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권 3화 – 금부연 도끼 만행 사건

금부연 도끼 만행 사건

사부는 시커먼 쇠도끼 하나를 들고 나왔다.

그리곤 그걸로 장작을 패라며 나에게 도끼를 건네 주었다. 그 도끼를 무심결에 받아 들던 나는 하마터면 어깨가 퐁! 하고 빠질 뻔했다. 그 시커먼 도끼는 지랄같이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부에게 이 도끼가 몇 근쯤 나가냐고 물어 보았다.

“겨우 100근(60g)밖에 안 나간다.”

별거 아니란 듯한 사부의 대답. 그러나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예에, 100근이라고요? 뭐 이딴 도끼가 다 있어요! 100근이면 량으로 따지면 1,600량, 돈으로 따지면 16,000돈, 푼으로 따지면 160,000푼, 리로 따지면 1,600,000리(백육십만 리)입니다. 부연 설명하자면 1근은 16량이고 1량은 10돈, 1돈은 10푼, 1푼은 10리입니다. 백육십만 리나 되는 무게를 제가 어떻게 듭니까. 그것도 이 연약한 몸매로 말입니다.”

눈동자 가득 가능한 수분을 유발시키며 사부의 동정을 사 보려고 잔뜩 감정을 잡아 보았다. 하지만 나의 이런 노력은 별다른 소득도 없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놈아, 괜스레 숫자만 불리지 말아라. 노력과 근성이 있으면 인간은 뭐든지 할 수 있다. 알겠나! 노력과 근성이다. 더군다나 이 도끼는 보통 평범한 도끼가 아니 다. 바로 살아 있는 전설(傳說)의 도끼란 말이다!”

사부의 입에서 열변이 토해졌다. 무시할 수 없는 열정이 담겨져 있었다. 장난으로 치부하기엔 사부의 눈빛이 너무 진지했다. 하지만 더불어 다량의 분해 효소를 포 함한 침까지 튀어나왔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난 사부에게 그 전설에 대해 당장 이야기해 줄 것을 요구했다. 사부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본문(本門)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도끼는 슬프고 애달픈 전설(傳說)을 지니고 있는 유서 깊은 도끼라는 것이다. 아직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고 있 는 본문의 개파조사(開派祖師)께서 하루는 금부연(金釜淵)이라는 연못가에서 나무를 하고 계셨는데 잠깐의 실수로 도끼를 연못에 빠뜨리고 말았다.

조사께서 저 도끼를 어떻게 꺼내 올까?’ 고민하고 계실 때 갑자기 호수 한가운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아름다운 호호백발을 한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노인 이 눈부시게 뻔쩍뻔쩍한 빛과 함께 홀연히 나타났다는 것이다. 신선(神仙) 급의 선인(仙人)이 등장한 것이었다. 수면 위를 마치 단단한 땅바닥 위처럼 저항감 없이 서 있는 노인의 양손에는 금도끼 은도끼, 그리고 쇠도끼가 들려 있었다.

그 노인은 고민에 빠져 있는 조사에게 자기는 이곳을 지키는 산신령(山神靈)이라고 자기 소개를 했다. 그리곤 들고 있던 뻔쩍이는 금도끼를 내밀며,

“이 도끼가 네 도끼냐?”

라고 다짜고짜 반말을 지껄였다. 조사께서는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셨다. 정직하기도 하시지……. 그러자 신선은 다시 은도끼를 내밀더니,

“이 도끼가 네 도끼냐?”

라는 똑같은 질문을 했다. 정직하신 조사께서는 다시 “아니오!”라고 대답하셨다. 마지막으로 산신령은 들고 있던 녹슨 쇠도끼를 내밀며,

“설마 이 녹슨 쇠도끼가 네 도끼냐?”

라고 물었다. 당연히 조사께서 “맞소, 그 도끼가 바로…. .”라고 말하는 순간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갑자기 수면 위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면서 두둥실 떠 있던 산신령이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는 “어어, 어어어! 어라라?” 하는 소리와 함께 균형을 잡으려고 팔을 빙빙 휘두르다가 뒤로 발라당 자빠지 고 말았다. 그리고 꼬르륵 소리와 함께 산신령은 조사(祖師)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 얼마나 꼴사나운 일인가? 산신령 체면이 완전히 구겨지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조사께서 잠시 심호흡을 하며 황당한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갑자기 연못에 붉은 기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탁월한 야수적 감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 낀 조사께서는 지체 없이 연못 안으로 뛰어드셨다. 도끼는 조사님의 생계 유지 활동의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금부연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넓은 연못이었다. 조사께서 꽤 깊게 잠수해 들어가 보니 연못 중앙 밑바닥에 오두막같이 생긴 작은 초가집이 보였다. 아마도 방금 전 의 멍청한 산신령이 살던 집인 것 같았다. 천천히 집 주위를 둘러보니 초가집 옆에 산신령이 큰 대(大) 자(字)로 자빠져 있었다.

문제의 붉은 기운은 산신령의 정수리에서 세차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 지점에는 조사님의 쇠도끼가 끔찍한 모습으로 박혀 있었고 그 부분으로부터 새빨갛 게 붉은 기운이 마구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사께서 살펴보시니 아무리 봐도 산신령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더라는 것이다.

