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16화 – 호아장 난입 사건
호아장 난입 사건
태양은 따사롭고, 바람은 잔잔하며 대기는 조용하다.
침묵하는 바람에 창공은 드높고,
드높은 푸른 하늘 가로지르는 구름의 흐름은 여유롭기 그지없다.
증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 날은 햇빛이 아주 따사로운 오후였다고.
그 날의 기상은 절기로는 겨울이되 겨울 같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봄날의 하루같이 맑고 청명한 날이었다고…….
소리 없이 내리 쪼이는 햇살이 따사로운, 여느 날과 마찬가지인 오후였다. 만약 그 일이 없었더라면 그냥 평화롭고 날씨 좋은 겨울의 한 오후로 기억되었을 것이 다. 하지만 그 날을 호아장 무인들에게 아주 특별한 날로 인식되도록 만든 사건이 두 사람의 방문으로 인해 일어났다. 어느 누구도 미처 예상치 못한 느닷없는 날벼 락이었다. 평화로운 오후의 명상을 깨는 초대받지 않은 방문객들. 바로 비류연과 염도였다. 비록 단 두 명에 불과한 수였지만 파생시킨 효과는 가히 재해 수준과 맞 먹었다.
두 사람의 방문으로 인하여 호아장 무인들은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지워지지 않는 패배감을 안게 되었고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악몽으로 선명한 화인(火印)처럼 깊이깊이 각인되었다.
“약속한 거예요.”
비류연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염도(焰刀)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서, 반말은 사절입니다. 지킬 건 지켜야죠.”
다시 무뚝뚝하게 염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류연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럼 가죠.”
비류연이 몸을 돌려 앞장서서 걸었고, 염도가 그 뒤를 말없이 따랐다. 그들이 가는 방향에는 호아장(虎牙莊)이라는 이름의 한 무림 장원이 위치하고 있었다.
호아장의 정문은 만인을 환영하려는 듯 활짝 열려 있어야 원래는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 했다. 단단하고 굳게 닫혀 있어 열릴 줄을 몰랐다. 원래 이쯤 되는 일류 문파라면 특별한 사정 – 여인들은 금지라던가, 봉문(封門)중이라던가, 아니면 특별한 의식 행사중이라던가, 비지(秘地)에 위치해 있다거나, 문규에 의해 속세와의 왕래가 엄금되어 있거나 하는 등등 이 있지 않는 한 하루의 해가 떠서 그 해가 서산 너머로 떨어져 질 때까지는 정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받는 것이 원칙이었다.
보통 정문을 지키는 두 명의 위사와 한 명의 지객 담당 제자가 있어 정문에서 손님을 맞아 방문첩에 이름을 기재한 다음 지객당이나 용무가 있는 장소로 안내를 하 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것이 강호의 법도였다. 때문에 호아장(虎牙莊)쯤 되는 일류 문파에서 한낮에 손님을 거절하는 경우는 있을 수가 없었다. 원칙상 체면 유지를 위해서라도 문파를 방문하는 손님이라면 그 손님이 비록 거지라도 거절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묵시된 법도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관례라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 무림의 현실이었다. 더럽고 번거로운 거지들까지 신경 쓰기가 꺼림칙했고, 또 그렇게 되면 손님 접대용 으로 나가는 엄청난 비용 지출을 견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초대받은 일부의 방문객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는 족족 모두 손님으로 받 아들여 접대를 했다가는 호아장의 재산은 순식간에 거덜나 버려 식솔들 모두 거리로 나앉기 쉬웠다. 그래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환영받지 못하고, 초대받은 손님 은 극진히 대접되었다. 관행상 이런 일들은 이제 모든 문파에서 당연시되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곳은 무림 최대의 세력 중 하나가 있는 남창. 지나가는 거지들도 한 번쯤 고수 여부를 의심해 봐야 하는 곳이다. 이곳 거지들 중 과반수 이상이 모두 개방(開放)에 소속된 무림 거지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인 남창에서 호아장쯤 되는 일류 문파라면 날마다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호아장 측에서도 손님 접대에 소홀할 수가 없어 사정이 허락하 는 한 접대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며칠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은 누구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었다. 그런데 어찌될 일인지 지금 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다는 뜻. 그 이유는 바로 천무학관 입관 시험 대비를 위한 것으로 곧 입관 시험을 치르게 될 호아장주 호천상의 둘째 제자 감운수 때문이었다. 그래서 호아장은 요 며칠 간 정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제자 감운수의 합격을 바라는 사부 호천상의 작은 배려였다. 큰 시 험을 앞둔 이에게 소란스러움은 절대 금물, 당사자의 정신을 흐트러트리고 집중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독(毒)보다도 해롭고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호천상은 사랑하는 제자의 천무학관 입관 시험 대비를 위해, 주위의 자중과 자숙을 요청하는 의미에서 정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 다. 동시에 장 주위의 마을 사람들에게도 행동의 정숙과 자숙을 부탁해 놓은 터였다. 그 근방에서 호아장의 부탁을 단호히 거절하고 호기롭게 고성방가를 일삼을 만큼 간담이 큰 사람은 없었기에 감운수는 조용하고 정숙한 환경 속에서 착실히 천관 특별 입관 시험에 대비할 수 있었다. 아무리 특별 전형이라고는 하나 낙오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시험 대비에 조금도 소홀할 수가 없었다.
