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1권 4화 – 단련시키는 자와 단련 받는 자

비뢰도 11권 4화 – 단련시키는 자와 단련 받는 자

단련시키는 자와 단련 받는 자

향은 타들어간다

땀이 장마철의 비처럼 대지를 흥건히 적셨다.

몸 안의 수분이 모두 땀으로 화해 체외로 배출되는 느낌이었다.

“허억허억허억!’

“헤엑, 헤엑, 헤엑!

“끄윽, 끄윽, 끄윽!”

“무울…….”

타는 듯한 갈증에 입안은 화상이라도 입은 듯 뜨거웠다.

“쯧쯧! “

염도는 못마땅한 얼굴로 대표단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게 걷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경공을 운용한 상태라 일반인의 걸음보다 다섯 배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런 빠른 행보도 염도는 심드렁하기만 했다. 그의 눈에는 이들이 대열을 갖추어 걸어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느껴졌던 것이다.

‘아장아장!’

염도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내가 왜 이런 풋내기들을 데리고 이 고생을 해야만 하는 거지? 스스로 화를 불러들일 필요는 없는 것을,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이 있어 이런 업보를 받는단 말인 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들은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빠르게 걸음을 움직였다. 물론 염도에 게는 이렇게 느껴졌다.

‘삐약 삐약!’

그들이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일 장씩 쭉쭉 거리가 늘어났다. 경신보(輕身步)라 불리는 경신법의 일종이었다. 뛰지 않은 채 최소한의 내공으로 빠른 속도로 걸 어가듯 움직이는 경공으로 내공 소모가 적고 장시간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장거리 도보 여행에 매우 유용했다. 이들이 표현의 선택상 걷는다’를 택했지만, 이 들의 움직임은 웬만한 일반 사람들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보다 빨랐다.

그리고 얼마 후 약속된 휴식 시간이 되었다. 이런 긴 여행에는 일정한 휴식 또한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이 달콤한 휴식 시간에도 휴식을 허락받지 못하고 악의 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은밀한 대화 하나가 있었다. 짧은 대화였다.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세요. 믿고 있겠습니다.”

“심려 마십시오. 확실히 정신 재무장을 시키겠습니다.”

비류연이 말하고 염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류연은 원한과 분노를 쉽게 잊어버리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비류연과 부대껴온 염도는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숙지하고 있었다. 염도는 비류연이 불의의 사고로 환마동 안에 매몰되어 있는 동안 자신이 주작단보다 ᅳ 주작단은 삽질이라도 했지만ᅳ한 일이 쥐뿔만큼도 없다는 것과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 실을 이 어린 사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그는 자신의 몫까지 합쳐서 주작단을 열렬히 들볶기로 결심했다.

비류연의 시선을 그곳에 붙잡아두기 위해서.

“주작단 집합!”

염도의 구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돌풍이 일어나며 염도의 앞으로 주작단이 몰려들었다. 그들에게 어영부영 굼뜬 동작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런 굼뜸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미 충분히 경험한 상태였다.

“기준! “

남궁상이 손을 들어 기준을 잡았다.

“하나, 둘, 셋, 넷, … 열여섯. 번호 끝! 만!

일렬로 선 주작단들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번호를 붙였다. 끝나는 번호는 열여섯. 낙오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총원 16, 현 16, 사고 무, 주작단 집합 끝!”

일단은 주작단 단주(團主)를 명목상으로나마 달고 있는 남궁상이 보고를 마쳤다.

16명! 이 숫자는 주작단의 정원에서 단 한 명도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놀랍게도 주작단은 다른 사신단이 무수한 탈락자와 부상자를 내는데도 불구하고 전 원 합격이라는 놀라운 쾌거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염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유희(遊戱)를 시작하자!”

그 말을 시작으로 주작단은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져버렸다.

“헉헉헉!

“헥헥헥!”

“끄윽, 끄윽, 끄윽!”

흘러내린 땀이 장마철의 비처럼 대지를 흥건히 적셨다. 몸속의 수분이 전부 체외로 배출되는 기분이었다. 불같은 여름은 지나갔지만 아직도 붉게 타오르는 뜨거운 태양의 불꽃은 힘을 잃고 있지 않았다. 아직도 그 난폭자는 건재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자신이 내뿜는 폭염의 뜨거움을 과시하고 있었다. 공기가 죽처럼 걸쭉하게 느껴졌다.

