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13화 – 순풍산부이 나대이의 수난

비뢰도 2권 13화 – 순풍산부이 나대이의 수난

순풍산부이 나대이의 수난

경순이(輕順耳) 나중해. 나이 45세. 직업 정보 상인.

현 남창 지역 내 최대 사설 정보 매매 조직 순풍당(順風堂)의 주인이라는 거창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자이다.

순풍당이라 하면 철석같은 신용과 탁월한 정보력을 기반으로

용호(龍虎)가 길길이 날뛴다는 남창성 내에서도 꿋꿋이 터를 닦아 온 정보 매매 조직으로 그 규모는 남창성 내 제일이라고

공공연히 회자되어질 정도였다.

그 순풍당을 총괄하여 관리, 운영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눈 앞에 있는 인물 경순이(輕順耳) 나중해였다. 이런 그를 사람들은 보통 순풍산부이(順風産婦耳) 나대이 (那大耳)라 부른다.

원래 순풍이(順風耳)란 이런저런 소문들을 많이 주워듣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그런 순풍이를 여러 곳에 여러 개를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였다. 원래 그의 별호인 경순이는 고래(古來)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고사를 인용한 것으로, 공자님께서 나이 쉰에 남의 말을 가려 들을 수 있는 경지인 이순(耳順)에 들 어섰다는 이야기를 인용(引用), 이라기보다는 왜곡, 조작하여 만들어 붙인 것이었다.

그런데, 인위적인 조작이 가미된 별호답게 그의 경지 또한 한참 왜곡된 삐딱한 경지로서, 그는 남의 이야기를 모아 들었을 때 가려 듣기는 가려 듣지만, 나중해의 경우 돈이 되는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로 구분해 듣기 때문에 앞에 가벼울 경(輕) 자(字)가 하나 덧붙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는 별호에 어울릴 만큼이나 귀가 큰데, 그 크기가 삼국지의 유비 현덕이 형님으로 모실 정도로, 멀리서 보면 얼굴 양옆에 주머니 두 개를 차고 있는 듯한 우스꽝스런 형상이라 쌍낭이(雙囊耳)라고 우스개 소리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는 두 개의 주머니 귀라는 뜻을 지닌 쌍낭이(雙囊耳)라는 별명을 무지무 지 싫어해,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함부로 했다가는 발작으로 사지가 온전하기 힘들었다.

남창(南昌)은 무림 제일세(武林第一勢)라는 천무학관(天武學館)의 근원지이자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나중해 같은 중소 문파를 지닌 자는 천무학관의 위세 에 눌려 세력을 확장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고작해야 천무학관의 보좌 신세로 전락하기 십상인 것이다.

그래서 비록 한 조직을 이끄는 당주라 해도 영세 정보 상인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든 곳이 바로 이곳 남창이었다. 하지만 나중해는 그의 타고난 영리함과 재치를 기 반으로 남창 제일의 정보 조직이라는 명성을 획득함은 물론 천무학관 내(內)에도 일부 선을 대고 있는 실력자였다. 그런 만큼 그가 현재 다루고 있고, 또 장악하고 있는 정보의 양은 세인의 추측을 불허할 정도로 막대한 양이었다.

이처럼 남창 안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인 그였지만 지금 나중해는 자기 집무실 하석(下席)에서 극도 극진의 예(禮)를 갖춘 채 공손히 오체복지(五體伏地) 하고 있 었다. 안 그래도 길고 가늘어 전체적으로 얄팍한 인상을 풍기는 그의 얼굴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땀방울들이 송글송글 알알이 맺혀 있고, 길고 넓적한 복주머 니 같은 그의 귀는 힘없이 축 처져 있었다.

