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6권 4화 – 미(美)는 준비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미(美)는 준비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미! 투!
동해도 제십일 기숙사.
별칭 미폭대(美暴隊).
쇄골해금과 여자들의 꺄아아악거리는 비명 소리와 혼절로 뒤범벅이 된 우여곡절 끝에 동해도의 정문을 통과한 모용휘와 공손절휘는 지금 그곳의 중앙 연무장 한 가운데 서서 저 위쪽에 동해왕자군과 대면하고 있었다.
이곳 연무장은 분지처럼 푹 파인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자군이 서 있는 곳은 분지의 위쪽 부분이었고 모용휘와 공손절휘가 안내되어 온 곳은 분지의 파여진 아래 쪽 부분이었다. 그 경사면을 객석처럼 만들어놓았는데 지금 그곳은 수십 명의 십일번대 대원들에 의해 빙그르르 포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대원들의 대부분은 여 자들이었고, 그녀들은 적의 대신 초롱초롱한 호기심과 이상한 열기가 가득한 눈으로 모용휘와 공손절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소곤거리거나 키득 거리기를 반복하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모용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었다.
“으음…….”
가장 높은 장소에 위치한 자신의 의자에 앉은 채 자군은 한참 동안 모용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자네 혹시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나?”
모용휘의 하얀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던 동해왕자군이 인상을 찌푸리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얼 말입니까?”
자군의 갑작스런 질문에 모용휘는 어리둥절했다.
“분이라던가, 수은이라던가, 향낭이라던가 등등등, 등등등 하는 화장품들 말일세.”
“바르지 않았습니다.”
모용휘가 간단하게 답변했다.
“바르지 않았다고? 이럴 수가! 자네 제정신인가? 피부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쩔 생각인가? 자네는 저 하늘에서 쏟아지는 찬란한 피부의 적이 두렵지도 않은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향해 증오스러운 듯 손가락을 뻗으며 자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거의 모용휘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용휘가 인상을 찌푸렸다.
“전 남자입니다. 당연히 화장품 같은 건 바르지 않습니다.”
그러자 자군은 혀를 차며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쯧쯧, 남자라서 화장을 하지 않는다니, 그런 건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네. 잘 듣게 그 화장품들은 말일세, 미(美)라는 요새를 사수하는 무기라 할 수 있는 것들이란 말일세. 무기도 없이 전장에 나가는 법이 없듯, 미의 사도는 화장을 끝내지 않고는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일세.”
“그렇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군요, 그 미라는 것을.”
아무리 해도 모용휘로서는 저 자군이란 자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르다니! 모르다니! 자넨 아직 ‘미의 사도’로서의 자각이 부족하군.”
손으로 허벅지를 치며 자군이 한탄했다.
“될 수 있으면 영원히 자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그러나 모용휘의 말을 자군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었다.
“알겠나? 이렇게 햇살이 따가운데 얼굴에 분도 바르지 않다니, 피부란 화초 같은 거라네. 항상 물을 주고 잡초를 솎아내 주듯이 가꾸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 버리고 말지. 방심하고 있다가는 금방 기미라던가, 뾰루지라던가 주름 같은 무시무시한 존재에게 눈 깜짝할 사이에 점령당하고 만다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나?”
자군은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 무림이 멸망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라고 여기고 있는 듯했다.
“그런 건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다 보면 다 생기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끔찍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자군이 기겁하며 호통을 쳤다.
“무르군. 너무 물러! 그래서는 미의 사도가 될 자격이 없네. 격류처럼 흐르는 세월에 저항하며 탱탱한 피부와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꾸는 것이 바로 ‘미의 사도’로 서 가져야 할 사명! 세월이란, ‘미의 사도’에게 있어서 이른바 타도해야만 할 적(敵)이라네!”
자군이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는.
“그런 의미에서 무명 대장님은 인정해 줄 만하지. 세월과 싸우는 모범으로서 말이지. 뭐, 그 본인 역시 미의 사도로서의 자각이 좀 부족하긴 하지만.”
라고 알 수 없는 말을 덧붙인다.
“적이라고 해도…….’
