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권 7화 – 철화장이 뭐 하는 곳인고?

철화장이 뭐 하는 곳인고?

사부와 함께 생활한 지 1년 6개월이 넘어서던 날이었다. 그 날도 나는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밥하고 빨래하고 장작 패고 덤으로 수련까지 하고 있었다. 이젠 산 속 움막에서의 모든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50짜리 무쇠 빨래 방망이를 휘둘러 걸레가 되지 않게 빨래를 할 수 있었고 100근짜리 쇠도끼를 들고 막대기 휘두르듯 장작을 팰 수도 있었다.

그 날, 사부는 나를 데리고 산 밑에 있는 마을로 내려갔다. 그 동안 나는 지옥의 근육통을 동반한 끝없는 가사 활동에 시달리느라 마을에 내려올 기회가 전혀 없었 었다. 상당히 번창하는 마을이었는데 사부는 그 마을에서 가장 큰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주인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의논하는 듯했 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방 안에서 사부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목적했던 일이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째서 안 된다는 건가!”

사부는 감정이 격해져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애가 아닌가. 당연한 거지.”

“무슨 헛소리, 저 애는 벌써 15살이란 말이야. 이제 어엿한 성인이지. 게다가 힘은 보통 어른보다 서너 배는 훨씬 강할걸. 자네도 확인해 봐서 잘 알지 않는가.” ‘응? 난 아직 12살인데……. 사부가 내 나이를 잘못 알았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주인에게 나의 나이를 3살이나 올려 속인 사부의 화난 목소리가 다시 들려 왔다. 사부는 지금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가?

“어쨌든 은자 2냥은 너무 싸! 은자 3냥에 특별 수당 지급을 요구하네. 저 아이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지.”

“그건 너무 비싸지 않나. 은자 2냥에 특별 수당 지급이 어떤가?”

“안 돼. 저 앤 보통 애가 아니라니깐! 50짜리 철근도 장난감 다루듯이 하는 애란 말이야. 장정 서넛의 몫은 너끈히 할 정도지.”

“이건 빨래 방망이 얘기인 것 같군! ‘

방 안에서는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아직 어린 나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대화들이었다. 다시 사부의 커다란 목소리가 장지문을 넘 어 들려 왔다. 역시 무식한 사람은 목소리가 컸다.

“당신, 눈뜬장님인가?”

“물론 아닐세. 잘 알면서 왜 물어 보나?”

“그런데 왜 장님처럼 행동하나? 누가 보면 자네 눈이 무슨 장식품인 줄 알고 착각하겠네. 자네의 눈에는 저 싱싱하고 혈기 왕성한 젊은 육체가 보이지도 않는단 말 인가?”

방 안에서는 잠시 동안 긴 침묵이 흘러 나왔다. 주인은 난처한 고민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윽고,

“좋아, 내가 졌네. 자네가 요구하는 조건을 수락하지. 은자 3냥에 특별 수당 지급으로 낙찰된 거네.”

“좋아, 그 가격으로 저 아이를 넘기겠네. 잘 부탁하네.”

방 안에선 미소년 인신 매매단 거래 현장에서나 들을 수 있는 대화가 흘러 나왔다.

‘나를 저 대장간 주인 영감태기에게 팔아 넘기려는 것일까?”

“대장간 주인이 미소년을 즐기는 변태인가?”

순간적으로 나의 뇌리에서는 야릇한 번뜩임과 함께 섬뜩한 불안이 스쳤다. 그러나 냉정하게 판단해 본다면 사부의 인격으로 보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태라고 생각했다.

‘설마,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가격이 너무 싸잖아. 나 정도의 미소년을 팔아 넘기는 데 겨우 그 정도의 돈이 오갈 리가 없어. 그냥 하룻밤이라면 몰라 도……??

