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0권 12화 – 모용휘 대검성

비뢰도 10권 12화 – 모용휘 대검성

모용휘 대검성

“죄송하지만 당신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대해 은설란은 불만을 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쪽 백도의 사람이 아니라 흑도의 사람이니깐……

타문파의 비전에 접근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환마동 밖에서 사람들의 무사함을 빌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근심과 걱정이 쌓여 갔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조용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다들 무사할까…….”

걱정 때문인지 차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찻잎이 적정한 온도의 찻물에서 제대로 우러났는지 느껴지지조차 않았다.

그녀의 머리는 지금 지인(知人)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제 보여주던 모용휘의 망설이던 눈빛도 왠지 마음에 걸렸다. 여자의 직감 으로 미루어 볼 때 어제 그는 분명히 자신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었다. 그러나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기회는 지나가고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때 그를 잡았어야 하나…….”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휘! 무사하면 좋으련만…….”

요즘 들어 모용휘가 보이는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서 발랄한 그녀도 조금은 대하기가 껄끄러웠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비류연, 나예린, 모용휘… 그리고 효룡! 그녀는 한 사람 한 사람씩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다들 무사하길 바래요.”

흑도인이 백도인의 안위를 걱정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런 사실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 인간으로서 소속과 출신보다 우선하는 것 이 있는 것이다. 겨우 소속과 출신과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끊임없이 미워하고 증오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이라고 누가 감히 장담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들을 걱정했다. 하지만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마음속으로 무운을 빌어주는 것뿐이라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었다. “다들 힘내요.”

그녀가 조용히 중얼거리며 습관적으로 차를 들이켰다.

차 맛이 씁쓸했다.

“얘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자애로운 목소리에 모용휘는 흠칫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목소리에는 사람을 사로잡는 무형의 힘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모용 휘에 대한 애정도 함께 있었다.

‘설마 그럴 리가!’

모용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눈처럼 새하얀 백발과 가슴까지 길게 늘어뜨린 수염! 그러나 피부는 윤이 날 정도로 젊음과 생기로 가득 차 있었으며 심연처럼 깊은 두 눈에는 어떤 사기(邪氣)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맑았다. 그는 전신에 깨끗한 눈[雪]에서 뽑은 실로 짠 듯한 흰 옷을 전신에 걸치고 있었다.

“할아버님!”

모용휘가 외쳤다. 선풍도골의 노인은 바로 검성 모용정천이었다. 모용휘가 눈처럼 흰 백의(白衣)만을 줄곧 고집한 이유 한구석에는 확실히 검성의 영향이 크게 존 재했다.

“여긴 어인 일로…….”

모용휘는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 세가에 계실 할아버님이 지금 이곳에 있단 말인가?

모용휘의 질문에 검성은 인자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허허허. 실력이 많이 는 것 같구나.”

“과찬이십니다.”

모용휘는 겸양했다. 하지만 기분은 무척 좋았다. 현 강호에서 과연 몇 사람이나 검성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을 수 있겠는가!

“허허허. 녀석, 겸손은. 그렇다면 이제 나를 뛰어넘을 수 있겠느냐?”

검성이 자상하게 미소 지으며 질문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엄청난 것이었다. 모용휘는 검성의 느닷없는 질문에 흠칫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넘어서고야 말겠습니다.” 

모용휘가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그의 신이자 우상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뛰어넘어야할 가장 큰 장애물이기도 했다. 남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아버지를 뛰어넘기를 본능적으로 갈망한 다. 모용휘의 경우 그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였다.

검성 모용정천의 이름은 밖으로는 모용세가를 팔대세가의 으뜸으로 만드는 찬란한 영광이기도 했지만, 그 위대한 그림자 안에 있는 모용세가의 핏줄에게는 그만 큼 무거운 짐이자 커다란 벽이었다. 감히 넘보지 못할…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은 그림자! 넘어설 수 없는 벽! 그 그림자 안은 따뜻했지만 개중에는 답답함을 느끼 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언젠가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검성의 드높은 명성을 뛰어넘어 보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이는 모용휘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허허, 언젠가라……. 나를 뛰어넘어 보겠다는 호기를 가진 이는 넓은 세가 안에서도 너 한 사람밖에는 없구나. 네 애비도 감히 노부를 넘어 보겠다는 장담은 하 지 못했단다. 너처럼 젊고 패기만만하던 시절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제 뜻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까?”