가늘고 뾰족한 코 밑에 나 있는 쥐꼬리 같은 수염을 비 맞은 생쥐의 꼬랑지처럼 파르르 떨고 있는 것이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었 다. 그의 정면에 위치한 상석(席: 평상시에 그가 집무를 보고 정보를 정리하고 수입을 결산하며 명령을 하달하던 바로 그 자리)에는 온몸이 붉은색 일색인 험상 궂은 인상의 중년인이 한껏 위엄 넘치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는데 적발, 적염, 적미의 강인하고 굳건한 외모와 오악의 장대함을 연상하게 하는 그의 풍채는, 보 는 사람을 질식시킬 듯한 엄청난 기도와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온몸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하나하나 강조해 가며 써 놓은 듯한 이 중년인은, 정보 업계에 종사하는 나중해로서는 도저히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 없는 사람, 바로 염도 곽영희였다. 아마 정보 업계 쪽에 종사하는 인물이 아닐지라도 이 구주 강호(九州江湖)에 몸을 담고 있는 자라면 결코 모를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이 염도 였다.

그런데 이채로운 점은 그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형편없는 사교성으로 말미암아 혼자 행동하길 좋아하는 염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리한 인 물이 한 명 있었다는 사실이다. 짙고 기다란 흑발에 앞머리가 눈 밑까지 내려와 얼굴 형태를 잘 분간할 수 없는, 나이 스무 살 정도의 괴청년이었다. 무시무시한 위 압감을 내뿜는 염도 바로 옆에, 왠지 왜소해 보이고 부스스해 보이는 애송이 청년 한 명이 그와 동등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비록 오체복지 하고는 있지 만 대가리 속에서는 돌아갈 것 다 쌩쌩 잘 돌아가고 있는 나중해로서는 믿기 힘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괴청년은 목숨이 서너 개 여분으로 준비되어 있는지 오른팔로는 턱을 괴고, 두 다리는 꼬고 앉은 아주 시건방진 자세였다. 그랬기에 경순이 나중해의 놀라움은 더욱 더 컸다.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눈깔이 냅다 튀어나오고, 심장이 터질 듯이 발랑발랑 거리며, 간은 확대 수축을 반복할 만큼 심하게 놀랐던 것이다.

‘심장에 털이 무성히 나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와 날 잡아 잡수, 하며 툭 튀어나왔나?”

천하의 염도 옆에서 예의(禮意)라고는 눈곱의 반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저 따위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있는 인물이 감히 있다고는 꿈에서조차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비굴하게 무릎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도 다 염도라는 이름과 그 존재가 주는 중압감과 명성 (?) 높은 성질 때문이 아닌가. 무림을 은밀히 떠도는 ‘불타는 개차반이라는 그의 비밀스런 별명은 괜히 붙여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불같은 성질로 유명한 염도 옆에서 저따위 자세로 앉아 있고도 생명 보존, 무사안일, 사지 멀쩡한 인물이 있다니 그에 대한 궁금증이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역시 직업은 속일 수 없는 것인가, 수백 수천 개의 의문 부호들이 상념의 바다 속에서 명멸하기를 반복했다. 뇌가 비비꼬여 엉킬 정도로 맹 렬히 회전하고, 사념이 뱀처럼 그의 뇌리 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정보를 뒤적거려 봐도 괴청년 같은 사람은 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렇듯 격렬하고도 정열적으로 머리 속을 굴리고 있을 때, 괴 청년의 입이 벌어지며 경순이 나중해의 사고 활동을 중지시켰다. 순간 그의 머리 속을 온통 헤집고 다니던 의문 부호들이 거짓말처럼 말끔히 사라졌다.

괴청년의 정체는 두말할 나위도 없는 자칭 염도의 사부 비류연이었다. 그런데 지금 비류연은 기분이 매우 안 좋은 상태인지 안면 부위에 온통 불만의 표식들을 대 롱대롱 매달고 있었다.

“끝났다구요?”

아까 그의 질문에 대해 나중해가 해 준 답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왠지 반응이 심상치 않은 듯했다. 나중해는 기분이 영 찜찜했다.

“예,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식은땀이 절로 그의 등줄기를 적시고 지나갔다. 일단 나중해는 공손히 대답했다. 정체 불명의 인물을 대하는 데 있어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건강(健康)과 장수에 나쁠 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에게 자중, 주의, 신중은 3대 필수 덕목이었다.

