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1권 13화 – 녹림왕 임덕성

비뢰도 11권 13화 – 녹림왕 임덕성

녹림왕 임덕성

“그건 그렇고 이…, 에휴~!”

비류연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비류연과 대표단 일행은 녹림왕 임덕성이 팻말을 꽂아놓고 공개 영업을 하고 있다는 바로 그 문제의 대홍산(大山)을 오르는 중이었다.

세상 참 좁다는 말이 새삼 실감나는 비류연이었다.

“이 오합지졸들은 뭔가?”

비류연은 가장 짧은 말로 가장 최상의 모욕을 주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짧은 한마디만으로 단번에 가장 심한 모욕을 그들에게 안겨줄 수 있었다. 비류연은 절약이 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남들이 열 마디 해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단 한마디로 해결 할 수 있으니 어찌 경제적이지 않겠는가.

귀가 버젓이 뚫려 있는 것이 분명한 그들 즉 비류연에게 오합지졸이라 지칭된 사람들이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붉그락푸르락해진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바로 어제 저녁 비류연에게 널브러짐을 당한 팔대세가의 자제들 여섯 명이었다. 원래부터 나머지 두 명은 없었던 모양 이다.

이들이 아마도 중양표국이 나름대로 준비한 한 수였던 모양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의미한 투자가 아닐 수 없었다. 남궁호를 비롯한 이들 오합지졸은 20세가 되었지만 아직 실력이 부족하여(한 마디로 약해빠져서) 천무학관에 들어가지는 못하고(낙제하고) 가문이나 사문에서 가전무공이나 전수받으며 열심히 익히고 있 는 이들이었다. 비록 천무학관의 벽이 높아 그곳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가전무공만으로도 능히 강호에서 행세를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이들도 젊은 무인인 이상 이번에 열리는 화산규약지회를 구경하기 위해 화산으로 유람을 계획했다. 이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볼거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이 들과 그 나름대로 친분이 있던 중양표국의 소국주 장우강이 전적인 지원과 성대한 환대를 약속하며 표행에 동행할 것을 부탁했던 것이다. 전 여행 경비를 부담한다 는 조건에, 게다가 무사히 도착하면 심심찮은 대가까지 약속한 장우강의 제안이 나쁘게 들릴 리가 없었다.

이들 오합지졸 여섯 명은 이내 장우강의 제안에 승낙했고, 여기까지 동행해 온 것이었다. 그러다가 풍류를 떤답시고 대홍산의 입구인 삼양에서 한 여인에게 찝쩍 거리다가 된통 당하고 얼굴 전신이 푸르팅팅하게 변한 채 지금 전쟁 포로처럼 산길을 비척비척 올라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들도 설마 자신들과 시비가 붙은 곳이 자신들이 선망하는, 그리고 가문의 존경하는 형님과 누님들이 소속되어 있는 천무학관 화산규약지회 대표단인 줄은 꿈에 도 몰랐던 것이다.

“하릴없는 청춘들이로군. 얼마나 허송세월을 보내려고 벌써부터 화산행을 서두른단 말인가?”

비류연의 못마땅한 시선이 오합지졸 백수들을 하나하나 날카롭게 해부했다.

“발목 잡는 건 고사하고 오줌이나 지리지 않았으면 좋겠군.”

비류연의 최종 해부 소감에 청년들의 얼굴이 오갈 데 없는 분노와 수치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항의, 저항, 반박 그 어느 것 하나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없었다.

“멧돼지 떼가 여기저기를 들쑤셔놓는 것도 아닌데 산이 무척 소란스럽군요. 예린, 느껴져요?”

비류연이 녹음으로 우거진 숲을 한번 둘러보며 말했다. 그날 이후 아직 서먹함은 남아 있지만 비류연을 피하는 게 적어진 나예린이었다.

“네, 그런데 움직임에 상당한 악의가 느껴져요. 살의에 가까운 지독한 악의!”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그녀의 안색은 결코 밝지 않았다.

“흐흐, 한번 해보겠다는 건가?”

차분히 눈을 감은 염도는 자신의 애도를 한번 쓰다듬어주었다. 전의가 솟아올랐다.