모용휘가 물었다.

“허허허허! 그럴 리가 없지 않겠느냐. 강한 자를 뛰어넘는다는 각오를 가진 자야말로 진정한 강호인, 진정한 무인이라 할 수 있다. 넌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했을 뿐 이다. 강호무림인에게 안주란 있을 수 없다. 검의 길에 끝이 없듯이 말이다.”

모용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검성이 이곳에 있는지 그는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환마동의 마력이 그를 완전히 옭아매고 있 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너의 실력을 한번 보도록 할까?”

검성이 어디서 났는지 모를 나뭇가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에게는 강호에 이름을 떨치는 모용휘를 상대하는 데도 이것 하나로 부족함이 없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다 보니 느닷없이 손자의 재롱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 이것은… 분명 전에도 한 번 이런 일이…….’

갑자기 그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분명 전에도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는 일이었다.

‘그래. 생각났어! 내가 천무학관으로 떠나기 전 할아버님과 마지막으로 겨루었던 그날과 똑같은 상황이야.”

그날도 분명 이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때는 변명의 여지없이 완패하고 말았다. 문자 그대로 완벽한 패배였다. 그 당시 이미 높은 무명을 떨치고 있던 그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아무리 상대 가 존경하는 할아버지 검성 모용정천이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반격 한번 해보지 못하고 철저하게 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과연 천무삼성의 벽은 높았다.

‘그런데 왜 그날의 일이 지금 내 눈앞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기분은 그날 검성 앞에서 느꼈던 압박감과 똑같은 급수의 지독한 압력이었다. 마치 몸이 만 근 거석에 짓눌린 것만 같은 중압 감!

이 환마동은 일종의 거울이었다. 사람들의 의식 깊은 곳에 있는 어두운 욕망이나 상처를 반사시켜 자기 자신에게 환상으로 되돌려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현실과 거의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허허허.”

검성이 나뭇가지 하나를 든 자체만으로도 모용휘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마치 천장단애(千丈斷崖)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또한 나는 새조차도 날아 넘지 못하고 중간에서 날개를 쉬어야 할 듯한 높은 태산 같기도 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그는 얼마나 많은 존경심을 가졌던가! 지금 모용휘가 가진 그것은 외경심이었다.

‘그날의 결과가 어떠했었지??

별로 신통한 결과는 아니었다. 모용휘는 끝내 검성의 나뭇가지를 이겨낼 수 없었다. 날카로운 그의 보검은 분명히 자연산 식물이자 불에도 매우 잘 타며 강철보다 절대 약하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는 나뭇가지에, 천하 명검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휘둘렸다. 쉴 새 없이 변화를 주며 연속해서 들어가는 모용휘의 연속 변초 도 검성은 가벼운 손짓 하나로 막아냈다.

물론 검성은 모용세가 가전무공의 극을 이루고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유(流)인 은하류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유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부분에서 극의 에 다다른 사람뿐이었다. 도를 얻은 자만이 새로운 길을 걸어갈 자격을 부여 받을 수 있었다.

그날 모용휘는 끝내 검성이 쥐고 있는 나뭇가지 검을 꺾을 수 없었다. 그리고 헛수고와 헛손질의 대가로 그의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모용휘는 허탈한 심정 에 가쁜 숨을 내쉬어야 했다.

“아직도 멀었구나…….?

그는 자책했다. 자신이 등반할 예정인 태산이 더욱더 높게 느껴졌다.

그러나 배움이 얕다고 꾸중은 듣지 않았다. 검성이 쥐고 있는 나뭇가지의 끝에 약간 상처를 입힌 것뿐이었다. 그것도 혼신의 힘을 다한 은하유성검의 비전 비장 초 식인 유성쇄천인(流星碎天刃)을 펼친 성과였다. 그것은 모용휘가 그날 거두어들인 성과의 최대치이자 모든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꾸중은 들려오지 않았다.

