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0권 2화 – 천수신의(神醫 허주운(雲)과 기괴한 중환자실

비뢰도 10권 2화 – 천수신의(神醫 허주운(雲)과 기괴한 중환자실

천수신의(神醫 허주운(雲)과 기괴한 중환자실

확 밀려오는 알싸한 약향에 순간 빙검의 몸이 주춤했다.

그러나 그는 곧 발을 옮겨 의약전 안으로 들어갔다.

빙검의 얼굴을 알아본 접수 일을 맡아보고 있던 관도 한 명이 ‘헉’ 하고 놀라며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빙검이 손을 들어 그만 됐다고 하자, 그는 안으로 부리나 케 달려갔다. 기별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빙검은 자신을 둘러싼 약향 속에서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잠시 후 기별을 받은 의약전주 천수신의(天手神醫) 허주운(許朱 雲)이 다가와 그에게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가볍게 숙여 인사했다.

“허허허. 어서 오십시오, 총노사님. 오래간만에 오셨군요.”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빙검을 맞이했다. 빙검도 마주 보고 예의를 차렸다.

“오래간만입니다, 허 의원. 많은 사람의 생명을 돌보느라 노고가 크십니다.”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신의 의술을 지닌 신수! 천무학관 사람 중 그 어떤 이유로든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는 없었다. 강호인이란 항상 위험한 칼날 위를 살아가 는 사람들이기에 누구나 한 번쯤 의례적으로 그의 신세를 지게 마련이었다. 당연히 빙검도 그에게 여러 번 신세를 진 기억이 있었다. 그는 빙검으로서도 함부로 대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천무학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랬다.

“총노사님 같은 분이 어디 아프시거나 부상을 당하셔서 이곳을 찾아 왔을 리는 없을 테고…….”

허주운이 조용한 시선으로 물끄러미 빙검을 바라보았다. 신의라 불릴 정도의 실력을 지닌 그였다. 웬만하면 척하고 한눈에 상대의 병세를 파악할 수 있는 그였다. “몸에는 병이 없는데 마음에 병이 있는 듯싶습니다. 요즘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지요?”

상통천문(上通天하통지리(下通地理)! 위로는 하늘의 모든 뜻을 헤아리고 아래로는 땅의 이치를 꿰뚫었다는 광오한 깃발을 내건 족집게 도사도 울고 가게 만 드는 실력이었다. 순간 빙검의 안색이 흐릿해졌지만 금방 원상태로 복구되었기에 허주운은 이 잠깐의 변화를 그만 감지하지 못했다.

“앞으로 다가올 환마동 시험 때문에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에 그런 것일 뿐, 별일 없습니다.”

그렇게 빙검은 대충 얼버무렸다. 그의 냉막한 인상 때문에 허주운은 더 이상 캐들어 가기가 힘들었다. 대충 용건을 눈치 챈 허주운이 말했다.

“무슨 일로 찾아 오셨는지는 대강 짐작이 갑니다. 그 아이를 찾아오신 거군요. 며칠 전에 총노사님에게 호되게 당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그 아이 말입니다. 이름 0…….”

잠시 기억을 뒤적거리던 허주운을 빙검이 도와줬다.

“비류연이라고 하오.”

무뚝뚝한 어조에는 냉기가 풀풀 날렸다. 사회성을 쌓는 데 도움이 되는 어투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아! 맞습니다. 바로 그런 이름이었지요. 그렇지만 수련도 좋지만 이번에는 너무 지나치셨습니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엉망진창이더군요. 어떻게 사람의 맥 이 뿔난 망아지처럼 그토록 불규칙하게 뛸 수 있는지… 게다가 노사님 특유의 수법에 당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몸 안의 오행의 기운들이 마구 헝클어져 있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니……. 여러 가지 다양한 무공에 당한 징후를 알고 있지만 이번과 같은 증상은 처음입니다. 하여튼 지시하신 대로 아무 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절대 안정만 시키고 있습니다.”

허주운의 장황한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빙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저의 독특한 독문절기인 설음무형무흔장(雪陰無形無痕掌)에 당한 터라 저의 특별한 조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미 필요한 조치는 다 취 해 놨으니 서서히 몸이 회복될 것입니다. 당분간 신체에는 손을 대지 말고 절대 안정을 취하게 놓아두십시오. 그걸로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 다.”