이런 생각들이 드는 순간, 등으로 얼음 덩어리들이 춤추며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한기가 느껴졌다. 알 수 없는 공포가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 다.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양어깨를 감싸안았다. 내가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문이 열리면서 사부와 주인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사부가 나에게 말했다.

“류연아! 너는 오늘부터 이 대장간에서 일하게 되었다. 열심히 일하도록 해라.”

나는 그 순간 나의 귀를 의심했다. 사부가 나를 팔아 넘길 거라는 예측의 반은 맞아떨어졌다. 비록 변태 할아범에게 팔아 넘긴 것은 아니지만 그 노인은 생김새 자체가 그런 오해를 받아도 충분할 정도로 생겼다 – 그 대신 가장 열악한 노동 환경에 제자를 팔아 넘긴 것이다. 대장간이면 사람들이 기피하는 삼난 직업(三難職 業)의 대표적인 곳이 아닌가. 삼난(三難)이란 3가지가 힘든 직업으로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터를 가리켰다. 이러한 직업은 어른들도 기피하는 게 아닌가. 절대로

이런 곳에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생각은 곧 행동으로 나타났다.

“사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죠! 난 절대 이런 데서 절대로… 읍!”

순간, 사부는 냄새 나는 솥뚜껑만한 손으로 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주인에게 말했다.

“아, 잠깐만 이 녀석하고 대화를 좀 하고 오겠네. 갈까, 제자야?”

그리고는 사부는 나를 으슥한 건물 뒤편으로 끌고 갔다.

“아니, 이 녀석아! 뭘 못하겠다는 거냐? 이게 다 너에게 시련을 주기 위해 사부가 사흘 밤낮을 고심해서 생각해 낸 방법이란 말이야. 이런 시련조차 이겨 내지 못 한대서야 어떻게 무공을 익혀 절세 고수가 되겠느냐. 이 일도 다 수련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다. 다 너의 무공 수련에 도움이 되는 일이란 말이다. 잔말 말고 열심 히 일이나 하도록 해라.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느니라.”

나는 기가 꽉 막혔다. 이때 주화입마에 빠져 죽지 않았던 것은 정말 불행 중 다행이었고 천운이었으며, 신의 보살핌이었다. 시련을 주고자 함이라니? 사부는 시련 (試鍊)이라는 단어만 사용하면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다는 엄청난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무공 수련에 도움이 된다니? 도대체 뭐가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무공 수련에 도움을 준다는 말입니까? 전혀 짐작할 수가 없군요. 하긴 애초에 있지도 않는 걸 짐작하려 한다는 게 언어도단이지요.”

나는 문자까지 동원해 예리한 질문을 던졌건만 사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흔쾌히 나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물론, 쇠망치질을 열심히 하다 보면 팔에 힘이 붙을 것이고, 손아귀의 힘〔推力)도 세질 것이다. 게다가 손바닥도 단단해질 것이고 말이다. 또한 불과 철을 다루는 과정에서 인내를 배울 수도 있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으냐?”

사부의 주특기인 ‘뭐든지 수련’이라는 궤변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는 순간이었지만 이번에는 나도 만만치 않은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쇠망치질 같은 투박하고 험한 일은 손을 거칠게 만들고 손의 감각을 둔화시킬 텐데요? 우리 문파의 절기인 비뢰도는 섬세한 손 감각이 필요한 무공 이라고 말씀하신 건 사부가 아닙니까? 이런 일은 오히려 수행에 방해가 될 텐데요? 설마 이제 와서 치사하게 한번 내뱉은 말을 뒤집는 건 아니겠지요?”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는 눈빛으로 사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사부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껄껄껄, 허허허! 그런 것까지 다 생각하다니 기특하구나. 그러나 마음 푹 놓고 있거라. 이 사부가 누구냐. 천하 제일의 무공을 가진 비뢰문의 문주가 아니냐. 어찌 그런 것에 대한 방비가 없겠느냐. 그에 대한 대비책은 이미 마련되어 있느니라. 넌 안심하고 수행에 전념하도록 하거라.”

