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9권 9화 – 이상한 유령의 도시에 가다

이상한 유령의 도시에 가다

“여기 맞아요?”

아들의 앙칼진 말에 아르티어스는 당황해 주춤주춤 말했다.

“그…, 글쎄다. 책으로 봤을 때는 여기가 맞는데? 아니, 내가 잘못 왔나?”

또다시 책을 이리저리 뒤져 봤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크 일행은 정확하게 약속된 시간에 크라레인시 외곽에 도착했다. 아르티어스가 안내한 것이었기에 사람 열 명, 드워프 하나, 말 열 필, 그리고 당나귀 한 마리는 공중에 나타나서는 매우 우아하게 착지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엄청난 숫자의 대군(大軍)이 집결 해 있지 않았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크라레인시에는 크로나사 평원 수비군의 주력 부대가 방어를 위해서 집결해 있어야 했고, 또 그에 대치해서 크라레스의 주력 부 대도 공격을 위해 집결을 완료하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군대는 보이지 않았다.

“이거, 여기가 크로나사 평원이 맞기나 한 거예요? 그거조차 의심스럽네.”

못 믿겠다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들을 보고 아르티어스는 발끈해서 말했다.

“여긴 크로나사가 맞아! 아무리 이 책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그렇지. 내가 그 넓은 크로나사 땅덩어리를 찾지 못해 엉뚱한 곳으로 데려왔을 것 같으냐?”

“글쎄요. 그럴 수도 있죠.”

아들 녀석이 이죽거리자 열 받은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주저리주저리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절대로 그럴 리 없어. 이거야 원, 아들 녀석이 아버지를 못 믿다니. 이런 비극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이야? 아무리 이 세상의 모든 도덕과 윤리가 무너져도 그 “렇지…….”

나중에는 별소리가 다 나올 것 같자 다크는 발칵 화를 내면서 기를 꺾어 버렸다.

“말장난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실수한 걸 가지고 도덕과 윤리까지 따질 이유가 뭐가 있어요?”

“이런 젠장! 내 기억까지 잘못되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공간 이동해서 도착하자마자 다투기 시작하는 것을 말에 탄 채 뒤에서 멍청히 보고 있던 기사 한 명이 아르티어스가 머리를 감싸 쥐느라 잠시 말다툼이 끊어진 틈 을 이용해서 끼어들었다. 그는 저 멀리 아주 자그마하게 보이는 커다란 도시 쪽을 가리키며 머뭇머뭇 말했다.

“저…, 공작 전하. 혹시 저기 있는 도시가 크라레인시가 아닐까요?”

기사의 말에 아르티어스는 바로 힘을 얻어 아들에게 우기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 여기 지도에 따르면 저쯤에 도시가 있다고. 저게 크라레인시가 맞을 거야.”

하지만 다크는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흥, 저게 도시예요? 눈 있으면 똑바로 봐요. 도시라는 것은 사람들이 흥청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곳이 도시라구요. 그리고 한눈에 척 보면 몰라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잖아요? 건물 안이고 밖이고 말이에요.”

그녀의 말에 아르티어스는 짜증난다는 듯 대꾸했다. 그도 이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둘이서 아옹다옹 떠들어 대자 그들을 수행해서 따라온 일행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저 멀리 보이는 도시를 다시 한 번 훑어봤다. 자신들의 안목으로는 도저 히 저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말이지. 너희들이 온다는 것을 알고 다 도망친 것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욧! 크로나사 평원 위에 위치하고 있는 최대의 도시가 크라레인시인데 그걸 버리고 완전히 빈 도시를 만들어요?”

“그럼 돌림병으로 모두 죽었다던가…….”

“쳇! 그럼 시체를 먹으려고 까마귀나 뭐 그런 것들이 돌아다녀야 하죠.”

“으음…, 제기랄. 나도 모르겠다. 한번 가서 알아 보자구.”

“좋아요, 가자구요.”

두 사람은 일행의 앞에 서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말을 몰아 그들의 말로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유령 도시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점차 도시가 가까워지자 그들 을 뒤따르던 기사 한 명이 그 뒤에 따라오던 두 명의 기사한테 살짝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들은 재빨리 말에 채찍질을 가해 속도를 내어 앞으로 달려갔다. 그들에게 는 공작 일행을 호위해야 하는 임무가 있는 만큼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적의 매복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다크 일행이 도시에 완전히 다가섰을 때쯤 앞서 간 두 명의 기사들이 말을 몰아 돌아와서 보고를 올렸다. 말들은 갑작스럽게 막대한 운동을 해서 그런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정말 아무도 없사옵니다, 전하.”