“분명히 내가 듣기로는 시험 일은 내일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 준비로 다들 시끌벅적 요란스러운 거 아니요? 그런데 벌써 끝났다니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냐 고요!”

집무실이 떠나가도록 핏대 세우며 고함을 지르는 비류연의 얼굴이 단숨에 팍팍 구겨졌다. 그의 현재 기분을 반영하는 하나의 징표였다. 그의 기분도 아마 지금쯤 그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팍팍 구겨지고, 그것도 모자라 비비꼬여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그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중해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예,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승천무제의 개최 일은 확실히 내일이 확실하나 참가 접수는 이미 한 달 전에 끝난 상태입니다. 어렵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천무학관 입관 시험(天學館入館試驗) 승천무제(昇天武祭)! 최고의 무도 수련 환경과 지위, 그리고 명예와 명성이 보장되는 천무학관에 입관할 사람을 뽑는 시험인 만큼 참 가 희망자는 부지기수. 그 많은 수의 신청자를 일일이 시험해 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만큼 참가 접수 후 한 달의 기한을 두고 일차로 일단의 덜 떨어진 무리들을 골라내는 것입니다. 논밭에서 잡초를 속아 내듯 말입니다. 때문에 이 한 달 동안의 서류 심사에서 떨어져 예선에조차도 참가 못하는 사 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나중해는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과 정보를 동원하여 머리 나쁜 놈일지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요약 정리하여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노력 을 알고 나 있는지 비류연에게 씨알도 안 먹혔다. 애초에 이야기를 듣고 이해할 생각도 없는 듯 보였다. 그의 부단한 노력이 말짱 헛수고임이 판명된 것이다. 정말 개 같은 성격이라고 나중해는 생각했다. 절대 겉으로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금일 정오, 경순이 나중해는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진 상을 앞에 두고 즐거운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막 식사를 들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요, 벌건 대낮에 당하는 봉변인가! 막 수저를 들어 한 입 뜨려던 찰나, 자신의 눈 앞에 멀쩡히 잘 서 있던 방문이 산산 조각나며 뻥 뚫린 출입구를 통해 두 명의 인영이 들어왔다. 그 중 한 명은 대가리 꼭대기에서부터 피를 동이 채 뒤집어쓴 듯 시뻘건 악귀 같은 형색과 타오르는 불꽃처럼 거칠고 무시무시한 기도로 보 아 하건데, 그동안 귀가 따갑게 들어오던 명성의 소유자 염도 곽영희가 확실했다.

반면 같이 쳐들어온 예의도 없는 방문자 나머지 한 명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스무 살 초반의 괴청년이었다. 이들이 너무 쉽게 순풍당(順風堂) 본관의 외부를 지키 던 여덟 명의 호위들을 땅바닥에 눕히고 그것도 모자라 간단히 열고 들어올 수 있는 멀쩡한 문짝을 거칠고 야만스럽게 때려부수고는 들어와 대뜸 한다는 이야기가 고작,

“어이, 이보세요. 천무학관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지요?” 였다.

그래서 나중해는 대답해 줬다. 사내가 배알도 없이 자신의 문파를 혼란에 빠트린 두 불청객에게 묻는다고 냅다 “아, 그건 이러 이렇습니다.”라며 대답해 줬냐고 욕 할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아마 많을 것이다. 명예로 사는 것이 강호의 생리가 아니던가. 하지만 불청객의 정체와 신분은 그의 저항을 넘어 소멸시킬 수 있는 존 재였기에 나중해는 대항을 너무나 간단히 포기했다. 문파의 명맥은 유지하고 먹고는 살아야 한다는 생존 의지 때문이었다. 나중해는 순순히 묻는 말에 대답해 줬다. “시험을 쳐서 합격하면 됩니다.”