굳게 걸어 잠근 호아장의 철문은 최대한의 정숙을 요구하는 무언의 압력. 거절과 거부란 있을 수 없음을 명명백백히 나타내고 있었다. 이 무언의 압력이 톡톡히 효 과를 봐, 지금 호아장의 주위는 흡사 쥐가 떼죽음 당한 듯 고요하기만 했다. 이러니 장내의 모든 인물들의 촉각이 날카롭게 곤두설 수밖에 없고, 곤두세워진 신경 때
문에 정문의 번(番)을 서게 되는 문도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 정문 근무자는 호아장 주력 무단인 호무전의 조원 두 명이었다. 호무전(虎無殿)은 호아장 내에서도 가장 크고 강력한 무력 집단으로 전주 휘하 2대 6개 조로 1대 당 3개 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범이 날뛴다는 호무전 휘하조 중에서도 험하기로 소문난 1조 검호조에 소속된 이들로, 이름이 각기 이관정과 손곤 우라 불리었다. 두 사람은 검호조에서 둘도 없는 막연한 친구 사이이자 경쟁자로, 다음 대 검호조 조장 자리를 놓고 암암리에 무(武)와 지(智)를 겨루고 있었다. 하 지만 그런 두 사람도 지금 결코 좋은 기분에 투철한 사명감으로 근무를 서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벌 근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일 뿐, 그렇지 않다면 누가 이 지긋지긋한 정문 위사 근무를 서려고 하겠는가.
한낮의 정문 수문위는 정문의 경비뿐만 아니라 장을 방문하는 방문자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그들의 용건을 내원에 전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손님들의 심부름까지 도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에 누구나 귀찮고 피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대다수의 다른 문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보편적이고 아주 일반적인 일 이었다. 그래서 이런 곳의 근무는 각 조에서도 직위가 없는 사람이나, 아니면 사고를 쳐서 벌 당직으로 이곳의 근무를 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두 사람은 검호조 차기 조장의 자리를 다투는 인물들로서 검호조 내에서도 고참 축에 속했지만, 며칠 전 과음한 후 술김에 흥이 올라 벌인 음주 비무가 하필 재 수 지지리도 없게 주위를 순시하던 호무 전주에게 적발되어, 그 벌로 한 달 내내 이곳 정문 경비를 서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소위 말하는 벌 근무인 셈이다. 그래도 둘은 문규에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음주 비무를 벌이고도 이 정도의 체벌로 끝난 것을 감지덕지해야 했다. 한 달 동안의 정문 벌 당직과 맹호검법 기초 수 련식 천 번 반복의 벌을 받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들에게 내려진 징계가 그 정도로 끝난 것은 정말 천행이었다.
그만큼 음주 비무 – 그것도 진검을 사용한 음주 비무 – 는 잠깐의 부주의로도 단숨에 생명을 앗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처벌이 매우 엄중했다. 그런데도 불 구하고, 이관정과 손곤우가 이 정도의 징계로 끝난 것도 이 둘을 아끼는 호무 전주의 중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비록 큰 징계는 용케 피했다지만 이런 상황 하에 놓여 있으니 둘의 신경이 날카롭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두 명 모두 극도의 저기압 상태였다.