사부의 말은 불안의 창이 되어 나의 가슴에 박혔다. 순간 나는 느꼈다. 나에게 접근하는 또다른 거대한 불안을……. 사부가 뭔가를 준비한다면 그건 뻔했다. 절대 로 좋은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사람인지 무궁무진하게 악랄한 것만 꼬박꼬박 만들어 내는 재주는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저어… 대, 대비책이라니요? 그, 그게 뭐지요?”

불안으로 혀가 굳어져 말소리까지 떨려 나왔다. 풍에 걸린 사람처럼 온몸이 으스스하게 떨려 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중에 집에 와 보면 다 알게 된다. 그럼 열심히 일하거라.”

이 말을 마치고 사부는 봉황무의 비상(飛翔)이라는 경공 수법을 발휘하여 번개같이 뺑소니를 쳤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나로서는 잡을 수가 없었다. 이번 싸움도 나의 완전한 패배였다. 패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여기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밖에는. 제자를 일꾼으로 팔아 넘기는 사부라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기문(奇問)이 아닌가. 그것도 은자 3냥이라는 헐값에 말이다. 이런 일을 버젓이 당해야 하는 나의 운명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장간의 이름은 철화장(化莊)으로 아마도 철이 변화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인 것 같았다. 이곳 철화장은 이 마을에서 가장 큰 대장간으로서 여러 가지 농기구뿐만 아니라 무기(武器)도 함께 만들어 내는 무기점(武器店)이기도 했다.

철화장은 무기 중에서도 특히 검을 주로 만들었고 아울러 주인인 장 노인이 이름 난 검장(劍匠)인 탓에 이곳 철화장을 이용하는 무림인들의 수는 상당히 많았다. 검(劍)은 높은 부가 가치(附加價値)를 지닌 물건이므로 철화장은 상당히 짭짤한 액수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나에게 주는 월 은자 3냥 정도는 새 발의 피만도 못한 액수였다.

이곳 철화장의 주요 고객은 우리 움막 뒷산에 있는 조금 큰 문파와 그 문파의 속가 제자가 운영하는 표국으로서 이들은 철화장의 밥줄을 쥐고 있는 최고 단골이었 다. 그 문파의 이름은 뒷산의 이름인 아미산을 딴 아미파였다. 상당히 큰 문파라는 이야기를 사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더욱 귀가 솔깃한 것은 문도의 거의 대부분이 여자만으로 이루어진 문파라는 사실이었다. 특히 미녀가 많다는 부분에서는 찢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성질 괴팍한 아줌마나 노친네 또한 만만치 않으며 그나마 그 여자들의 대부분이 비구니라는 대목에서는 마치 실연을 당한 것처럼 실망했었다. 뭐 싱싱한 속 가 제자는 기대해 볼 만하다는 사부의 위로가 있었지만..

아미파는 검을 주로 사용하는 문파였으므로 상당량의 검을 이곳에서 공급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미파의 속가 제자가 운영한다는 표국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이 마을은 그곳 아미파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거대 문파가 위치한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아미파를 제외한 생활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미파는 이 마을의 일부, 아니 전부였던 것이다.

그렇게 철화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일의 기본을 배우는 것이 출근 첫날의 일이었다. 쇠를 내려치는 쇠망치의 무게는 50근이 족히 나가는 물건이라고 했다. 자신 과 절친한 사부의 부탁으로 특별히 마련해 놓은 내 전용 망치였다. 물론 난 전혀 고맙지 않았다.