“알겠습니다. 노사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빙검은 그의 안내를 받아 경환자들이 있는 병실을 지나 상세가 중한 환자들만 따로 수용되어 있는 중환자실로 향했다.

경환자실을 지날 때는 크게 다치지 않은 환자들이 너나없이 병상에서 일어나 그에게 인사를 하려고 해 그것을 거절하느라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중환자실로 들어 서는 문도 경환자실로 들어가는 문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 안은 경환자실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였다.

빙검이 중환자실로 들어서자 경환자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약향의 탈을 쓴 고약한 냄새가 확! 하고 강하게 풍겨져 나왔다. 일반 사람이라면 단번에 기절해 버렸 을 그런 지독한 냄새였다.

‘독하군!’

빙검은 순간 얼굴을 찡그려야만 했다.

고름으로 얼룩진 침대, 코끝을 찌르는 짙은 약향, 보통 사람이라면 당장에 인상을 찡그리며 코를 틀어막고 질식사를 방지하기 위해 깨끗한 공기가 있는 창가를 찾 아 맹렬한 속도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만큼 짙고 강렬한, 후각이 마비될 정도로 지독한 약향이었다. 그 한가운데에 빙검은 인상을 찌푸리며 서 있었다. 허주운은 이 제 만성이 된 듯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자! 이쪽입니다.”

허주운이 앞장서자 빙검은 그 뒤를 따랐다. 여기저기서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그의 귓전을 때렸다.

“으으윽…….”

“아아아악.

“크으으윽!”

자연히 빙검의 시선이 그들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결코 미적으로 아름답다 말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허주운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그에게 는 이런 모습이 일상이었던 것이다.

중환자실은 역시 그 이름값을 하는지 경환자실과는 증상의 격이 달랐다. 꽤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상처를 입거나 혹은 독특하면서도 괴이한 이상 증세를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사람인 이상 사고(事故)를 궁극적으로 막는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하면 사고 발생 빈도와 그 피해를 줄이는가 하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바로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들의 증상은 좌판의 노리개만큼이나 다양했다.

독공(毒功)을 수련하다 오히려 독에 중독되어 울긋불긋한 반점이 전신에 퍼진 사람, 그 환자의 손은 병상 양쪽 위에 밧줄로 칭칭 묶여 있었다.

“독이 피부로 침투해 항상 가려움을 느끼지요. 저렇게 묶어 놓지 않으며 피부가 벗겨질 때까지, 아니 살점이 떨어질 때까지 긁습니다. 때문에 저렇게 사지를 구속 해 놓고 있는 것이지요.”

허주운의 담담한 설명이었다.

그 옆은 외상인 것 같았다.

“특이한 상처로군요.”

그 자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무슨 초식에 당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가슴에 일곱 개의 상처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그리며 새겨져 있었다.

“가장 절친한 친구와 여자 문제 때문에 싸우다 저렇게 됐다더군요. 멋 때문에 일부러 저런 게 아니니 오해는 마십시오. 안타까운 친구입니다. 완치되어도 저 상처 는 평생 가슴에 남을 겁니다. 북두신권(北斗神拳)을 연마하던 친구지요.”

“그렇군요.”

그의 친절한 설명에 빙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빙검의 시선이 한 환자에게 머물렀다. 그의 동공은 완전히 풀려 있었고, 다물어질 줄 모르는 입 사이로 침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흐으으으으… 헤에에에에에…….”

백치가 아니라면 정신이상자가 분명했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입가로 침이 질질 흐르는 그 자의 얼굴 여기저기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수염들이 수북이 나 있었다. 게다가 나이도 상당히 들어 보였다. 적어도 50세 정도는 될 듯했다. 수염을 깎으면 그보다 조금 젊어 보일지도 몰랐다.

“저 환자는 누굽니까?”

“저… 그러니깐.

허주운도 답변하기가 좀 껄끄러운 모양이었다. 대답을 망설이는 그 모습이 빙검의 호기심을 더욱 부채질했다. 무엇 때문에 그가 대답을 꺼리는 것일까? 그 대답은 곧 들을 수 있었다.

