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17화 – 무모한 저항의 결과

비뢰도 2권 17화 – 무모한 저항의 결과

무모한 저항의 결과

소란스러움을 듣고 단숨에 달려온 감운수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겁도 없이 당당하게 외쳤다. 대사형이 없는 지금, 그가 이 호아장의 맏이였고

사부님을 대신해 사제들과 식솔들을 책임질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당당하게 행동했다.

“웬 놈들이냐?”

“웬 분들이시다, 왜!”

비류연이 감운수의 버르장머리 없는 말을 받아 친절하게 정정해 주었다. 굳게 닫힌 정문 바깥을 지키던 이관우와 손곤우는 시끄럽게 굴며 장내로 들어오려는 두 사람을 제지했지만, 비류연의 가벼운 손짓과 발짓 한 번으로 허망하게 대지 저편으로 날아갔다. 아무리 장래가 촉망되는 무인이라고는 하나 둘은 일개 조원에 불과 할 뿐이었다. 그런 그들이 염도와 비류연을 막는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당탕탕!”

손곤우와 이관우는 나란히 햇살을 받아 알맞게 데워져 있던 길바닥 위를 사이좋게 굴렀다. 없던 재수는 끝까지 생기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그 없음을 더해 갔다. 문 밖이 소란스러워 웬일인가 싶어 닫혀 있던 철문을 열고 내다보던 지객 담당도 날아오는 비류연의 주먹에 콧잔등을 얻어맞고 삼장이나 날아가 보기 좋게 의식을 잃 고 쓰러져 버렸다. 문을 닫아 자신의 갈 길을 방해했다는 하찮은 이유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비류연과 염도는 힘 하나 안 들이고 너무나 쉽게 호아장 내에 들어섰 다. 그런 둘 앞에 감운수가 헐레벌떡 뛰어온 것이다. 얼굴에 당혹한 빛을 가득 띈 채…….

하지만 첫 인상부터 한심하기 짝이 없는 감운수가 비류연의 눈에 기꺼울 리가 없었다. 그래서 비류연은 그를 아예 싹 무시해 버렸다.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비류연은 전혀 진지하고 심각하게 그의 존재를 염두해 주지 않았다. 이런 비류연의 행동에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감운수의 안색이 뻘겋게 달아올랐 다. 잘 나가는 무림의 후기 지수이자 예비 천관도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그에게 비류연의 무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던 것이다.

“웬 놈이냐?”

비류연의 시선이 감운수를 향했다. 하지만 긴 앞머리에 가려 감운수는 비류연의 시선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비류연의 입매에 다시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이쪽 분도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예의가 없군요. 먼저 자기 소개는 하지 않은 주제에 다짜고짜 남의 신분을 묻는 댁은 누구신가요?”

“난 이곳 호아장의 적전 제자 감운수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하지만 비류연은 다시 감운수의 질문을 묵살했다. 그리고는 아는 채를 했다.

“아, 당신이 바로 그 수학을 잘못해 분수를 모른다는 호아장의 둘째 제자로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분수? 분수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일신에 지닌 미약하고 형편없는 실력으로 사문의 추천을 이용해 특별 전형으로 천무학관에 들어가려고 안달한다는 그 둘째 제자 아닌가요? 그게 분수를 모르는 거죠. 아, 또 다른 재능으로는 자신의 주제를 전혀 파악할 줄 모르는 비상한 재주도 지니고 있다고 나한테 여길 가르쳐 준 사람이 그러더군요.”

“다, 닥쳐라! 이 무례한 놈!”

감운수는 어의가 없었다. 그가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무시를 당한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고, 뇌 속을 이리저리 헤집어 봐도 결단코 없었다. 창창 대로를 걸어온 일류 대문파의 적전 제자께서 언제 그런 푸대접을 받아 보았겠는가. 난생 처음으로 이런 치욕적인 모욕을 받은 그의 인격과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처참하게 버려졌다.

이제 그의 인내는 여기가 한계였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순간 감운수는 절호검을 뽑아 들었고 단숨에 자신에게 최초의 모욕을 선사한 상대를 향해 스스로 대성했다고 사뭇 흐뭇해하던 사문의 비전검법을 극성으로 펼쳐 보였다. 매서운 검기가 엄중히 비류연을 덮쳐 갔다.

