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황신
‘저… 저놈은…’
위지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발견했다.’
그는 반시진이 넘도록 계속해서 동혈 속을 헤매다가 마침내 자신의 목표를 찾아낼 수 있었다.
호심환(護心丸)의 약효가 한 시진밖에 유지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터라 만일 비류연을 찾지 못하면 어쩔까 그는 초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천지신명이 보우하사 그는 제한된 시간 안에 비류연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손에 야명주(夜明珠) 하나를 들고 있었다. 이것 역시 그 사람이 꼭 필요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준 것이다. 그의 말대로 과연 그것은 무척이나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받게!”
그는 단약 말고 또 하나를 내밀었다. 그것은 어딘가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은빛 원통이었다.
“이건 또 뭡니까?”
언뜻 보기에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물건이었다. 위지천의 질문에 그 자는 씨익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힘! 바로 자네가 원하는 바로 그 힘이지!”
“힘!”
원통을 바라보는 위지천의 시선이 확연히 달라졌다. 시큰둥한 그의 눈빛이 대번에 밤하늘의 별처럼 초롱초롱해졌다. 원통에 가까이 가져가는 그의 손이 긴장과 흥 분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으로 미세한 떨림을 발했다.
“비황신침이라는 물건일세. 사천당가(四川唐家)의 칠대금용암기(七大禁用暗技) 중 하나인 벽력신통(霹靂神筒)에 뒤지지 않는 괴물 같은 물건이지!”
“벼… 벽력신통!”
사천당가의 절세 암기인 벽력신통에 대해 강호에 떠도는 풍월은 위지천도 익히 접한 바 있었다. 개인에게 사용했을 시에는 사람의 형체를 남기지 않고, 다수의 사 람에게 사용하면 수백 명을 한꺼번에 몰살시키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그래서 그 무시무시한 위력에 겁을 먹은 사천당문인들이 직접 자신들의 손으로 사용을 금했다는 암기 중의 암기, 가히 ‘암기의 마왕’이라 칭할 만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그 자는 이 물건이 그것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였던 것이다. 위지천은 신중하게 비류연을 향해 비황신침을 겨누었다. 조준은 완벽했다. 그는 아무도 없는 곳에다 대고 뭐라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의 행동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위지천의 마음은 그녀를 괴롭히는 해충을 제거한다는 사명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인지 결단에는 많은 망설임이 필요하지 않았다.
“죽어라!”
위지천은 광기 어린 시선으로 비류연을 향해 발사 장치를 눌렀다.
쐐애애애애액!
수천 개의 은빛 광선이 폭우(暴雨)처럼 비류연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쿠오오오오!
순간 거칠고 난폭한 폭풍이 비류연을 중심으로 몰아쳤다.
휘이이이이익!
콰르르르르릉! 우르르르르릉!
우우우우웅!
동굴 전체가 맹렬히 포효를 터뜨렸다. 동굴이 무너질 듯 거칠게 흔들렸다.
쐐에에에에엑!
용권풍처럼 사나운 바람이 환마동의 구불구불한 미로를 헤집고 다녔다.
팟팟팟!
바람의 거친 춤사위가 지나간 곳은 어느 한곳도 멀쩡한 데가 없었다. 게다가 동굴 벽에 반사되어 울려 퍼지는 굉음은 사람들을 더욱더 괴롭게 만들었다. 금방이라 도 동굴이 무너질 듯해 사람들의 공포를 더욱더 가중시켰다. 효룡과 이진설도 이 거친 바람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펄럭! “꺄아아악!”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른 이는 이진설이었다. 동굴 안을 헤집고 다니는 이 세찬 바람은 이진설의 치마를 단번에 뒤집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허걱!”
효룡은 경악하여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돌풍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휩쓸고 지나갈 만큼 난폭했다.
“봤죠?”
샐쭉한 표정으로 이진설이 물었다.
“저… 저… 그러니깐… 저….”
효룡은 빨리 뭔가 그럴듯한 거짓말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그것은 무척이나 곤혹스런 작업이었다.
“쳇! 역시 가짜였나?”
이제는 서서히 가라앉아 가는 태풍의 중심에 서서 비류연이 중얼거렸다. 주위를 둘러봐도 사부의 코빼기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환상이 맞는 모양이었 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 건가?”
그러나 아무리 눈앞에 존재하는 것이 환상이라 해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지독히 현실적이며 생생한 환상은 현실의 존재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면 에 의해 손에 불이 붙는 환상을 본 이가 실제로 손에 화상을 입은 사례도 있었다. 때문에 이것들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환상이었다.
“그나마 진짜가 아니라서 다행이로군.”
만일 진짜였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질질 끌려갈 수야 없지.”
그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뇌신의 힘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반드시!”
그는 다시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비류연은 사방이 너무 어두웠던 바람에 동굴 벽에 빽빽이 박혀 있는 가느다란 은침을 볼 수가 없었다. 그것들 은 햇빛 아래에서도 잘 안 보일 만큼 작은 물건들이었던 것이다.
“저… 저놈은 귀신인가…….’
어떻게 수천 개의 은침을 일제히 쏘아 보냈는데도 무사할 수 있단 말인가? 위지천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살인 병기 비황신침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자 신의 이빨을 모두 토해낸 빈껍데기였다. 어떻게 이 악마의 암기로부터 저렇게 상처 하나 없이 말짱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격발 장치를 눌렀을 때 갑자기 비류연으로부터 세찬 돌풍이 몰아쳤다. 얼마나 강력한 위력이었던지 그가 날려 보낸 수천 개의 은침들은 이 바람의 영향으로 궤도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그치고 시야가 다시 확보됐을 때 그는 멀쩡하게 서 있는 비류연을 보고 절망해야만 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저놈은 괴물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죽여야 돼!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왠지 이번 기회에 비류연을 죽이지 못하면 영영 기회가 돌아올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죽여야 돼! 죽여야 돼!”
위지천은 마치 넋이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
아직 그에게는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