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룡! 피의 악몽을 꾸다
“이… 이럴 수가…….?
효룡은 신경이 마비된 듯 제자리에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산발한 머리에 피로 검붉게 얼룩진 다 해진 옷을 입고 피 묻은 손을
그에게 뻗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는 숨이 터억 막혔다. 소리가 목에 걸리기라도 한 듯 답답하고 심장은 터져 버릴 듯 강렬하게 뛰었다.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듯한 느낌!
괴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이 아팠다.
눈가를 타고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감정의 역류였다. 사나이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울면 안 된다고? 그거야말로 남녀 차별적인 발언 아닌 가? 눈물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혀… 혀… 혀… 엉……. 혀어어어엉!”
목에 걸린 가시를 토해내는 듯한 느낌으로 그가 울부짖었다. 아직 목이 메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심하게 갈라졌다. 그러나 그는 목이 터져라 형을 불렀다. 그 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손으로 마지막 생명을 끊어 하늘로 올려 보냈던 친애하는 친형 갈효봉이었다. 갈효봉은 그날 무당산에서 보였던 모습 그대로의 행색을 하고 있었다.
“아룡아… 아룡아!”
그가 무척이나 처연한 목소리로 효룡을 불렀다. 효룡은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절규했다.
“아니야! 당신은 형이 아니야! 절대 형이 여기 나타날 수 없어! 그날 분명 형은… 형은…….”
효룡은 차마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형은 분명 내 손에 죽었어!’라고 그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에게 너무나 괴롭고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효 룡은 모든 기력을 다해 눈앞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효룡을 바라보는 효봉의 눈동자가 처연하게 변했다. 그의 눈에 슬픔이 가득하자 효룡은 다시 한 번 가슴이 욱신거림을 느껴야만 했다. 수백 개의 못이 그의 심장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효봉이 다시 입을 열자 그의 말에서 귀기(鬼氣)가 일렁거렸다.
“흐흐흐흐흐! 그래? 내가 네가 알던 그 효봉이 아니라고? 그럼 이건 뭐지? 이걸 보고도 네가 내가 나임을 부정할 수 있을까?”
그가 앞섶을 헤치고 가슴을 열자 효룡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순간 효룡의 머릿속은 새하얀 백지처럼 하얗게 탈색되었다. 이어서 찢어질 듯한 절망적인 비 통한 절규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으아아악! 으아아아아악!”
그것은 광기에 찬 울부짖음이었다. 지금 이 시련을 넘기에 그의 심경은 너무나 여렸다. 쉽게 부서지는 유리조각처럼 위태로웠던 것이다. 갑자기 눈앞이 컴컴해졌 다. 시커먼 어둠이 그를 집어삼켰다.
효룡은 마침내 환상에게 먹혀 버리고 만 것이다.
“다들 자신을 이겨낼 수 있을까?”
마진가가 침중한 어조로 물었다.
“아이들은 반드시 해낼 겁니다.”
빙검이 대답했다.
“환마동 안을 흐르는 향은 바로 ‘몽환소혼향(夢幻消魂香)’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향일세. 이 미향의 효과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참가자들 중 아무도 없을걸세.” “몽환소혼향이라면….
“그렇다네. 바로 향을 맡은 이에게 자신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잠재의식을 환상으로 보여준다는 향이지. 일종의 최면향(催眠香)이라고 할 수 있지. 이 특수 최 면향은 동굴 전체에 펼쳐진 환영봉마진(幻影封魔陣)과 합쳐져 무시무시한 위력을 낳는다네. 아이들에게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두었던 공포를 보여주지. 자신들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가장 내밀한 공포를 말일세. 아마 이 세상에 그보다 끔찍하고 두려운 일은 거의 없을걸세. 그러나 한 가지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 네.”
“그게 무엇입니까?”
“정신력이 관건이야. 환상에 당하는 건 상관없지만, 환상에 먹혀 버리면 모든 것이 끝장일세!”
“그럼 어찌 됩니까?”
자신의 딸인 관설지도 함께 참가한 터였다. 물론 빙검으로서도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마진가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버지로서 걱정이 되는 게 당연했다. 마진가가 말했다.
“자칫 잘못하면 그 자의 정신은 영영 육체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네. 바로 백치가 되어 버리는 거지. 개중에는 미쳐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네. 그 때문에 18년 동안 폐쇄되었던 것이기도 하고.. 관건은 자신의 공포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일세. 만일 외면하면 환상에 먹힐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하지. 다시 제정신 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아무도 보장하지 못하니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