“상당한 숫자로군.”

주위 사방으로 자신들을 압박하는 기운에 불쾌함을 느끼며 빙검이 중얼거렸다. “왔군!”

감겼던 염도의 눈이 번쩍 떠졌다.

끼익!

대표단과 표행이 일제히 정지했다.

“멈춰라! 더 이상 지나갈 수 없다.”

구릿빛 얼굴을 한 덩치가 좋은 장한 하나가 길 한복판에서 그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 장한은 상의에 늑대 가죽을 통으로 이용해 만든 피의를 입고 있었다. 그의 왼쪽 어깨를 장식하고 있는 늑대 얼굴에는 금세라도 사람을 물어뜯을 것처럼 하얀 이빨이 빛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것을 보니 상당한 내공을 실어 말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과연 녹림총채의 기세는 다른 곳과는 사뭇 달랐다. 이미 예상했던 일

이지만 장우양은 긴장되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표국의 사활을 걸고 이 표행을 수행중이었다. 어떤 사소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여기 칠십두 개 산의 주인이 계시는 것을 알고 있소. 우리는 중양표국 사람이오. 녹림왕의 사냥터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알고 있소. 시험 을 치르고 싶소이다.”

장우양이 큰 소리로 외쳤다.

“시험을 치르고 싶다고? “

“그렇소!”

그러자 거구 장한의 입에 조소가 어렸다.

“물론 보통 때는 시험을 통과하면 얌전히 보내줬을 것이다. 그러나……!

거한의 눈에 시린 살기가 폭사되어 나왔다.

“네놈들은 예외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단 한 놈도 살아 나가지 못한다.”

척!

구릿빛 피부를 지닌 장한의 손이 들어올려졌다.

쿠쿠쿠쿵! 우르르릉!

갑자기 산이 천둥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지진은 아니었다. 천둥도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까닭에 그리 느껴졌던 것이 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기에?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표행과 대표단 주위로 빼곡한 사람의 시커먼 벽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각종 흉악한 무기들로 인해 대표단 주위 로 마치 도산검림(刀山劍林)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장우양의 얼굴이 창백하게 탈색되었다.

“2천? 아니…, 3천인가?”

비류연은 일단 어림짐작해 보았다. 적어도 다섯 겹 이상의 장벽이 그들을 빙 둘러쌓고 있었다. 흑랑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인원에 엄청난 기세였다. “우오오오오!”

채, 책, 책, 책, 책!

그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일제히 들어올리고, 때로는 부딪치며 요란스럽게 함성을 질러댔다. 3천에 가까운 사람들이 일제히 지르는 함성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에 산은 떠나갈 듯 울부짖었고, 그들이 일제히 구르는 발에 산은 지진이라도 만난 것처럼 진동했다. 이들의 이런 행동은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중양표국의 대다수 표사들과 쟁자수들은 이들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안색이 창백해진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신임 표사들은 감히 칼을 빼들 엄두도 못 내고 있 었다. 짐꾼이나 마찬가지인 쟁자수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어디선가 구사일생, 안 되면 극락왕생을 비는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강호 경험이 거의 없는 천무학관 대표단들 중 몇몇도 두려움과 당황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배우고 익힌 무공은 강할지 몰라도 강호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사 람도 이중에는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중 윤준호의 안색은 특히나 창백했다. 아직 겁쟁이에서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나마 평정을 가장하려는 그의 노력이 가상했다.

원래 산적들의 집단 행동은 바로 이런 효과, 즉 적의 사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엄청난 공포 속에서 정신적 혼란을 일으켜 집단 광란 상태에 빠뜨리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노림수였던 것이었다.

덤으로 따라온 팔대세가 도련님들은 적들의 기세가 이 정도일 줄은 예상치 못했는지 얼굴이 창백해진 채 발발 떨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죽음의 그 림자가 춤추는 것을 보고 만 것이다. 비류연이 보기에 그들은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것만 해도 칭찬받아 마땅했다.

과연 녹림칠십이채의 총채 마랑채(魔狼寨)다운 엄청난 위세였다.