모용휘는 한숨이 나왔다. 그의 적은 유구히 흘러가는 세월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동해왕 자군이었다. 그는 여기에 자군과 싸우기 위해 온 것이다. 나예린의 행방을 찾기 위한 단서인 목관을 손에 넣기 위해 충돌은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자신은 여기 따갑게 떨어지는 햇살 아래에서, 저기 양쪽에 여인들이 드리워준 양산 아 래에 서 있는 자군이랑 피부 미용 같은 쓸데없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역시 먼저 치고 들어가야 하나?”
강제로 본관 건물로 돌격해 들어가 목관을 찾는 방법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서서 피부 미용에 대해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하고 있는데다가, 주변에는 거의 대부분이 아리따운 여인들뿐이고, 그녀들 대부분도 그와 공손절휘를 관상물처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서로 입가를 손으로 가린 채 소곤소곤 수다를 떨고 있을 뿐이니 뭔가 움직임을 취하기가 무척 어색하고 곤란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전투 의욕이라는 것이 전혀 불타오르지 않았다.
공손절휘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그는 모용휘보다 더 곤란해하다 못해 마구 짜증을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짜증 역시 전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 다. 완전히 상대의 흐름에 말려들고 말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곤란하군… 정말 곤란해……. 이런 것 너무 깔끔하지 않아.’
가장 곤란한 점은 모용휘 자신이 예의를 무척이나 중시하는 바른생활 사나이라는 점이었다. 때문에 상대가 무례하게 나오지 않는데다가 여인들이 대부분이다 보 니 어쩔 줄을 모르게 된 것이다. 만일 여기 온 사람이 비류연이었다면 여인들이 있든 말든, 자군이 뭐라 그러든 말든 ‘이 기생오라비는 또 뭐야?”라며 저 싱글거리고 뺀질거리는 얼굴을 뭉개 버리려고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비류연 같은 악우를 둔 모용휘라 해도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물들어 있지는 않았다. 그의 결벽증은 아직도 건재한 것이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상황을 깔끔하게 유도할 수 있을까? 정정당당하고 깨끗하게.’
가장 깨끗한 방법을 찾느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답답해하고 있는 모용휘의 옆에서, 이미 인내가 한계가 달한 공손절휘가 마침내 폭발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느끼해서 도저히 못 참겠다!”
소름이 돋았는지 양팔을 푹푹 긁으며 공손절휘가 외쳤다.
그 순간 자군의 몸이 그대로 석상처럼 굳었다. 하하호호 사이좋게 담소를 나누던 여인들의 목소리 또한 주위에서 일제히 사라졌다. 그 빈 공간으로 이상할 정도로 무거운 정적이 자리를 찾아왔다.
자군의 목이 아래로 툭 떨구어졌다.
“…….”
다시 이어지는 무거운 침묵. 공손절휘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조용하지만 차갑고 따가운 시선에 유린당해야 했다. 그리고 집단으로 행해지는 무언의 비난이 얼마나 괴로운지 처음으로 자각하게 되었다.
“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자군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자신의 미를 세상에 뽐내기 위해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던 좀 전의 모습과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어 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 떨림은 점점 더 큰 요동으로 증폭되어 갔다. 그 모습을 본 동해도 여인들의 안색이 파리해지더니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왜 저러지?”
주변의 여인들이 창백하게 질린 채 주춤주춤 물러나는 품새가 수상했다.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던 자군이 마침내 폭발했다.
“느끼하다고오오오오오오오오!”
마치 뜨거운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격렬한 분노가 터져 나왔다.
“난 그 말이 제일 싫어!”
좀 전까지 무골호인처럼 웃고만 있던 자군의 눈동자에 진득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미를 모욕하다니! 죽어라아아아아아아!”
쾌속무비한 신법을 쓰며 자군이 연무장의 중심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으헉!”
갑자스런 자군의 공격에 당황한 공손절휘는 급히 가문 비전의 지존검법으로 반격에 들어갔다.
촤악!
검광이 너무도 깨끗이 자군의 신형을 가르고 지나갔다.
‘베었다!’
얼떨결이지만 어찌저찌 반응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화라라락!