그를 비롯하여 호아장의 모든 제자들이 거의 대부분 사용하고 있는 절호검은 그 길이와 폭이 일반 검보다 훨씬 넓고 두꺼우며 또한 길다. 그래서 처음 절호검과 검 을 맞대 본 이들은 첫째로 그 검권의 영향이 상상 외로 넓음에 당황하고, 둘째로 손아귀가 찢어질 듯한 강력한 검압(劍壓)에 당황한다. 폭과 두께, 그리고 무게가 일 반 장검보다 넓고 두껍기 때문에 이에 의해 발생하는 검력(劍)은 장난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내력이 담기지 않은 일반 장검이라면 이 절호검 앞에서 두 동강나기 십상이다.

이 무시무시한 검력(劍)과 검풍(劍風)이 맹호비격검법만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했다. 상대의 검을 무너뜨리는 사나운 검력. 단숨에 적을 두 동강 낼 듯한 맹렬한 기세. 이런 엄청난 위력을 지녔다고 평가되고 있는 맹호비격검법 26식이 비류연을 향해 시전 되었다.

처음 검초를 펼칠 때까지만 해도 감운수는 자신만만했고 위풍당당했다. 하지만 스스로 대성했다고 여기던, 익히 적수가 없을 거라 여기던 비전검 맹호비격검법으 로 막상 비류연을 공격해 들어 가 보니 그의 앞에서는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검기(劍氣)는 그의 옷자락 하나도 베어 내지 못했고 검풍(劍風)은 운동중인 그의 땀을 식혀 주는 초라한 역할 밖에는 수행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무용지물(無用之物), 완전 속수무책이었다.

비류연은 몸을 살짝 비트는 간단한 동작 하나 만으로도 이미 그의 검세(劍勢)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고 몸을 살짝 비트는 것과 동시에 다시 내딛는 일보는 섬광 과 같았다.

“퍽!”

단일 보로 창졸지간에 감운수의 품 안으로 파고든 후, 그와 동시에 내지른 주먹 일 격에 감운수의 숨통은 터질 듯이 막혀 왔다. 단 일격에 전신의 기혈이 뒤엉켜 버린 것이다. 비류연의 오른 주먹이 그의 복부를 직격하자 진기의 흐름이 단번에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파바박! 퍽퍽! 투바바박! 파바바팍! 팍팍팍!”

난폭한 우박이 얇은 철판 위에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참으로 경쾌하고 신명난다고 느낄 그런 소리였다. 비류연의 난타 소리 는 운율과 박자가 완벽히 조화되어 이제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되려 하고 있었다. 비류연의 우권을 복부에 꽂은 채, 신음이나 비명 한 토막 내지르지 못 하고 있는 감 운수의 면상과 전신에 확인 사살용 주먹 세례가 작열한 것이다. 비류연의 장기 중의 장기인 구타절명권, 삼복 구타 권법이 발동된 것이다. 작열하는 수십 발의 주먹 세례는 단숨에 그의 의식을 앗아가 버렸다.

아! 그 다음 상황은 너무나 처참해 이만 생략하도록 하겠다. 알아 봤자 정신 건강에 해로울 뿐이기 때문이다. 알면 다치니 모르는 게 약인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 리하여 호아장의 기대주 감운수는 대낮에 저승 문턱에 올라 별을 구경하는 기이하고도 신기한 이색 체험을 겪었다. 그리고는 이내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과 함께 의 식을 잃었다. 제 딴에는 한시라도 빨리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비류연은 바닥에 엎어진 감운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얼라리요, 하는 묘한 표정을 지어 보 였다.

“어라, 이 자식 너무 허약하잖아요?”

비류연은 어이가 없었다. 너무 싱거웠다. 일파의 명예를 젊어진 녀석이 너무도 쉽게 나자빠져 버린 것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감운수는 반격다운 반격은 고 사하고 비류연의 한 수도 제대로 감당 못 한 채 처참히 나가 떨어져 버렸다. 완숙한 경지에 접어들지 못한 맹호검격세를 믿고 함부로 대들다가 생긴 결과였다. 그 자 신은 비전 검법을 완전히 극성으로 익혔다고 자만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고수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직도 한참이나 멀고도 먼 공부(功夫). 그것이 현재 감운수의 진정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반항한 상대가 아무리 허약하다 하더 라도 용서할 생각이 없는 무심한 비류연의 한 수에 감운수는 변변한 저항의 시늉조차 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얻어맞고 말았다. 만일 염도가 상대였더라도 그의 기세 에 오금이 저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소변이나 지리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쯧쯧, 이 정도 실력으로 그 대단하다는 곳을 들어가려고 했단 말야? 거기 사실 알고 보면 별거 아닌 곳 아냐? 한 발짝 나가 찍고 내뻗는 주먹 하나 못 막고도 사문 의 내일을 이끌어 가는 인재라니. 썩은 기둥 같은 기대주한테 기대다 쓰러질 일 있나? 사문(師門) 말아먹을 일 있어? 너, 당분간 문 걸어 잠그고 실력 향상에나 힘써. 충고하는데 굴 속에라도 틀어박혀 조용히 검이나 갈고 닦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야. 밖에 돌아다닐 생각하지 말고. 이거야 원, 참나. 영 한심하고 형편없어 상대해 줄 맛도 안 나네. 이름이 아깝다, 이름이 아까워. 개망신 당할 뻔한 걸 구해준거니깐 나한테 고마워 해야 돼. 고마워 하라고!”