허주운이 꺼리기는 했지만 답변을 회피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바로 18년 전에 있었던 마지막 환마동 시험에서 사고를 당한 관도입니다. 그때부터 1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저렇게 백치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누군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한때는 잘나가던 화산파 기재였다고 하던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허주운의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안색이 바뀌지 않는 냉정함의 대명사인 빙검도 적잖게 놀랐다. 도대체 그 환마동이 무엇이기에 한때 잘나가던 화 산파 기재를 저 모양 저 꼴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사실이 밖으로 새나가면 천무학관으로서는 좋을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허주운이 왜 답을 회피하려 했는지 그 심정을 이해할 만도 했다.

그 외에도 중환자실에는 여러 종류의 증상을 지닌 환자들이 즐비했다. 왼팔이 기하학적인 각도로 뒤틀려 있는 사람, 팔의 마디마디가 연쇄골절을 일으킨 사람, 상 대가 던진 바늘 크기의 암기가 전신에 빽빽이 박혀 있는 사람도 있었다. 무척이나 참혹한 모습이었다. 담당 의원이 가는 집게로 하나씩 하나씩 암기를 조심스럽게 빼내고 있었다.

“독이 묻어 있지 않아 즉사를 면했죠. 저 몸에 박혀 있는 암기를 모두 뽑으려면 아마 반나절 정도는 족히 걸릴 겁니다. 암기와 같은 위험한 무공 수련은 안전이 제 일인데……. 요즘 들어 관도들이 혈기만 믿고 안전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지요. 애석한 일입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환자들을 한 명 한 명 설명하는 허주운의 말을 들을 때마다 아무리 차가운 성정의 소유자인 빙검이라 할지라도 인상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 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신기한 환자도 많았다.

비무 때 실수로 상대의 칼이 뱃가죽을 훑고 지나가 그 사이로 내장이 흘러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만일 치료하는 의사가 천수신의 허주운만 아니었다면 그는 이미 이승에 볼일이 없는 사람이 됐을 것이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병명이나 기이한 증상, 그리고 치명적인 상처들을 입고 강력한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었다.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신기한 중환자들을 헤치고 더욱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하나 나왔다. 그 문 앞에는 눈높이에 팻말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그곳에는

‘출입금지! 절대안정!’이라는 여덟 글자가 하얀 바탕 위에 붉은 글씨로 위협적으로 적혀 있었다.

허주운의 발이 멈춘 곳은 바로 여기였다.

“바로 이곳입니다. 부탁대로 독방을 준비해 격리시켜 놓았습니다.”

허주운이 빙검을 돌아보며 말했다. 빙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주운의 조치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뜻이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금 전의 지독한 약향 냄새는 거의 나지 않고 청결한 공기가 폐부에 느껴졌다. 약을 쓰지 않기 때문에 타 병실과는 달리 깨끗한 공기가 방 안 가득하였다. 그 외에도 약향을 중화시키는 특별한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게 허주운의 부연 설명이었다.

이곳은 의약전에 몇 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귀빈용 독실이었다. 일반 관도라면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동 병실을 써야 하는데 혼자서 병실을 독차지하고 있다 니……. 비류연은 꽤나 팔자 좋은 환자라 할 수 있었다.

깔끔한 병실 안에는 커다란 병상 하나가 놓여 있고, 그곳에는 마치 죽은 듯이 눈을 감고 가사 상태에 빠져 있는 환자가 한 명 누워 있었다. 긴 앞 머리카락이 누워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 주위를 가리고 있어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눈으로 확인하기는 불가능했지만 꼭 눈으로 보아야만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안 보고도 기(氣)만으로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규칙적이지만 가늘고 약한 숨결로 보아 확실히 그는 아직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 환자는 바로 비류연이었다.

“여깁니다, 총노사. 보시는 바와 같이 아직은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벌써 며칠째 계속해서 혼수 상태지요. 무슨 궁금한 점이라도 있으신지요?”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해 주셨으면 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허주운이 흔쾌히 대답했다.

“잠시 혼자 있고 싶군요.”

자리를 비켜달라는 이야기였다. 허주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이만.”

허주운이 인사를 하고 물러가려 하자, 빙검은 그의 배려에 감사하며 같이 예의를 갖추었다. 이윽고 문이 닫히고 멀어져 가는 허주운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삭 막하고 휑한 병실 안에는 빙검과 쥐죽은듯 누워 있는 비류연만이 남게 되었다. 빙검은 복잡 미묘한 심경이 뒤범벅된 시선으로 한참 동안 물끄러미 비류연을 바라보 았다.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사람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비류연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보통 잠자는 사람보다 훨씬 긴 호흡으로 미루어 볼 때 가사 상 태임이 분명했다.