분명 베었다고 생각한 자군의 신형이 눈앞에서 붉은 꽃잎이 되어 흩어졌다.
“억!”
그 광경에 공손절휘는 깜짝 놀랐다.
“어딜 보는 게냐, 이 미맹(美盲)아!”
사라진 자군의 신형은 돌연 공손절휘의 좌측에서 나타났다. 공손절휘는 급히 왼쪽으로 몸을 틀며 지존검법 중 일초인 ‘지존좌진(至尊左鎭)’을 펼쳤다. 지존께서 좌측을 진압한다는 뜻의 초식으로 검을 든 반대측인 왼쪽 공격에 특화된 초식이기도 했다.
촤악!
다시 한 번 붉은 꽃잎이 흩어졌다. 자군의 신형이 또다시 사라진 것이다. 사라진 자군은 다시 공손절휘의 오른쪽에 나타났다가 베이면 다시 꽃잎이 되어 사라지고, 다시 뒤쪽에 나타났다 다시 꽃잎이 되어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이게! 이게! 이게!”
자군의 움직임을 쫓으며 검을 휘둘러보지만, 언제나 한 발짝 늦을 뿐이었다. 너무 빠르고 기묘막측한 보법에 공손절휘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농락당할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법 연습을 좀 더 할걸. 검초의 위력에 너무 집착해 보법 연마를 게을리한 것이 후회되는 그였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위험해!”
모용휘가 다급한 어조로 경고했다.
“어? 어? 어?”
‘쪼, 쫓아갈 수 없어…….?
쫓아가면 쫓아가려 할수록 발만 더 꼬일 뿐이었다.
어느새 그의 주위를 붉은 꽃잎들이 춤을 추듯 빙빙 돌고 있었다. 자군의 신형은 보이지 않았고 기척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꽃잎들만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고 있을 뿐이었다.
“어라라?”
이상하게 눈앞이 뱅글뱅글 돌며 어지러워졌다. 머리가 띵했다. 하늘과 땅이 사이좋게 돌고 또 돌았다.
“어, 어, 어, 어!”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는 꼴사납게 쓰러져 있었다.
“어?”
대체 이게……? 언제 자신이 꽃잎이 뿌려져 있는 바닥에 얼굴을 박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하하하하! 어떠냐? 나의 아름다운 환상의 보법 산화무영(散花無影)’의 맛이!”
쓰러진 그의 얼굴을 발로 짓밟으며 자군이 꼴좋다는 듯 홍소를 터뜨렸다.
“뼛속까지 새기도록 해라, 아름다움의 위대한 힘을! 알겠느냐, 이 어리석은 미맹아!”
어느새 혈도가 점해졌는지, 쓰러진 공손절휘는 뺨에 발을 밟힌 채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그저 치욕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꺄아아아아아아! 너무 멋져요, 자군님!”
“아름다우세요!”
“천한 것을 짓밟으시는 저 모습, 어찌 저리 아름다운실까!”
여기저기서 여인들의 비명에 가까운 환성이 터져 나왔다. 자군이 무얼 하든 그녀들의 눈에는 무조건 아름답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저 여자들, 눈에 뭔가 씌인 게 분명해……. 이런 느끼한 놈이 뭐가 좋다고…….”
혀로 흙 맛을 느끼면서도 공손절휘는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미의 ‘알흠다움’을 알겠느냐?”
이런 상황에서 미를 찾다니, 짜증이 극에 이른 공손절휘는 홱 돌고 말았다. 저놈에게 정신적인 충격만 안겨줄 수 있다면 어찌 돼도 좋다고 생각했다.
“너 따윈 하나도 아름답지 않아, 이 느끼한 놈아! 네놈의 아름다움은 모용휘의 발끝에도 못 미쳐! 가서 거울이나 더 보고 와!”
갑자기 그의 뺨을 짓밟고 있던 압력이 사라졌다. 겨우 고개를 돌릴 수 있게 된 공손절휘가 자군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는지 동공이 확장된 채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고, 안색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나, 나의 아름다움을 모, 모, 목욕하다니!”
모욕을 목욕이라고 발음하는 걸 보니 확실히 충격이 크긴 큰 모양이었다.
