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권 15화 – 남궁상 열애 사건

남궁상 열애 사건

언제부터일까, 그녀를 가슴 속 안에 담게 된 순간은…. 언제부터일까, 그녀를 바라보며 그리워하던 때가… 누가 그랬던가, 사랑은 그리움이라고. 나는 그녀를 그리워한다. 미칠 듯이 그녀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는 멀기만 하고 그 떨어진 거리만큼 더욱 그녀를 그리워한다.

남궁상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깊은 어둠이, 칠흑보다 검은 어둠이 펼쳐진 들녘 같은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답답하고 어딘가 꽉 막 혀 버린 것 같은 이 마음. 자꾸 한숨만 새어 나왔다. 세 살 때 검을 잡아 본 이후 이렇게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빼앗겨 본 적이 없었는데…….

그때 그 조그만 손으로 만지고 느껴 본 시리도록 푸른 검 빛의 서늘함 이후 처음으로 자신을 송두리째 사로잡은 그녀. 그녀를 보기만 해도 마음과 육신의 모든 것 이 그녀를 향해 움직인다. 검을 잡고 있는 오른손의 힘은 자꾸만 약해지고, 정신은 집중을 잃고 방황한다. 검(劍)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 할 시선이 자꾸만 그녀 를 향하는 것도 도저히 멈출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 무사로서의 길이 자꾸만 멀어져 가는 것을 남궁상도 느낄 수 있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마음을 억제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한숨만이 토해져 나왔다.

“휴우…….”

“허허, 그렇게 맘고생 할 바엔 차라리 사내답게 당당히 고백을 하게. 옆에서 보고 있는 내가 더 답답하군.”

고개를 숙인 친구의 천근같이 무거운 한숨을 장엄한 노래 소리인 양 묵묵히 감상하고 있던 현운이 도사(道士)로서의 수행이 부족했던지 인내의 한계를 느끼며 말 을 거들었다.

“현운, 그렇게 간단한 일이면 내가 왜 이리 고민하고 있겠는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이러고 있는 것 아닌가. 자넨 뻔히 알면서도 그러나?”

“뭐 자네의 순정(純情)을 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옆에서 지켜보자니 너무 답답해서 그러네. 이제 그만 일방통행의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고 과감한 쌍방향 통행 에 도전해 보게나.”

저 사람 도사 지망생 맞아? 모양새가 영 아닌데? 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는 친구를 쳐다보며 남궁상이 말했다. 하지만 그 눈빛은 힘을 잃어 버려 이미 생기를 잃어 버린 그런 눈빛이었다.

“허허, 이보게 상, 나 같으면 당장 달려가서 진 소저에게 마음을 고백하겠네. 자네가 이렇게 우물거리고 있는 동안 딴 놈이 진 소저를 덥석 낚아채 가면 어쩌려고 그러나? 용기를 가지게. 진 소저가 칠봉(鳳) 중의 한 명이라고 하나 자네도 구룡 중의 한 명이 아닌가. 꿀릴 게 무엇이 있는가. 당당해지게. 지금의 그 모습은 나와 같은 구룡 중의 하나인 남궁검가(南宮劍家)의 남궁상 같지 않군. 고백을 하게, 고백을. 자네의 모든 마음을 진 소저 앞에 바치는 것일세. 예로부터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차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자네는 도전해 보지도 않은 채 속앓이만 하려 하는가.”

“후후, 요즘 도가(道家)에서는 ‘사랑을 통해 궁극의 참된 도를 이룬다, 우리 모두 사랑하자.’ 로 가르침을 전향한 모양이로군. 무당에서는 연애술(戀愛術)도 가르치 나 보지? 열심히 배워 보게나. 나중에 나처럼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사랑과 연애에 대해 공부해 두는 게 좋을 걸세.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사랑 수법 을 배워 보니 어떻던가? 후훗……. 알겠네, 알았어. 이제 그만 하세. 이 도사 같지 않은 친구야. 후훗, 고백, 고백이라…….’

남궁상은 묵묵히 은빛으로 수놓아진 하늘의 어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검고 깊은 심연의 색조처럼 그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고, 족쇄가 차여진 발걸음은 무겁기 만 했다.

남궁상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궁상을 떨던 그 자리, 하늘이 무너질 듯 땅이 꺼질 듯 고민하며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던 남궁상을,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경쟁자 이며, 어려울 때의 상담원이기도 한 친구 현운이 겨우겨우 달래어 데리고 떠난 그 자리에 검은 인영의 그림자가 홀연히 나타났다. 검은 인영의 정체는 바로 비류연 이었다. 지금까지 나무 위에서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듣고 내려온 것이었다.

