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1권 12화 – 신(神)은 현재 외출중?

비뢰도 11권 12화 – 신(神)은 현재 외출중?

신(神)은 현재 외출중?

“헉! 다, 당신은!”

악관절이 탈골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입을 쩌억 벌린 인물,

그는 바로 중양표국의 국주 십팔검 장우양이었다.

‘오, 부처님! 옥황상제님, 천지신명님, 정말 저 하늘 위에 계시긴 계시는 겁니까?’

이것은 무슨 인연일까? 세상에는 인연이란 인과율의 일종이 존재한다는 학설이 있다. 물론 이 인연은 신의 조화에 의한 변화라고 여겨진다. 오늘 장우양, 그는 신 이 존재함을 믿지 못하는 불신자가 되어버릴까 하는 불순한 마음을 품고야 말았다. 신도 도움이 돼야 믿는 보람이 있는 것이다. 그는 아직 신을 믿으며 대가성 은혜 를 바라는 속물이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의 인간에게 적용되기에 굳이 그만을 탓할 수만은 없다.

크든 작든 바라는 바가 있기에 신을 믿는 것이고, 그 때문에 종교란 것이 생겨난 것이다. 바라는 게 없고 소원이 없다면 애당초 이 세계에 종교란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여어, 오랜만이군요.”

비류연이 한손을 살짝 들어올리며 반갑게 인사했다. 그러나 이미 넋이 반쯤 나간 장우양은 그의 인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도저히 그런 상태가 되지 못했던 것이 다.

‘크윽!’

속이 쓰려왔다. 장우양은 지난 몇 달간 찾는 일이 없어 먼지가 쌓여 있을 황가비전(黃家秘傳) 황가위장약(黃家胃腸藥)을 찾아 품안을 뒤적거렸다. 사람들은 왜 요 즘 한창 잘나가는, 너무 잘나가다 보니 중원최대 표국인 중원표국의 확고부동한 명성마저 위협하고 있는 중양표국의 대국주 십팔검 장우양이 아무 명성도 배경도 없는 청년에게 저토록 저자세를 취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래서야 마치 상전을 모시는 하인의 모습이 아니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먼저 비류연과 수인사를 나눈 장우양은 그제야 안면이 있는 주 작단원들과 마주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한때 생사를 함께하던 전우 사이였기에 남다른 정이 있었다.

그제야 주위에 시선이 너무 많음을 느낀 비류연이 염도에게 신호를 보내자 염도는 다들 객실에 들어가 푹 쉬라는 말과 함께 관도들을 해산시켰다. 늑기한과 고약 한도 서로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이제 식당에 남은 이는 비류연, 염도, 빙검, 그리고 장우양 이 네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쩐 일이신가요? 직접 오시다니 특이한 일이로군요.”

장우양이 이곳에 있는 이유? 물어볼 필요도 없이 표행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2년간 급속한 확장을 거듭하여 지금은 중원각지에 18개의 지국을 두고 있는, 이미 팽창할 대로 팽창한 중양표국의 대국주가 직접 올 정도라면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표행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때문에 지금 비류연은 흥미로움을 표시하고 있 는 것이다. 그의 중요 감각 중 하나인 금전계 본능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오늘 도착하셨나요?”

비류연의 질문은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우양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사실 이곳에서 머문 지 벌써 3일이나 되었습니다.”

“예?”

“엥?”

“허어?”

3일이라는 말에 세 사람이 동시에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일각이 급한 신속함이 요구되는 표행이었다. 표행은 안전과 속도가 생명이었다. 그런데 한 곳에서 두 손 놓 고 3일이나 머물렀다는 것은 뭔가 중차대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슨 특기할 만한 일이라도 있나요?”

“사실 내일 크고 험한 산을 하나 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은 등산의 어려움을 토로한 말은 분명 아니었다. 장우양의 대답에 비류연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흐흠! 산길이 험해서 오르기가 힘들다는 것은 분명 아닐 테고, 설마 일개 산적이 겁난다는 이야긴가요? 지금? 어딜 가나 표행에 산적은 돈 달라고 바가지 긁는 아내처럼 친숙한 존재였다. 비류연의 말에 염도가 염장을 벅벅 긁었다.

“겨우 산적 나부랭이 따위에게 지금 벌벌 떨고 있는 건가? 신용 제일 환명수호(換命守護: 생명과 바꿔 물건을 지킴)의 중양표국이란 말도 모두 헛소문이었던 모양 이군.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후우. 보통의 일반 산적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웬만큼 큰 산채도 통행료 흥정으로 지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올라가야 할 산의 주인 은 그런 흥정이 일체 통하지 않는 상대입니다.”

“왜? 녹림왕이라도 기다리고 있는가?”

염도가 비아냥거리는 농담조로 물었다.

“네! 바로 그렇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장우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자신도 모르게 염도는 언성을 높이고야 말았다.

“말씀대로입니다. 녹림왕이 영업을 선언했습니다. 녹림왕 임덕성의 사냥터를 의미하는 녹색 늑대 깃발이 오른 이상 보통의 각오로는 저 산을 오를 수가 없습니 다.