“흥, 그런 말은 모용휘를 이기고 나서나 하시지, 이 느끼한 놈아!”
공손절휘가 다시 코웃음을 쳤다.
“또, 또 느끼한 놈이라니! 좋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리고는 모용휘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모용휘! 나의 아름다움을 걸고 너에게 ‘미(美)의 대전(大戰)’을 신청한다!”
그리고는 바로 공손절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 추한 미맹 놈아! 넌 거기서 보고 있어라! 진정한 미가 이기는 모습을! 나야말로 미(美)! 미(美)야말로 정의(正義)다!”
“미의 대전? 그것이 무엇이오?”
동해왕자군의 결투 신청을 받은 모용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채 반문했다. 그와 자군의 정신세계는 너무나 달라서 일일이 물어보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했던 것이다.
“아, 미의 대전이란 말이지, 말 그대로 서로의 미를 겨루는 것을 말하는 것이야. 줄여서 ‘미투(美鬪)’라고 하지. 추한 자들은 참가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고귀 한 싸움이라고나 할까.”
아침에 세 번이나 감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찰랑 하고 넘기며 자군이 뽐내듯 말했다. 마치 그 싸움에 참가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라도 해야 한다는 듯한 말 투였다.
“미를 겨룬다니?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미를 겨룬단 말이오?”
미라는 것은 정말 기준이 애매한 것 아닌가? 각자가 가진 미적 감각이라는 것은 상당히 다른 법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이상이라는 애매한 기준점이 없는 것은 아 니나 어느 한 지점이라고 딱 잘라서 선을 그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심사위원 앞에서 재롱이라도 부려야 한단 말인가? 아니면 노래나 춤 같은 걸 보이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
“당연히 싸워서 승리하는 쪽이 아름다운 것 아니겠나?”
그런 건 당연하지 않느냐는 말투였다.
“그건 어째서요? 도통 이해가 안 가는 기준이오.”
모용휘에게는 그 당연한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승리 역시 또 하나의 미. 승리는 아름답고 패배는 추한 법이지.”
“그냥 일대일 비무랑 다를 것이 없어 보이오만?”
자군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다르지. 아주 다르다네. 참가자는 관중을 압도하는 미를 뿜어내야 하네. 아름다운 기술로 어디까지나 아름답고 우아하게 상대를 쓰러뜨려야 하는 것일세. 시정잡 배와 같은 거친 싸움은 우리 같은 ‘미의 사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관중을 매료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싸우는 상대까지 매료시키는 것이야말로 ‘미투’의 궁극적 인 도달점이라네.”
그의 눈동자는 또다시 먼 곳을 보기 시작했다. 완전히 자기 세계에 푹 빠져 버렸는지 모용휘들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야유를 세 번 받으면 그 사람은 싸우는 도중이라도 무조건 지는 걸세. 당황하지 말고, 어디까지나 우아하게 미를 겨뤄보도록 하세.”
“이, 이봐! 이런 웃긴 싸움이 어디 있어!”
정통의 가문의 교육이 뼛속까지 새겨져 있는 공손절휘는 이런 이상한 싸움은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런 건 무인의 세계가 아니었다.
“당연하지. 이 추한 것! 이건 미의 세계다. 너같이 패배한 놈이 낄 자리가 아니다. 넌 거기서 찌그러져 있어라!”
“내가 어디가 추하다는 거냐? 절대 인정 못해!”
모용휘만큼은 아니지만 공손절휘도 나름 자신의 생김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
“방금 듣지 못했나? 패배는 추하다고? 패배한 너는 추한 자다. 어때, 알기 쉽지? 알았으면 썩 물러가 있거라.”
그 말에 공손절휘는 육체적인 패배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충격을 먹고 패배하고 말았다. 좌절한 공손절휘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동해왕자군의 시선이 모용휘를 향해 창처럼 날아와 박혔다.
미의 대전이라 해봤자 말 그대로 일대일 대결이었다. 하지만 그 준비 과정은 정말로 화려했다. 그는 미의 대전을 위해 새로 화려한 비단옷으로 갈아입고, 장신구도 주렁주렁 달고, 화장도 다시 했다. 그는 거의 꼼짝도 하지 않고 있고, 대부분 그의 주위에 있는 친위대 여인들이 그 일을 대신해 주었다.