“쿡쿡, 정말이지 남궁상이란 이름 석 자 값은 하는 놈이구먼. 저 나이에 궁상을 팍팍 떨며 쪼그려 앉아 있는 꼴이라니. 쯧쯧.”

비류연은 지금까지 나무 위에서 모든 상황을 몰래 다 지켜보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남자의 푸념을 듣고 있자니 이건 너무 답답하고 바보 같았다. 뛰어 내려가 한 대 쥐어 패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한 번만 봐 주기로 했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그럴 수야 있나. 그 순간, 비류연은 다시는 그 짜증나는 푸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궁상자( 연애 고민을 해결해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남궁상에게 행이 될지 불행이 될지는 오직 신(神)만이 아실 일이었지만.. 남궁상의

“푸헤헤.”

고고한(?) 웃음 소리와 함께 비류연의 몸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열심히 밥하고 빨래하며 가사 활동에 전념하고 있던 예쁜 진령은 사부로부터 한 통의 서신을 받았다. 여기서 사부는 물론 현재 그녀를 가르치고 있는 비류연을 말 하는 것이다.

령아에게

다른 애들에게 알리지 말고 수련소 뒤쪽 숲으로 오도록 하거라. 내 긴히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니 어김없이 신시 초까지 꼭 오도록 하거라. 그리고,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 비밀이라는 것을 반드시 명심하도록 해라.

멋지고 인자하고 자애로우신 무적 최강의 남자 사부가!

서신을 받은 진령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이 비밀리에 나오라니? 여태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으니 그 막막함은 더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 부의 명이니 어길 수는 없고 – 거역하자니 그 후한이 두려웠다 하는 수 없이 진령은 신시 초(6시~7시 사이)까지 사부가 오라는 약속 장소에 가기로 하였다. 별일이 야 있겠는가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했다. 어떤 운명이 그녀를 기다리는지 알지도 못한 채.

“사부님, 사부님.”

투명한 미성이 울창한 숲을 은은히 진동시켰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수련소 뒤쪽 숲은 나무가 울창하여 짙푸른 수림(樹林)에 의해 모든 빛은 가 리워져 있었다. 오직 나뭇잎들 사이로 새어 드는 희미한 빛만이 작은 틈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뿐이었다. 게다가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이니 숲은 더욱 어두울 수 밖에 없었다. 그때 그녀의 가냘픈 등 뒤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 사부님?”

진령의 목소리를 들은 인기척은 순간 움찔하는 것 같더니 이내 응답을 하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진령에게는 전혀 의외의 목소리였다.

“진, 진 소저?”

인영(人)의 목소리는 언뜻 느끼기에도 떨리고 있었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억지로 진정시키고 가까스로 말하는 사람 같았다.

“누구… 어머, 남궁 공자?”

마침내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본 진령이 화들짝 놀라 외쳤다. 이런 의외의 시각에 이런 의외의 곳에서 그를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탓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진, 진 소저. 이곳엔 어쩐 일로? 이런 외딴 곳에 진 소저 같은 분이 무슨 볼일이…….”

진령의 곁으로 다가온 남궁상이 더듬더듬 조심스럽게 물었다. 긴장한 탓인지 그의 말에는 상당히 두서가 없었다. 하긴 남궁상은 지금 숨이 턱턱 막히고, 심장은 터 질 것처럼 벌렁거려 곧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을 가까스로 참고 있는 중이었다. 자칫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당장 심장 파열로 즉사할 것 같은 위기감이 그의 온몸을 엄 습했다. 그런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심장 박동 수를 더욱 증가시키는 그녀의 곱디고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전 사부님이 부르셔서 여기에…….”

“앗, 저, 저도 마, 마찬가지로 사부님께서 부르셔서 왔습니다. 그, 근데 어디 계시는지 보이시질 아, 않는군요. 기, 긴히 하실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는데 말입 니다.”

“제게도 그런 내용의 서신을 보내 오셨어요. 직접 얘기해도 됐을 텐데……. 남궁 공자께도 서신을 보내셨다니 사부님의 의중을 짐작치 못하겠군요.”

“사, 사부님의 의중을 그 누가 파,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후, 그건 그래요.”