그 작열하는 태양 밑에서 16명의 주작단원들은 전력을 다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리 내공이 강한 그들도 염도의 혹독한 단련 앞에서는 그 쌓아놨던 내공도 단련해 놨던 신체도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가을의 초입임에도 불구하고 태양은 이글거리고, 이글거리는 태양에 달구어진 공기는 숨쉬기조차 곤란할 정도로 후덥지근했다.

그러나 염도는 가차없었다.

이 정도 날씨조차 극복하지 못한대서야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적어도 도검불침(刀劍不侵)은 되지 못해도, 수화불침(水火不侵)의 경지에는 못 미치더라도, 피서피한(避署避寒)이 가능한 한서불침(寒暑不侵)의 경지 정도는 도달해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염도가 생각하는 무인의 기본이니깐.

후두두둑!

다수의 물방울이 대지를 때리는 소리. 그러나 그것은 비 내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발밑을 자신보다 대여섯 배는 더 큰 먹이를 인 채 한 줄로 걸어가 고 있던 개미들은 분명 비가 내린다고 느꼈을 것이고 이 부지런한 생물들에게 그것은 무척이나 커다란 재앙이었을 것이다.

“헥헥헥, 비라도 오나? 제에기이일…….”

노학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오긴 개뿔이 오겠는가!

그러나 그는 갑자기 날씨를 확인해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냐하면 빗속을 하루 종일 거닌 것처럼 몸이 온통 흠뻑 젖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폭우 속을 미친 듯 이 뛰어다닌 게 아닌가, 착각될 정도로 땀을 흘리는 이유는 간단하고도 단순무식했다.

그들은 벌써 한 시진째 소위 말하는 단련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주재자는 바로 염도였다. 그는 정신 강화와 체력 단련을 핑계로 이 고귀한 작업을 수행중이었 다.

이 한 시진은 날고 기는 그들로서도 견디기 힘든 지옥이었다. 염도는 계속해서 길을 떠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빙검도 미리 언질이 있었던 듯 이 일에 대해 가 타부타 참견을 하지 않았다.

염도의 유희는 아직 그 끝을 고하지 않고 있었다.

“일어나! 앉아! 일어나! 앉아!”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염도의 구령에 맞춰 주작단원들은 재빨리 몸을 뒤집어야 했다. 조금의 굼뜸도 여기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엎드려 뻗쳐!”

일반 사람들의 엎드려뻗쳐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들은 한 손의 검지손가락만으로 온몸의 체중을 지탱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안쓰러운 시선들이 그들에게 꽂혔 다. 이것은 주작단을 제외한 다른 대표단들이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한 유형의 무식한 단련이었다.

“자! 하나에 정신, 둘에 통일! “

염도가 다시 구령을 붙였다.

“하나!”

“저어엉이인!

그들의 몸이 지면에 닿을락 말락 내려갔다.

“두울!

“토오오옹이이일!”

그들의 몸이 다시 위로 올라왔다.

“아침밥 안 먹었습니까? 점심 먹기 싫습니까?”

아무래도 염도는 복창 소리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하나에 사부, 둘에 창천, 하나!”

“사아부우!”

그들의 몸이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둘!”

“차앙처어언!”

그들의 몸이 다시 올라왔다.

“하나!

“사아부우!”

다시 그들의 몸이 내려갔다. 지면과 배 사이는 손톱 하나 정도의 틈새밖에는 없었다. 주작단원들의 손가락이 과중한 부하에 부르르 떨렸다.

“그 상태 그대로 유지(維持)!”

그때 피도 눈물도 없는 염도의 구령이 떨어졌다. 순간 주작단원들은 복창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장난합니까? 정신이 나갔습니까? 정신을 어디다 두는 겁니까? 복창은 잊어버렸습니까? 유지!

“유우지이…….”

그 복창은 울먹임에 가까웠다. 지면과 아슬아슬한 접촉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그들은 자세 유지에 들어갔다.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땅을 적셨다. 내공 사 용이 허락되어 있지 않은 까닭에 그들은 지금 죽을 만큼 힘들었다.

“내가 40년간 강호를 떠돌며 터득한 유일한 진리는 죽은 후에 후회해도 아무짝에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알겠냐? 이 병아리들아! 아직 알껍데기도 제대로 깨지 못한 주제에 건방떨지 마라. 그래 봤자 너희들은 실전 경험이 거의 전무한 애송이들일 뿐이야! 비무와 실전은 엄연히 틀리다! 그러니 너희들의 생존을 바라는 이 몸 의 깊은 하해와 같은 뜻을 잘 새겨듣거라!”

