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15화 – 나중해의 처절한 직업 정신
나중해의 처절한 직업 정신
나중해는 얼떨결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뒷골이 디잉 울렸다. 나중해는 눈을 부릅떴다. 분노가 일었다. 막 돌아가려던 두 사람의 모습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한 건 해결했다고 졸이던 마음을 놓았던 나중해의 가슴에
찬물을 끼얹는 질문이었다. 나중해는 울고 싶어졌다.
자신이 그동안 그렇게 나쁜 짓을 많이 했었던가?
하늘이 이처럼 큰 벌을 내릴 정도로? 하는 후회도 들었다.
“저기 그러니깐 말입니다. 그것이…….”
힘겹게 처리했다고 생각했던 반갑지 않은 애물단지들이 다시 눌러앉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나중해는 비류연의 질문에 당장 답해 주지 못했다. 지금 그의 머리 속 헝클어진 마음 하나 챙기기에도 벅찬 상황이었다. 그의 머리 속은 뒤죽박죽 얽히고 설킨 실타래처럼 풀어질 줄을 몰랐다. 그런 그에게 질문을 한다고 해서 올바 른 대답이 튀어나오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혹시 이 침묵을 동반한 우물쭈물은 아직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인가요?”
다분히 협박성이 가미된 싸늘한 목소리로 비류연이 말했다. 그가 오른 주먹을 말아 쥐었다 폈다 하는 모양새가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다. 쥐었다 펴졌다 하는 주먹 의 불길한 모습과 이때 나는 뚜두둑 관절 접히는 소리가 시각적으로도, 또 청각적으로도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런 협박이 효과 만점이었던 모양인지, 다시 정신을 수습한 나중해가 양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누굽니까? 정보 매매 인생 30년의 순풍산부이 나중해가 아닙니까. 그런 제가 그런 소소하고 미미한 문제 하나 해결할 수 없는 무능력자로 보 이십니까?”
순간 ‘응’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려던 비류연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나중해는 목청을 가다듬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타인을 설득시키 는 웅변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막 웅변을 토해 내려던 그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고 두 눈은 심상치 않은 빛으로 빤짝이며, 이상 기류가 그의 눈동자 깊 은 곳을 맴도는 것을 보니 나중해는 뭔가 다른 꿍꿍이를 품은 듯 했다.
“승천무제(昇天武祭), 이것은 한 수 한다는 무림의 영재들이 자신의 꿈을 비상시키기 위해 현 무림 최고의 무인 양성 기관인 천무학관에 입관하기 위한 자격 시험 입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이 시험에 참가하기 위해 참가하는 인원은 그야말로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하지만, 이 승천무제의 난이도는 너무나 높고 험해 이 벽(壁) 을 넘어 진정한 천무학관의 일원이 되는 자는 수천 수만의 무리 중에 겨우 오백여 명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 철의 장벽은 너무나 높고 단단하여 먼저 일차인 서류 전 형에서 떨어지는 사람만 해도 부지기수이고, 예선 일차와 이차 또한 그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수많은 참가자 중에서도 정작 본무대인 본선에 올라 만인이 보는 앞에서 기량과 재능을 뽐낼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나중해는 보란 듯이 진짜로 자신의 손가락을 꼽아 보였다. 그러면서 어느새 거칠어진 호흡을 다시 정갈하게 가다듬었다.
“이러한 승천무제인지라 그 규칙과 법규는 까다롭고 엄하기 그지없습니다. 태산처럼 굳건하기로 정평이 나 있지요. 그러니 참가 접수 일이 훨씬 지난 지금, 신청 을 하지 못하였다면 금번 승천무제에 참가할 방법은 솔직히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다 들어서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인데 왜 귀찮고 번거롭게 다시 장광설을 늘어놓는지 비류연은 의아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나중해는 이 부분을 한 음절 한 음절 끊어 가며 특히 강조하였다. 자신의 언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앞 부분은 단지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를 끌어오기 위한 단순한 서론에 불과했다. 지금부터가 바로 진짜 본론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천무학관에 들어가는 길이 모두 막힌 것은 아닙니다. 승천무제, 즉 승무제(昇武祭)를 통하지 않고도 천관(天館)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하나 있기 는 있습니다.”
“그래요?”
방법이 있다는 나중해의 말에 비류연의 눈이 흥미롭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상대의 흥미를 유발시켜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데 성공한 나중해가 계속 말 을 이어나갔다.
“아시다시피, 승무제는 일반인이나 강호의 모든 무인들이 누구나 공평하게 신청해서 자격과 능력을 시험을 받을 수 있는 일반 시험입니다. 하지만 이 승무제 말고 도 천관에는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사람에 의한 특별한 사람을 위한 특별 전형 시험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호오, 그게 뭡니까?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로군요.”
