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권 2화 – 사부가 나에게 처음 가르친 것은 밥 짓는 법이었다

비뢰도 1권 2화 – 사부가 나에게 처음 가르친 것은 밥 짓는 법이었다

사부가 나에게 처음 가르친 것은 밥 짓는 법이었다

師父初敎家事活動

“깡! 깡! 깡!” 아름다운 불꽃이었다.

망치와 달구어진 쇠가 부딪치면서 환상적이고 진기한 불꽃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한 순간에 사그라지는 불꽃의 아름다움은 사람의 혼을 빨아들일 만큼 신비로운 힘이 있었다.

쇠망치를 든 소년의 손목에는 거무튀튀한 흑색의 팔찌가 차여져 있었다. 비류연이었다.

소년의 망치 치는 솜씨는 매우 숙달되어 있었고 또한 자연스러웠다. 오랜 시간 동안 이 일을 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젠장, 사부는 왜 매일 그 모양이야. 으이구!”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도대체 자기를 먹여 살리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할수록 쇠망치 내려치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죄도 없는 불쌍한 쇳덩이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일격 하나 하나가 자신의 사부를 향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나에 피어 오른 불꽃 속으로 소년은 자신의 혼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지금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하고 있는 일은 검을 만드는 일이다.

검을 만들기 위해 철을 단련시키는 데는 상당히 숙련되고 정밀한 기술이 필요했으므로 대장간에서도 믿을 수 있는 장인들만이 검을 만드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었 다. 그들에게는 검장(劍匠) 칭호가 주어지는데 대장장이에게는 매우 명예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가장 어린 최연소 검장이지만 감히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 못한다. 나의 능력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이 대장장이 노릇을 한 지도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다.

문제는 이것이 완전히 본업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번 돈을 가지고 사부와 내가 먹고사는 것이다. 아, 물론 사부는 형편없는 백수였다. 자연히 돈 버는 것이 나의 주 업무이자 주 임무가 되었고 무공을 연마하는 것은 심심풀이 부업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무슨 취미 생활이라고 할까.

그런데도 한심한 사부 왈,

“우리도 사람이니 일단 먹어야 무공을 연마하든 할 게 아니냐!”

라고 말한다. 코웃음이 나오다 콧물이 빠질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사부와 만난 것은 벌써 7년 전, 그러니까 10살 때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평범한 조각가의 아들로 아버지는 조그마한 장신구나 작은 불상들을 조각하여 파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5살 때 이미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상당히 아름다운 분이셨던 걸로 기억된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어서 자주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자상한 분이셨고 틈나는 대로 조각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덕분에 10살이 되자 나도 상당한 수준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그만 불행 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그 불행은 끔찍한 것이자 평등한 것이었는데, 마을에 갑자기 돌림병이 돌았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죽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아버지도 끼 여 있었다. 난 졸지에 고아가 되고 말았다. 일가 친척이라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난 우리 마을에서 유일한 예외였으므로 혼자서 아버지의 무덤을 팠고 어설프게나마 아버지를 묻어 드렸다. 손이 까지고 피가 흘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난 묘비 대 신에 꽤 큰 통나무에다 아버지의 모습을 조각하여 무덤 앞에 세웠다. 나의 예술적 재능은 매우 뛰어난 것이어서 10년 인생 최고의 걸작품이라 할 수 있는 명품을 완 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해 보였다. 나는 곧 같은 크기의 통나무에다 어머니의 모습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혼자서는 쓸쓸할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 아버지의 무덤 옆에는 어머니의 무덤이 있었다. 어머니의 모습을 다 조각하여 아버지 옆에 나란히 세우고 막 뒤로 돌아섰을 때였다. 웬 노인이 서 있었다.

그 노인은 아버지의 무덤을 가리키며 “이 무덤을 네가 만들었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정직하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때만 해도 경로 사상을 잘 실 천하고 있는 착한 어린이였다.

