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28화 – 철혈의 사감
철혈의 사감
건물이 떠나갈 정도의 쩌렁쩌렁한
노호성을 터트리며 나타난 청색 학창의의 문사! 무공을 익혔음이 분명한데도 숨이 고르지 못함이 그가 얼마나 헐레벌떡 급하게 달려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그 문사를 본 호천강의 얼굴은 이미 사색이 되어 있었다. 청의 문사의 안색이 빨갛게 될 대로 빨갛게 된 것이 화가 나도 아주 단단히 난 것이 분명했다. 그는 불같이 격렬하고 폭풍처럼 맹렬하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의 분노는 검혼관 내에서는 공포의 대명사와 동격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호천강의 눈 앞이 캄캄해졌다.
“사… 사감님…….”
사시나무 떨듯 떨리던 그의 몸에서 겨우 한 음절이 새어나왔다. 불혹의 나이로 짐작되는 이 청의 학창의의 문사가 바로 검혼관을 직접 관리 통제하고 있는 기숙사 감, 검혼관의 실세, 규칙과 기강의 화신, 철혈무정검(鐵血無情劍) 강하윤이었다. 청성검문에 몸을 담고 있는 전 청성파 검술 교관 출신으로 생김으로만 본다면 연약 한 문사에 놀기 좋아하는 한량 같지만 천만의 만만의 말씀이다. 뚜껑을 열어 진실을 알고 보면 생김새와는 정 반대로 그 성격은 불같이 급하고 한 번 분노하면 하늘 과 땅을 동시에 뒤덮을 만큼 거세며, 처분과 응징에 대해서 가차없이 단호하고 과격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오죽하면 별호가 철혈무정검(鐵血無情劍)이겠는가.
이 사람이 청성파 검술 교관으로 재직 당시 그의 목검에 얹어 터지지 못한 문하 제자의 수를 혹시 알고 싶은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일일이 그 수를 셀 필요 가 없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성검파의 제자라면 다 한두 번씩은 그의 목검 아래에서 작살나게 얻어맞은, 잊고 싶은 기억들을 공통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사지 중 하나를 부러트림 당해 본 제자의 수만도 전체의 3할을 육박하며, 심지어는 검기(劍氣)에 당한 제자 수도 1할이 넘는 막대한 수로 아직까지도 청성파 에서는 삼대 제자 이하로 철혈무정하고 외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마루 바닥에 머리를 박을 정도로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 이가 현 검혼관의 사감으로서 이곳의 규율과 기강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한낱 기숙사감으로 쓸 만큼 천무학관의 위상이 높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그만큼 무시무시하고 인정사정 없는 철혈무정 검에게 불법적인 현장을 목격 당했다는 끔찍한 현실이었고, 그것이 바로 호천강의 얼굴을 사색으로 만든 주요 요인이었다. 그가 이 사건을 그냥 넘어 갈 리가 없었 다.
앞으로 이어질 끝없는 문책과 눈사태처럼 덮쳐 올 벌점, 그리고, 뒤에 기다리고 있을 무시무시한 처벌과 응징, 호천강은 왜 자신이 아직까지도 기절의 혜택을 누리 지 못하고 한 가닥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지 비류연의 주먹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서 있는 세 명과 널브러져 있는 한 명에게 다가온 강하윤이 살기 만연한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모두를 빗자루로 쓸듯이 훑어보았다. 호천강은 꿈에서도 바라던 기 절조차 할 수가 없었다. 철혈무정검의 폭발적인 눈빛과 마주치자 몸이 자신의 의사와는 달리 – 그는 현재 간절히 기절을 바라고 있는 상태였다 자리를 박차고 벌 떡 일어났던 것이다. 충격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두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호천강의 몸은 용케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따라와라!”
그의 입이 재차 열리자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호천강이 그의 등 뒤를 따랐고, 비류연과 장홍, 그리고 효룡이 다시 뒤를 따랐다. 앞에 걸어가고 있는 호천강 의 어깨가 축 늘어지고 의기소침해 보여 애처로울 정도였다.
“왠지 불쌍하고 처량해 보이네요!”
효룡이 자신이 느낀 소감 그대로를 옆에 있는 장홍에게 귓속말로 말하자 장홍도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도 가볍게 혀를 차며 측은한 눈빛으로 호천 강을 바라보고 있는 터였다.
철혈무정검 강하윤의 뒤를 따라 올라간 3층의 가운데 방에는 단정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사감실’
‘외인 출입금지’
‘정식 보고’
“쾅!”