“자네도 어서 준비하게.”
“난 이대로도 괜찮소.”
“정말로 그대로 되겠나? 미의 대전에 참전하는데 좀 더 꾸며야 하지 않겠나?”
“아니, 정말로 괜찮소.”
모용휘는 사양했다.
“그래, 나중에 후회하지 말게.”
자군은 좀 전보다 한층 더 붉고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다음, 얇고 동그란 금 귀고리를 양쪽 귀에 달고, 머리카락을 홍옥으로 된 장신구로 고정한 다음 다시 상석에 위치한 자기 자리에 앉았다. 처음부터 화려했던 인간이 꾸미고 나선 다섯 배 정도 더 화려해져 있었다. 본인은 전투 준비라고 주장하는 치장이 끝나자 주위의 친위 대 여인들로부터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들은 좋아 죽으려 하는 것 같았다.
준비가 끝나자 여인들이 몰려와 자군이 앉아 있는 자리로부터 비무대까지 이열로 도열했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바구니에서 꽃잎을 뿌리기 시작했다. 붉은 꽃잎이 융단처럼 깔리는 길을 자군은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갔다. 모용휘도 그와 보조를 맞추어 비무대로 향해 걸어갔다.
“모용 형!”
평소에 공손절휘가 결코 쓰지 않던 호칭에 의아함을 느끼며 모용휘는 뒤를 돌아보았다. 잠시 우물쭈물 망설이던 공손절휘가 이내 정색을 하더니 외쳤다.
“저런 느끼한 놈한테 절대 지지 마시오!”
그리곤 부끄러운지 고개를 딴 데로 돌려 버렸다. 모용휘는 싱긋 웃으며,
“걱정 말게, 난 반드시 이길 테니까.”
“누, 누, 누가 걱정한단 말이오! 지지나 마시오. 당신을 쓰러뜨리는 건 공손세가의 후예인 나 공손절휘의 역할이오!”
공손절휘가 발끈해서 외쳤다. 그러자 모용휘가 진지한 눈동자로 대답했다.
“그러길 원한다면 더욱 정진하게.”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마침내 동해왕자군과 칠절신검 모용휘가 비무대 위에서 마주 섰다.
“자, 그럼 서로의 미(美)를 뽐내보도록 할까.”
들고 있던 화려한 붉은 부채를 활짝 펴며 자군은 미의 대전의 개전을 선언했다.
모용휘와 자군, 두 사람 중 먼저 달려든 것은 자군이었다.
선수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그는 마치 춤을 추는 듯한 화려무쌍한 자세로 모용휘의 정면으로 쇄도했다. 모용휘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화라락!
검광에 베인 자군의 신형이 또다시 꽃잎이 되어 사라졌다. 좀 전에 공손절휘가 당했던 수법과 동일한 신법이었다.
‘같은 수법을 걸어오다니…….’
깨뜨릴 수 있으면 깨뜨
비무대를 둘러싼 객석에서 여인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어딘가 긴장감을 빼게 만드는 그런 소리였다.
이번 공격은 유효했나? 그런 생각도 잠깐, 다시 한 번 자군의 신형은 붉은 꽃잎이 되어 흩어졌다.
“이, 이런!”려 보라는 명명백백한 도전이었다. 사양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모용휘는 신속하게 좌측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와 거의 동시에 자군의 신 형이 왼쪽 편에서 나타났다.
서걱!
검광이 자군의 신형을 깔끔하게 베고 지나갔다.
‘베었나?”
화라라락!
그러나 다시 한 번 베어진 자군의 신형은 꽃잎이 되어 흩어질 뿐이었다.
또다시 실패.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모용휘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유성보를 발휘해 그 자리에서 빠져나온 모용휘의 신형이 다시 나타난 곳은 오른쪽에 모습을 드러낸 자군의 바로 뒤쪽이었다.
