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2권 16화 – 화산지회 안목품평회

비뢰도 12권 16화 – 화산지회 안목품평회

화산지회 안목품평회

행동력이 빼어난 건 돈 냄새를 잘 맡은 것인지, 아니면 호기심 때문인지 무림최고의 행사인 화산지회가 열릴 봉우리 앞은 벌써부터 벌떼처럼 모여든 인파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다가 나타났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특히 시진의 가장 큰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차림들을 하고, 복작복작 거리며 몰려 있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그곳은 시끌벅적 했다.

예로부터 인간이란 족속은 두 명 이상 모이면 입을 쉬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니 한두 명도 아니고 셀 수 없을 정도의 인간들이 모였으니 자 연히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지 않다면 그것은 활기 찬 것이 될 것이나, 조금 더 시끄러워진다면 소음덩어리가 되고 말 것이다.

특히 광장 동쪽이 집중적으로 소란스러웠다. 군중들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그곳은 소음과 잡음, 시끌벅적한 말소리로 어지러울 정도로 요란스럽기 짝이 없었 다. 무엇이 이 많은 사람들을 이토록 끌어들이는가?

비류연은 자연스레 솟구치는 호기심을 감출 필요성을 별달리 느끼지 못한 관계로 서슴없이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자 일행들이 그 뒤를 따라왔다. 그들 역 시 호기심이 일기는 마찬가지였다.

“자, 거십시오. 거세요. 맞으면 천국, 틀리면 지옥! 당신의 운을 한 번 시험해 보는 겁니다.”

사회자 한 명이 미리 만들어 놓은 단상 위에서 목청을 한껏 돋워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의 한 손에는 여러 뭉치의 종이 쪼가리가 들려 있었다. 천무학관에서 천무쌍귀영이 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대규모 안목품평회(眼目品評會)였다.

이곳에 밀집한 수많은 군중들이 한눈에 확인하기 용이할 정도로 흑판은 거대했다. 정면에서 보기에 오른쪽은 천무학관, 왼쪽은 마천각 진영인 듯 했다. 그리고 위 에서부터 몇몇 이름들이 적혀있었다. 물론 빈곳도 당연히 있었다. 그러나 이 빈곳들도 곧 채워질 것이다. 현재 몇몇 곳을 제외한 나머지 곳들이 비어 있는 것은 아직 까지 정확히 누가 출전할지 정확한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여기에 이름이 올려져 있는 이들은 이번 화산지회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유명인들이었다. 그들의 출전은 도박사들에게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빠지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현재 단 위에 올려진 이름의 소유자들은 그만큼의 쟁쟁한 명성을 이미 강호에 뿌려두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름들 옆에는 각각 숫자로 배당이 적혀있었다.

용천명, 마하령, 청흔, 신유성 그리고 모용휘 등의 이름이 이미 올려져 있었다. 가장 젊은 나이임에도 쟁쟁한 이름의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 과연 칠절신 검 모용휘라 할만했다.

그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차지하고 있는 이는 과거의 전적 때문인지 취영검 신유성이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현재 그의 지지율이 앞서 있었다. 그 뒤를 바짝 추격하 고 있는 이는 용천명이었다.

잠시 천무학관 쪽을 살펴보던 비류연이 왼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천각 측에도 몇 개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비류연은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흑판에 올려 진 여러 개의 이름 중 가장 많은 지지율(당연히 배당은 낮았다)을 받고 있는 이름으로 자연 시선이 흘러갔다. 그 이름은 바로 오비완(吳碑腕)이었다.

“오비완? 저 사람이 누구야?”

“아니, 자네 철완도(鐵腕刀) 오비완도 모른다 말인가?”

장홍이 놀라서 되물었다.

“응, 몰라.”

맥이 빠질 정도로 너무나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마천각 출신의 이십대 젊은 층에서 가장 유명한 도객이라네. 특히 그 완력은 굵직한 철봉을 한여름 더위에 늘어진 엿가락처럼 장난스럽게 다룰 정도로 엄청나다 고 전해지지. 그 힘이 얼마나 강하면 손아귀가 찢어지고 싶다거나 자기 칼에 맞아 죽고 싶지 않으면 오비완의 일도를 정면에서 받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말라! ‘라는 말까지 전해지겠나. 아직 나이가 삼십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 명성을 강호에 떨친 게 벌써 10년도 전이라네. 그리고 전번 화산규약지회 4강이기도 하지.” 