‘그럼, 산신령이 예전에는 이 세상 사람이었나?’

나는 순간적으로 이런 궁금증이 생겼지만 사부는 나의 이러한 소박한 의문에 상관하지 않았고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산신령의 사망 원인은 아마도 용량 초과 때문 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조사님의 쇠도끼는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일반 도끼보다 적어도 열 배 이상 더 무거운 물건이었기 때문에 산신령의 영력(靈力)으로도 버틸 수 있는 무게를 초과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금도끼 은도끼와 함께 무식하게 무거운 쇠도끼를 든 채 무리하게 물 위에 떠 있는 술법을 쓰다가 마침내 쇠도끼 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물 속으로 가라앉은 것이다.

더 재수 없는 것은 다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차분하게 가라앉는 도중에 함께 가라앉던 쇠도끼가 눈치도 없이 산신령의 정수리를 찾아가 박힌 탓에 산신령을 골로

보내 버린 것이다. 이런 사태를 두고 바로 ‘안전 사고’라고 한다며 사부는 친절한 사족을 덧붙였다. 어쨌든 이를 불쌍히 여기신 조사께서는 그 산신령을 물 맑고 경 치 좋은 호수 밑바닥에 묻어 주셨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진언을 외우며 산신령의 극락왕생을 비신 후 조사께서는 산신령의 집에 들어가 보셨다. 신기하게도 집 안에는 물이 들어오지 않았고 공기도 풍부했다. 산신령이 집 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무슨 술수를 부려 놓았던 것 같았다. 집 안을 살펴보니 일반 가구 외에 금도끼 은도끼 몇 자루가 더 놓여 있었다.

원래 조사께서는 재물에 관심이 없는 훌륭한 분이셨다. 하지만 산신령의 묏자리를 찾아 준 지관(地官)의 역할을 하였으며 땅을 파고 묻어 주었으니 장의사의 역할 도 한 셈이었다. 또한 덤으로 극락왕생까지 빌어 주었으니 사례비 정도는 받아 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또한 죽은 자에게 재물은 필요 없으니 이런 곳에서 썩이기 보다는 세상 밖으로 가지고 나가 세상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이 산신령도 바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깊고도 세심한 생각 끝에 조사께서는 금도끼 몇 자 루와 은도끼 몇 자루를 쇠도끼와 함께 밖으로 가지고 나오셨다.

난 금부연의 깊은 물 속에서 산신령도 못 가져 나온 그 많은 도끼들을 조사님이 어떻게 가지고 나올 수 있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부는 비뢰도(飛雷刀)의 상급(上 級) 과정을 익히면 자연히 알 수 있노라고 대답했다. 정말이지 얄미운 대답이었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라도 할 수 없이 비뢰도의 상급 과정을 배워야 하지 않 는가.

전설상에서 조사께서 단지 금도끼 몇 자루와 은도끼 몇 자루라는 추상적인 숫자 표현을 쓴 이유는 금도끼 은도끼를 얻으신 후 관청에 소득 신고를 할 때 도끼의 개수를 줄여 탈세를 했기 때문이라는 설득력 있는 외전(外傳)도 전해진다. 또한 조사께서 금도끼 은도끼를 판 돈으로 지금의 비뢰문(飛雷門)을 창설하셨다는 이 야기도 있다.

훗날 조사께서는 그때 그 사건을 ‘금부연 도끼 만행 사건(金斧淵鐵斧蠻行事件)’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그 사건 이후 금부연에는 더 이상 물고기와 수초(水草) 들 이 자라지 않았고 밤마다 “이 도둑놈아, 내 물건을 내놔라!”라고 하며 연못 주위를 배회하는 귀신이 출몰한 탓에 사람들은 그곳을 귀연(鬼淵 귀신이 사는 연못)이 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후일담도 전해져 내려온다.

사부로부터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다음, 나는 코웃음을 치거나 피식거리지는 않았다. 금부연 전설은 전설답게 꽤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고 구성 장치도 뛰어났 다. 게다가 한 문파의 전승(보통 한 문파의 전승은 대부분 진중하면서도 다소 허풍이 가미되어 있다.) 답지 않게 재미와 재치까지 돋보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허 구로 돌리기에는 사부의 예리한 시선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침묵으로 일관하기로 작정했다. 감당할 능력도 없이 함부로 입을 놀리는 어리석은 얼간이가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이런 유서 깊은 사연을 가진 전설의 도끼를 가지고 장작을 패게 되었다. 이 유서 깊은 도끼를 들어올리기 위해 나는 한 달이 넘도록 팔 힘을 기르는 특 훈을 해야 했고 그런대로 장작을 팰 수 있게 되기까지는 꼬박 4개월이 걸렸다. 또한 흐트러짐 없는 동작으로 장작을 패기까지는 1년이 걸렸으며 1년 6개월 후에는 똑같은 속도, 바른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장작을 팰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비도로 장작을 팰 수 있게 되기 전까지 거의 1년 6개월 동안 이 전설의 도끼를 가지고 장작을 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