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0권 23화 – 선출

비뢰도 10권 23화 – 선출

선출

며칠 후면 화산규약지회를 향한 대표들의 출발일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후보 발표뿐이었다.

마진가는 천무전에서 여러 노사들이 모인 가운데 이번 화산지회의 후보자를 발표했다.

그 발표가 끝나자마자 모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지난번까지의 후보 양상과는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었던 것이 이 동요의 원인이었다.

“한 가지 의문 사항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질문한 사람은 늑기한 노사였다.

“뭔가? 기탄없이 말해 보게.”

마진가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렇게 후보가 많은 겁니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후보 50명은 너무 많았다. 최종적으로 필요한 사람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아무리 규칙이 바뀌었다 해도 이번 건은 너무했다. 화산 규약지회 역사상 이렇게 많은 후보를 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 손과 양발에 달린 발가락을 모두 합쳐도 셀 수 없는 숫자였던 것이다.

“당연히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마진가의 말에는 추호의 의심도, 번민도, 망설임도 없었다. 그가 얼마나 이 상황을 당연시 여기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런 만큼 맥 빠지는 대답이기도 했다.

“왜입니까?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책입니다. 또한 이번 화산지회는 화산규약지회 백주년을 맞이하여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회를 치를 예정입니다.” “그… 그럴 수가!”

여기 모인 노사들 중 그 사실을 정확하게 통고받은 이는 없었다.

“그러므로 철회는 없을 것입니다.”

마진가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마진가의 부리부리한 시선이 좌중을 한 번 훑자 모두들 찔끔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화산규약지회는 이제껏 있었던 그 어떤 대회보다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직 그 이유를 설명해 줄 수는 없으니 양해를 구합니다. 게다가 모두들 쉬쉬하고는 있지만 화산으로 가는 길에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가 있어 왔는지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항상 화산규약지회를 향하는 관도들에게는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사인을 알 수 없는 변사체가 종종 나오곤 했지요. 때문에 항상 정 인원 그대로 약속된 화산에 도착한 적이 한 번도 없 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흑천맹을 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로 피해자를 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린 항의할 수 없었습니다.”

화산을 향하는 화산규약지회 대표들은 항상 죽음의 위험을 안고 지내야 했다. 언제 습격을 당할지 몰랐던 것이다. 자칫 방심하면 가는 도중에 도착도 못해 보고 어 이없이 죽게 될 수도 있었다. 당연히 그곳에 흑천맹이든 마천각이든 어느 쪽이든 음모가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지만 증거가 없는 이상은 제대로 흑천맹에 항의 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정사(正邪)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천겁우의 존재도 있어 함부로 흑천맹만을 지목하고 단정 짓기도 힘들었다.

강호에서 타 세력을 상대하는 정치 행위란 그런 것이다. 물증 없는 심증만으로는 그 어떤 일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위는?”

그런 문제가 발생했다면 당연히 호위가 붙어야 했다. 그편이 안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관례대로 없소이다.”

마진가가 말했다.

“알다시피 화산규약지회의 장소인 화산으로 떠나는 것은 참가자들뿐입니다. 그 외의 인물들은 동행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비록 화산에는 화산파가 있지만 화산규 약지회가 열리는 천무봉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그 주위는 금지(禁地)로서 선택된 사람들이 지키고 있지요. 물론 이것이 관례로 정해진 이유는 화산규약지회를 만든 무신 태극신군 혁월린 대협과 무신마 패천도 갈중혁이 정해 놓은 규칙 때문이지요.”

선발 대표들과 동행을 하지 못한다 뿐이지 초대받은 참관객은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참가자들은 화산규약지회가 열리기 한 달 전에 화산에 도착해야만 했다. 그것이 규칙이었고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패배로 간주됐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게나. 호위는 없지만 인솔자는 있으니깐 말일세!”

마진가가 늑기한을 보며 말했다. 상황이 그런 만큼 인솔자는 무척이나 중요하고 누구보다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절 보내 주십시오!”

늑기한이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마진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자네와 고약한 노사, 그리고 염도 노사와 빙검 관노사를 이번 화산규약지회의 인솔자로 선정할 생각이네.”

늑기한은 고약한이 같은 인솔자에 속했다는 사실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자신이 함께 뽑힌 관계로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고 만족하기로 했다. 염도와 빙검은 서로 를 한 번 쳐다보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외면해 버렸다.

될 수 있으면 얽히기 싫어 자꾸만 거리를 두는데도 계속해서 얽히기만 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날 밤!

“부르셨습니까, 관주님?”

제갈 노사가 지금 야심한 밤에 마진가의 개인 집무실 안에 서 있는 것은 마진가의 은밀한 호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지난 한 달은 가장 숨가쁜 한 달이었다.

““잘 왔네, 제갈 노사! 매번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하명하십시오!”

제갈 노사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드디어 내일이 출발이네!”

“예!”

“그러나 마음이 놓이질 않는군! 아직 환마동 붕괴 사건의 주범도 찾지 못한 시점에서 그 애들을 화산으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네!”

“그 점에 대해서는 죄송할 따름입니다. 저희들이 비영각을 비롯한 모든 기관을 최대한 가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꼬리조차 잡지 못하다니… 부끄러울 뿐입니 다. 용서를 빌 뿐입니다.”

“아닐세! 자네는 언제나처럼 잘해 주었네! 그들이 너무 용의주도할 뿐이야. 너무 심려하지 말게!”

“감사합니다, 관주님!”

제갈 노사는 마진가의 넓은 아량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제갈 노사, 이번에는 아이들이 무사히 화산에 도착할 수 있겠는가?”

마진가의 얼굴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지금부터가 본론이었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히 이번에 뽑힌 후보들 중에도 흑천맹이나 천겁우의 간세가 끼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마진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정말인가? 그들은 다들 명문정파의 후예들이네. 그럴 리가…….”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명문의 제자라 해서 다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란 걸 이번 사건을 통해 뼈저리게 배우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의 마수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깊이 미쳐 있는 게 분명합니다.”

“무슨 방도가 있는가? 자네가 여기까지 말하는 걸 보면 무슨 조치를 취해 놓은 게 분명한 것 같은데?”

제갈 노사가 싱긋이 웃었다.

“역시 날카로우십니다. 이미 후보들 속에 몇몇 믿을 만한 아이들을 심어 놓았습니다.”

“오오! 역시 자네로군! 과연 천무학관의 두뇌 중 하나라 할 만하네!”

마진가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과찬이십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안배를 더 해놨으니 안심하십시오. 제 명예를 걸고 기필코 아이들이 무사히 화산에 도착하도록 하겠습니다. 간세의 색출은 물 론이고 말입니다.”

“그럼 잘 부탁하네!”

“심려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