검혼관의 사감이자 전 청성검파 검술 교관인 철혈무정검 강하윤의 주먹이 책상을 내리쳤다. 다행히 진기를 잃지 않고 힘을 조절한 탓에 책상이 두 동강나거나 산 산조각으로 부숴 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학관의 기물을 파손하고 재산을 훼손할 정도로 무분별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지금 그의 분노가 자그마하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지금 그의 분노는 산을 허물고 강도 메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단만 초 인적인 인내력과 자기 제어로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폭력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런 그의 분노가 반 식경이 넘도록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2학년 황자조(字組) 부조장(部組長) 호천강!”
“예, 사감님!”
반 식경이 넘도록 강하윤의 불같은 분노를 몽땅 뒤집어쓰고 있던 호천강이 잔뜩 긴장한 채 대답했다. 긴장한 탓인지 신입생처럼 기합이 잔뜩 든 매우 큰 목소리였 다.
“자네가 오늘 부순 함정 및 기관, 그리고 그 작동비! 모두 합해 얼마라고 생각하나? 그 피해가 얼마인지 자네는 짐작이나 하고 있나? 물경 은자 천오백 냥을 넘어 서는 막대한 금액일세. 전 무림문파가 성심으로 기증한 돈을 근간으로 한 학관의 예산을 그 따위 시시한 전통으로 낭비하다니, 자네 제정신인가? 이 정도의 끔찍하 고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단지 개인의 기분과 하찮은 장난에 좌우되어 학관에 입히다니, 자네 정말 제 정신인가?”
강하윤은 정말 문자 그대로 불같이 노하고 있었다. 용서를 바라기란 꿈의 저편일 것 같을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분노의 화신 같은 그를 보는 호천강의 눈에 절 망이 어른거렸다.
고도로 정밀한 기관과 함정을 한 번 작동시키는 데 과연 얼마만한 예산이 낭비될까? 검혼관의 대침입자용 방어 기관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예산 잡아먹는 괴물 단지’였다. 기관 작동 시 소비되는 수십 발의 비전(飛箭)과 수종 수백 개의 암기들. 정말 문자 그대로 비전(飛錢 : 날으는 돈뭉치)이라 불러야 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화살들은 어떻게 다시 수거해서 재활용한다 해도 그 비율은 6할을 넘지 못했다. 작동시 분질러지거나 날이 상하기 십상인 것이다. 미세한 암기들은 재활용 비율이 3할 정도로 그 회수율도 더욱 작았다.
게다가 특히 호천강의 검기와 분뢰수의 충돌 여파로 부서진 검림진은 그 피해액이 장난이 아니었다. 사실 가장 큰 피해액은 바로 이 검림의 파손에서 비롯됐다 해 도 과언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보통 일반적으로 검신(劍身) 하나에 얼마의 가격이 붙는다고 생각하는가? 그것도 어지간해서는 녹슬지 않고 이가 나가지 않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검신이라면 그것들을 제작하고 구입하는 가격은 정말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무리 못 잡아도 하나에 삼사십 냥은 족히 될 물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고급 검신이 수백 개가 단숨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복구조차도 불가능했다.
검 수백 자루가 한꺼번에 고철로 변해 버린 거나 다름없는 끔직한 재해였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고철로 화해 버렸으니 그 피해는 정말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막 대했다. 때문에 지금 호천강이 사감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은자 천오백 냥이면 검혼관 일년 운영 예산의 3할 이상을 잡아먹는 막대한 피해였다. 아직 제대로 정산이 안 돼서 그렇지 세세한 부분까지 합한다면 더 될지도 몰랐다. 검 하나에 은자 3냥만 잡아도 오백 자루는 족히 되어 보이니, 모두 셈해서 은자 천 오백 냥이었다. 거기에 함정이나 기타 비전, 암기 등을 합한다면 그 피해액이 더 불어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 아닌가. 그러니 그렇지 않아도 성격이 불같고 거칠기 로 유명한 강하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강하윤은 쉴 틈 없이 호천강을 압박했다. 호천강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부답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이 강하윤의 화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겨우 신참 신고식 하나 치르자고 이 일을 저질러? 겨우 신참 신고식으로 대인 대적 대침입용 기관을 제3단계까지 발동시켰다고? 그 말을 지금 나더라 믿으란 말 인가? 자네 누굴 바보로 아나? 대적 방어용 3단계면 살상의 단계다. 한낱 장난으로 끝날 단계가 아니란 것은 자네도 잘 알 터! 천무학관에서 2학년 황자조 부조장이 란 놈이 그걸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호천강은 정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낯으로 대꾸를 한단 말인가?