즉, 그만큼 우승 확률이 높다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밑을 ‘안낙긴(安落緊)’, ‘지두(斗)’ 등의 이름이 있었다. 물론 비류연으로서는 당연히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으나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장홍이 한숨을 내쉬며 저기 저 안낙긴이 지금 강호에서 절풍검(切風劍)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유명한 젊은 검객이라고 부연 설명해 주었다. 그에게 걸린 돈 도 상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위로는 한 명이 더 있었다. 그곳에는 ‘비(飛)’라고 단 한자만 적혀있을 뿐이었다.

‘누굴까?’

약간의 호기심이 일었지만, 계속 생각하기를 그만 두었다. 잠시 지켜보던 비류연은 한쪽에 있는 접수원에게로 다가가 조용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소곤거렸다. 그리 고는 가죽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그 안을 확인해 본 접수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접수원은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주머니 안과 비류연을 번갈아 확인하 더니 부랴부랴 무엇인가를 써서 비류연에게로 건네 주었다. 그리고는 진행자 중 한 사람을 급히 불렀다. 접수원의 말을 전해 들은 진행자도 표정을 보니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놀란 모양이었다.

비류연은 접수원으로부터 받은 종이를 품안에 갈무리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왔다.

“방금 그게 뭐였죠?”

자신의 곁으로 다가와 묻는 나예린의 질문에 비류연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일종의 선행 투자죠.”

이윽고 진행자 중 한 명이 백묵으로 배당판 오른쪽 천무학관 측 빈 공간에 비류연이란 이름 석자를 적어 넣었다. 그리고 그 옆에 적힌 숫자는 놀랄 만한 것이었다. 웅성거림이 파문이 되어 군중 전체에게 퍼져 나갔다. 비류연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비류연이 노인을 만난 것은 만남이란 인연이 늘 그렇듯 우연이었다. 적어도 비류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만큼 이 노인과의 만남은 별다르지 않고 지극히 평범했 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마주친 것과 진배없으니 거기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이 노인도 안목품평회에서 자신의 행운을 시험해 보러 온 모양이었다.

“이보게, 통 큰 젊은이!”

먼저 말을 건 것은 노인 쪽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절 부르셨나요?”

빙그레 웃으며 비류연이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무척이나 평범해 보이는 노인이 한 명 서 있었다. 노인의 머리카락과 짧지 않은 수염은 새벽녘의 미명(未明)처럼 회색빛이었고, 키는 크지 않았으며 체구는 왜소했다. 그리고 작은 몸 위에 걸친 옷은 머리카락 색과 비슷한 빛바랜 잿빛 장삼이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이름모를 나 무로 깎아 만든 작은 지팡이가 들려있었다.

일견 평범해 보이면서도 왠지 평범해 보이지 않는 노인이었는데, 쉽게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눈을 지니고 있었다. 그림자 진 눈가에 자리한 두 개의 검은 눈동자 는 오랜 세월의 지혜가 담겨 있는 듯 도저히 그 깊이를 측량할 수가 없었다.

인간의 금전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이 꿈틀대는 이곳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노인이었다.

“젊은이, 아까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네만 자네는 특이한 사람에게 돈을 걸더군 그래.”

노인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특이하다고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노부는 여기서 오랫동안 저 배당판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직 한번도 비류연’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돈을 거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네. 하긴 조금 전 그 이름이 올랐으니 아마 자네가 최초이겠지. 그리고 아마 최후일 거라고 생각하네. 노부는 꽤 귀가 밝다고 나름대로 자부하는 편이네만 그런 명성을 지닌 후기 지수는 들어본 적이 없는 듯 하네. 지금이라도 바꾸는 게 어떻겠나? 아직 결정을 번복할 기회가 있다네.”

노인이 진정으로 충고하자 비류연이 웃으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가장 큰 배당을 받고 싶지 않나요?”