구정회주 용천명과 비천룡 삼절검 청흔, 지룡 백무영, 그리고 군웅회주 철옥잠 마하령도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이런 돌발 상황에 내심 당황했지만 자존심 때문에 억 지로 평정을 가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당황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정말로 태연자약한 사람도 있었다. 염도, 빙검, 그리고 비류연은 이런 일에 혼백이 달아날 것처럼 당황하기에는 그동안 겪은 일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밑에서 억척스럽게 수련해 온 주작단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녹림칠십이채가 대단하다 해도 강호의 싸움은 쪽수가 아니다. 한 명의 고수가 천 명의 역할을 해낸다. 그것이 바로 일반 전쟁과는 차별되는 무림인들 간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지금 마랑채와 맞서고 있는 것은 아마 전 강호를 통틀어 이만한 전력을 가진 여행자 집단은 전무하다 봐도 이견은 없을 터였다.

“짝짝짝짝!”

출처를 알 수 없는 느닷없는 박수소리가 일촉즉발의 험악한 상태로 대치하고 있는 장내를 조용한 침묵 속에 빠뜨렸다.

“성대한 환영식 잘 봤습니다. 훌륭한 볼거리였습니다.”

수천 개의 시선이 동시에 이 겁 없는 자를 향했다. “너무 두려워서 미쳐버렸나?’라고 몇몇 산적들이 생각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말을 한 겁대가리 상실한

사람은 비류연이었다. 잠시 말을 멈추었던 비류연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누구 맘대로 내 생명을 허락도 받지 않고 가져가겠다는 겁니까? 누.구.맘대로! 어떻게 그렇게 허무맹랑한 욕망을 품게 되었는지 놀라울 뿐이로군요.” 인정사정없는 비류연의 날카로운 한마디였다.

“우리가 산적 따위에게 시험을 구걸할 생각은 없지만 남들은 다 되고 우리만 안 된다는 이유가 뭐죠? 이유나 알고 시작하죠.”

뭐…, 뭘 시작한단 말인가?

“고…, 공자! 제…, 제발!

안색이 파리해진 장우양이 급히 손을 흔들며 비류연을 말렸다. 이 이상 살기등등한 산적들을 자극하는 도발은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장우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황은 충분히 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 악화시키려 노력하지 않아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이 찢어죽일 놈들! 네놈들이 정녕 그 이유를 모른단 말이냐?”

거한이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 실려 있었다.

“남을 욕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게 순서일 것 같은데요?”

비류연의 한마디에 거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구어졌다. 그는 그때서야 자신이 이름도 안 밝히고 떠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본인은 녹림칠십이채 폭랑삼십육도의 대장 폭랑귀도(暴狼鬼刀) 모경이다! “

폭랑삼십육도(暴狼三十六刀)!

녹림왕 광풍마랑 임덕성이 직접 육성했다는 녹림칠십이채 최강의 도객 집단이다. 임덕성의 친위대 격인 집단으로 가장 사납고 난폭한 늑대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었다.

녹림왕 임덕성의 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들.

이들은 필요할 때 가장 사납고 잔인할 수 있는 자들로 같은 녹림칠십이채들 중에서도 이들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상당수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힘은 외부의 적 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에 대한 제재 행위도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들의 내부 불순 세력이나 불온한 움직임에 대한 제재는 대부분 말살(抹殺)로 그 귀결 을 맺기 때문에 다른 산채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그들은 힘과 공포로 항상 녹림칠십이채의 힘의 상징 중 하나로 군림해 왔었다.

즉 이들은 적으로 돌리면 녹림에서 가장 무서운 적이 될 수 있는 자들이었다.

“호오, 알고 보니 꽤 유명인인가 보군요.”

그제야 주위의 설명으로 그 사실을 전해들은 비류연은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녹림 최대의 공포도 그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명성만으로 주눅 들기에는 이쪽에 포진한 유명인도 만만치 않죠. 그렇지 않아요, 예린?’

“…..”

나예린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크으으!”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옆의 여자와 노닥거리는 비류연의 모습은 모경의 마음에 분노의 봉화를 피어 올렸다. 역시 세상에는 아직 쳐 죽일 놈들이 많다고 그는 생각 했다.

“그런데 우리들이 누군지는 알고나 있는 건가? 그걸 알고서도 지금 길을 막고 있는 건가?”