“허허허! 노부의 검에 손을 대다니 공부가 많이 늘었구나.”

오히려 검성은 그의 실력을 칭찬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검성은 매우 흡족했던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이번에야말로!’

과거의 회상은 끝났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모용휘는 이번에야말로 그날의 빚을 갚아주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반드시 나뭇가지 검을 꺾고야 말겠 다는 의지로 검을 고쳐 잡았다.

“하압! 은하유성만천(銀河流星滿天)!”

유성 같은 검기가 별무리를 이루며 검성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는 자신이 뛰어넘어야 할 벽을 향해 도약했다. 1차 시도는 실패 했다. 그렇다면 2차 시도는……?

검광이 화려하게 폭발했다.

“헉헉헉.”

‘역시 아직 무리였나…….’

모용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전력을 쏟아 부었건만 그다지 나아진 것은 없었다. 이제는 들고 있는 검이 무겁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자신이 지닌 절기를 모두 쏟아 부었건만 검성은 전혀 동요하 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방패가 그의 전신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모용휘는 자신이 검성으로부터 전수받은 최고의 절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나한테서 배운 초식으로 나를 뛰어넘을 수 있겠느냐?”

모용휘는 검성의 말에 뜨끔했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럼 가겠습니다.”

“오너라!”

은하류(銀河流) 개벽검(開闢劍)

극한(極오의(奧義)

은하멸멸(銀河滅滅)

순간 어두운 환마동 내를 밝게 비추는 빛이 모용휘의 검끝에서부터 뻗어 나왔다. 검기는 어둠을 몰아내며 사방으로 밝게 빛났다.

아무리 할아버지라 해도 그는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전력을 다해 눈부신 검기를 사방으로 방사시키며 검성을 향해 돌진했다. 그는 지금 할아버지의 잔상을 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검성을 향해 날아간 수십 줄기의 유성은 그가 휘두르는 나뭇가지에 막혀 땅에 떨어졌다. 그것은 겨우 나뭇가지에 불과했지만 검성의 손에 들리자 어떠한 신병이기 (神兵異器)도 부럽지 않을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합!”

자신의 변초가 거의 다 무위로 돌아가기 바로 직전 모용휘는 한 번 더 도약해 검성을 향해 파고들었다. 이것은 검성에게 배운 초식이 아니었다.

스윽!

모용휘가 내뻗은 마지막 일식에 검성의 나뭇가지 끝이 조금 잘려나갔다. 드디어 그의 검이 검성의 벽을 미세하게나마 뚫은 것이다. 그러나 모용휘에게는 이것이 크나큰 한 걸음이었다. 그는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할아버님! …어?”

모용휘가 기뻐하며 검성을 찾았을 때 검성의 그림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모용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망연자실해 있는 거죠?”

매우 친숙한 목소리에 모용휘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이… 이럴 수가…….”

모용휘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있어서도 안 되었다. 갑자기 검성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나타난 이는 바로 은설란이었다. 이 어둠 속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은 더욱더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이계(異界)의 존재인 것처럼!

“아름답다.”

모용휘는 순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어느 누구도 그의 의견에 반박할 이는 없을 것이다.

모용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차오르며 심장이 맹렬하게 박동하는 바람에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으… 은 소저… 왜… 아니 어떻게 여기에?”

흑도의 조사원 자격으로 온 그녀가 이곳에 들어올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자 그녀는 대답 대신 활짝 웃었다. 이건 정말 그에게 반칙이나 다름없었다.

쿵쿵쿵!쿵쾅쿵쾅 쿵쾅!

모용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불규칙적으로 박동하기 시작했다. 피가 도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얼굴의 열도 점점 올라왔다.

무공을 배우며 십수 년간 자기 자신의 몸을, 그 생리적 현상부터 시작해서 전 부분의 감각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그 간의 수업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달콤하고 황홀한 방향이 그의 코를 간질였다. 그의 정신과 뇌를 몽땅 녹일 정도로 달콤한… 너무나 숙성된 여인의 향기!