은하유성검법(銀河流星劍法) 비기(秘)
은하일섬(銀河閃)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한줄기 유성처럼 검날이 공간을 내달린다. 속도가 문제였다. 그렇기에 모용휘는 모든 변화를 극히 억제하고, 은하유성검법 중 가장 빠른 검초를 발휘한 것이다. 검날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에 스친 비무대 바닥에 기다란 검흔이 아로새겨졌다.
“멋져어어어어어!”
분명히 손끝에 감촉이 있었는데……. 휘이이이이이익!
갑자기 어디선가 강풍이 불어오더니 흩어져 있던 꽃잎들이 사납게 흩날렸다. 그것이 모용휘의 시계(視界)를 가렸다. 그 순간은 짧았지만 자군이 모용휘의 뒤를 잡 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양염화화려려신공(陽炎華華麗麗神功)
오의
야마란풍(아지랑이 亂風)
모용휘는 등줄기에서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이 익숙한 감각은 틀림없는 살기. 그리고 공손절휘를 쓰러뜨린 초식이기도 했다.
모용휘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허점을 드러낸 작금의 상태를 어떻게든 회피해야 했다. 돌풍처럼 휘몰아치는 꽃바람 속에서 자군의 손에 쥐어진 붉은 부채가 검처 럼 모용휘의 등에 있는 사혈(死穴)을 찔러왔다.
‘위험하다!’
무조건 위험하다고 생각한 모용휘는 다짜고짜 몸을 앞으로 날렸다. 이미 검으로 막기에는 늦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급작스러운 동작이었기에 신체의 균형 이 무너졌고, 그 때문에 모용휘는 비무대 위에서 두 번 굴러야 했다. 그러나 구르는 반동을 이용해 금세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는 반격 태세에 들어가려 할 때,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주위에서 야유 소리가 들려왔다. 모용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뇌려타곤이라니, 정말 추하군.”
자군은 어깨를 으쓱하며 실망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뇌려타곤이란 못생긴 망아지가 바닥을 구른다는 의미를 지닌 보법으로, 사실 보법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법이었다. 딱하다는 시선으로 모용휘를 바라보며 자 군이 혀를 찼다.
“미(美) 같으면 죽어도 그런 꼴사나운 보법은 쓰지 않았을 거야. 너무 추하거든. 아, 자네 머리에 꽃잎이 묻었네.”
“까아아아악! 자군님, 최고예요.”
“역시 자군님이 훨씬 더 멋져.”
“사랑해요.”
모용휘에게 망신을 준 자군은 오만한 표정으로 부채를 활짝 펴더니 살살 부치기 시작했다. 사람을 깔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꽃잎과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낸 다음, 모용휘는 다시 자군 쪽을 바라보았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속도가 문제라 생각했는데…… 단순히 속도가 아니란 말인가…….’
확실치는 않지만 단지 속도 때문에 그의 움직임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좀 전의 감각은 마치 허깨비를 쫓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뭔가 비밀이 있는 건가?”
그러나 그 비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도저히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아직까지는 말이지.’
내키지는 않지만 아직 몇 번 술래잡기를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모용휘는 꾸욱 강하게 검병을 움켜쥐었다.
몇 번의 술래잡기를 계속했지만, 자군은 번번이 모용휘의 손을 빠져나갔다.
벨 때마다 꽃잎이 되어 흩어지는 ‘산화무영’은 확실히 기이한 보법이었다. 만일 여자가 썼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보법이라고 감탄했을 것이다. 그만큼 미적으로 빼 어난 보법이었지만,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 보법도 자기 세계에 푹 빠져 있는 자군이 펼치니 모용휘와 공손절휘로서는 어째 보면 볼수록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마음이 불편한 것은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런! 옷이 더러워졌군…… 빤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눈처럼 새하얀 백의 여기저기에 먼지와 얼룩이 묻어 있었다. 좀 전에 비무대 위를 구른 탓이다. 머리카락과 옷에 묻어 있던 꽃잎은 털어냈지만, 이미 더럽혀진 옷 은 다시 빨 때까지는 깨끗해지지 않는 법이라는 게 모용휘의 평소 지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싸움 중이었고, 싸움 도중에 먼지를 털고 흩어진 옷고름을 다시 매며 의관정제할 만큼 분별이 없지는 않았다.