하지만 난 어린애한테는 무리라는 비웃음을 다시 비웃기라도 하듯 어렵지 않게 쇠망치를 다루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50근짜리 강철 빨래 방망이로 단련된 몸이 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어려움은 없었다. 대충 기본적인 일을 배운 나는 집으로 향했다. 어떤 어려움과 불행이 손을 마주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철화장

나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사부의 잔혹한 미소 – 내가 보기엔 그랬다와 구슬이 든 보따리였다. 구슬 )에서 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구슬의 한가운데에는 모두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빨강색, 주황색, 노랑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 일곱 가지 무지개 빛 아름다운 구슬들이 보따리 안에 들어 있었다. 구슬들은 값비싼 보석류는 아니었지만 어떤 특수한 방법으로 제작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색상이 매우 곱고 아름 다웠다.

“사부, 이 구슬들은 도대체 뭐죠?”

당장 궁금해진 나는 조르듯 사부에게 물었다.

“보다시피 구슬들이지 뭐긴 뭐냐.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너의 손을 둔화시키지 않을 방법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고. 이 구슬도 그 방법들 중에 하나이니라.”

‘중에 하나이니라!’ 이 소린 다른 게 또 있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온몸에서 오한이 나기 시작했다. 몸이 떨렸다.

“이 구슬들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무능하고 불행한 제자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군요. 좀 가르쳐 주시지요.”

이 말을 듣던 사부는 허허, 한 번 웃고는 “시범을 보여주마.”라고 말하며 빨간색 구슬 한 개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소매 속에서 무언가 가늘고 기다란 물체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어른 팔뚝만한 길이의 가는 은침(銀針)이었다. 그 가는 은침의 끝에는 역시 가는 실이 묶여 있었다.

사부는 오른손에 은침을 잡더니 왼손에 들려 있던 구슬 한 개를 천장 위로 살짝 던져 올렸다. 던져진 구슬은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공중을 날았다. 그 순간, 사부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은침이 번쩍거렸다. 그건 착각(錯覺)도 착시(錯視)도 환상도 아니었다. 사부의 오른손에 쥐어 있던 은침은 찰나의 시간 동안 빠르고 정교한 움 직임을 행했다. 그리고 멈추어진 사부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은침을 보았더니 놀랍게도 그곳에는 아까 공중으로 던져 올렸던 빨간색 구슬이 영롱한 빛을 발하며 꼽 혀 있었다. 번개처럼 움직였던 은침의 끝이 정확하게 회전하고 있는 구슬의 정 가운데에 뚫려 있는 좁쌀만한 구멍을 관통한 것이었다.

귀신이 통곡할 노릇이었다. 나는 화등잔만하게 부릅떠진 눈으로 멍하니 사부를 쳐다보았다. 사부가 아무리 아동 착취자라 해도 감탄할 일은 감탄할 일이었다.

사부는 예의 기분 나쁜 미소를 짓더니 이번에는 오른손에 구슬 7개를 들고 왼손에 은침을 들었다. 이번에는 구슬 7개를 동시에 천장으로 던져 올렸고 다시 왼손에 들려 있던 은침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멈춰진 은침에는 다시 7개의 구슬이 나란히 꼽혀 있었다. 놓친 건 하나도 없었다. 사부는 단지 왼손만 가지고 이 런 묘기를 쉽게 해 낸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구슬 10개, 또 그 다음에는 구슬 20개를 가지고 똑같은 시범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으로는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7가지 색의 구슬을 각 색당 2개 씩 모두 14개를 손에 들더니 공중으로 던져 올려 다시 은침을 이용하여 던져진 구슬들을 꼬치 꿰듯이 줄줄이 꿰었다. 꿰어진 구슬들을 보니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무지개 색깔 순서대로 차례대로 꼽혀 있었다. 사부는 시범을 보이는 동안 단 한 번의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것도 단지 왼손으로.

음껏 비웃어 줄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물론 오히려 사부가 무척 대단해 보였다.

그 날 난 사부를 마

‘하, 기막히군. 곡예사를 해도 밥 먹는데 지장 없겠는걸.’

“이 수련은 눈의 안력을 극대화시켜 주고 그와 함께 손의 정확도와 속도도 같이 높여 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무리다. 이것이 아주 중요하지.”