비류연이 계속해서 나서봤자 사태는 점점 더 악화 일로로 치달을 뿐이라고 판단한 빙검이 앞으로 나섰다.

“아무리 댁들이 명문대파의 자제들이라 해도 피의 값은 피로 갚아야 하오.”

모경의 말은 우리도 그동안 쌓아온 눈썰미가 있어 네 녀석들이 보통내기가 아닌 건 알고 있다는 투였다.

“우리는 그 피의 값이 어떤 계산 방법에 의해 나왔는지를 알지 못하네.”

차분히 빙검이 한마디했다. 천무학관의 총노사 입장에서 그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불유쾌했다. 저들에게 천무학관의 이름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어리석은 행위를 할 리가 없었다. 천무학관의 화산규약지회 대표단의 행보를 가로막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언도도단이었 다.

“설마 이 일에도 예의 검은 그림자가 얽혀 있는 건가?’

배제할 수 없는 가정이었다. 빙검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장내를 주시했다.

“너희들이 지금 흑랑채를 모른다고 발뺌할 테냐?

모경이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흑랑채? 물론 알지.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 “

염도가 짜증섞인 어조로 반문했다. 모경의 가슴속에서 이글거리던 분노가 대갈성이 되어 터져 나왔다.

“닥쳐라! 이런 후안무치한 놈들! 그래도 아직 발뺌을 하려는 속셈이냐? 흑랑채의 전원을 몰살시키고도 네놈들은 아직도 시치미를 뗄 생각이란 말이냐? 말을 듣던 염도는 욕을 먹어 치밀어 오르는 분노보다 흑랑채가 몰살당했다는 말에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흑랑채가 왜 몰살을 당했단 말인가?”

“이런 쳐죽일 놈들! 네놈들이 흑랑채를 몰살시켰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순순히 목을 내놓아라! 혈채(血債 : 피의 값)는 오직 피로만 갚을 수 있다.”

생사람 잡아도 유분수였다. 의외의 사실에 대표단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견을 교환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나 임성진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 다. 무고한 사람을 붙잡아놓고, 훔쳐간 전낭을 내놓으라고 하니 성질 급한 염도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제는 아예 생떼를 쓰는군. 며칠 전만 해도 멀쩡하게 잘 살아 있던 놈들이 죽긴 왜 죽어? 하늘에서 갑자기 날벼락이라도 맞았냐?”

염도의 반응은 무척이나 신경질적이었다.

“닥쳐라! 우리 녹림칠십이채는 피의 값은 피로 받아낸다. 너희들은 모두 오늘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한다. 네놈들의 피로 흑랑채 형제들의 넋을 위로하겠다.” 이제는 벌건 대낮에 생사람을 잡으려 든다고 염도는 생각했다.

“하나만 묻자. 내가 웬만하면 참고 안 물어보려고 했는데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어서 그러거든? 너희들 우리들이 천무학관 화산규약지회 대표단이라는 것을 알면 서도 이러는 것이냐?’

염도가 짜증섞인 어조로 물었다.

“화, 화산지회!

그들도 강호인인지라 이 화산규약지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웅성, 웅성, 웅성!

보이지 않는 동요가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이 화산규약지회에 얼마나 상식을 초월하는 괴물 같은 녀석들이 참가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명문정파의 제자와는 격이 다른 괴물들만이 화산규약지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모경의 안색이 대번에 침중해졌다.

‘구대문파 제자 집단 정도인 줄 알았더니 설마 화산지회 대표단일 줄이야.’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녹림총채의 위세가 대단하다 해도 이들과 시비가 붙는 것은 정파 전체와 시비가 붙는 것이랑 같은 이야기였다. 그로서는 섣불리 판단 할 수가 없었다. 올바른 판단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아무리 천무학관 대표단이라 해도 피의 값을 치르지 않고는 이곳을 지나갈 수 없다!

산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일갈이었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파르르 떨렸다. 몇몇 사람들은 그 일갈에 실린 내공을 견디지 못하고 귀를 틀어막았다.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아팠던 것이다.

그 목소리를 들은 임성진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동요하는 그의 시선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