“사람은커녕 개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도시는 처음 봤사옵니다.”

그들의 보고를 듣고 다크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이봐, 그건 벌써 알고 있었어. 이 도시 이름이 뭔지는 알아 봤어?”

“예? 그건 아직…,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물어보지요.”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군. 자, 가스톤을 제외하고 모두들 흩어져서 이 망할 도시 이름을 빨리 알아 봐, 빨리.”

“옛!”

기사들이 말을 몰아 사방으로 달려가자 팔시온이나 미카엘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뒤를 따라 미디아도 마지못해 그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왠지 으스스하군. 유령 도시에 들어와 보기는 처음인데?”

팔시온은 미디아가 조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일부러 두려운 듯 사방을 둘러보는 척하자, 미디아도 재빨리 그 시선을 따라가며 투덜거렸다.

“그런 말 하지 마. 소름 끼치잖아.”

일단 미디아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포착한 팔시온은 일부러 괴기스런 표정을 지으며 미디아를 놀리기 시작했다.

“흐헤헤, 누가 알아? 좀비(Zombi)라도 떼거리로 나올지. 저 거리만 돌아가면 아마 수십 구의 좀비들이 식칼이나 도끼를 들고 기다리고 있을 거야.”

좀비라면 흑마법에 의해 걸어 다니는 시체를 말한다. 이런 유령 도시에 나옴직한 그런 괴물이었다. 팔시온의 말에 미카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필요 이상으로 침 착하게 말했다.

“설마…, 거기 있을 리가 없어.”

“맞아, 그렇지?”

두려움을 감추고 있는 미디아가 재빨리 동의를 구해 오자 미카엘은 미디아의 뒤쪽을 손으로 쭉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바로 저기 있잖아.”

“꺄악!”

기겁을 하는 미디아를 보며 둘은 낄낄거렸다.

“흐헤헤헤헤…, 전장을 돌아다녔다는 용병이 좀비를 겁내다니. 자격 미달이야.”

그들의 장난기에 잔뜩 열 받은 미디아는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분노 때문에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검을 뽑아 들며 악악거렸다.

으으…, 감히 나를 가지고 놀다니. 거기 서. 죽여 버릴 거야.”

두 사람은 역전의 용사답게 재빨리 말을 몰아 그녀의 공격권에서 벗어나며 뒤를 쫓아 달려오는 미디아를 향해 계속 이죽거렸다.

“헤헤… 이봐, 참아. 참으라고…….’

일행들이 모두 다 흩어지고 나자 다크는 뒤를 돌아보면서 가스톤에게 말했다.

“통신 준비를 해 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봐야겠어.”

“응.”

가스톤은 말에서 내린 후 안장에서 커다란 수정 구슬을 꺼내 들고는 통신용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진은 완성되었다. 제법 숙련 된 솜씨로 일하고 있는 가스톤을 바라보며 다크와 아르티어스는 말에서 내려 통신이 개통되기를 기다렸다.

“예, 여기는 유령 기사단 사령부입니다.”

“이쪽은 로니에르 공작 전하의 유령 기사단 분대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공작 전하를 바꾸겠습니다.”

가스톤이 그렇게 말한 후 자리를 내주자 다크가 쓱 하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봐, 크라레인시 침공 작전은 어떻게 되었나?”

“예? 안녕하시옵니까? 전하.”

“아, 그래. 침공 작전은 어떻게 되었어? 크라레인시에 모이기나 한 거야? 나는 누군가가 지금 크라레인시라고 주장하고 있는 곳에 와 있는데, 도대체 아군은 고사 하고 적군도 보이지 않아.”

“아, 예. 적군은 크라레인시를 포기한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크라레인시의 모든 시민들은 오래전에 철수한 상태고, 크라레인 수비군이 마지막으로 철수한 것이 어 제이옵니다.”

수정구슬에서 들려온 대답을 슬쩍 엿들은 ‘누군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거봐, 내 말이 맞다니까!”하고 말했지만, 다크는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수정 구슬을 향해 말했다.

“그럼 아군은?”