그녀의 살풋한 미소는 가뜩이나 위험한 남궁상의 심장에 불을 지피는 격이었다.

둘이 의혹에 둘러싸여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맹렬한 살기가 두 사람을 감싸는 게 아닌가. 바늘 같은 살기의 무리들이 두 사람의 신경을 자극했다. 남궁상은 폭발 일보 직전에 놓여 있던 자신의 심장이 순식간에 원상태로 돌아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목숨은 구했지 만 아무래도 또다른 생명의 위기에 처한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남궁상과 진령은 살기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이런 살기의 안개 속에서 이러한 행동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별다른 대안도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것이 있었다.

기호지세(騎虎之勢:호랑이를 앞에 둔 위험한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원래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호랑이 등에 올라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천만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내리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리자니 호랑이 점심 식사용이 뻔하고……. 비슷한 표현으로 기호지 세(騎號之勢)가 있는데 이는 걷잡을 수 없는 기세’를 나타내는 말이니 용법(用法)에 주의하도록 하자.)! 두 사람의 눈 앞에 백수의 왕이라 칭해야 할 순백의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나타냈다.

이 세상 모든 생물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만 같은 거대하고 날카로운 발톱, 녹옥처럼 시리게 빛나며 자신보다 낮은 하급 존재를 압도하는 듯한 눈, 몸체의 신영 (身影)만으로도 대지를 덮어 넓은 그늘을 만드는 거대한 몸, 몸 길이만도 1장 반은 족히 되어 보이는 백호(白虎)였다.

백호는 새하얀 살기를 내뿜으며 자신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압도하는 듯 노려보고 있었다. 사냥감을 발견한 사냥꾼의 눈을 가지고서……. 둘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 다. 게다가 지금 백수의 왕께서는 상당한 식욕이 당기시는 것 같은 분위기였으므로 둘의 긴장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으으응? 이건 또 무슨 초대받지 않은 객(客)의 등장이야. 나의 계획이, 열심히 머리 싸매고 밤을 새워 짜 놓은 나의 계획이 차질을 빚어서는 안 돼. 이놈아, 내 계획 물어내라 인마. 나의 시간과 돈, 두뇌의 사용에 따른 정신적 육체적 피로.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도로아미타불로 만들다니. 이 고양이 새끼를 용서할 수 없다.’

순간 뜻밖 변수(變數)의 급작스런 출현으로 발생한 계획의 전면적인 경로 변경으로 인해 비류연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런 초과 사용에 비류연의 뇌가 비 명을 질러 댔다. 하지만 결론은 금방 내려졌다. 이를 어쩌지, 라고 발을 동동 구르며 고민해 봐도 별 뾰족한 수가 없으니 이단(二段)은 제쳐 두고 일단(一段)은 그냥

잠자코 지켜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명색이 무림의 기대주, 천무(天武)의 기린아(麒麟兒), 떠오르는 태양이라는데 설마 죽기야 하겠어, 라는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남궁상의 능력을 믿어 보기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 건 보통 놈이 아니었다. 보통의 백호보다 덩치가 2~3배는 커 보이는 진짜배기 놈이었다. 몸 길이만도 자그마치 1장 반, 서 있는 신장의 길이만도 반 장 가까이 되는, 정면에 서면 눈이 마주칠 정도의 덩치를 가진 거대한 놈이었다. 정말이지 격(格)이 틀리다는 말을 사실로 입증하는 듯했다.

순간, 두 사람과 대치하고 있던 백호가 뭔가 결정을 내린 듯 결정 사항의 실행을 위해 몸을 날렸다.

“쿠어어엉!”

비호(飛虎)같이 라는 말은 아마도 지금 같은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만든 말이었을 것이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비호(飛虎) 같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공격이었다. 나 는 새라 할지라도 그들 사이의 거리를 이처럼 빠르게 줄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위험해!”

라는 개성 없는 외침과 함께 남궁상은 진령을 덮쳤다. 물론 이것은 남궁상이 진령에게 모종의 식욕(食)이 땡겨 꿀꺽하기 위해 한 행동은 아니었다. 또한 이런 때 수작 한 번 걸어 보지 아니면 언제 걸어 보겠어, 라는 비장한 마음으로 날린 것도 아니었다.