“무슨 좋은 종마라도 알고 있나?”

노인도 비류연의 말에 흥미가 동하는 모양이었다.

“종마라뇨?”

“허허허. 아, 미안하네! 노부가 잠시 착각을 했군그래. 자네는 가장 우승 확률이 높은 사람을 알고 있나?

“당연한 걸 물으시네요. 질 것 같았으면 저 이름에 승부를 걸었을 리가 없잖아요? 할아버지도 저 사람에 걸면 절대 돈 잃는 염려는 없을 거예요.”

그리고는 서슴없이 자신의 이름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 도대체 누군가? 노부도 여기저기서 강호의 흘러가는 소문을 들을 만큼 들었다고 자부하는 처지네만 저런 인재가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은 적이 없었다네!”

“현인은 언제나 은인자중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지요.”

비류연의 고아한 대답에 독고령은 기가 차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태연하게 자신을 저렇게까지 높일 수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일말의 경외감마저 느꼈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서 노력한다면 곧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 검지로는 땅을 가리킨 다음 큰 목소리로 ‘천상천하(天上天下)유아독존(唯我獨尊)’이 라고 외칠 것만 같았다. 물론 부처님께는 미안한 노릇이었지만 비류연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나예린은 별 말 없이 그저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역시 함께 오는 게 아니었어!’

독고령은 어찌어찌 하다 동행을 허락한 나예린의 판단을 그때 극구 말리지 않은 자신을 책망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저 현인이 누군지 잘 안단 말인가?”

노인은 호기심이 동하는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비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이 세상에서 저보다 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러시겠지.”

독고령은 냉소적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건 어째서인가?”

“그건 바로 저 사람이 바로 저이기 때문이죠.”

그리고는 싱긋 웃었다. 비류연의 말에 노인은 허리를 접고 심장에 안 좋을 정도로 크게 홍소를 터트렸다.

“으하하하하! 거참 재미있는 친구로군. 자신에 대해 그렇게 금칠을 하며 말하고도 부끄럽지 않나?”

비류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진실을 말하는데 부끄러울 것은 없죠!

그와 동행중인 남궁상과 장홍은 창천을 우러러보며 ‘하늘이 왜 안 무너지지?’, ‘왜 벼락이 안 떨어질까?’라는 의미가 담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하늘은 서럽도록 맑고 푸르렀다.

“재미있는 친구로군, 정말로 재미있어. 그래, 그 현인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무르고 계시나?”

“매화객잔이란 곳에 머무르고 있죠.”

“그런가? 좋은 곳에 머무르고 있군 그래. 오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 것 같은데 술이나 한 잔 하지 않겠나?”

“좋지요. 술값을 노인장께서 내신다면 절대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비류연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답지 않은 사교성이었다.

“하하하, 끝까지 재미있는 친구로군. 물론일세! 숨어 지내는 현인을 만난 기념으로 이 늙은이가 한 잔 사도록 하겠네.”

노인의 말 중 비꼬는 기색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노인은 지금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쪽 녹색 옷을 입은 친구는 왜 저렇게 말이 없나? 평소에도 저런가?”

노인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효룡이 서 있었다. 이미 이진설이 깨끗이 빨아놨기에 그가 걸친 연녹색 무복에 점점이 묻어있던 혈흔은 흔 적도 없이 지워진 이후였다.

장홍이 대신 대답했다.

“아닙니다. 예전에는 쾌활한 친구였는데 얼마 전에 사고를 당해서 그 후로 말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노인의 눈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한 젊은이의 불행이 안쓰러웠던 것일까?

“그래? 나을 수는 있는 건가?

“예! 무서운 검기에 의해 정신이 충격을 받아 잠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뿐입니다. 곧 괜찮아질 겁니다. 여기 있는 이 소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몸 을 날렸으니 그 용기는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지요. 그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홍이 효룡의 옆에서 그를 부축하며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있는 이진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진설은 또다시 그때 그 일이 생각나자 가슴이 뭉클해지고 코끝이 찡해졌다. 벌써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금세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지금 그녀의 바람은 한시라도 빨리 효룡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 오직 그것뿐이었다. “호오? 이 소녀를 말인가?”