그런 때에 초대받지도 않은 손님이 한 사람도 아닌 두 사람씩이나 호아장을 방문했다. 이 일행은 물어 볼 것도 없이 특이 사항 없는 형색의 비류연과 온통 붉은색 일색이라 어딜 가나 눈에 확 띄는 염도였다.
타오르는 태양 같은 강렬한 인상의 염도와 평범한 흑의에 치렁치렁한 흑발을 아무렇게나 묶어 놓은 비류연은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었다. 묵묵히 두 사람 의 발걸음이 정문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장(莊)!” “아()!” “호(虎)!”
비류연이 큰소리로 편액에 걸린 글자를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었다. 호아장의 정문에 걸린 편액에는 호랑이처럼 용맹한 기개가 넘치는 필체로, 비류연 식으로 하자면 ‘장아호(莊牙虎)’라고 멋들어지게 적혀 있었다.
“장아호라니… 요?”
염도가 보기에 비류연은 분명히 편액을 보고 글을 읽은 것 같은데 들리는 발음이 영 이상해 확인 차 물어 본 것이다. 그래도 까막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 봤을 때 분명히 호아장(莊)이라고 적혀 있는데 웬 난데없는 장아호(莊牙虎)란 말인가? 그러나, 비류연은 염도의 이런 궁금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스럽게 말했다.
“아, 몰랐어요? 난 현판을 읽을 때 좌(左)에서 우(右)로 읽어요. 해석은 우(右)에서 좌(左)로 하고요. 몰랐나 보네요?”
당연히 몰랐다. 알 리가 없지 않은가.
“읽을 땐 좌(左)에서 우(右)로 읽고, 해석할 땐 우(右)에서 좌(左)로 해?”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지나가던 똥개 코방귀 뀔 소리였다. 두 자로 줄이면 견(犬), 세자로 풀어 주면 개소리. 비류연의 엉뚱하고 황당한 대답에 기가 막 혀 버린 염도의 입이 쩍 하니 벌어졌다. 비류연을 향한 그의 눈동자는 강렬한 기광을 발하며, 염도 자신의 확신에 가득 찬 의사를 명명백백(明明白白)히 표현하고 있었다.
‘미친 놈!’
물론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목숨은 아까우니깐..
“그럼 책을 읽을 땐 어떻게 하나… 옵니까?”
아직도 염도는 비류연에 대해 말할 때 반 존칭을 사용해야 되는 것에 대한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염도의 말은 항상 하대로 끝나려고 하다가 아 차, 하는 심정에 반 존칭으로 급선회를 하게 되니,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게 당연했다. 어투가 전혀 그답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이 존칭 문제를 가지고 도 둘 사이에 많은 공방이 있었다. 하지만 비류연의 가차없는 응징에 곧 염도는 어투를 바꾸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는 것을 자각하고 존칭 사용 실행 여부에 동의하 게 되었다.
배변(排便)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것이 당시 그의 의지를 잘 대변해 주는 말이었다. 마치 이 말은 그 하나만을 위해 탄생된 말처럼 느껴졌다. 비류연도 일단은 염도에게 비록 그가 내기에 져서 자신의 제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자신은 비록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무림에서의 염도의 신분과 나이를 생각해 인심쓴다는 생각에서 반 존칭을 사용해 주고 있었다. 즉 적당한 상호 존칭으로 합의가 난 것이다.
“당연히 책은 그냥 위에서 아래로 읽어 내려가 가죠. 그럼 책을 아래에서 위로 읽어 가는 사람도 있어요? 내가 좌에서 우로 읽는 건 가로로 적힌 편액밖에 없어 요.”
세 살 어린애도 다 아는 당연한 사실을 뭐하러 물어 보냐는 듯한 비류연의 시선이 염도로서는 견디기 힘들었다. 염도는 자신이 우롱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뒷골이 지끈거리고 뻣뻣하게 느껴졌다. 참으로 요상하고 괴이한 버릇이 아닌가. 이런 짓거리는 단 네 자로 간단히 표현 될 수 있었다.
절대무용(絶代無用) 절대로 쓸모가 없다.