이 순간 남궁상의 머리 속엔 오직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보통 때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무림의 명문가 남궁세가 의 셋째 아들이요, 무림 최고라고 불리는 천무학관에서도 기재 중의 기재라고 불려지는, 선택받은 구룡의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호랑이가 산 중의 왕이지만 짐승이기는 마찬가지. 그런 짐승 하나 요리 못 할 정도로 어수룩한 실력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있었다. 그렇다, 지금 두 사람의 몸은 여느 때처럼의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백호를 피해 몸을 날렵하게 움 직이려고 했을 때 두 사람은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몸을 마음대로 운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그 둘의 발목과 손목에 저주의 족쇄처럼 채워져 있는 엄청난 무게의 묵환이 두 사람을 장승처럼 그대로 묶어 두는 원인이 되었다. 보통 때와 달리 두 사람은 아직 이 묵환(墨環)의 무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 가 진령은 선천적으로 남자보다 힘이 떨어지는 여자였다. 물론 묵환의 운신이 힘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보다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태 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살기를 품은 바람이 남궁상의 귓가를 날갯짓하며 스쳐 갔다. 바람의 갈기에 의해 남궁상의 볼에 상처가 나고 그곳을 통해 출혈이라는 생리 작용이 일어나기 시작 했다. 남궁상의 등은 식은땀으로 젖어 들었고, 그 위를 알 수 없는 소름이 훑고 지나갔다.

첫 번째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에 대해 의아함을 느낀 백호가 멋지게 지상으로 착지하자마자 다시 방향을 틀어 빛살처럼 빠르게 두 사람을 덮쳤다. 착지와 동시 에 이루어진 순간적인 방향 전환, 그리고 빛과 같은 도약으로 이루어지는 매끄러운 연결 동작, 아마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런 공격을 피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 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신체에 제약이 있다 해도 남궁상은 보통 사람의 범주는 뛰어넘는 무인이었고 더군다나 지금 곁에는 사모하는 진 소저마저 있으니 그대로 허무하게 당할 수만은 없었다.

짧은 순간의 판단으로 남궁상은 진령을 덮치며 땅바닥에 내리눌렀다. 그 순간 등판을 통해 전달되는 섬뜩한 기운과 함께 벼락 같은 충격이 몸을 때렸다. 불의 화끈 한 고통이 느껴졌다. 백호의 발톱이 그의 등을 훑고 지나간 것이다. 4줄기의 발톱 자국으로부터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지만, 만일 엎드린 몸이 조금이라도 높았더라면, 혹은 몸을 숙이는 것이 약간이라도 늦었더라면 남궁상은 지금쯤 저승 문턱을 막 넘고 있었을 것이다.

상처가 쓰라려 오고 있지만 남궁상은 이를 악물었다. 진령 소저를 내리누른 상태에서 그녀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내리눌러……??

그 순간 남궁상은 현재의 상황이 벌여 놓은 모습을 불현듯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토록 사모하던 진령의 숨결과 함께 붉은 도화 빛으로 물든 얼굴이 바로 남궁상의 코 앞에 놓여 있었다. 진령의 따뜻한 숨결이 그의 코끝을 어지럽혔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충격이 그의 온몸을 세차게 때렸다. 하마터면 그는 백호랑이와 싸워보지 도 못하고 심장마비로 죽는 줄만 알았으니, 그의 낭패함과 부끄러움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좀더 생생히 살펴보자면 연약한 미소녀 진령이 그 숫기 없는 숙맥 검사 남궁상의 밑에 깔려 있고, 남궁상은 위에서 그녀의 사지(四肢)를 찍어누르 고 있는 듯한 위험천만한 모양새였다. 두 사람의 얼굴은 곧장 겹쳐질 듯 바짝 붙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비록 백호가 등 뒤에서 목숨을 가져갈 듯 으르렁거리고 있다는 사실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남궁상이 느끼고 있는 것은 왠지 알 수 없는 포근 함과 가슴을 통해 느껴지는 부드러움, 그리고 그의 눈썹을 흔들리게 하는 진령의 뜨거운 숨결뿐이었다. 꿈결 같은 한 순간이란 바로 이런 순간을 얘기하는 것이 아 니었을까.