“관내 살인이 얼마나 큰 중벌인지 알고 이 일을 저질렀나?”
“사… 살인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갑자기 일이 커지려 하자 호천강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 든 살인은 큰 죄였다. 사람 목숨을 보급품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전쟁터를 제외한다면, 어디든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동문 살해라면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다.
“시끄럽다! 대인방어 기관 3단계면 이미 살인 미수나 다름없다. 도대체 누구에게 작동법을 알아냈나? 기숙사 기관 작동법을 아는 이는 얼마 되지 않을 텐데, 어떻 게 그 방법을 알아냈지?”
호천강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역력하게 떠올랐다. 사감 강하윤의 질문은 그만큼 예리한 것이었다.
“이 일은 저 혼자 계획한 일, 다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저지른 일입니다.”
“자네, 계속 누굴 바보로 아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절대 그런 어리석은 마음 품은 적 없습니다.”
철혈의 사감, 철혈무정검 강하윤을 바보 취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야 말로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는 천하의 바보일 것이다.
“그런데 왜 날 바보 취급하려 하나! 대인 대침입자 격퇴 방어용 기관의 살상 가능 영역이 몇 단계부터인가?”
강하윤이 호천강에게 물었다. 그 답은 물론 호천강도 잘 알고 있었다. 검혼관 기숙사생이라면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숙지하고 있는 기본 상식이었다. “3단계부터입니다.”
“그럼 2단계 이상의 기관 작동은 위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겠군. “
“예!”
“그렇다면, 그 작동법을 특정 소수의 인물들만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군.”
“예!”
대답하는 호천강의 안색이 점점 더 창백하게 변해 갔다. 식은땀이 그의 이마에 맺히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네에게 3단계 이상의 기관 작동법을 알려준 이가 도대체 누군가? 어리석게 자네 혼자 알아냈다고 하지는 말게. 끝까지 들어보지 않아도 속이 훤히 보
이는 거짓말이니깐…….”
기관 진법 점수가 다른 분야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호천강이 스스로의 힘으로 천관의 기관 작동법을 알아냈을 리가 만무했다. 철혈무정검 강하윤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이 검혼관에 있는 모든 관도의 신상명세를 훤히 꿰뚫고 있는 이가 바로 강하윤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무리 질책 받고 추궁 받는다 해도 호천강은 그것만은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을 절대로 알려줄 수 없었다. 이 일은 자 기 자신 혼자서 계획하고 실행한 일로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관계는 절대로 비밀에 붙여져야 한다. 호천강은 견디기 힘든 철혈 사감 강하윤의 매서운 살 기와 분노를 견디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것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고역이자 살인적인 고문이었다. 호천강의 안색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의 입은 아교로 붙였는지 한 마디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말할 수 없다 이건가? 아니면 말하지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식으로 진실을 회피하려 든다면 회계동에서 석 달 이상을 보낼 것을 능히 각오해야 될 것 이네!”
강하윤이 단호하게 말했다. 강하윤 말은 호천강으로서는 마지막 최후의 통첩이나 다름없었다.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회, 회계동! 사, 사감님.
회계동이란 말이 떨어지자 호천강은 놀란 고양이 마냥 화들짝 놀랐다. 그의 목소리가 공포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 문파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기재가 지금 떨고 있는 것이다. 회계동, 아직도 공포와 어둠의 막으로 비밀에 쌓여 있는 그곳은 들어갔다가 정상적으로 나온 이의 수가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라는 공포 그 자체인 곳이다. 많고 많은 무림인들 중에서 가리고 가려 고른 인물들이 모인 천무하관에서 조차도 공포의 대명사 같은 곳이 바로 회계동이었다.
그런데 그런 끔찍한 곳에서의 석 달이라니. 석 달, 대충 생각하면 별로 긴 시간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그곳을 직접 체험하는 이에게는 엄청나게 긴 고난과 시련과 역경의 시간이라고 세인들은 전한다. 체험자들은 입을 굳게 봉한 채 침묵으로 일관해 세인들의 구구한 억측만을 낳게 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 만, 회계동 3개월이면 강산은 멀쩡한데 사람은 변한다는 시간이다. 그만큼 회계동 행은 천무학관에서도 무시무시하고 잔혹하다고 정평이 난 처벌인 것이다. 호천강 의 안색이 시체처럼 까맣게 변했다. 당장 눕혀 놓고 염을 하고 있으면 그냥 시체라고 믿을 만큼 그의 안색은 처절했다.