“예, 천무학관에서는 승무제 이외에도 입관생 정원의 일부를 특별한 재능을 가진 특기생, 소위 기재나 영재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고 있습니다. 그들의 재능과 능력에 어울리는 특혜를 주는 것이죠. 그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나중해는 처절한 직업 정신에 입각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일종의 추천 입학 제도라고 할 수 있는데 강호의 이름 있는 명문 정파의 장문인들과 강호 거대 세력의 주인들에게 그들이 직접 추천한 인재에 한해서 간단한 자격 여부 검사만으로 천무학관에 입관시키는 제도입니다. 이때 추천을 받은 인재의 출신과 문파는 따지지 않는다고 법규로는 문서화되어 있습니다. 이것 은 이 제도가 강호에 숨어 있는 특별한 인재를 출신과 신분에 관계없이 발굴한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본래의 취지는 모두 상실되어 버리 고, 지금은 거의 지켜지고 있지 않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어느 누가 자기 문파에 영광이 될 수 있는 천관도(天館徒 : 천무학관 입관생을 칭하는 말.) 배출의 영 예(令譽)를 거머쥘 기회를 희생해 버리겠습니까. 백이면 백, 자신의 문파와 세력에 소속된 제자들을 추천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규칙은 규칙이 니 분명히 천무학관 입관 제도 관련 법규(天武學館入館濟度關聯法規)에도 명확히 문서로 명시(明視)되어 있습니다. 즉 원칙상으로는 다른 문파의 장문인으로부터 추천 지명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허나 이것은 특별한 시험인 만큼 그 혜택에 반비례해 그 수는 엄격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천무학관에 의해 일류 문파라고 인정된 극소수의 문파와 세력에 한해서만 오직 한 명의 인물을 추천할 수 있는데, 거기에다 간단한 자격 심사라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아 천관에서는 추천자의 재능 과 능력이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된다면 임의로 언제든지 탈락시키고 있습니다. 옥석을 가리기 위해 추려 내고 또 추려 내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 문은 바늘구멍만큼 이나 좁은 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문파에서 그 자릴 양보하려 하겠습니까?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뭔가 노림수가 있다는 듯 나중해가 말끝을 흐리며 운을 띄웠다. 역시 비류연의 반응은 나중해가 기대하던 바 그대로였다. 이 단순하고 간단한 행동 반응이 비류연 의 특징이었다.
“그래요? 그렇다면 직접 찾아가서 평화적으로 담판을 지어야겠지요.”
나중해의 꾀에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 있는지 비류연은 생글생글 잘도 웃기만 했다.
“그럼 이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일류 문파는 어디죠? 물론 그 추천 자격권이란 것을 가지고 있는 문파말입니다. 멀리 가기는 귀찮고 경비도 많이 드니깐 거리 상 가장 가까운 곳이 좋겠군요.”
비류연은 이런 일에도 세심하게 사용 경비와 효율성 – 좀더 덜 귀찮아지기 위한 방법을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태도는 효율성을 높여 귀찮음을 덜고, 경비를 줄일 수만 있다면 그 문파의 세력이나 크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투였다. 나중해는 신이 나서 대답해 주었다.
“예, 그곳은 바로 남창성 내에 위치한 호아장이라는 무림 장원입니다. 그곳의 장주는 호아 맹검 호천상이라는 인물로 호아장은 그가 밑바닥에서 검 하나로 일으켜 세운 장원인데 그의 무위 하나만으로 강호 일류에 들어선 문파입니다. 그의 절기인 맹호비격검법(猛虎飛擊劒法) 26식은 그 위력이 강맹하고 변화가 무쌍하여 강호 내에서도 맞설 자가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거리는 요?”
“예, 남창성 내에 위치한 장원이니 걸어가셔도 두 시진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곳입니다.”
“그래요? 그럼 거기 위치나 알려주세요.”
나중해의 장황한 설명을 듣고도 비류연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 그곳의 위치말입니까? 설마…….”
말은 꼭 놀란 듯이 하면서 비류연의 행동을 제지할 것처럼 하고 있지만 나중해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설마는 무슨 설마. 빨리 이야기나 해 주세요.”
