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0권 13화 – 청출어람 청어람 사부즉웬수

비뢰도 10권 13화 – 청출어람 청어람 사부즉웬수

청출어람 청어람 사부즉웬수

– 사부는 웬수와 같다

“뇌신의 힘은 손에 넣었느냐?”

그가 물었다.

“어?”

비류연은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았다

상하좌우 빠짐없이 주변을 돌아본 비류연은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역시 아니야!’

그는 방금 전 혹시라도 이곳이 아미산이며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빌어먹을 초가집 사문의 앞마당이 아닌가 하는 미미한 가능성에 대한 확인 작업을 마쳤던 것이다. 예상대로 이곳은 아미산이 아니었다. 물론 자신이 아직 미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서의 판단이지만!

그렇다면…….

비류연은 다시 한 번 눈을 들어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백아(白兒)를 대롱대롱 턱에 매달고 있는 노인! 저 게슴츠레 하게 떠진 야비한 눈동자! 사람을 패고 싶어 근질근질 안달이 나 있는 저 손! 무엇인가를 걷어차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저 다리!욕이 다발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저 얇은 입술! 비류연은 저렇 게 생긴 어떤 사람 하나를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머릿속에 떠올리기도 싫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날이면 날마다 지겹게 봐 온 얼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이 안 간다는 점은 변한 게 없었다. 그는 바로 사부였다. 비류연은 경악하여 소리쳤다.

“사부! 여긴 어떻게?”

이건 완전 사기다. 하늘의 농간이자 신의 장난이다. 어떻게 저 빌어먹을 망할 사부가 이곳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의 장난이 이번엔 좀 도가 지나친 느낌이었 다. 비류연의 머리가 과열될 정도로 빠르게 돌아갔다.

“흐흐흐, 네놈이 있는 곳을 내가 못 찾아낼 줄 알았단 말이냐?”

저 주책 맞은 웃음소리로 미루어 볼 때 사부가 확실했다. 그러나 역시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사부가 여기 있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보라! 원래 사부는 말보다 주먹이 빠른데 지금은 주먹보다 말이 빠르지 않은가. 그러니 사부가 아닐 가능성도 높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생긴 건 확실히 똑같은데…….

“뇌신(雷神)의 힘은 손에 넣었느냐?”

사부가 다시 물었다.

“아뇨.”

비류연은 순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숨긴다고 해서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언젠가 반드시!”

비류연의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뇌신지력(雷神之力)!

현재 그가 지닌 최대의 목표 중 하나였다. 마음껏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최대의 족쇄인 사부를 떨궈내는 수밖에 없었다. 애물단지 사부만 깔끔하게 처리하면 그 는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크하하하하! 으하하하하! 쿠헬헬헬헬!”

저 봐라. 저 웃음소리가 듣기 싫어서라도 반드시 얻고 말리라.

“뭡니까? 그 망령(妄靈)된 웃음소리는?”

무척이나 심기가 거슬리는 웃음소리였다.

“웃겨서 그런다. 사부 몰래 뇌금 묵뢰를 빼돌리고 돈까지 함께 빼돌려 가출하더니 그래 아직도 겨우 그 정도냐?”

명명백백히 비웃는 말이었다. 비류연은 슬슬 열이 뻗쳐 왔다.

“뭔지 똑바로 가르쳐 주지도 않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두루뭉술하게 가르쳐 줬으면서도 무슨 잘난 체입니까? 게다가 돈을 빼돌리다니요? 그건 명백히 제 가 벌어 제가 모은 제 돈이지, 사문의 공금을 유용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영수증 보여줄까요?”

비류연이 가슴을 펴며 소리쳤다. 사부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많이 건방져졌다, 제자야. 한판 떠볼 테냐?”

“얼마든지요.”

비류연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는 생각했다.

“미래를 대비해서라도 한번 붙어 보는 게 나을지도 몰라. 저게 환상이든 진짜든 상관……. 아니지! 진짜면 좀 상관있긴 하지만 가짜라면 상관없어!’

“흥! 그래도 사부를 만날 때를 대비해서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었다고요!”

비류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으래?”

“그럼요!”

“크크크큭! 좋아, 좋아! 아주 자신만만하구나!”

사부의 갈리진 입술 사이로 음흉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2년 만에 다시 듣는데도 여전히 방정맞은 웃음소리였다.

“그러나 아직 뇌신의 힘도 얻지 못한 터에 이 몸을 뛰어넘을 수 있겠느냐? 백 년은 빠르지 않겠느냐?”

저것은 빈정거림이 분명했다.

“흐흐흐, 두고 보시라고요. 반드시 그 뾰족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테니깐 말입니다. 천하의 안녕을 위해서도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이놈아! 해볼 수 있다면 한번 해보거라. 과연 네놈의 실력으로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구나.”

“흐흐흐, 상당히 짓궂으시군요. 존경하는 사부님,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비류연은 지지 않고 대답했다. 아직 붙어 보지도 않았는데 기 싸움에서 밀릴 수야 없었다.

“존경하고 경애하고 친애하는 사부님한테 살기를 풀풀 풍기는 주제에 네 녀석이 무슨 존경심을 표현하겠다는 것이냐?”

“존경은 언제나 빼어난 무공으로! 당연한 거 아닌가요? 사부를 뛰어넘는 것이야말로 제자 된 참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청출어람(靑出於藍) 청어람(靑於藍)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사부를 뛰어넘음으로써 사부의 권위를 지상에 추락시키는 것이야말로 제자로서의 본연의 의무이자 일생일대의 목표라 할 수 있죠. 이런 훌륭 한 제자를 두게 되어 기쁘시죠?”

“…..”

비류연이 넉살좋게 말했다. 순간 사부는 제자의 막힘없이 좔좔좔 흐르는 언변에 압도되었는지 말문을 열지 못했다.

“역시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사부에 대한 존경심을 고양시키려면 주먹밖에는 대안이 없구나.”

사부는 반드시 제자를 제대로 교육시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풀풀 풍기며 살기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맥동하는 주먹을 들어올렸다.

비류연은 감히 방심할 수 없기에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원래 비뢰문에서는 혹시나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만날 때는 무조건적인 선공을 권장한다. 그러나 사부라는 이유만으로 비류연은 후(後)를 잡아야 했다. 선공의 포 기라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한 모험이었다. 왜냐하면 상대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사부였기 때문이다. 만일 다른 상대였다면 비류연은 선공을 건네주고 후선을 잡았 을 것이다. 그는 그럴 만한 충분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선공을 내주는 것이 이렇게 불안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

잠시 두 사람은 긴장감이 흐르는 정적 속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게 웬일? 사부에게서 공격이 없었다. 비류연이 의아한 얼굴로 사부를 쳐다보자 사부는 평상시 볼 수 없었던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저러지?’

사부가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벼락은 바람과 함께 오는 법!”

순간 비류연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면 풍신의 힘은 얻었느냐? 네놈의 그 잘난 자존심을 가지고 말해 봐라? 설마 풍신(風神)의 힘도 못 얻었으면서 사부한테 대들겠다는 건 아니 겠지?”

“풍신의 힘…….”

사부의 꼴 보기 싫은 면상으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고 고정시킨 채 비류연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왜 대답이 없느냐?”

번쩍!

다시 한 번 비류연의 날카로운 시선이 사부를 향했다.

“직접 시험해 보시죠.”

비류연의 한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