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진설은 어때요? 요즘 좋아하는 사람과는 잘되고 있어요?”
은설란이 웃으며 이진설에게 물었다. 연애니, 사랑이니, 남자니 이런 것을 화제로 삼는 것은 이들 중에 은설란뿐이었다.
그래서 이진설은 은설란이 좋았다. 나예린과 독고령과 함께 있는 게 싫지는 않았지만 그녀들은 이런 화제와는 백만 년쯤 떨어져 있었다.
“남자? 쓰잘데기 없는 것들! ‘
독고령이 어느 날 그녀에게 해준 말이었다. 남자들을 보는 독고령의 시선이 함축적으로 잘 나타나 있는 말이었다. 지금 일행들은 잠 시 행보를 멈추고 쉬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은 호북성 양양(襄陽)에서 곡성(谷城)으로 가는 길목으로 꽤나 지대가 높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무당파(武當派)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지대가 높은지라 낮은 지대의 풍경이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대지는 늦가을 무르익은 곡식으로 황금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가을바람에 황금바다 위로 잔 물결이 잔잔히 일렁였다.
“빨리 말해 봐요. 어서, 어서! “
은설란이 재촉했다.
“그게 저…….”
이진설은 얼굴을 붉히며 슬쩍 효룡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옆에 있는 장홍과 뭔가 정신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중이었다.
‘저 아저씨는 왜 저렇게 말이 많은 거야?’
이진설은 이유도 모른 채 발끈 화를 냈다. 그녀의 고운 아미가 상큼 치솟았다.
“몰라요, 요즘은 여자보다 남자가 더 좋은가 봐요. 흥!”
이진설이 삐친 채 고개를 돌렸다. 요즘 들어 효룡이 자기를 잘 상대 안 해주자 화가 많이 나 있었던 것이다. 효룡으로서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그런 것이지만, 그 런 이유 따위는 발랄한 행동 우선 원칙주의자인 이진설에게는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은설란은 듣지 않아도 다 알겠다는 듯 미소 지었다. 이진설은 참 알기 쉬운 성격이었다. 그래서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요즘 비 공자와는 잘되고 있어요?”
질문의 화살이 이번에는 나예린을 향했다. 어쩌다 보니 은설란에게 발목을 잡혀 이 자리에 있게 되었지만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네? 그게 무슨……?”
나예린이 당황하며 반문했다.
“에이, 절 속이려 하지 말아요. 이래봬도 사람 보는 눈은 있다고요. 솔직히 관심 있죠? 좋아하죠?”
은설란은 다 알고 있으니 순순히 자백하라고 말하는 판관 같았다.
“관심 없습니다.”
나예린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은설란은 그 무표정과 무뚝뚝함 아래 숨겨진 동요를 눈치 챘다. 그 동요는 아주 미약한 정도였지만, 이 얼음공주 아가씨가 이 정도로 감정을 표출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역시 나예린에게 은설란은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녀의 말은 언제나 나예린을 당황시키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어머! 정말 관심 있나 보네요? 사실 다들 환마동이 무너진 그 44일 동안 그 암흑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죽으려 한다고요.”
나예린은 환마동이라는 말에 일순 당황해하며 극구 부인하였다.
“누, 누가 그런 걸 궁금해하겠어요? 그런 하잘것없는 것을!
“어라? 그건 천만의 만만의 말씀이에요. 벌써 여기 있는 남자 관도들의 삼분지 이 이상이 그 사실을 궁금해 미칠 지경에 빠져 있을걸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 는지 알려만 준다면 천금을 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요.”
‘천금을 내놓을 수 있다면 류연을 찾아가는 게 가장 빠를지도!’
나예린은 무의식중에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성사율이 십이할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 눈앞에 있는 한 소녀도 가슴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그 일을 궁금해한다고요.”
“헤헤헤!’
은설란이 지적한 꿈 많은 한 소녀는 바로 이진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녀들의 대화에 동참하고 있던 이진설은 은설란의 지적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혀를 쏙 빼 물고 쑥스럽게 웃어 넘겼다.