주위에 흩날리는 꽃잎 때문에 시계가 선명하지 못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좀 전처럼 또다시 비무대 위를 구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으음……. 하지만 역시 그건 사양하고 싶군.’
결벽증이 있는 모용휘로서는 그런 불결한 사태가 또다시 일어나는 것은 어찌 되었든 피하고 싶었다. 싸움에도 깔끔함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자군은 신법의 위력에 비해 공격의 예리함은 약하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모용휘의 손을 잘 빠져나가고는 있지만, 치명적인 일격은 안겨주 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평범한 초식이 비범한 보법을 만나 위협적으로 변했을 뿐이었다.
‘저 홍선(紅扇)에 직접 검을 맞댈 수 있다면……..
검력(劍力)에서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무기의 공방과 초식의 정묘함으로 싸움을 끌어간다면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자군이 모용휘와 항상 일 정 거리 이상을 둔 채 빙글빙글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 좀 전 같은 허점이 드러났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치고 들어왔다.
지금 자신은 상대의 간합(間合) 안에서 싸우고 있었다. 시간적 거리[間], 공간적 거리[合] 모두 상대에게 장악되어 있는 것이다.
‘우선 나 자신의 간합을 되찾아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거리를 좁혀야 했다.
모용휘는 목표를 바꾸었다.
자군의 신형을 베려는 생각을 버리고, 어떻게든 자군이 들고 있는 무기인 홍선을 노리기 시작했다. 저 홍선에 부딪치기만 한다면! 저걸 베어버리던가, 아니면 저 무기를 통해 검력을 상대에게 실어 보내던가 할 수 있었다.
어차피 홍선은 무기. 본능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신체랑 달리 보다 쉽게 접촉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군의 방어 본능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피 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들고 있던 무기를 사용해 막게 마련이다.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더라도 한순간이라도 발을 묶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당신은 한낮에 유성을 본 적이 있소?”
모용휘가 자군에게 느닷없이 물었다.
“물론 본 적이 없네.”
여전히 보법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며 자군이 대답했다. 꽃바람이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내 장담하건대 그건 무척 아름다운 광경일 것이오.”
“호오, 얼마나 아름다운가?”
미의 사도를 자처하는 자군답게 아름답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모용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직접 확인해 보시오, 지금부터 보여줄 테니. 한낮의 유성을 말이오!”
우우우웅!
그 순간 모용휘의 검이 눈부신 백광을 내며 울기 시작했다. 막대한 기가 검끝에 집중되어 갔다. 모용휘는 숨을 한 모금 들이켠 다음, 백열하는 검을 휘둘렀다.
은하유성검법(銀河流星劍法) 오의(義)
은하유성만천銀河流星滿天)
쉬이이이이이이이이익!
비무대의 사방을 향해 모용휘의 검기가 유성이 되어 쏘아졌다.
비무대 전체가 눈부신 유성우로 뒤덮였다.
“허억!”
자군은 자신도 모르게 우아하지 못한 기함을 터뜨리며 몸을 피했다. 그러나 사방을 제압하는 이 유성우의 비는 피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더 이상 모양새 를 따질 겨를이 없어진 자군은 진기를 주입한 홍선을 활짝 펼치며 날아오는 유성검기를 막아냈다.
“큭! 아, 아름답다.”
자군의 입에서 신음인지 감탄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엄청난 압력이 부채를 타고 전해진 탓이다.
요즘 들어 혁중에게 단련받은 덕분에 더욱더 예리해지고 강해진 모용휘의 검기는 손쉽게 막아낼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원래부터 ‘은하유성만천’은 일 대일을 위한 초식이라기보다는 일(一) 대다(多)를 위한 초식이었다. 때문에 검기가 미치는 범위는 넓었지만 위력이 감쇄되는 것까지는 피할 수가 없었다. 그 탓인 가, 유성검기는 진기가 주입된 붉은 부채를 꿰뚫지 못했다.
“하하하하하! 꽤 아름다운 초식이다만 이 정도로 나의 아름다움을 저지할 순 없다.”