구실이긴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강호는 전쟁터다! 고로 우리가 가야 하는 화산 또한 그중 하나에 속하는 전장이지. 화산지회는 전투다. 너희들은 전투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어떻게 이기냐 고? 좋은 질문이다. 간단하다. 강해지면 이길 수 있다. 고로 내가 너희들을 강하게 만들어주마, 모두 기상! 오(伍)와 열(列)을 맞춘다. 실시! “

염도의 힘찬 구령과 함께 검지 하나만으로 엎드려뻗쳐 있던 주작단원들은 일사분란하게 번개처럼 벌떡 일어나 옆줄과 앞줄을 칼같이 맞추었다. 만약 줄이 조금이 라도 어긋나면 트집의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살벌한 표정으로 호령하던 염도는 주작단원들이 칼같이 오와 열을 맞추자 잠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얘들아!”

염도가 자상한 목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예! 노사님!

열여섯 주작단원들은 죽을 정도로 힘겨움에도 불구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만일 시원찮게 맥없이 대답했다가 요 앞전까지 했던 과정을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힘드냐?”

염도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물론 죽도록 힘듭니다. 보고도 모릅니까!’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하늘을 찌르는 주작단원들이었지만 그 후환이 두려워 진심을 토로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진 실에는 언제나 항상 비싼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주작단원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정말?’

“예! 괜찮습니다!

“정말, 진짜 말짱하다고?”

“네! 말짱합니다!

다시 한 번 힘 있는 목소리로 그들은 대답했다.

“그래? 그럼 그건 잘 차고 있겠지?

그들은 염도가 말한 그게 뭔지 잘 알고 있었다.

“네! 물론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손목과 발목에 차여 있는 묵환에 대한 이야기였다. 염도는 비류연에게 들어 이들이 손목과 발목에 무엇을 차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무겁냐?”

“아닙니다!”

“네!”

신의 농간이던가, 아니라고 맹렬히 부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작단원 중 누군가가 그렇다고 무심코 대답했다. 그리고는 금방 아차! 했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 다. 그 대답은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절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대답이었다.

“그으래? 아직도 무겁다고? 그럼 좀더 몸을 가볍게 만들어보자. 아직 시간은 많아.”

염도가 씨익 웃었다. 주작단원들은 염도의 웃음에 너무나도 불안했다. 그들은 지금 공포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제군들, 저기 저 산 보입니까?”

염도가 멀리 보이는 산 하나를 가리켰다. 주작단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매우 좋지 못했다. 지독한 불안과 공포가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대답이 없습니다! 다들 벙어립니까? 자, 저기 저 산이 보입니까?”

다시 한 번 염도가 큰 목소리로 물었다.

“네! 보입니다! “

우렁찬 대답이 터져 나왔다. 군기가 바짝 들은 목소리였다. 주작단은 염도의 검지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산을 바라보았다.

산은 상당히 높아 보였다.

“자, 이제 확인했습니까? 그럼 이제부터 경공 및 체력강화 훈련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럼 지금부터 향(香)을 피우겠습니다.”

염도가 휴대용 향로에 향을 꽂았다. 그 수는 모두 다섯 개였다. 설마 하던 혹시나가 현실로 나타나자 사람들은 기겁했다. 그들의 얼굴이 밀랍 인형처럼 창백해졌 다.

“혹시나 이중에 ‘보지도 않는데 저 높은 산, 끝까지 올라갈 필요가 있어? 올라가는 시늉만 하다가 되돌아오면 되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할 놈들이 있을지도 모른 다.”

순간 염도의 어투가 본래의 말투로 돌아왔다. 평소와 다른 말투로 들어온 터라 본래의 거친 말투는 더욱더 위압감이 느껴졌다. 노학을 비롯한 몇 명이 뜨끔한 표정 을 지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제군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 줄 수는 없다. 모두들 신호발신용 거울을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다들 하나씩 허리춤에 지참하고 있었다. 그것은 필수 지참물 중 하나였으니깐…….

“어디에 쓰라고 준 것 같나? 저 산에 올라가면 거울로 신호를 보내도록!”