강하윤은 시체 친구 같은 얼굴이 되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호천강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의 일련의 행동에서 강하윤도 나름대로 감을 잡은 것이다.
“그래도 말 못 하겠다는 건가? 내 짐작 가지 못하는 바도 아니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그리 많지는 않거든.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이런 요란한 일을 꾸미는 데 도움을 줄 녀석은 단 두 놈, 바로 그 녀석들 밖에 없어. 그렇지 않나?”
강하윤의 날카로운 직감에 호천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전력을 다해 시치미를 뚝 땠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혼자서 꾸미고 실행한 일에 공범자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귀신도 아니고…….”
“귀신이 맞지!”
강하윤이 냉소하듯 말했다.
“예?”
“귀신이 맞지, 맞아. 그것도 악귀가 아닌가, 뿔 달린 악귀. 천무학관 최고의 사고뭉치이자 최다 징계자, 그 외에도 최악과 최다의 무수한 기록 보유자, 천무학관 사 상 최악의 짝궁, 천관의 두통거리, 신의 실수, 어때? 내 말이 틀렸나?”
강하윤이 제대로 집은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탄로 났는 지도 모르는 데도 불구하고 호천강은 끈질기게 침묵을 고수한 채 묵묵부답 말이 없었다.
“…..”
“이렇게까지 됐는데도 말 안 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여기까지 와서 하찮은 의리를 들먹거리려는 건가? 아니 못 할지도 모르겠군. 나도 그 녀석들 생각만 하면 머 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데 자네 정도론 그 녀석들의 등쌀에 시달리고 싶지 않겠지. 후환이 두려운 건가?”
“…..”
호천강의 얼굴에서 눈에 띄는 동요가 드러났다. 마음이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쨌든 일을 벌린 건 엄연한 자네니깐 이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거네. 아마도 최악의 경우 사문에도 통보가 갈 수도 있네. 일단 자네의 징계에 대해선 집법원과 상의하여 결정하도록 하고 일단은 보류하도록 하지.”
호천강의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방금 전 강하윤의 판결로 그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안전 장치 하나 없이 굴러 떨어지고 만 것이다. 강하윤은 공포와 근심으로 떨 고 있는 호천강은 무시한 채 비류연 일행을 쏘아보았다. 잘 갈린 칼날만큼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그리고, 자네들 셋!”
“예!”
세 명이 동시에 대답했다. 강하윤의 박력에 압도되어서인지 그들 셋도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정상 참작이 인정되어 이번만은 용서할 테지만 두 번 다시 내 눈에 잘못이 띄지 않도록 유념하도록! 다음 번엔 용서와 인정이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예, 감사합니다.”
강하윤의 시선이 세 명 중 뒤에 서 있는 장홍을 향했다. 유심히 그를 쳐다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장홍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도 장홍의 그런 무례한 태도에 대해 아무런 추궁도 하지 않았다.
사실 강하윤의 결정은 의외의 것이었다. 호천강을 한없이 추궁하고 질책하는 것으로 봐서 그들에게도 상당한 수준의 징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그럼 이만 나가 보도록!”
강하윤은 철혈의 사감이란 이름답게 비류연 일행에게 마지막 한마디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앞으로 세 사람의 주위에 항상 감시의 눈이 머무를 거라는 충고이 자 협박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철혈무정검 강하윤은 냉혹하기는 해도 정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얼간이는 아니었다. 그는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다. 검혼관의 기관 을 사실상 모조리 부순 장본인 중 한 명인 비류연이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무죄 판정을 받은 것이다. 분노로 인해 눈에 뵈는 게 없을 것 같던 강하윤이 의외로 냉 철하게 상황판단을 한 터였다. 비류연은 호천강의 기습에 대한 자기 방어가 정당방위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호천강과 동시에 한데 묶여 처벌받는 것만은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호천강의 실망과 억울함은 거의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그나마 비류연도 연대 책임으로 처벌받게 될 것에 대해 최소한의 위안으로 삼고 있었는데, 그 최 소한의 위안마저 그를 외면한 것이었다. 세 명이 모두 나가 버리고 외로이 홀로 남은 방 안에서 그는 흡사 넋이 나간 사람처럼 연신 중얼거렸다.
“아직 끝난 게 아냐! 아직…….”
그렇게 그는 넋 나간 사람처럼 웅얼웅얼 뇌까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