가까스로 유성검기를 튕겨낸 자군이 스스로의 당황을 감춘 채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소.”
어느새 모용휘의 신형은 자군의 눈앞에 당도해 있었다. 발을 묶어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화려한 초식이다 보니 눈속임에도 도움이 되었다. “으갹!”
또다시 자군의 입에서 괴상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합!”
검광이 위협적인 빛을 발하며 쇄도했다. 자군은 급히 붉은 부채를 접어 검격을 막아냈다.
콰!
그러나 검날은 쇠로 된 붉은 부채를 그대로 파고들어 갔다. 이 순간을 위해 모용휘는 일부러 힘을 아껴두었던 것이다.
그렇다.
좀 전의 은하유성만천은 겉은 무척 화려했지만, 전력을 쏟아 붓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남긴 그 힘을 검끝에 실어 보냈다.
검력이 부채를 타고 자군에게로 전달되어 갔다. 접인지기가 발동되었는지, 자군은 부채를 떼려야 뗄 수도 없었다.
모용휘는 기세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자군의 부채를 두 동강 냈다. 그러고도 검의 위력이 가시지 않아 검날이 내달렸다. 사나운 검풍이 자군의 허리를 향해 휘몰아 쳤다.
“히익!”
자군은 부채를 움켜쥔 채 다급히 몸을 뒤로 굴려야 했다. 덕분에 아름다운 품위 유지에 대해 잠시 망각하고 말았다.
데굴데굴데굴데굴.
네 번을 구른 다음에야 자군은 자세를 바로 할 수 있었다. 다시 일어선 자군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달아놓은 장신구가 흩어져 있고, 깔끔하게 차려입었던 옷도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한껏 차려입었던 만큼 한번 흐트러지니 더 엉망이었다. 가장 꼴사나운 건 들고 있던 멋진 붉은 부채가 두 동강이 나 있다는 것이었 다. 거기에 모용휘가 마지막 확인사살을 했다.
“저런. 머리카락에 꽃잎이 들러붙었소.”
손가락으로 자군의 머리를 가리키며 좀 전에 자신이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준다. 자군은 자신의 아름다움이 무너졌다는 수치심에 인상을 찡그렸다.
“아, 그리고 본인보다 두 번 더 굴렀구려.”
혹시 깨닫지 못했나 해서 말이오, 라고 덧붙인다.
“크으으으! 나에게 이런 추한 모습을 보이게 하다니!”
자군이 미간을 구기며 인상을 잔뜩 썼다. 어금니를 꽉 문 탓인지 턱 쪽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자, 자군님이 인상을……. 저 아름다운 얼굴을 저렇게 구기시다니!”
“평소에 주름이 생긴다고 그렇게 피하시던 일을.”
“그렇게까지 분노하셨다는 건가…….”
여인들은 자군이 그렇게 아끼는 얼굴을 구기며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며 덜덜 몸을 떨었다.
“미를 모욕하다니. 죽여 버리겠다!”
일그러진 자군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미 당신의 무기는 부러졌소. 그만 깨끗하게 항복하는 게 어떻소?”
그러자 자군이 코웃음을 치며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무기? 난 이 홍선이 내 무기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
모용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 부채는 단지 풍류를 위한 물건일 뿐, 내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무기는 따로 있다.”
“그것이 무엇이오? 어서 내보여 보시오.”
“자네는 아름다운 꽃에는 가시가 있다는 말 들어봤나?”
“들어봤소.”
모용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자군의 얼굴에 득의만면한 미소가 퍼졌다.
“이게 바로 내 가시다!”
슈욱!
자군의 오른손이 내뻗어진 다음 순간,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며 모용휘의 뺨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갔다.
팡!
그다음 순간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잘려 나간 모용휘의 머리카락 몇 올이 하늘하늘 떨어졌다.
“검이 닿지 않는 거리였는데..
그렇다고 검기도 아니었다.
“보았느냐? 이것이 바로 나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가시, 홍장미편이다!”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자군의 손에는 어느새 피처럼 붉은 채찍 하나가 들려 있었다. 자군은 모용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선언했다.
“너의 몸을 모판으로 붉은 꽃을 피워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