노인은 다시 “이 나무 조각도 네가 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 두 개의 조각은 그때까지 내가 깎은 조각 중에서 최고의 걸작이었으므로 나는 서슴없이 “그렇소.”라 고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노인은 잠시 찡그린 얼굴로 뭔가를 생각하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며 “나와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 왔다. 그때 나는 “당신을 따라가면 뭐가 생기지요?”라고 물어 보았다.

노인은 나의 예의 바른 물음을 듣고는 허허 웃더니, 천하 제일의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코흘리개 어린애도 아닌 나 이에 처음 만난 사람의 말을 덜컥 믿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요?”

난 분명한 증거를 요구했다. 그러자 노인은 왼편 숲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손을 한번 쓱 휘둘렀다. 순간,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하얀 섬광 같은 것을 보았는데 10 장 밖에 서 있던 소나무 10여 그루가 밑동만 남은 채 모두 잘려 나갔다.

“어때, 배우고 싶지?”

그때 난 솔직히 노인의 행색을 봐서 천하 제일의 무공을 가르쳐 준다는 말은 믿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의 무공은 가르쳐 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아 였고 갈 곳이 없었으며, 무림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 노인을 따라가도 손해는 없을 것이라는 멍청한 결론을 내렸다. 수지타산의 계산이 끝나 자 나는 영악하게 “알았어요!”라고 말하며 노인의 손을 잡았다. 그것이 사부와의 첫 만남이었고 이 빌어먹을 운명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재빠른 계산이 무시무시한 착오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부는 나의 수지타산에 최초이자 가장 치명적인 착오를 안겨 준 사람이었다. 그때의 결정을 난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사부는 나를 어느 마을 옆에 위치한 산 속으로 데리고 갔다. 마을은 꽤 컸다. 산도 꽤 큰 줄기와 연결되어 있어 매우 높고 깊었다. 이야기책이나 이야기꾼의 입담 속 에서 나오는 기인(奇人)들은 거의 모두 이런 깊은 산중에서 속세와 떨어져서 제자를 가르친다. 나는 사부가 점점 더 그럴듯하게 보였다.

사부가 나를 데려간 곳은 방 2개에 작은 부엌이 딸려 있는 허름한 오두막이었다. 오두막 옆에는 꽤 많은 장작들이 쌓여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장작 패는 곳에는 당 연히 있어야 할 쇠도끼가 보이지 않았다. 사부는 이곳이 자신이 기거하는 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곳이라는 것도……..

나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고 기화요초가 만발한 무릉도원(武陵桃源) 같은 진기한 장소가 아니라 내심 실망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사부가 실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 나는 마음씨 고운 착한 어린이였던 것이다. 아무튼 거주지와 주거 환경으로 파악해 보건대 사부는 그렇게 급수 높은 기인(奇人)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생각하며 바다와 같이 넓은 도량으로 이해했다. 이 얼마나 진주 구슬처럼 아름답고 고운 미담(美談)이란 말인가!

그러나 사부는 나를 적나라하게 배신했다. 나의 넓은 도량과 아름답고 선량하고 고운 마음씨를 처절하게 짓밟은 것이다. 사부는 나의 찬란하게 빛나는 미래의 청 사진을 조각조각, 그리고 발기발기 찢어 버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때부터 나의 고난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사부가 나에게 처음 가르친 것은 밥 짓는 법이었다.

쌀은 절대 세 번 이상 씻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 세 번 이상 씻으면 영양가가 떨어진대나 어쩐대나.. 그리고 밥을 지을 때, 물은 손을 올려놔서 물이 손등까 지 차는 정도가 좋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솥뚜껑은 꼭 닫도록 당부받았다. 솥의 밀봉 상태와 밥의 완성 상태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곳처럼 높은 산에서 밥을 지을 때는 솥 위에 돌덩이를 하나 올려놓는 것이 비법(秘法)이라며 사부는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을 자랑스럽게 전수해 주었다. 참 훌륭한 사부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밥을 짓는 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으로 사부가 나에게 가르친 것은 반찬 만드는 법이었다. 사부는 선인(仙人) 급의 상급 기인(上級奇人)이 아니었 기 때문에 생식(生食)만으로는 도무지 버티지 못하는 것이었다. 고기를 먹어 넉넉하게 단백질을 섭취해야 했고 때때로, 아니 시도 때도 없이 술을 마셔야만 했다. 나도 생쌀과 솔잎만 씹고 살기는 싫었기에 하는 수 없이 요리하는 법을 배웠다.