이 한 마디로 인해 나중해는 하마터면 그날 관 치울 뻔했다. 아마도 분위기 파악을 지지리도 못한 것이 실패의 요인이 아닌가 싶다. 시퍼렇게 멍든 양쪽 눈두덩을 비비고 있는 나중해에게 비류연이 다시 물었다.

“시험을 쳐서 합격을 해? 그건 나도 알아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시험을 치기 위한 좀더 정확하고 상세하며 확실한 정보예요. 그 승천무제라는 시험에 참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리고 합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그 시험이 내일이라면서요? 내가 뭘 알아야 신청을 하고 시험을 보죠. 그래야, 합격을 해서 천무학관 에 들어가고!”

“저…….?”

뭔가 대답하기 곤혹스러운 점이라도 있는지 비류연의 질문에 나중해가 잠시 머뭇거렸다. 자꾸만 비류연의 질문을 회피하려는 듯이 보였다.

“저……. 다음이 뭡니까. 몰라요? 뜸들이지 말고 빨리 얘기해 봐요.”

머뭇거리는 나중해의 모습에 잠시도 참지 못하고 비류연이 반문했다. 여전히 그의 성질은 급했다.

“저… 그러니깐 승천무제에 참가하시려면 일, 일 년을 다시 기다리셔야 합니다.”

“뭐, 일 년? 내가 미쳤나요, 미쳤어요? 혹시 미친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니죠? 어떻게 일 년을 더 기다려요. 왜? 그 승천무젠가 승천문젠가 하는 시험은 분명 내일이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 그게 아뢰옵기 송구스럽사오나 비록 시험은 내일이지만, 참가 접수는 이미 한 달 전에 끝난 지 오래입니다.”

순간, 비류연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고, 멀뚱멀뚱 두 번 깜박인 다음 다시 작아졌다. 그리고는 다음 순서로 비류연의 안면 근육이 요상하게 꼬이더니, 휴지통 에 버려진 종이 쪼가리처럼 구겨졌다. 지금 본인은 기분이 아주 더럽고 아니꼽고 불쾌한 상태입니다, 라는 것을 전신(全身)으로 적나라(赤裸裸)하게 보여 줄 수 있 는 자세를 취하고는 잠시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것이 방금 전까지 일어났던 상황의 전말이었다. 그러다가, 비류연이 잠시 동안의 사늘한 침묵을 깨고 꼬여진 안면 근육을 억지로 풀고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물어 본 것이었다. 지금 현재 안면 근육이 다시 꼬일 대로 꼬인 채 인상 찌푸리고 앉아 있는 비류연의 옆에서 그동안 잠자코 앉아 있던 염도가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한마디 내뱉었다.

“그래서 할 수 없다는 건가?”

“…..”

나중해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머뭇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못 하나 보네요.”

화가 난 듯 싸늘한 안색이 순식간에 수상하기 작이 없는 미소로 돌변하며 비류연이 말했다.

“방법이 없다구요?”

“……”

비류연의 손가락이 붓 통에 꽂혀 있던 모필 하나를 불만 가득한 모습으로 만지작거렸다. 언뜻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나중해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문득 불 길한 징조를 느꼈다. 30년 이상을 갈고 닦아 온 정보 상인으로서의 날카로운 직감이었다.

“접수는 어제 끝났다구요?”

“…..”

여전히 묵묵부답, 여전히 나중해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인 채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 처량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정말 해결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 러니 비류연의 질문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도 지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이 정말 남창 제일의 사설 정보 매매 단체 순풍당의 당주가 맞기나 하는지 혹시 착각이 아니었는지 회의가 들 정도였다. 일이 이렇게 된다면 오늘 부로 순풍당의 간판이 내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지속적인 침묵은 비류연에게도 짜증이 치밀 어 오르게 했다. 그리고 드디어 일은 터졌다.

“쐐애액!”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과 함께 싸늘한 한기가 나중해의 커다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때 발생한 풍압에 의해 몇 올의 머리카락이 베어져 나가 공중에 하늘거리며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