진령은 볼이 도화 빛으로 물들여졌지만 남궁은 자신이 비켜야 하지 않을까? 라는 지극히 군자도(君道)적인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머리 속이 백지처럼 하 얗게 텅 비었으니 어찌 그런 생각이 나겠는가. 몸과 마음과 생명을 다 바쳐, 백호로부터 아리땁고 고결한 진 소저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싸안고 있으니, 백 호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진 소저를 껴안고 보호해야 한다는 자기 합리화만이 맴돌 뿐이었다. 결코 코 속으로 스며드는 진 소저의 이상야릇한 향기가 좋아서, 혹은 자신의 가슴을 통해 느껴지는 왠지 따뜻하고 부드러운 정체 불명의 느낌에 취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검(劍), 남궁상의 첫사랑은 바로 검(劍)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던 3살의 어린 시절, 그때 본 검의 푸른 냉기와 예기는 어린 남궁상의 뇌리 속에 깊숙이 박혀 지워지 지 않았다. 5살이 되어 정식으로 검 배우기가 허락되었을 때, 자신의 검을 받고 얼마나 기뻐했던가. 어린 마음에 첫사랑인 검을 들고 쉬지 않고 연무(鍊武)를 했었 다.

나이 10살 무렵에는 이미 그 기량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문중 어른들의 관심 속에서 집중적인 검도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그 어렵다는 천무학관의 입관 시 험에 유유히 합격하여 주위 어른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먼저 합격했던 7살 위의 형 남궁진과 자신보다 3살 많은 둘째 형 남궁우에 이은 삼형제의 쾌거였 다. 그리고, 천무학관 1년차 중에서 다른 동기들을 누르고 최고라는 칭호를 가진 구룡칠봉의 1인이 되었다. 그의 인생에 지금껏 막힘이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 다시 검(劍) 한 자루가 나타났다. 그 검은 자신의 손에 잡히지 않지만, 간절히 잡기를 바라는 검이었다. 하지만 그 검은 너무도 사랑스럽고 성스러워

보여 손에 얻기가 난해한 일처럼 느껴졌다. 이번의 검은 너무나 아름답고 따뜻하며 고결한 자태로 뭇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검은 5살 때 잡아 본 검보다 더 날카롭고, 훨씬 더 위험했다. 그 검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자신의 마음에도 충분히 상처를 입힐 수 있을 만큼 날카롭고, 위험하다는 점이었다. 이번 에도 검(劍)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 검(劍)의 이름은 바로 진령(眞)이었다.

“어어, 쟤 좀 봐. 얼씨구! 허, 웃기지도 않네. 저런 망할 늑대 같은 놈을 봤나. 진(眞) 군자인 척하며 갖은 폼을 다 잡더니 알맹이는 별수 없구먼. 알고 봤더니 늑대 수십 마리를 비암蛇과 함께 기르고 있던 놈일세.”

비류연은 순간적으로 현시(時)의 상황을 판단하고 단번에 결정을 내렸다. 더 이상은 눈꼴 사나워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비류연은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행동 방침을 세운 다음 곧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하고, 곧바로 실천했다. 놀라운 행동력이 아닐 수 없 었다.

더 두고 볼 것도 없다고 판단한 비류연은 나무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가 뛰어내려 착지한 지점은 남궁세가의 셋째 아들 궁상이와 무림의 기둥이라는 구대문 파의 사대대파(四代派) 중 하나인, 명산(名山) 아미산(峨嵋山)에 자리잡고 있는 아미파(峨嵋派)의 직전 제자 진령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쓰러져 있는 곳이었다. 눈 앞에는 집채만하다고 비유적 표현을 써야 딱 어울릴 만한 백호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순간 비류연의 오른 소매에서 한 줄기 은색 섬 광이 날아올라 순식간에 백호의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순간의 빛, 찰나의 정적, 그리고 포효!

“쿠어어 헝!”

그리고, 하나의 죽음(死).

“끝인가?” 라고 남궁상과 진령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공포스럽고 처절하게 산을 울리는 단 한 번의 포효와 함께 백호는 서서히 땅으로 자신의 거대한 몸을 눕 혔다. 백수의 제왕이며 만민과 만수의 두려움으로 군림하던 백호가 부잣집 의자 깔개 내지는 최고급 벽걸이가 되어 비싸게 팔리게 될, 운명과 운명이 교차하는 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짐승의 먹거리가 될, 운명에서 벗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야, 일어나라 일어나.”

비류연이 발끝으로 으스러지도록 진령을 꼭 껴안고 있는 남궁상의 엉덩이를 툭툭 걷어찼다.

“누, 누구… 앗!”

아직까지도 천상과 지옥의 교차점에서 헤매고 있던 남궁상. 화들짝 놀란 남궁상이 퉁겨 오르듯 벌떡 일어났다.