나예린은 어쩔 수 없는 아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혹시 정말로 그 안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에요?”
은설란이 계속 짓궂게 질문했다.
“은 소저가 상상하는 그런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나예린의 단호한 대답에 의외로 은설란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어머, 그렇다면 그 외의 무슨 일은 있었다는 거로군요! “
이런 일에 순진한 나예린은 은설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장난으로 흑천맹 조사관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 그건…….?
나예린의 변명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은설란이 계속 말했다.
“그러니까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본인의 마음속에서는 뭔가 변화가 있었다는 말이로군요.”
그녀의 말은 나예린의 정곡을 찌르는 비수와도 같았다. 은설란도 자신처럼 독심술의 능력이 있단 말인가? 나예린의 당황한 시선이 은설란의 시선과 마주쳤다. 은 설란은 마주보며 생긋이 웃어주었다.
“그 눈빛은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눈빛 같네요. 항상 예린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는데 오늘은 드물게 얼굴에 자주 감정이 나타나요. 확실히 그날 이후 많이 부드러 워 진 것 같아요. 본인이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죠. 왜 누군가의 이야기만 나오면 그럴까요? 보통 때는 얼음을 깎아놓은 게 아닌가 생각될 정 도로 차가운데 말이죠.”
나예린은 자신이 그렇게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뜨끔했다. 요즘 들어 감정이 자신을 이반(離叛)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왜 자신은 느끼지 못하는데 남 들은 느꼈다고 하는 걸까?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다면 간단해요. 남녀가 단둘이서 그 폐쇄된 공간 안에서 44일 동안 같이 지내다 보면 감정에 변화가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죠.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던 변화는 일어나게 마련이에요. 더구나 생사의 경계선에서는 특히나 더 말이죠.”
은설란의 지적 중에 틀린 점은 없었다. 여기서 만족할 수 없는지 은설란은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난 들었어요. 예린이 비공자를 ‘류연’이라고 다정하게 부르는 것을요. 과연 누가 있어 냉정한 얼음 공주님 예린에게 이름을 불릴 수 있을까요? 그것도 그렇게 다 정한 목소리로 말이죠.”
은설란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어머, 예린 언니! 진짜예요? ”
이진설이 화들짝 놀라며 반문했다.
듣고 있던 독고령은 그게 정말이라면 당장 가서 그놈을 비류연 – 베어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그녀의 사매 보호는 지극정성이라 좀 지나칠 때가 있었 다. 지금도 그녀에게 비류연은 사매의 차가운 마음을 풀어준 햇살 같은 최초의 남자가 아닌, 사매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 잡귀일 뿐이었다.
“…..”
예린은 침묵했다. 은설란의 정연한 말에 이 차가운 얼음 공주님도 반박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막을 생각도 없었다. 은설란이 마치 자신의 그 동안 혼란스러웠던 감정을 시원스레 정리해 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정말 그럴까?’라고 의문을 품었던 감정이 은설란의 말을 모두 들었을 때는 정말 그럴지도 몰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정말 그런 걸까?’
아직 거기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고민하는 나예린을 바라보는 은설란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달빛 조각같이 차갑던 평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사람답고 인간적이었다. 그런 나예린의 모습이 은설 란은 무척이나 귀여운 모양이었다.
“한때 지독한 사랑의 열정에 사로잡혀본 여자로서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아요. 나의 첫사랑은 비련(悲戀)으로 끝났지만 예린은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사랑을 하 도록 하세요. 그것이 어떤 슬픔과 고통과 번뇌를 안겨준다 해도, 사랑은 아름다운 거예요. 한번 해볼 만한 거죠. 아직 깨닫지는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자기 가슴속에 존재하는 것이 사랑이란 걸 느낄 거예요. 어느새 자기 곁에 다가온 신비로운 불청객을요.”
그 말을 하는 은설란의 시선은 현재가 아닌 아득한 과거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앙상한 초겨울처럼 쓸쓸한 미소가 걸렸다.
“언니는 약속된 정인이 없나요?”