노인의 부드러운 시선이 이진설을 향했다.

“네, 그렇습니다.”

“사내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군. 그의 아버지도 절대 그 일에 대해 나무라지 않고 그를 자랑스러워 할 걸세.”

“물론이지요. 게다가 곧 가뿐하게 회복될 겁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효룡의 전신을 위에서 아래까지 샅샅이 훑어본 노인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렇고 말고! 그건 그렇고 무척이나 잘 생긴 건장한 청년이로군. 꾸며 놓으면 훨씬 더 훤칠하겠네 그려. 작은 아가씨, 이 젊은 친구는 곧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 올 테니 너무 심려하지 말게나. 이 정도 고난에 쓰러질 관상이 아닐세! 암 아니고, 말고!

노인의 따뜻한 말에 이진설이 효룡의 손을 꼭 움켜잡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노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서렸다.

“자, 그럼 가세나! 오늘 밤은 잠을 잊고, 달과 별을 벗 삼아 진탕 마셔 보세나!

젊은이가 무색할 정도로 호기롭게 외친 노인은 비류연의 대답도 듣기 전에 지팡이를 짚고 인파 속을 헤치며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거절하기도 난처한 데다가 공짜 술을 대접해 주겠다는데 거절할 비류연도 아니었다.

“그럼 놓치기 전에 어서 가죠.”

그리고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이들도 이에 따랐다. 어느 새 일행을 이끌고 있는 비류연이었다.

남궁상이 비류연에게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특이하군요. 항상 사람을 내리 깔아 보던 대사형이…, 아무리 노인이라지만 저렇게 공손하게 대하다니?”

저 정도가 공손이라면 할 말 없지만 남궁상으로서는 그것마저도 무척이나 생경한 경험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무 정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남궁상이었다.

“저 노인이 그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넌 정말 모르겠냐? 저 나이든 노인의 껍질 안에 숨겨진 강력한 힘을? 저런 놀라운 인물이 왜 이런 곳에 있는 걸까.. .? 그것도 자신을 숨긴 채? 저 노인은 아마 내가 강호에 나온 이래 만난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일거야!”

비류연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진면목을 숨기려 해도 그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하지만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해서는 비류연으로서도 풀리지 않 는 수수께끼였다. 남궁상은 비류연이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숨김없이 감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글쎄요? 진짜 그렇게 놀라운 인물인가요? 제가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노인네 같은 데요.”

딱!

“악!”

남궁상의 이마에 알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작열했다. 비류연이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쯧쯧, 궁상아! 궁상아! 언제철들래? 네 녀석이 저 노인의 진심 어린 일검을 일초만 막아낼 수 있어도 내가 너를 더 이상 궁상이라 부르지 않으마.”

남궁상의 눈이 놀랍다는 듯 휘둥그레졌다.

“히엑! 그…,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란 말입니까? 절대로 그렇게는 안 보이는 데요?”

대사형의 제안은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지만 그에게 그걸 실행할 만한 용기는 없었다.

“네가 언제부터 이 대사형의 말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느냐? 많이 컸다.”

비류연이 다시 한번 주먹을 치켜들자 남궁상은 조건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헉!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사색이 된 남궁상이 양손을 사래질 쳤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의심을 품을 수도 있는 거죠, 살다보면! ‘이라는 말은 무병장수를 위해 그냥 속으로 삼켰다. 그런 진실 은 이 세상에서 자신 혼자만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쯧쯧쯧, 믿음이 부족하구나. 믿음이 부족해! 아직 십년은 더 수련해야겠다.”

비류연은 한심하다는 투로 핀잔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남궁상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짜 아무리 뜯어봐도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

비류연이 말한 숨겨진 강함을 찾아보려고 아무리 눈을 부라려도 그런 낌새 따위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해! 빨리 안 오고? “

그 외침은 꽤 멀리서 들려왔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비류연 일행은 그를 홀로 시장 한복판에 방치해 둔 채 저 앞 쪽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남궁상은 부랴부 랴 그 뒤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