이가 나는 것이 현실이었다.

“저기가 좋겠구나. 식당도 제법 크고 말이야. 발코니에서 식사를 하면 풍경도 잘 보이겠는데?”

“예, 그리로 가죠.”

다크와 아르티어스, 그리고 세린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식당 안의 사람들이 잠시 대화를 멈췄다. 첫 번째 원인이 그 세 명의 아름다움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다 크가 검을 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식당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발코니 쪽으로 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자리가 다 차 있었 기 때문에 돌아 나와서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자리를 잡은 후 조금 지나자 점원으로 보이는 소년이 다가와서 메뉴판을 건네며 물었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주문은 아버지가 하세요.”

“헤헤 좋지. 이봐, 생굴하고 바닷가재 수프, 농어찜, 해물 파스타….”

아르티어스가 음식을 잔뜩 시켜 대자 주문을 받아쓰고 있는 점원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

“저…, 손님. 방금 말씀하신 정도라면 여섯 분은 포식하실 수 있는 양인뎁쇼?”

“아, 그거 상관없으니까 가져와. 그리고 작은 접시 세개하고, 덜어서 조금씩 먹을 거니까.”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점원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굽실거렸다. 돈 많은 귀족들은 엄청난 양의 음식을 시켜 놓고, 조금씩 맛만 보고 가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 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심 속으로 봉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이 가고 나면 남은 음식들로 성대하게 잔치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손님.”

“아주 한가로운 것 같군요. 여기저기서 드나드는 어선들도 그렇고 아주 평화로운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 오늘은 맑고 파도도 잔잔하니까 그런 말을 한다마는, 폭풍이 불 때는 정말 무섭지. 특히 그런 때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것은 거의 자살 행위나 다 름없다고 봐야겠지. 그 때문에 뱃사람들은 미신을 많이 믿는단다. 물론 내가 생각했을 때는 다 부질없는 짓들이지만..

“그런가요?”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기에 모두 앞에 놓여지기 시작하는 음식을 자신의 작은 접시에 담아 입에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르티어스가 시킨 음식의 양이 엄청나기는 엄청난지, 가장 먼저 세린이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포크를 놓았고, 그다음 다크가 질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포크를 놓았다. 먹는 거야 더 먹을 수 있고 계속 내용물이 바뀌기는 했지만, 해산물을 많이 먹어 보지 못한 다크로서는 이 비릿한 해산물만 계속 먹는 것이 곤욕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아르티어스는 끝까지 먹고 또 먹고 있었다.

“도대체 그게 뱃속에 다 들어가요?”

아르티어스는 냅킨으로 입을 살짝 닦고는 우아한 동작으로 백포도주를 한 모금 마신 후 답했다.

“아, 그건 걱정 말거라. 네가 먹을 줄 몰라서 그런 거야. 음식이란 것은 원래가 천천히 꼭꼭 씹어서 이것저것 조금씩만 먹는 거란다. 농어찜 같은 경우에도 그렇게 잔뜩 먹을 필요는 없지. 농어의 맛만 즐기면 되는 거야. 내가 먹고 남은 것은 뭐 강아지나 고양이 먹이로 쓰든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음식을 먹으면 벌 받아요.”

“누구한테?”

“그…, 글쎄요. 혹시 누가 알아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떨어질지?”

“헷! 그딴 거는 겁나지도 않는다. 이제 대충 먹었으면 일어나자.”

“그러죠.”

금화로 계산을 끝낸 후 천천히 말이 있는 곳으로 가는 아르티어스의 등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다크는 히죽 미소 지은 후 외쳤다.

“뇌(雷)!”

그와 동시에 마른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은 아르티어스 어르신을 향해 직격했지만, 아르티어스의 주위에서 뭔가 벽에라도 막힌 듯 퍼지면서 땅바닥으로 스며들 어 버렸다. 아르티어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슬며시 말 위로 올라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치지 말고 빨리 가자.”

“헤헤헤.

아르티어스는 쑥스럽게 웃고 있는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들을 향해 빙긋이 미소를 보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오래전에 가르쳐 줬던 용언 마법을 아직까지 잘 기억하고 있었고, 그것을 그렇게 순간적으로 써먹을 수 있다는 것에 매우 흐뭇해하는 중이었다.