그리고는 은침을 잡고 있던 왼손을 놓고 오른손으로 은침의 끝머리를 잡았다. 은침에 꿰여져 있던 구슬들이 실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실의 끝에는 손가락만한 나무 막대기가 매어져 있어서 구슬이 밖으로 흘러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 구슬의 개수가 30개쯤 되는 지점의 실을 끊었다. 그리고는 양쪽 끝의 실을 묶었 다. 실을 묶는 실력이 교묘해서 구슬과 구슬 사이의 틈이 없었다. 하나의 목걸이가 탄생한 것이었다.

“잘 봤느냐. 목걸이 하나에 구슬이 30개다. 더 많아서도 안 되고 더 적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매듭을 지을 때는 확실히 잘 지어야 한다.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 루 작업량은 우선 100개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열심히 일하도록 해라!”

사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속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열심히 일하라니? 이건 수행의 일환이 아니었나?”

이때는 사부의 현란한 솜씨에 감탄해서 눈치채지 못했었지만 이 구슬 꿰어 목걸이 만들기에는 엄청난 비리와 음모가 숨겨져 있었다. 사부는 이것을 목걸이 1개 당 동전 2닢씩 받고 마을에 있는 잡화점(雜貨店)에 팔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 잡화점에서 구슬을 받아서 그 구슬들을 꿰어 목걸이 하나를 만드는 데 동전 2닢씩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부업(副業)인 셈이다.

이 부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하루에 동전 200닢, 한 달이면 동전 6,000닢이었다. 동전 1,000닢이 은자 1냥이었으므로 한 달에 은자 6냥의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내 한 달 월급보다 많은 액수의 돈이었다. 돈에 미친 사부는 제자의 임금을 착취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서 하나뿐인 제자를 부업의 구렁텅 이 속으로 밀어, 아니 처박아 넣었던 것이다.

그런데 빌어먹을,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음에 계속’이 또 있었다. 목걸이 만들기 시범을 끝낸 사부가 나에게 건네 준 것은 나무 토막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비도(飛刀)였다. 그리고 나서 사부는 나에게 이 비도를 가지고 조각상을 깎으라고 했다. 아니, 조각상뿐만 아니라 목공예품(木工藝品)을 깎으라는 것이었다. 나무로 만든 조그만 불상이라든지 나무로 만든 빗이라든지 노리개, 장신구(裝具) 같은 것들을.. 모두 다 팔면 돈이 되는 것들이었다.

일단 처음이니까 하루에 한 개씩 깎아 보도록 하라고 사부는 말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왼손을 이용해서도 조각을 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 또한 손의 정교하고 섬세한 감각을 기르는 데 막대한 도움을 줄 것이다. 대장간 일로 거칠어지거나 둔해진 감각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 암, 그렇고말고.” 라고 사부는 말했다. 아무튼 말 하나는 기막히게 잘 하는 사람이었다. 비로소 사부가 왜 나를 데리고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부모님 무덤 앞에서 내가 조각을 하는 솜 씨를 보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각 작품 – 예술 작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물건들은 목걸이와 함께 조 그만 것은 동전 15닢, 크고 정교한 것 – 조각하는데 3~4일은 걸리는 작품 – 은 동전 200닢의 가격으로 잡화점에서 거래되었다. 목걸이 이외의 또다른 부업(副業)이 었다. 사부는 아마도 나를 돌돌 말아서 쪽 짰을 때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때까지 이용해 먹으려는 심보를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사부는 아동 학대죄(兒童虐待罪)와 노동법 위반(勞動法 違反)으로 관아에 고발당해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부를 변호해 주는 사람이 없겠지. 나?

난 고발자의 자리에 서면 섰지 사부를 변호하는 자리에는 결단코 서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본(本) 하나와 부업(副業) 둘을 가지게 되었고 이때부터 나의 불운(不運)과 험난한 인생 역정은 시작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