아직 어린 탓인지 분위기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이진설이 지금 이 순간 올릴 화제로는 별로 좋지 않은 화제를 골랐다.
“진설!”
나예린이 제지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련한 눈빛을 하고 있던 은설란의 입가에 슬프고 쓸쓸한 미소가 번졌다.
“있었죠. 한때 이 세상의 전부와도 같았던 분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분을 만날 수 없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분이라 이제는 제가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셨거 든요. 아주 먼 곳으로요. 절 이곳에 혼자 두고 말이에요.”
‘아파…….’
나예린은 순간 가슴 저미는 슬픔과 회한이 자신의 가슴속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무엇이 그녀의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마음을 이토록 애절하게 만드는 것
일까? 분명 그 원인의 중심에는 은설란이 서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차마 그녀에게 그 사랑에 대해 질문할 수가 없었다. 과연 그 사랑은 얼마나 큰 상처를 은설란의 가슴에 남긴 것일까? 그녀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응? 어머? 다들 분위기가 왜 이렇게 침울하게 죽어 있어요? 얼굴들 펴요. 얼굴들! 누가 보면 초상난 줄 알겠어요.”
갑자기 자기 탓에 분위기가 확 주저앉아버리자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은설란이 사태수습에 나섰다. 이 정도 이야기에 주책없이 빠져들다니…, 아직 가슴 속에 난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모양이었다.
은설란은 슬픔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한층 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남자 괜찮은 남자일지도 몰라요. 얼음 공주님의 마음을 이 정도로까지 움직이려면 보통 사람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요. 좋은 남자인지는 확실히 모르지 만 재미있는 남자라는 것만은 보장하죠.”
은설란은 옥같이 투명한 손가락을 들어 지평선 저쪽을 바라보고 있는 비류연을 가리켰다. 비류연은 시선을 멀리 두고서 무언가를 뚫어지게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 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 홀로 서 있는 모용휘가 보였다. 여전히 아름답다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수려한 청년이었다. 완벽이란 말은 그를 위해 존재하는 단어 같았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언니! 모용 공자가 있잖아요. 저 정도면 특급 신랑감이라고요. 서너 살의 나이 차이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분명 모용공자도 언니 같은 미인을 거절하지 못할 거예요.”
이진설이 씩씩하게 말했다. 그녀 나름대로의 위로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은설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번에는 초봄같이 잔잔하고 따스한 미소였다.
“그러네요. 저 정도면 특급의 남자죠. 어떤 여자가 저런 멋진 남자를 잡지 않으려 하겠어요? 분명 수많은 여자들의 눈물을 흐르게 만들었을 거예요. 나쁜 분이시로 군요. 물론 고의는 아니지만요. 호호호! “
“까르르르!”
은설란과 이진설이 동시에 교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뭐가 그리 즐거우신지 소인도 낄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그녀들의 대화에 불쑥 끼어든 이는 바로 지난 화산지회 사강(强)의 주역인 취영검翠影劍) 신유성이었다. 그의 시선이 은설란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의 잠정 목표는 그녀인 모양이었다.
“죄송하지만 이곳은 지금 여인들 간의 은밀한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라 남자 분은 낄 수가 없겠는데요?”
은설란은 찡그림 하나 없이 미소 지으며 완곡히 거절했다.
“하하하! 이런 제가 실수를 한 건가요? 그렇다면 나중에 저게 미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은 소저? “
“죄송합니다. 전 부끄러움이 많아서요. 하지만 저분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면 생각해 보죠.”
“호오? 저기 저 사람 말입니까?”
신유성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자를 바라보았다. 은설란의 옥지가 가리킨 것은 바로 모용휘였다. “네! 저분이요.”
도대체 지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 걸까? 나예린도 이진설도 독고령도 알 수가 없었다.
“좋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확실히 제가 저 사람보다 멋진 남자란 걸 소저께 증명해 보이지요.”
그는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저 칠절신검 모용휘에게 서슴없이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남자는 현 강호에서 그리 많지 않았다.
“기대하겠어요!”
은설란의 붉은 입술 사이로 폭풍을 예견하는 미소가 맺혔다.