나중해는 내심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비류연은 단순 무식해서 너무나 쉽게 그가 쳐놓은 그물에 걸려든 것이다. 이제까지 나중해가 한 모든 언행(言行)들은 모두 지금 이 순간의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 안배해 놓았던 것이다. 비류연과 염도의 성격과 행동 유형을 분석하고 파악하여 이런 결과가 나오도록 교묘하게 유도한 것이 다. 그리고 안배한 대로 무사히 자신이 쳐놓은 그물에 비류연은 걸려들었다. 물론 덩달아 염도도 그의 그물에 걸려든 것이다.
나중해는 아직도 두 사람의 관계가 애매모호 하기는 했지만 그런 건 나중에 신경 쓰기로 했다. 어쨌든 한 통속인 건 확실하므로 그걸로 충분했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목전에 있었다.
“호아장)을 찾으시려면 남창성 북문 대로 쪽으로 가셔서 길을 가는 행인을 아무나 붙잡고 물어 보시면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그 근방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장원이니 어렵지 않게 간단히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그럼 우린 이만 가볼까, 수고했어요.”
“아니, 벌써 가시려고 하십니까?”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본심과는 정반대의 인사치레를 하는 나중해였다. 정말 이 무식한 것들이 사양이란 예의도 모르고 혹시나 다시 눌러앉아 정말 나중 에 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두 사람은 더 이상 눌러 앉으려 하지 않았다.
“그럼 수고하세요.”
먼저 이 말을 마친 비류연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옆에서 인상만 구긴 채 묵묵히 앉아 있던 염도가 따라 일어났고, 이내 두 사람은 방문을 열고 올 때와는 달리 조용 히 사라졌다. 떠나는 두 사람의 등을 바라보며 나중해가 소리쳤다.
“종종 필요하신 일이 있으시면 언제 어느 때라도 이 불초 소생을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이용 대기중이니 마음내키는 대로 이용해 주십시오.”
마음에는 떼다 만 눈곱의 반만큼도 없는 헛소리를 얼마나 큰소리로 질러 댔는지 온 방 안에 소리가 울려 퍼져 귀가 멍멍할 정도로 울릴 지경이었다. 입은 만악(萬 惡)의 근원이라는 잠언과 말이 씨가 된다는 선인들의 충고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입을 가볍게 놀리고 만 나중해였다.
두 사람은 마치 폭풍처럼 왔다가 재해의 현장만을 남긴 채 떠나갔다. 시야에서 둘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나중해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몸에 서 맥이 완전히 빠지는 것 같았다. 처음엔 창백할 정도로 싸늘하게 굳어 있던 안색이 점점 더 붉게 변하더니 하나 둘 핏대가 서기 시작하고 급기야 달구어진 무쇠처럼 빨개졌다.
당장이라도 이마에 솟은 핏대가 울화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 피를 내뿜을 것만 같은 괴기한 모습이었다. 빨개질 대로 빨개진 안색으로 나중해는 치밀어 오른 울화 를 연료 삼아 밖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동안 쌓였던 울분이 한꺼번에 소리의 파도가 되어 터져 나왔다.
“이 천벌을 받아 뒤질 놈의 새끼들아! 저주받아 마땅한 개자식들아! 네놈들은 반드시 하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두고 보아라, 두고 봐. 으하하…”
나중해는 한 조직을 책임지는 수장답지 않게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고, 글로 옮길 수도 없는 쌍욕들을 퍼부을 대로 퍼 분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고 가라앉았다. 게 다가 자신이 벌여 놓은 일을 생각하니 절로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돌연한 폭풍처럼 왔다가 재해의 현장만을 남긴 채 떠나간 가증스러운 두 놈의 새끼들.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두 놈을 향해 경순이 나중해가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염도가 무사부로서 천무학관에 들어가길 원한다면 그 조건으로 비류연의 특별 시험 자격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사부 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한 사람의 고수라도 아쉬운 천무학관 측으로서는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제의였다.
염도 정도의 큰 인물을 무사부로 얻는 데 그만한 대가는 너무나 미미한 대가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나중해는 이처럼 쉽고 간단한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비류연과 염도가 손 붙잡고 호아장을 찾아갈 필요가 전혀 없는 데도 말이다. 나중해는 일부러 이 사실을 숨기고 의도적으로 그 둘을 호 아장으로 보냈다. 사실 객관적으로 평가해 볼 때 호아장이 염도를 저지할 수 있을 확률은 전무하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남창 제일 무장원(南昌第一武莊園) 호아장(虎牙莊)!
물론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무(武)의 신전이라 할 수 있는 천무학관의 앞마당 터에서 당당히 간판 걸고 문파 행세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호아장의 잠재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도 남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호아장의 주인인 호아장주 호아맹검(虎牙猛劍) 호천상 때문이 아니었다.