너무나 가까이 다가온 그녀의 얼굴은 이제 그와 얼굴이 거의 닿을 정도였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목젖을 타고 침이 넘어갔다. 생사대적을 만났을 때보다, 방금 전 검성의 기도에 눌렸을 때보다 훨씬 더 몸은 긴장되고 초조해졌다. “으… 은 소저…….”

모용휘의 부름에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만개한 꽃처럼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당신이 싫어요!”

“예?”

일순간 모용휘는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지를 못했다. 친절하게도 그녀는 그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이 했던 말을 망설임 없이 반복해 주었다.

“당신이 싫다고요. 지긋지긋하고 재미없고, 보고 있으면 화가 나요. 나는 목석같은 당신이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싫어요. 재수 없어요!”

모용휘는 갑자기 벼락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말은 그에게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비수가 꽂힌 듯 가슴이 아파 왔다. 그녀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게다가 당신은 정파의 사람이잖아요. 저는 간악한 사파의 여식이고요. 그런데 어떻게 좋은 사이가 될 수 있겠어요?”

“정파든 사파든 출신이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그런 건 상관없지 않나요?”

흠칫! 모용휘는 자기 자신이 내뱉고도 솔직히 놀랐다. 출신 배경에 가장 얽매이고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호오? 그 정과 사라는 개념에 가장 깊게 얽매이고 있는 게 모용 공자 본인이 아니었던가요?”

그녀의 말은 예리한 비수가 되어 모용휘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녀의 차가운 냉소에도 불구하고 모용휘는 반박할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데 어떻게 남에게 당당할 수 있겠는가. 모용휘는 그 정도로 철면피는 아니었다.

“이것, 저것, 요것 그렇게 조건을 수십 개나 따지면서도 잘도 연애라는 것을 할 수 있겠군요, 모용 공자. 이 순진한 분, 호호호호.”

그녀가 웃었다.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다.

‘상황에 속박되어 마음 가는 대로 행동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나를 책망하는 것인가?”

모용휘는 마음이 아파 왔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없다면, 그럴 용기가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없어요. 여자가 자기에게 일방적으로 맞춰주길 바라면 안 돼요. 항상 환경이 좋기 만을 바라서도 안 돼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생은 수 조(兆)가 넘을 정도로 많은데 어떻게 그들의 연애가 모두 순탄할 수 있겠어요? 사랑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알 맞게 맞추어가는 과정이에요. 자기 자신을 바꿀 용기가 없다면 사랑할 자격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랍니다. 일방적인 감정의 요구? 사랑이 일방통행이라고 생각하시 나요? 그렇다면 착각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런 것은 집착일 뿐 사랑이 아니에요. 단지 사랑을 가장한 헛된 집착이자 추한 욕망의 산물일 뿐이죠. 그런 것으로 자신 과 주변을 기만하지 말아요. 먼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준비를 갖춰요. 그럴 용기가 없다면 그냥 깨끗이 포기해요. 그것이 지저분해지지 않고 깨끗하게 끝나는 방 법이죠.”

그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그녀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랄하기 그지없었다.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그 말은 그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녀의 말이 모두 끝났을 때 모용휘는 자신이 그녀에게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 것이다. 그 것은 실패할 확률이 가장 높다는 첫사랑이었다.

그는 아무런 대꾸도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갑자기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자신이 위선자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감히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볼 수 가 없었다.

또르륵.

그녀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욱신! 가슴이 도려내듯 아려 왔다.

쓸쓸한 얼굴로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그녀는 그날 보았던 별의 이슬 같던 눈물을 흘리며 멀어져 갔다.

“은 소저!”

모용휘는 그녀를 붙잡으려 쫓아갔다. 그러나 그와 그녀의 사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마침내 은모래 가루가 부서지듯 그녀의 모습은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여 름 밤의 꿈같은 일이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동굴 안 어딘가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갑자기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난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건가??

자기 자신도 의외인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이 일을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다. 그의 감정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그의 마음 안에서 방황했다.

사랑에 이념이나 출신이나 소속이 아무런 상관없다는 그녀의 이론은 이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역시 현실의 벽이란 너무나 높고, 현실이란 참으로 비정하고 냉정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