한참 바닷가로 말을 몰고 가던 아르티어스는 문득 다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전에 카드리안을 만나 봤으니 대충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드래곤이란 것은 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정령력의 집결체라고 할 수 있지. 그것 때문 에 실버, 레드, 블루, 골드, 그린 드래곤은 다섯 정령력, 즉 물, 불, 뇌전, 바람, 대지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이란다. 카드리안의 뇌전의 기운에 맞서 보고 나서 느낀 점이 있었더냐?”

“글쎄요, 정말 덩치에 어울릴 정도로 강력하다는 정도만…….”

“흐음, 하지만 카드리안의 힘도 제대로 된 것은 아니지. 에인션트급의 드래곤들은 그보다 월등하게 강하다. 카드리안은 아직 에인션트가 되려면 엄청난 세월을 기 다려야 하거든. 노룡이 된다고 해서 덩치가 더 커진다든지 뭐 그런 것은 아니야. 웜급에 다다른 후 드래곤의 성장은 멈추기 때문이지. 대신 육신이 차지하는 부분이 점점 더 줄어들어 가는 거야. 나중에는 그러니까…, 완전히 몸 전체가 정령력과 마나, 그리고 너희들이 말하는 드래곤본만으로 재구성된다고 봐야겠지.”

“드래곤 본만이라면…, 그렇다면 에인션트급에 도달한 드래곤은 드래곤의 형상을 하고는 있지만, 거대한 타이탄처럼 알맹이가 변한다는 말인가요?”

“대충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거다. 육신이 소멸하기에 더욱 엄청난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드래곤이 아무리 강하 다고 해도 정령력의 원천인 정령왕보다 강하다는 것은 아니란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지금 네가 끼고 있는 물의 정령왕 나이아드의 아쿠아 룰러. 그것 때문에 언젠가는 너에게 크나큰 시련이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야.”

걱정스러운 아르티어스의 표정과는 달리 다크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시련이요? 헤헤, 그따위 것 겁나지 않아요. 전에 꿈속에서 시달린 것 때문에 그러시는 모양인데, 사실 그때 제가 모든 힘을 발휘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 녀석 꽁지 빠지게 도망쳐 버렸거든요.”

아르티어스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약간 쑥스러운 듯 말하는 아들을 바라보다가 그 시선을 바다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정령왕은 무서운 존재란다. 그들의 힘은 드래곤을 훨씬 앞서 거의 신에 필적할 정도지. 하지만, 그들에게도 단점은 있어. 바로 그것 때문에 나이아드는 지금쯤 고

심하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단점이요?”

“정령왕이 살고 있는 세계는 우리들의 세계와는 다른 곳이다. 정령계라고 불리는 다른 차원의 세계지. 거기서 그들은 최강의 존재들이지만, 인간계로 나온다면 자 신들의 힘을 10분의 1도 발휘하지 못한단다. 그렇기에 나이아드 혼자만이라면 나도 걱정하지 않겠지만, 그 녀석이 대지의 정령왕 다오(Dao)와 합작을 했다는 것이 문제지. 정령왕 둘이 힘을 합했을 때 어느 정도 능력을 발휘할지는 나도 모르기 때문에 걱정이 되는 거야.”

“그런데, 아버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꼭 있나요? 그때 이후로 나이아드 녀석이 잠잠한 걸 보면 나는 이미 시험에 통과한 것 같으니까 말이에요.”

아르티어스는 다시금 시선을 바다에서 아들에게로 돌렸다. 그는 몇 번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아들에게 말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하지만 미래 의 일까지 말해서 아들에게 걱정을 안겨 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그것을 참았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구나. 앞으로 잘되겠지.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 너에게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언제나 마음에 새겨 둬야 할 것이 있다. 네 종족에 대한 믿음을 잊지 마라. 네가 보기에 아주 나쁜 놈들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크게 봤을 때 그들도 자기 나름대로 뭔가를 위해 노력하는 녀석들이야. 그들을 이해하거라. 너 또한 딴 사람들이 봤을 때, 그렇게 좋게 인식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전번 전쟁을 치렀던 코린트의 경우 너를 아주 지독한 악당이고 살육자쯤으로 여기고 있겠지. 반대로 크라레스에서 너는 영웅이고 말이다. 언제나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반대되는 입장이란 것이 있단다. 알겠느냐?”

다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예, 알겠어요.”

“자, 이제 그만 돌아가자. 바닷바람을 너무 많이 맞는 것도 몸에 썩 좋은 것은 아니야. 바람에 소금기가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