하지만 비류연의 말은 이미 기절한 감운수의 귀에는 흘러 들어가지 못했다. 좀 한다 하는 문파의 제일 기재(第一奇才)라는 놈이 단 일 보 일 수(一步一手)에 맥없 이 무너지자 허탈해져 버린 비류연이었다. 아니 대 제자가 천관에 입관해 있으니 제이 기재(第二)인가? 어쨌든 무슨 반응이 좀 있어야 흥이 생길 게 아닌가. 뇌 전보(雷電步) 한 발자국에 구타절명권 한 수가 그렇게 막기 힘들단 말인가?

“어, 어라? 살살해 줬는데, 근데 왜 한 발짝만에 파고 들어갔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멍청해 하고, 한 주먹 내뻗으니 기절하는 거야? 단 한 방에 곧 죽을 놈처럼 인 상을 찌푸리더니 두 방 더 맞더니 기절을 해? 이래서야 어디 안심하고 사람 팰 수 있겠어?”

이게 솔직한 비류연의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다 옳다고 할 수 없었다. 비록 그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사실들을 빠트렸다. 때문에 이야기가 과대 포장된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구타절명권(毆打絶命拳), 일명 삼복 구타 권법(三伏毆打拳法)이라 불리는 타구법의 총아는 그 한 수가 수십 발의 권격 연타를 지칭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물 론 일부러 이러한 사실들을 무시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단지 심증만이 있을 뿐 물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초복지권(初伏之拳)에 난타 당했다고는 하나 그 정도면 어지간한 고수도 막아내기 힘든 한 수였다.

게다가 뇌전보(雷電) 한 발짝이라면 잔영(殘影)조차 남기지 않는 섬전(閃電)의 일 보(步)가 아닌가. 뇌전보는 뇌전처럼 찰나의 흐름 속에 상대의 품으로 파고 드는 보법으로 단 한 발짝, 단일보(一步)밖에 없는 보법(步法)이었다. 단 한 발자국밖에 없는 보법을 가지고 이 보(二)를 운운한다는 것은 우스운 짓이다. 그런 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지, 아니면 일부러 무시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류연은 여전히 변함없이 엉뚱한 녀석이었다.

감운수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무너지자 비류연은 왠지 천무학관에 대해 회의가 들기도 했다. 이미 심각할 정도로 강해져 버린 자신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감운수의 사제들과 문하 제자들은 이 예상치 못한 의외의 사태에 절규했다. 개중에는 열을 터트리는 이들 도 있었다. 당장 혀를 콱 깨물고 죽고 싶을 정도의 수치심이 그들 전체를 지배했다. 냉큼 달려와 쓰러진 감운수를 부축한 셋째 제자 안후강이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비류연을 쏘아보며 외쳤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제들의 두 눈에도 똑같이 비류연을 향한 지독한 증오가 거세게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사형을, 사형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다니. 네, 네놈 대, 대사형만 계셨어도 네놈 따위한테 이리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셋째 제자 안후강의 한 맺힌 목소리에는 독기가 가득히 서려 있었다. 그의 일갈(喝)은 호아장 모든 무사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일갈(喝)이기도 했다. “대 공자 만 있어서도 이렇게 무참히 패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 문하 제자들의 공통된 심정이었다. 이번에 천무학관에 시험을 치르기로 되어 있던 제자는 호아장주 호아 맹검(虎牙猛劍) 호천상의 둘째 제자인 감운수였는데, 시험을 한 달 앞둔 그는 오늘 부로 그 이름 그대로 운수 감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 진정한 호아장의 기대주는 감운수가 아니었다. 호아장주 호천상의 애제자이며, 호아장의 찬란히 빛나는 희망이기도 한 자는 이미 작년에 천무학관 시 험에 당당히 합격하여 천관도(天館徒)가 되어 있어 지금 이 자리에는 없었다.