실로 용의주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간에서 밍기적거리다가 돌아온 게 밝혀지면 그 사람은 내일 많은 산을 등반하는 훌륭한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도중 하산한 사람들에게는 내일의 또 다른 등반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산수풍경을 좋아한다면 그렇게 해도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말은 부드럽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의 협박성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염도는 말투도 행동도 평상시의 그와는 달랐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들 중 누구도 여행이나 피서나 풍류가 아닌 이유로 산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싶지는 않았다. 염도가 한다고 하면 정말 한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자! 꼴찌 하는 사람은 다시 한 번 갔다 옵니다. 실시!

“실시! “

너나 할 것 없이 주작단원들은 필생의 속도로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 뒤로 자욱한 먼지가 남았다.

우르르르!

전력을 다해 뜀박질한 그들이 돌아온 것은 향 세 개가 채 타지도 않았을 때였다. 향 다섯 개가 모두 타기 전에 주작단은 돌아온 것이다. 그들의 몸은 순간적인 공력 소모로 인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향 다섯 개가 모두 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 향은 아직 두 개씩이나 남아 있었다. 그들은 이 놀라운 성과에 염도의 칭찬을 기대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소원인지 깨달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라? 너네들 왜 벌써 오냐?”

염도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모두에게 물었다.

“벌써 오다뇨? 분명히 지정하신 산까지 다녀왔습니다. 신호도 확실히 보냈습니다만……?”

염도의 질문에 남궁상이 대표로 대꾸했다. 그러자 염도가 금세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엥?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언제 저 산이랬냐?’

“예? 아까 분명히……?”

남궁상은 염도의 부릅뜬 도끼눈에 말끝을 흐리고야 말았다. 계속 말을 이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 것만 같은 신변의 위협을 느꼈던 것이다.

“내가 언제? 너네 눈은 모두 해태눈이냐? 불량품이야? 내가 언제 저길 가리켰어? 다시 한 번 잘 봐! 이번 한 번뿐이야! 두 번은 없다!”

염도는 자신의 친절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다시 한 번 검지손가락을 뻗어 자신의 손방(巽方: 1~2시 방향)에 위치한 산을 가리켰다. 주작단원들의 시선이 그의 검 지손가락 끝에서 나온 보이지 않는 곧은 직선을 타고 저편의 공간까지 따라갔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에 연결된 보이지 않는 곧은 직선은 분명 그들이 열나게 뛰어갔 다 온 그 산 정상에 머물렀다.

“…..?”

틀린 게 없잖아? 그런데 왜 시비지?

이런 적나라한 생각은 주작단원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만 존재할 뿐 절대 밖으로 표출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염도도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했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야! 어딜 봅니까? 거기서 시선이 왜 멈춥니까?”

염도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시선이 너무 낮지 않습니까? 저것도 산입니까? 지금 뒷동산에 나들이 갑니까? 저 산 말고 저기 저 뒤에 있는 산입니다.”

염도가 짜증난다는 듯 분명히 목표를 말했다.

“……?”

염도의 말대로였다. 그들이 다녀온 산의 정상은 종착지가 아니라 중간 기착지였던 것이다. 무형의 직선은 아직도 뒤쪽 공간으로 더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시 선이 산 정상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 무형의 직선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갔다. 그들의 고개가 점점 더 위로 심하게 꺾였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그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눈알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애써 정복하고 온 산 뒤편 저쪽에 존재하는 두 배는 더 높을 것 같고, 세 배는 족히 더 험할 것 같은 산을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서…, 설마……? ”

남궁상의 입이 심하게 떨렸다.

“노…, 농담이시겠죠?”

“장난이시죠?”

“에이, 농담이라고 해주세요. ”

남궁상을 비롯한 주작단원들은 절망적인 심정이었다.

“내가 이런 걸로 지금 너네들이랑 한가하게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겠냐?”

주작단원들의 얼굴이 형이상학적인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염도는 농담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지금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불신의 눈으로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그 쳐다보기도 싫은 산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정말로… .?”

남궁상의 혀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염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작단원 모두 초상이라도 난 사람처럼 울상이 되었다. 주작단원 이외의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와 동정심을 감추지 않고서 주작단원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누구도 나서서 염도를 막으려 하지는 않았다. 그의 행동을 제지할 만한 명확한 명분이 없었던 것이 다. 스승이 제자를 단련시킨다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까스로 비켜 나간 이들은 이 불행의 주인공에 자신들이 당선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하늘에 깊이 감사했다. 그들 눈에 비친 주작단원들이 무척이나 애처로워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사했으므로 마음 놓고 주작단원들을 동정할 수 있었다.