‘맹호비격검법 26식(猛虎飛擊劒法 26式)’. 물론 위력적인 검법이기는 하지만 장주인 호천상이 이를 극성(極)까지 익혔다고는 해도 고작 그걸로 염도의 성명 절 기인 화령염천도세(火靈焰天刀勢) 진홍십칠염(眞紅十七炎)를 막을 수 있다고는 애당초 파다 만 코딱지만큼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염도는 그 자신의 개인 진신 진력 하나만으로도 강호의 일류 문파와 동등(同等), 또는 그 이상으로 평가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강호에 산재된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다루는 나중해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염도는 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 자격 평가 시에 성격이나 품성은 심사 기준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데 유념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염도와 덤으로 붙 어 있는 재수 없는 애송이를 처리하는 세력으로 호아장 하나만을 생각했다면, 나중해는 애초에 염도와 비류연을 그곳으로 유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해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호아장에는 의외의 변수라 할 수 있는 그 사람이 지금 머무르고 있었다. 지금의 호아장이 있도록 만든 실질적인 존재. 호아 장주 호아맹검(虎牙猛劍) 호천상의 사부 격인 존재가 있었다. 호아맹검 호천상에게 검(劍)의 진리를 전해 주고, 호아장이 남창성 내에서 자리잡고 행세할 수 있도록 해 준 존재. 바로 월광마저도 얼어붙게 만든다는 그의 한빙검(寒氷劍)이라면 염도를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 강호에서 오직 그만이 염도를 저지할 수 있다 해도 지나친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해는 이 놈들아, 혼 좀 놔 봐라!’라는 심정으로 염도와 버릇 없는 애송이를 호아장으로 유인한 것이었다. 염도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 천하 5대 도객(天下五大刀客)과 나란히 칭해지며, 강호 무림인의 칭송과 흠모를 동 시에 받고 있는 천하 5검수(天下五劍手)의 일인인 존재가 지금 그곳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생각하니 절로 흥이 돋고 기분이 들뜨는 것 같았다. 거친 파도 같던 마음도 금세 진정되었다. 염도는 아마 이번에 크게 낭패 한 번 당할 것이다. 나중해는 그렇 게 굳게 믿었다. 하지만 막상 두 놈을 호아장으로 보내 놓고 나니 기분이 파다 만 콧구멍처럼 영 찜찜하고, 왠지 모를 막연한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중 해는 하늘에 기도했다. 제발 그 둘이 떡이 되게 해 달라고 온 마음을 다 바쳐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의 기도를 하늘이 들어 줄지, 아니면 안 들어 주고 무정히도 내 팽개칠지는 오직 하늘이 정할 일이었지만…….
이때서야 비로소 나중해는 밖에서 안절부절 서성이고 있던 말단 제자 흑삼이를 불러 긴급히 해야 할 일을 지시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하고 시급을 요하는 일이었 다.
“흑삼아.”
“예, 당주님.”
“넌 지금 빨리 뛰어가서 왕(王)소금 한 가마니만 가져오너라!”
“예? 왕소금이요?”
그는 순간 나중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난데없이 웬 소금이란 말인가? 그것도 특히 왕(王)자를 특히 강조하면서 말이다.
“그래, 그것도 아주 굵은 걸로 말이다.”
흑삼은 말단 제자의 신분으로 현재 순풍당의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아무리 당주의 정신 상태의 정상 유무를 의심해 본다 해도 차마 입 밖에 낼 수 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시키는 대로 그저 행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중해는 일단 흑삼이에게 왕소금 한 가마를 가져오라 시켰지만 시키고 보니 좀 모자란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당한 일을 생각해 볼 땐 소금 한 가마 정도로 끝 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중해는 다시 밖을 향해 소리쳤다.
“흑삼아, 안 되겠다. 왕소금 한 가마니 더 가져오너라. 그리고, 도사님도 한 분 부르고. 오늘 액땜을 대판 해야겠다. 재수에 옴이 붙었어, 옴이. 그것도 아주 커다란 지랄 같은 옴이!”
경순이 나중해는 소금 한 가마니로 부족함을 느꼈는지 추가로 하나를 더 주문했다. 그리고는 구석구석 꼼꼼하게 손수 굵은 왕(王)소금을 뿌려 댔다. 그리고는 안 타까운 돈을 들여 유명한 도사(道士)도 한 명 불러 액땜을 하고 주문을 영창하며 사방 천지를 비싼 부적으로 도배했다.
하지만 소금을 가마채로 뿌려대고, 액땜을 하고, 부적을 붙였다 해서 걸어 다니는 재앙 덩어리라 할 수 있는 두 사람과 나중해의 악연이 이것으로 끝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