일단 야채 볶음과 고기 볶음, 두부조림 등의 간단한 밑반찬과 국 끓이는 법 등을 배웠다. 야채를 볶을 때는 한 번 기름을 쳐서 순식간에 볶아야 한다고 했다. 기름 을 치는 것은 야채의 향과 맛이 볶는 도중에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특히 사부는 요리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사부의 전직이 의심스러웠다. 아니, 어쩌면 아직 현역에 종사중인 주방장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뭐 사부 말로는 앞으로 배울 ‘비뢰도(飛雷刀)’라는 무술은 상당한 혹은 엄청난 손재주와 섬세한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요리라는 것은 손재주, 즉 기술과 감각의 집합체로서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예술의 극치라는 것이다. 사부의 요리 예찬을 듣고 있던 나는 절로 코웃음이 나오다 결국 콧물을 흘리고 말았다.

“흥! 피, 패앵!”

그건 단지 변명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괜찮게 들린 변명이 있다면 앞으로 배울 무공의 이름이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는 것뿐이었다. 이런 저런 난리 와 사고도 많았지만(냄비를 두어 개 녹여 먹거나 솥을 태우거나 한 달 치 식량을 연습이란 명목으로 날려 버린 일 등) 이제 나는 기본적인 식단을 만들어 낼 정도의 실력은 갖추게 되었다. 놀랄 만한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밥 짓고 반찬하는 법을 배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슴 아픈 일은 그럭저럭 요리를 하게 된 이후부터는 밥상 차리는 일까지 나의 몫이 되 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요일에 따라 식사 당번을 정하는 등 평등하게 일을 분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가 보기 좋게 몇 대 맞고 말았다.

그때 나는 말보다는 주먹이 빠르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정말로 뼈가 아팠던 것이다. 사부의 주먹은 그야말로 어지간했다. 그 날, 나는 주먹으로 이성과 감 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고 이 사실은 나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날의 교훈을 난 본능 깊숙한 곳에 새겨 넣었다.

다음으로 사부가 나에게 시킨 일은 장작을 패는 일이었다. 밥 지을 때 불을 지피려면 장작이 필요하다며 나무가 쌓여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오른쪽에는 반으 로 쪼개진 장작들이 쌓여 있었고 왼쪽에는 막 산에서 해 온 나무가 쌓여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무 팰 때 쓰는 쇠도끼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사부, 쇠도끼는 어디에 있죠? 나무를 패려면 도끼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나는 공손하게 사부님께 쇠도끼가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딴 것 필요 없다!”

사부의 대답이었다.

“그럼 무엇으로 나무를 패요? 그냥 개 패듯이 패나요?”

‘패다’는 것은 도끼로 나무 따위를 쪼갠다는 의미 외에 사정없이 마구 때린다는 의미도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나의 의문은 당연한 논리적 사고 과정의 결과였다. 그러자 사부는 시범(示範)을 보여 주겠다며 짜증스러운 듯이 말했다. 분명 ‘짜증’이었다.

‘음, 아직 정신 수양이 부족하군. 대단히 부족해!’

난 나름대로 사부에 대해 평가해 보았다. 사부라는 인간은 아직 덜 된 인간인 게 분명해 보였다. 사부는 왼쪽의 나무 더미에서 어른 팔뚝만한 통나무를 한 개 집어 오더니 잘려진 나무 밑동 위에다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소매 안에서 조그마한 비도를 꺼내 들었다. 날의 길이가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비도였다. 어느 이름 모를 철물점이나 잡화상, 또는 조그만 무기점 같은 데 가서 “어이, 아저씨! 비도 한 개만 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가게 주인이 “여기 있소!”라며 가져다 주는 그런 싸구려 비도였다.