“아, 그러니깐 저, 이것은…….”

얼굴이 한여름의 태양처럼 벌게진 얼굴로 더듬더듬 열심히 변명 거리를 찾는 남궁상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얼굴에 붉은 부끄러움이 없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 훌륭한 현실 타개책을 생각해 내지 못한 것 같았다. 얼굴이 빨갛기는 진령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닌가. 진령이 부끄러움에 가득 찬, 도화 빛으로 물든 얼굴로 어렵사리 남궁상을 향해 말을 꺼냈다.

“구, 구해 주셔서 감사해요, 남궁 소협.”

“별, 별 말씀을… 진 소저를 위해서라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따위 목숨쯤이야 진 소저를 위해서라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응, 당연한 일? 무슨 당연한 일? 령아를 으스러지도록 껴안고 땅 바닥에 눕혀 구른 일 말이냐? 아니면 령아를 위에서 내리 찍어 누른 것을 말한 것이냐? 난 너의 그 당연한 일이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사, 사부님!”

곧 터져 버릴 것처럼 빨개진 얼굴로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령아야, 네가 지금 현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인데 아리따운 너의 꽃 같은 18살 인생을 지킨 건 여기서 너를 으스러지도록 껴안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 언제나 궁상만 떠는 궁상 대협이 아니라 여기 계신 멋쟁이 사부란다. 한 순간의 실수로 진실을 외면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왜 두 사람을 불렀는지 본연의 목적을 망각하고 있는 비류연이었다.

“아, 예. 구해 주셔서 감사해요, 사부님.”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듯 진령이 황급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허허허, 오냐. 그래야지, 암, 그렇고말고.”

“구해 주신 은혜 감사 드립니다, 사부님.”

남궁상도 손을 모아 포권하며 감사를 표했다.

“어흠, 됐네 됐어. 감사는 무슨… 그런데 궁상 대협!”

비류연이 손을 휘휘 저으며 약간 비꼬는 투로 말했다. 그의 눈은 약간 음험하게 변한 채 남궁상을 향하고 있었다.

“오늘 기분이 좋았겠구먼. 그런데 얼굴을 보니 아직 아쉬운가 보지? 하지만 너무 입맛 다시지 말게나. 앞으로도 기회가 또 있을 게야. 그 기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는 것이 바로 사나이 아니겠나. 하하하!”

“사, 사부님!”

남궁상은 너무 놀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악쓰듯 고함을 쳤다. 옆에 있는 진령은 너무 부끄러운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만 푹 숙인 채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하하하, 그럼 이만……..”

둘을 맺어 주겠다며 이 일을 시작한 주제에 처음의 목적은 완전히 망각의 우물 속에 처박아 놓고 오히려 훼방만 놓은 비류연은 간단한 인사와 함께 훌쩍 뛰어올라 유유히 숲 속으로 사라졌다. 단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웃음 소리만이 두 사람의 귓가에 남아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아무도 남지 않은 공간 속에서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마주 보며 조용히 서 있었다. 그때 남궁상의 손등으로 소매를 빠져 나온 핏줄기 하나가 흘러내렸다. “어머, 피!”

진령이 깜짝 놀라 외쳤다.

“아, 별거 아닙니다. 약간 스쳤을 뿐입니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남궁상이 말했다. 사모하는 여인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별거 아니긴요. 어서 상처를 보여 주세요.”

진령이 섬섬옥수 같은 고운 손으로 강제로 남궁상의 몸을 돌렸다.

“이거 참 괜찮은데…….’라고 말하면서도 남궁상은 마지못한 듯 등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 감동과 흥분의 기색이 역력했다.

“어머!”

남궁상의 등을 본 진령이 놀라며 외쳤다. 남궁상의 등은 호랑이 발톱자국으로 인해 4줄기로 쭉 찢어져 있었고, 계속해서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처럼 결코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 조금 전 백호의 두 번째 공격을 피할 때 남궁상이 자신을 보호하다 생긴 상처였다. 이런 큰 상처를 입고도 신음 소리 한 번 내 지 않다니. 그것도 자신을 보호하려다가 생긴 상처가 아닌가. 진령의 마음 속에 작은 파문의 동심원 하나가 생겨났다.

“이런 걸 괜찮다고 하다니……. 절대로 괜찮지 않아요. 보세요, 제가 상처를 치료해 드릴게요.”