쿠쿠쿠쿠!
대지를 울리는 소리가 가볍게 공기를 진동시켰다. 소리의 원천을 향하다 보니 그녀의 눈에 저편 산으로부터 이곳까지 이어지는 먼지구름이 보였다.
“이제 돌아오나보군요.”
비류연이 고개를 돌려 신비할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의 근원으로 시선을 향했다. 나예린이었다.
“별난 일이네요! 예린이 먼저 다가오다니!”
비류연이 즐거운 듯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그는 지금 몹시 기뻐하고 있었다. 이제껏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나예린은 다급히 화제를 다른 것으 로 돌렸다.
“과연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안쓰러운 목소리로 나예린이 물었다. 그녀의 걱정을 받을 수 있다니 주작단원들은 운이 좋은 녀석들이었다. 지금 비류연과 나예린 두 사람 쪽을 향해 맹렬히 달려 오는 것은 한 무리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먼지구름은 일선과 이선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처음 16명으로 시작했던 이것은 사람이 한 명씩 늘어 지금은 거의 30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능숙한 자와 미숙한 자의 속도 차이가 나다보니 두 무리로 나뉘어 진
것이다. 이들 선두 무리는 20명이었고 그들 중 16명은 주작단원들이었다. 이제는 달리는데 이골이 난 그들이었다.
선두 무리에 속한 이들이 군마처럼 두 사람의 앞을 쏜살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거대한 바람 덩어리가 질풍을 일으키며 두 사람을 스쳐지나갔다.
일등은 남궁상이었다. 그는 주작단 단주의 체면을 지켰다. 요즘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남궁상이었다. 본인은 별로 자각하고 있지 못 한 듯하지만.
“헉헉헉!”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도착한 남궁상은 숨을 몰아쉬면서 다급하게 향로를 바라보았다.
‘서, 성공인가?’
남궁상뿐만 아니라 뒤이어 달려 들어온 수십 개의 시선이 향대를 향했다. 향은 아직도 자신을 불사르며 잘 타고 있었다.
남은 향은 하나, 둘, 그리고 반이었다.
“우와아아아! ”
함성이 터져 나왔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들은 드디어 자신과 자연과 염도의 심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감격 때문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만큼 염도의 수련은 힘들었던 것이다.
“흐흠…….”
염도는 피로와 기쁨과 환희로 뒤범벅이 된 채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제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볼 살이 실룩거리고 있었다. 기쁨을 억지로 자제하고 있 는 것일까? 향대와 제자들을 번갈아 바라본 염도는 마음과는 달리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제야 좀 빨라졌구나. 이제 겨우 굼벵이는 탈피한 것 같다.”
매몰찬 한마디였다. 갑자기 주위가 찬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하지만 칭찬해 주마. 잘했다!”
이 칭찬 한마디가 그렇게 힘든 것일까? 그는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더 이상 바라보고 있다가는 주책없이 대소를 터뜨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와아아! 해냈어! 우린 해냈다고!”
주작단원들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자축했다. 이제 다시는 심장이 터질 만큼 뜀박질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향대 3개가 채 타기도 전에 저 멀리 있는 산의 정산 까지 왕복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화산까지 가는 동안 이들은 멀리서 산이 보일 때마다 계속해서 뛰어야 했다. 체력 경공 강화와 내공 증진이 그 이유였다. 염도가 선택한 산 중 그 어느 것도 쉬운 것 은 없었다. 그동안 계속해서 실패의 연속이었다. 정상까지 올라갈 때 힘을 너무 소진하는 바람에 돌아오는 힘이 모자랐던 것이다. 그러나 포기는 허락되지 않았다. 도전은 계속되었다. 그러고 그들은 끝내 성공했다.
주작단원들이 피만 안 튀었지 살벌했던 전투에서 승리하고 승전가를 높이 부르며 즐거워하고 있을 때, 살며시 일어나 숲 저쪽으로 사라지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 나 아무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그가 사라진 사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 저 녀석 어디 가는 거지?’
비류연의 눈은 그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바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겁쟁이라고 놀림받고 있는 윤준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