“그게 뭐죠? 그리고 임덕성은 또 누구죠? “

비류연이 물었다. 분명 현 강호 일반 세력 상식 시간에 들은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분명히…….

“녹림왕 광풍마랑 임덕성으로 말할 것 같으면 녹림칠십이채의 총채주로 십만 녹림도의 정점에 우뚝 서 있는 호걸입니다. 보통 때는 총채에서 쉬면서 지나가는 행 인들에게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고 있다가 자신이 정한 사냥기에만 몸을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저희는 어쩌다가 재수가 없어 그의 영업기와 영업권 안에 걸리게 되었지요. 보통 이 시기에는 영업을 하는 법이 없었는데 무슨 바람이 분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고…….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점은 내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산을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늑대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벼르고 있는 그 험산을요.”

장우양은 걱정이 태산 같은 모양이었다.

“보수는요?”

비류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예?”

순간 장우양은 비류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산을 무사히 넘게 해주면 어느 정도의 보수를 약속할 수 있느냐는 거지요. 표행의 안전에 대한 대가로!”

갑자기 장우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도 이곳에서 3일간의 시간을 들여 나름대로 준비를 했지만 전혀 미덥지 못한 터였다. 그런데 저 비류연과 천무학관 대 표단 일행이 이런 시기에 함께 가준다면 녹림왕이라도 전혀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 그렇다면……. 비용은 조금도 신경 쓰지 마십시오. 무사히 산만 넘게 해주신다면 크게 후사하겠습니다. 반드시 내일 산을 넘어야 합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던 말을 끊은 장우양의 시선이 염도를 향했다. 과연 인솔자인 염도가 그것을 허락해 줄지 그로서는 회의적이었던 것이다. 비류연과 염도의 암중 관계를 모르는 장우양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염도는 별 반대 없이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의 표시였다.

“어차피 가는 길, 동행이 있다 해서 나쁠 건 없지. 게다가…….”

녹림왕 임덕성은 패도적인 광풍마랑도의 달인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십만 녹림도 위에 군림하는 도법이라… 도를 쓰는 그로서는 꽤 흥미가 동하는 존재였 다.

“그렇다면 거래 성립이로군요.”

비류연이 싱긋 웃었다. 장우양은 갑자기 구세주를 만난 느낌이었다. 절망적이던 마음이 순식간에 행복 충만으로 뒤바뀌었다.

“그런데 일이 어떻게 된 거죠?”

이야기인즉 이러했다. 장우양은 처음부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나갔다. 상황을 요약하면…….

“그러니깐 지금 중원 최대 표국이 바로 중원표국이라는 곳인데, 지금 중양표국은 그 중원표국과 사활을 건 경쟁중이고, 그 때문에 어떻게든 중원표국보다 도착지 에 먼저 무사히 도착해야 한다 그 말이로군요. 바로 중양표국이 중원제일표국이 되기 위해서요.”

“그렇습니다.”

장우양은 비류연의 일목요연한 설명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착지는요?”

“화산입니다.”

표국의 목적지가 화산인 이유는 화산규약지회라는 10년 만의 크나큰 행사가 치러지다 보니 자연 대박을 노리고 몰려드는 엄청난 사람과 장사꾼들이 발생해 그와 함께 그곳으로 물량이 집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은 물류의 흐름과 사람의 흐름과 함께하기 때문에 당연한 이치였다.

어둠으로 둘러싸인 한 암실.

순평루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비밀 장소였다.

“연락은?”

“사전 준비는 완벽히 완료됐다고 합니다. 올가미는 이미 쳐져 있습니다.”

“뒤처리는?”

“완벽합니다. 그들은 절대 증인의 증언을 들을 수 없을 겁니다.”

적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대로 추적을 계속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끼어들지 않는다. 이상!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많은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뭔가요?”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치사한을 보며 대공자가 물었다.

“곧 하얀 사슴과 늑대와 접촉한다는 보고가 방금 도착했습니다. 모든 것이 예정대로입니다.”

“전멸당하지나 않았으면 좋겠군요. 무대는 배우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대공자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추가 보고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사소한 변수 하나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변수? “

대공자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타나는 변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건 완벽한 계획을 수립하는 데 있어 방해물일 뿐이었다. “예, 사슴 무리 사이로 귀여운 은색 여우 한 마리가 합류했다고 합니다. 은색 여우 모피는 어떠신지요?”

노골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는 치사한의 보고에 대공자는 흠칫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

대공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간 두 사람 사이로 깊은 침묵이 흘렀다. 치사한은 대공자의 의외의 반응에 몸을 움찔했다.

“제길…, 내가 실수한 건가?’

만일 그렇다면 재미없었다. 그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사, 사냥할까요?”

대공자의 고개가 좌우로 가로저어졌다.

“여우 사냥은 잠시 미룹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동태 파악에 전력을 집중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치사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쓸어 내쉬었다. 치사한이 돌아가고 텅 빈 어둠 속을 그는 조용히 응시했다, 대공자의 눈이 심연에서 차갑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