진령은 기가 찬다는 듯 말하고는 조심스럽게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먼저 남궁상의 윗도리를 벗긴 다음 가지고 있던 금창약을 상처에 바르기 시작했다. 하지 만 남궁상의 마음은 어디 콩팥에라도 가 있는지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진 소저의 손길은 참 부드럽구나…….’

쓰라림보다는 더 큰 황홀함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우선 급한 대로 금창약을 발랐지만 미처 붕대가 없었다. 진령의 고운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떠올랐다. 붕대가 없으니 상처를 싸맬 수 없게 되자 진령은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도 잠시, 뭔가를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난 진령은 자신의 치마를 급히 찢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이었다.

“진 소저, 옷을 찢으시다니!”

화들짝 놀란 남궁상이 외쳤다. 찢겨진 치마 사이로 살포시 내비치는 그녀의 고혹적인 각선미가 그렇지 않아도 혼미한 눈을 더욱 심하게 어지럽혔다.

“괜찮아요. 남궁 소협께서 제 목숨을 구해 주셨는데 이까짓 옷이 문제겠어요.”

진령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은 훈련 첫날, 비류연에게 원래 입고 있던 옷을 압수당하고 지급받은 단 두 벌뿐인 옷 중의 한 벌이었다. 단 두 벌뿐인 옷 중에 한 벌을 찢 게 만들었으니 남궁상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래도 진 소저께서 그러시면 제가 면목이 없어요. 이거 너무 황송해서…….”

남궁상이 뒷말을 흐렸다.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진령이 남궁상의 상처에 자신의 치마를 찢어 만든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남궁상은 남자고 진령은 여자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남궁상은 어깨 넓이와 가슴둘레가 진령보다 컸다. 무공을 수련한 사람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진령이 남궁상의 상처를 싸매기 위해 붕대를 돌리려고 하자 남궁상의 등과 가슴 둘레가 너무 커 마 치 진령이 남궁상을 뒤에서 껴안은 것 같은 모양이 만들어졌다.

다시 한 번 남궁상의 머리는 새하얗게 비어 버렸다. 등을 통해 전해지는 말랑말랑하고도 부드럽고 따스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하고 감미로운 느낌은 벼락 이 되어 남궁상의 정수리에 내리 박혔다. 마침내 이 순간을 영원히 공유해야겠다는 심보가 들었는지, 아님 제정신이 아닌 탓에 맛이 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붕대를 감싸기 위해 남궁상의 가슴을 두르고 있던 진령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로서는 아마 무의식중에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평소 궁상 떠는 것 말고는 다른 특기가 없 는 남궁상이 제정신으로 일을 저질렀을 리는 만무했다.

순간 진령의 몸이 흠칫했다. 가슴을 감싸고 있던 손을 덥석 붙잡혔으니 억지로 뺄 수도 없었고 계속해서 남궁상을 뒤에서 껴안고 있는 모양이 된 것이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진령은 얼굴을 가득 붉힌 채 소리도 지르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흐르기 시작한 영원과도 같은 긴 정적(靜寂).

넋을 잃고 있던 남궁상이 정신을 차렸는지 화들짝 손을 놓았다. 목에 뭔가 걸렸는지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저녁의 석양 때 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선지 두 사람의 얼굴은 모두 붉어 보였다. 차츰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이 온통 둘을 사로잡은 것처럼 보였다.

멈추어져 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일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남궁상이었다.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남궁상의 얼굴은 더 이상 붉 게 달아오르지 않았다. 남궁상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결심을 한 듯 정중히 오른손을 내밀며 진령에게 말했다.

“자, 그럼 가실까요. 소저!”

내밀어진 손, 그건 어떤 선택을 바라는 손이었다. 이 손을 한 번 내밀기 위해 남궁상은 초인적인 인내력와 태산 같은 용기를 발휘해야 했다. 그리고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는 소녀. 소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무언의 동작으로서 대답했다. 그녀 마음 속의 파문은 점점 더 커져 이제 마음을 흔들고 가로놓인 벽을 허물어 뜨릴 정도로 강렬해졌다.

“예.”

살며시 자신의 왼손을 내어 주며 미소 띄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녀의 옥용에 떠오른 미소는 황홀할 정도로 눈부셨다. 한순간에 그녀의 미소에 취해 버린 남궁상이 부서질세라 조심스레 그녀의 하얀 옥수를 쥐었다. 밝게 빛나는 빛의 무리가 산산이 부서지며 빛나는, 따스함과 상쾌함이 가득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