문하 제자들이 이 모양으로 된통 당하고 나서도 그를 굳게 믿고 있는 것을 보니 그에 대한 신뢰가 대단한 모양이었다. 이만한 신뢰를 짊어질 사내라면 보통 능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하긴 대사형이라 하면 문파를 짊어질 내일의 차기 장문인. 아무나 할 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는 자리는 결코 아니었다. 하지 만 어쨌든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그래요? 그럼 나중에 불러와요. 언제든지 상대해 주지요. 단, 올 때는 죽을 각오를 하고 오라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그때 댁들의 기대를 산산이 부서지게 만들어 버린 나를 너무 원망이나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군요.”

비류연은 여전히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에, 기고만장 큰소리 탕탕 쳐 대는 안하무인격인 놈이었다. 그리고는 뻔뻔스러울 정도의 당당한 걸음으로 내원(內院)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그를 제지할 만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은 이곳 외원(外院)에는 아무도 없었다.

호아장을 들쑤셔 놓음에 있어서 아직까지는 아무런 문제나 장애도 없었지만, 조금 전부터 염도의 안색은 좋지가 않았다. 심기가 불편한 듯 이마와 미간에 세 겹 주 름이 잡혀 있었고 안색 또한 밝은 편이 아니었다. 사실 호아장 내로 들어설 때부터 염도는 그의 신경을 자극하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 기운은 자신에게 만 감지되는 기운인 것 같았다. 몹시 떨떠름한 그 기운은 자신을 유쾌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심기를 어지럽히며, 기분을 찜찜하게 만들어 행동을 어색하 게 만들었다.

“우우웅! 우우웅!”

전부터 계속 자신의 애도(刀)인 홍염(紅)이 울고 있었다. 검날을 우웅우웅 떨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스스로 소리내어 우는 홍염을 조심스레 쓰다듬 으며 염도는 자신의 애도를 조심스럽게 달랬다. 고래(古來)로부터 장인이 혼신을 기울여 만든 명검과 명도에는 혼이 깃들여 있어 주인이 위험에 처하게 될 때 스스 로 소리를 내어 위험을 알린다고 했다. 또한 혼이 담긴 병기는 주인의 마음을 읽고, 주인의 마음을 대변하여 주인의 잠재된 의지(意志)를 반영하기도 한다고 한다. 혼(魂)이 깃든 도검(刀劍)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게 되어 이미 영물(靈物)로 취급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염도의 애도(愛刀) 홍염(紅焰)은 영물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명도였다. 그런데 그 홍염이 지금 울고 있었다. 근데 지금 홍염이 내는 도명의 울림은 주인의 위험을 경고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염도의 기묘하고 찜찜한 기분과는 달리 그것은 애타는 사랑의 연가(戀歌)와도 같은 애절하고 슬픈 곡조의 울림이었다.

‘공명인가? 겨우 이 정도의 무림 장원에서 나를 떨게 만들 정도의 기운을 내뿜는 자가 도대체 누군가? 홍염(紅焰)이 울고 있다. 최강의 암살 집단이라 불리던 흑사 회의 백 명 정예에게 홀로 둘러 쌓였을 때도 울지 않던 홍염이……. 믿을 수가 없군.’

염도는 아무리 궁리해 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호아장에 그만한 인물이 있다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았다. 머리 속을 아무리 쥐어짜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하 지만 조금 전부터 자신의 육감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이 불편한 느낌은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가 없었다.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가슴이 울렁이고 전신의 혈류가 맹렬히 돌아 심장이 쿵쾅거렸다. 불길한 예감이었다. 그의 본능이 시시각각 어떤 경고를 보내 오 고 있었다. 이제껏 홍염이 이런 식으로 도명(刀鳴)을 울린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한 기분이 드는 염도였다. 사랑의 연가 같은 이번 울음은 왠지 경고의 울음 보다 더한 불길함을 그에게 안겨 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염도의 기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비류연은 점점 더 내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행보를 막지는 못했다. 진입 저지에 모두들 실패한 것은 물론 저지의 대가로 극심하기 그지없는 통증과 대낮의 별 구경이라는 생소한 이색 체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