염도는 자신이 정말 엉뚱하고 허무맹랑한 놈을 사부로 모시게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다시 한 번 절망에 빠졌다.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그의 눈 앞은 더욱 더 어둡고 캄캄하기만 했다. 비류연과 동행하면서 느낀 절망감이 오늘로서 도대체 몇 번째인지 이젠 헤아리는 것도 포기했다. 사제 관계가 비록 명분뿐이라고는 하 나, 비류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진짜 말년에 받은 제자처럼 진심으로 시킬 일 다 시키고 부려먹고 있으니 염도로서는 난생 처음 겪은 수모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비류연의 성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이 정도면 그나마 양호한 편이였다. 그 딴에는 그래도 나름대로 대우해 주고 있었다. 그래도 비류연은 염도에 대 해 어느 정도 예우를 해 주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그의 존칭 말투 또한 그런 것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너무 염도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면 그의 성격상 미쳐 날뛸 위험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미연에 위험을 방지하자는 의도에서 제 딴에는 나름대로 계산한 모양이었다. 물론 비류연의 제자가 되어, 그에게 그런 취급받은 것만으 로도 이미 충분히 미쳐 날뛸 만한 상황은 충분했다. 아마 그때 비류연에게 죽도록 얻어터지지만 않았었더라도, 벌써 참지 못하고 미쳐 날뛰었을 것이다. 아직도 그 때의 악몽이 생생하게 살아 있기에 염도는 자신의 감정을 누그러트리고 있는 것이었다.
비류연과 염도가 사이좋게 호아장의 정문 앞에서 사제간의 오붓한 대화를 끝내고 장내로 진입해 들어왔을 때 이 말많은 소문의 주인공, 호천상의 둘째 제자 감운 수는 한창 무공 수련에 여념이 없었다. 이젠 정말로 시험 일까지는 며칠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밤이 낮이 되어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지금 감운수는 모든 기 력을 무공 공부에 쏟아 붇고 용맹 정진하고 있었다. 사문의 비전 검법인 맹호비격검법 26식에 모든 것을 쏟아 붇고 있는 것이다.
비록 특별 전형이라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혜자에게는 입관한 후가 더욱 문제였다. 왜냐하면 날고 긴다는 강호의 기재들이 모두 모이는 천무학 관에 입관하여 만일 별 볼일 없는 무공을 선보인다면 과연 주변의 인물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문파의 이름을 업은 무능력자로 낙인찍히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심한 경우 자격 미달이 인정되면 가차없이 퇴관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남에게 꿀리지 않고 사문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맹수련이 불가결한 것이 다. 당연히 만사 다 제쳐 두고 맹호비격검법의 대성(大成)을 이루기 위해 모든 정성을 쏟아 붇는 것이 바로 지금 감운수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그의 공부를 방해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정문 바깥쪽이 잠시 소란스러워진다 싶더니 두어 번의 격타음과 함께 다시 잠잠해진 것이다. 그의 수련장으 로부터 정문까지는 꽤 상당한 거리가 있었지만 수련으로 단련된 그의 이목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의 이목은 이미 오 장 밖의 낙엽 떨어지는 소리마저도 포착할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게 다듬어진 후였다. 물론 비류연과 염도는 굳이 은밀함을 추구하지 않았기에 포착하기는 더욱 쉬웠다. 감운수는 무슨 일일까 걱정하여 정문 쪽 으로 걸음을 옮겼다.
“쾅!”
그때, 천지를 울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정문이 활짝 열리더니 보도 듣도 못한 불청객 두 명이 장내에 발을 들여놓는 게 아닌가. 고민할 여지도 없는 침입자였다. 옛말에 “선한 자는 오지 않고 온 자는 이미 선하지 않다.”하지 않았는가.
선자불래내자불선(善子不來 來子不善)!
감운수는 허리에 찬 절호도를 꽉 움켜진 채 뽀얗게 일은 먼지가 아직도 채가시지 않은 정문을 향해 신형을 옮겼다. 감운수는 그동안의 수련 성과로 얻은 검득(劍 得)으로 자신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드디어 맹호비격검법을 극성까지 익혔다고 자신만만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감운수는 오늘 운이 억 세게도 없었다. 상대는 인간의 척도로는 측량할 길이 없는 인세(世)에 다시 없을 괴물 두 마리였던 것이다. 지독한 계산 착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