“크라레인시로 맹진격을 하다가 적들이 그곳을 포기했다는 것을 알고 지금은 주위의 게릴라들을 토벌하며 천천히 진격하는 중이옵니다. 적 주력 부대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는 한 계속 그런 식의 소규모 전투가 되풀이 될 가능성이 크옵니다. 모든 첩보망을 동원하여 코린트군의 집결지를 알아 보고 있는 중이오니 조만간에 답

이 나올 것 같사옵니다.”

다크는 수정구슬을 바라보며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작전이 그렇게 바뀌었으면 나한테 연락을 해야 할 것 아냐?”

“하지만 전하께옵서는 3일 전부터 행방불명이셨지 않사옵니까? 토지에르 경께 연락을 드렸사온데, 혹시 연락을 못 받으셨사옵니까?”

“뭐 하려고 만나. 청기사만 가져오면 되는 거였는데……. 그래, 알았어. 이만 끊자구.”

“전하, 잠시만. 지금 첩보부의 예측에 의하면 17일 후 크라레인시에 유성이 떨어질 확률이 85퍼센트이옵니다. 그 때문에 코린트에서는 그곳에 사는 모든 주 민들을 대피시킨 것 같사옵니다. 하지만 일단 그곳에서 전쟁을 할 결심이었는지 그 일대로 병력을 집결 중이었는데, 이틀 전 갑자기 모든 병력이 그곳을 떠났사옵니 다. 전하께옵서도 그곳에 오랜 시간 머무시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할 것이옵니다.”

다크는 아르티어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아버지, 유성이 떨어진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유성이라면 저 밤하늘에서 번쩍거리면서 길게 지나가는 그걸 말하는 거 맞아요?”

“대충 그 말하고 비슷하지.”

“그럼, 그게 여기 떨어진다는 거는 무슨 소리예요? 그냥 유성은 밤하늘에 휙하고 지나가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 그휙하고 지나간 것이 덩어리가 크면 땅바닥까지 도착할 수 있지.”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아르티어스는 휙 주위를 둘러본 후 말했다.

“방어 마법진도 제대로 안 갖춰져 있는 이 정도 도시라면 아마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없어져 버릴 거다. 유성이 떨어지면 그 위력이 엄청나거든.”

“설마, 아무리 위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도시가 없어져요? 이 도시가 얼마나 큰데…….”

피식 비웃는 아들을 보며, 아르티어스는 주위에 구르고 있는 돌멩이 몇 개를 주워 들고는 그중 한 개를 건네주며 말했다.

“너 이 돌을 가지고 저기 있는 집에다가 힘껏 던져 봐라. 자, 여기 있다.”

다크는 돌멩이를 바라보며 아르티어스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진담이세요?”

“진짜야.”

“저 집에 구멍이 날 텐데요?”

“그러라고 던지라는 거야.”

그녀의 손을 벗어난 돌멩이는 가공할 속도로 날아가 벽에 큼직한 구멍을 뚫고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어떠냐? 네 손에서 날아간 돌멩이도 저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 저 하늘 위에서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는 바위의 경우 그 파괴력은 보나 마나지. 한 방에 도시 하나 정도 부수는 것은 일도 아니야.”

“한 방에 도시 하나라면 정말 대단하네요. 그런데 왜 이렇게 도시들이 번창하죠? 그런 거 몇 방으로 도시들을 완전히 박살 내고 쳐들어가고 했다면 남아날 도시들 이 없을 텐데.”

“그렇지 않아. 인간들의 싸움도 동물들의 영역 싸움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동물들이 영역을 두고 싸우는 것은 자기 새끼들을 풍족하게 먹이기 위해 사냥할 만한 영 토를 확보하기 위해서지. 인간들이 벌이는 싸움도 보다 많은 자원과 돈을 확보하기 위해서야. 너 같으면 이런 도시를 온전하게 그냥 뺏을 수 있는 방법을 쓰겠냐? 아니면 사람도 건물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서 점령하겠느냐?”

“당연히 멀쩡한 상태에서 뺏으려고 하겠죠.”

“그렇지? 그래서 안 쓰는 거야. 그리고 유성 소환의 경우 시간도 많이 걸리고 말이지. 마법을 쓴 후 30일쯤 후에나 날아오니까 아마 전쟁이 끝난 후에나 떨어지겠 지. 그러니까 유성 소환을 썼다는 말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와 싸우게 되었다는 말이겠지.”

“흐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아는 상대와 싸우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죠. 그건 그렇고 여기가 크라레인시라는 것은 알았으니까 슬슬 이동해서 합류하는 것이 좋겠죠? 아마도 뒤쪽으로 가다 보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