비도를 꺼내 든 사부는 통나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윽고 비도를 손끝으로 살짝 잡더니 세워 논 통나무의 원통 정 가운데를 톡! 하고 쳤다. 아니 톡! 이라는 것은 나의 표현일 뿐이고 사부는 그냥 손목만을 까딱하고 움직였고 비도는 구름을 베는 것처럼 환상적인 반원을 그리며 나무의 형체를 스치고 지나갔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세워져 있던 나무가 정확히 두 조각으로 쪼개졌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놀라 입이 나무처럼 쪼개지고 말았다. 이런 묘 기는 처음 보았던 것이다. 사부는 입이 벌어진 채 놀라고 있는 날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는 내공의 힘 없이도 기술만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비결(秘訣)은 속도이고 요령은 손목의 유연한 사용이다.”

사부는 이렇게 얄미운 한마디를 던지고는 나보고 한번 해 보라고 했다. 난 사부와 똑같이 통나무를 세워 놓고 사부와 똑같은 폼으로 손목을 까딱하고 움직이면서 나무를 향해 비도를 내리쳤다.

“톡!”

내가 내려친 비도는 나무에 겨우 손톱만한 흠집을 남기고는 정지해 있었다. 나는 내심 부끄러웠다. 얼굴이 따끈따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목뿐만 아니라 팔꿈치까지 이용해서 크게 반원을 그리며 내리쳐 봐라!”

사부는 자못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2차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실패였다. 팔꿈치까지 이용한 탓인지 조금 전보다 나무에 큰 상처를 입혔지만 50보 100보, 거기서 거기요,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이번엔 어깨까지 이용해서 아주 크게 휘둘러 보아라!”

다시 사부의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3차 시도를 해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나무 밑동 위에 세워 놓았던 통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가루가 되어 사라진 것일까? 천만 의 말씀! 탁하는 소리와 함께 저만치 날아가 버린 것이다.

“속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힘이 없어도 요령만으로 할 수 있다.”

사부는 나름대로 나무가 퉁겨져 나간 원인과 실패 이유에 대하여 친절하게 분석해 주었지만 그때 내 나이 10살, 아무리 능력이 탁월하고 재능 막강하여 장래가 유 망하다고 할지라도 도무지 성공할 리가 없었다. 성능이 좋은 쇠도끼로 내리쳐도 힘이 없거나 요령부득이면 나무를 두 조각 내기는커녕 나무 사이에 날이 박히는 수 가 허다한데 하물며 이 조그마한 비도로 어떻게 장작을 팬단 말인가. 그 비도가 천하의 신기(神器)가 아닌 다음에야……. 그러나 사부가 그 불가능을 내 눈 앞에서 실현시켜 보였으니 전혀 불가능이라고 반박할 수도 없고. 그렇다면 사부는 기인(奇人) 급의 고수가 아닌가!

그래서 내린 판단이 ‘나는 단지 초보자였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라는 훌륭한 결론의 도출이었다. 그리곤 그 사실을 사부에게 공손한 자세로 논리정연하게 말했 다.

“사부님! 전 아직 10살의 나이 어린 연약한 미소년이고 또한 초보자이기 때문에 아직은 이 작은 비도를 가지고 장작을 팰 수 없습니다. 힘과 기술이 생길 때까지는 다른 방법으로 장작을 팰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불 땔 장작이 없어서 아마도 밥을 굶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정말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어조로 사부를 설득했다. 사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오두막의 창고로 들어갔다. 이윽고 창고 안에서 뿌스럭, 뿌스럭, 쨍그 랑, 꽝, 우당탕탕! 따위의 소리가 연속으로 들려 왔다. 왠지 기분이 이상하면서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