“큭!”

순간 빙검의 가슴에 통증이 밀려왔다.

와락!

빙검은 자신의 가슴팍을 오른손으로 쥐어짜듯 힘껏 잡았다. 아직도 지금 자신이 현실 속에 서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미몽 속을 헤매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 다.

“이것은 현실인가? 아니면 꿈인가? 만일 이것이 꿈이라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악몽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날의 일을 설명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다시금 그의 침묵이 이어졌고, 그 침묵이 깨지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소요되어야만 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누워 있을 건가?”

마침내 침묵으로 일관하던 빙검이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지금껏 의식불명 상태라고 알려져 있던 비류연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하지만 아직 그의 눈에 초점은 없었다. 물론 빙검은 긴 앞머리 때문에 그 사실을 알아 차리지 못했다. 잠시 뒤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전신의 모공이 일제히 열린 듯 흰 기류를 뿜어냈다.

고오오오오!

병실 안의 공기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득우득! 뚜둑! 파파박!

그러자 목석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던 그의 팔과 다리가 꿈틀거렸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던 피부가 발그스름하게 혈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의 전신 뼈와 근육 이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 기가 원활하게 돌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그것은 마치 무생물이 생명을 가지는 듯한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빙검은 한동안 넋을 놓은 채 이 장관을 바라보았다.

“흐으읍!”

몸 주위를 떠돌고 있던 하얀 기류가 공기의 흐름을 따라 회전하다가 종국에 가서는 비류연의 코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멍하던 그의 눈동자에 초롱초롱한 빛 이 되돌아왔다.

스으윽.

비류연이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빙검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환자놀이는 재미있나?”

빙검이 물었다.

“그럭저럭, 지루한 것만 빼면 견딜 만하네요.”

온몸을 발작적으로 뒤틀며 비류연이 대답했다.

“대단한 꾀병 신공이로군.”

솔직한 감탄이었다. 사실 어지간한 대법으로는 아무리 그의 도움이 있다 해도 천수신의의 이목을 속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의술 대가인 신의(神醫) 허주운의 이목을 속일 정도이니 과연 독보적인 천하제일의 꾀병 신공이라 해도 아무런 하자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전자인 비류연은 당연 히 천하제일의 꾀병쟁이라 불릴 만한 자격 요건이 충분했다.

“생존생환대법 중의 심정귀면대법(心停鬼眠大法 : 심장이 정지하고 귀신처럼 잠드는 대법)이라고 불러주세요.”

이 신공은 과연 이것이 감히 신공이라고 이름 불릴 자격이 있는 지는 의문이지만 – 효과가 한마디로 끝내주는 무공이었다. 이것을 익히고 이 대법을 운용하면 눈 속에 파묻혀서도 사나흘은 너끈히 버틸 수 있는 효용을 지니고 있었다. 실례로 비류연은 아미산에 있을 때 이 신공을 운용해 눈 속에 파묻혀 몇 날 며칠을 보내고 도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경력이 있었다. 물론 감기 같은 무시무시한 질병도 감히 그의 몸을 범접하지 못했었다.

이 신공을 발휘하면 마치 심장이 정지한 것처럼 맥과 호흡이 느려지고, 전신의 기운이 서서히 몸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마치 죽은 자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몸이 소모하는 기운의 양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한 신공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비류연은 이 기공으로 신의라 불리는 허주운의 이목마저 감쪽같이 속여 넘겼던 것이다. 이제는 완전히 정상인으로 되돌아온 비류연이 빙검을 보며 뭔가 꿍꿍이가 담긴 미소를 머금었다. 아주 해맑게 해맑게 웃으며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말했다.

“오랜만에 봐서 기쁘긴 한데… 말이 조금 짧네요. 그렇지 않아요?”

그의 안하무인격인 한마디에 겨울 사내의 얼굴이 대번에 흙빛으로 변했다. 혹시 비류연이 겁이라도 상실했단 말인가? 감히 빙검에게 말이 짧다고 시비를 걸다 니……. 비류연의 그 같은 무례에도 빙검은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그는 얼어붙어 있었다.

차갑고 투명한 얼음 같은 그의 눈은 다시금 얼마 전의 악몽 속을 방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