“자자, 멍청히 서 있으면 산이 너희들한테 뛰어오냐? 빨리 출발!”

다시 한 번 염도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는 잔인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선착순이다.”

선착순!

뒤처진 사람은 다시 한 번 더 저곳을 갔다 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과 동일한 말이었다. 선착순이라는 말에 그들은 다시 한 번 죽을힘을 다해 뛰 어야만 했다. 순식간에 16명의 인영은 지평선 저편의 작은 점으로 변해 있었다.

주작단의 불행을 지켜보는 대표단 사람들의 눈에는 염도가 귀신이나 도깨비처럼 보였다. 무서워서 소름이 오싹 돋을 지경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도 언제든 지 저런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들을 엄습했던 것이다. 다행히 염도와의 인연이 없어 지금은 뛰지 않아도 되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주작단을 향해 묵념하며 애도의 염을 표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하나 둘씩 산 정상에서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염도가 대표단 일행을 돌아보며 출발하라고 지시했다.

“선배들을 기다려야 하지 않습니까?””

효룡이 용기를 내어 물었다. 아직 그들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꽤나 필요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여기 죽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 오늘 여기서 노숙하고 싶냐? ”

“아…, 아닙니다.”

효룡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염도가 힐끔 그 산을 바라보더니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알아서들 쫓아오겠지, 출발!

염도의 명령은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

이들이 다시 일행에 합류한 때는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유시(酉時: 저녁 5시에서 7시경) 경이었다. 물론 새로 꽂은 향 다섯 개는 모두 타버리고 난 이 후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추가로 한 개의 향이 더 꽂혀 있었다. 다섯 개로는 시간 측정이 부족했던 것이다.

남궁상은 단원들 중에서 가장 먼저 도착함으로써 단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킬 수 있었다. 2위와 3위는 현운과 진령이었다. 노학은 아쉽게도 4위를 해 다시 한 번 산 을 정복하는 행운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차라리 배를 째라는 게 노학의 생각이었다.

아마 이들은 태어나서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렸을 것이다. 16명 모두 초죽음이 될 정도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선착순이라고는 했지만 두 번 뛸 기력은 없었다. 짧은 시간에 과다한 내공을 소진한 탓이었다. 평균적인 속도의 신법으로 산을 올랐다면 이 정도로 지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쟁이라는 마수가 그들 모두를 피로 의 구렁텅이 속에 빠뜨렸던 것이다. 16명 모두 완전 뻗어버리듯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기에 아무리 불같은 염도라 해도 다시 뛰어갔다 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 다.

“쯧쯧쯧, 겨우 그 정도 뛰었다고 이렇게 뻗냐?”

‘겨, 겨우라고! 저…, 저렇게 먼 거리가?’

무거운 침묵 속에서 염도의 목소리를 훔쳐 듣던 나머지 대표단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만일 염도의 화살이 혹시라도 자신들에게 향하기라도 한다면. 그들은 미리미리 유서를 써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고민에 빠져들고야 말았다.

“난 너희들을 이렇게 허약하게 단련시키지 않았다. 이렇게 나약해서야 어찌 이 험난한 강호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으며, 그 힘들다는 화산규약지회에서 상대의 코 를 납작하게 해주고 우승할 수 있겠느냐!”

염도의 말은 추상 같았다.

“오늘은 더 이상 나약한 너희들을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일 또다시 내게 실망을 준다면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만 해산!

염도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작단원들은 거품을 물며 쓰러지고 말았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주작단원들을 혀를 차며 지켜보고 있는 염도의 곁으로 비류연이 다가왔다. 그는 힐끗 향로에 꽂힌 향을 바라보며 조용히 한마디했다.

“너무 많군요. 3개로 줄이세요.”

염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지켜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대표단 몇몇에게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업어라!”

염도의 지시에 남녀 대표단 중 몇 명이 실신한 주작단원들을 업었다. 염도도 남궁상을 자기 등에 들쳐 업었다. 그의 등에 업힌 남궁상의 손이 축 늘어졌다. 염도의 눈에 묘한 빛이 감돌았다.

모자란 놈! 가자!”

염도의 명령에 대표단은 다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목표로 한 마을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