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겁 혈신 위천무의 공포와 악명이
전 무림을 공포의 도가니로 밀어 넣고
절망의 지옥불에 지져 버린 그 시대를
무림인들은 천겁 혈세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제2의 천겁 혈세를 막는 것이야말로
전 무림인들의 지상 과제였다.
사교성 전무의 재미없는 녀석
천무 식당, 이 얼마나 개성 없고 불성실한 이름인가. 건축가에 대한 애정이나 배려라고는 전혀 없는
무성의한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천무학관 안에 있는 식당이니 천무 식당이라면
왕씨집 둘째 아들 이름이 왕이(王二)라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비류연은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이런 이름을 붙여 놓은 학관의 상층부에 항의해 볼 생각도 했지만, 그래 봤자 생기는 것도 없으니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자기 자신에게 이득을 주지 않는 쓸데없는 일에 끼여드는 것은 그의 평소 생활 신조와 어긋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름보다 더 기막힌 것은 식단이었다. 기숙사 유일의 공동 식당인 이곳의 광활한 식단표에는 오직 단 하나의 이름만이 외로이 걸려 있었다. ‘천무 정식’, 정 말이지 이름하고는 쯧쯧쯧….
사실 이런 대규모의 공동 식당에서 다양한 메뉴와 맛을 요구한다는 건 무리라는 것도 사실이다. 이상은 멀고 현실은 험난하기 때문이다. 거의 천여 명에 가까운 인 원의 식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의 능률을 위해 단순하게 한 가지의 식단으로 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하니 뭐라고 욕을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제반 사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단 한 가지뿐이라는 것은 너무했다. 최소한 두 가지는 되어야 골라 먹는 맛이라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비류연은 밥이 공짜이기만 하다면 요리의 맛이 너무하다고 인상을 찌푸릴 선을 넘지 않는 이상 너그럽게 용납할 의향이 있었다. 식대(밥값)로 주머니에서 은자가 빠져나가는 무시무시한 공포와 살이 저미는 아픔보다는 무미, 건조, 단순한 한 가지 식단에 자신의 미각을 희생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화강암처럼 단단하고 굳은 결심으로 식당에 들어선 비류연이었지만 다행히 상황은 상상만큼 심각하지 않았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구수하고 향긋한 냄 새가 그의 후각을 자극한 것이다. 향이 좋은 요리라면 그 맛이 절망적으로 나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에 비류연은 내심 안심할 수 있었다.
오늘의 저녁 식단은 계육 요리와 두 가지의 야채 무침, 그리고 만두국이었다. 그래도 차 한 잔까지 후식으로 나오는 걸 보아 꽤나 신경 쓴 흔적이 엿보였다. 그릇은 직사각형의 철판에 3개의 네모난 작은 홈과 2개의 큰 사각 모양이 안으로 오목하게 들어가 있었는데 큰 곳에는 밥과 국을, 작은 곳에는 반찬을 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재질은 쇠로 만들어져 있어 약간 무거웠다.
국을 제외하고 1식 3찬이라, 약간 부족한 기분은 들었지만 그런대로 합격 점수를 줄 만했다. 배식은 양쪽 가에서 두 줄로 진행되었는데 다행히 한꺼번에 몰리는 시 간이 아니라서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이게 누구야? 화산(華山)의 저능아, 문파의 수치가 아닌가?”
6인용 식탁에 둘러앉아 열심히 식사에 열중하고 있는데, 돌연 저녁 식사를 방해하는 목소리가 비류연의 뒤에서 들려 왔다. 충분히 듣는 사람의 불쾌감을 유발하는 재수 없는 목소리였다. 웬 놈들이 감히 어르신의 우아한 식사를 방해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비류연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출처를 쫓았다. 다른 이들도 비류연의 시 선을 따라 목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시선이 멈춘 곳에는 적색 무복을 입은 청년과 여인이 오만한 눈빛을 한 채 서 있었다. 순간, 윤준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안색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매 우 어두웠다.
“사, 사형……. 저, 그 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윤준호가 허둥지둥포권의 예를 취하며 인사했다. 침착하지 못한 그의 어눌한 행동에 말을 걸어 온 청년과 여인은 다시금 눈살을 찌푸렸다. 윤준호가 그들을 아는 척하자 효룡이 물었다.
“누군가?”
“예, 화산파의 동문 사형과 사저로 이쪽 사형의 성함이 종자, 리자, 학자, 이쪽 사저의 옥명은 추자, 가자, 연 자 되십니다.”
사제 윤준호를 통해 정식으로 소개를 받았는데도 화산 낙안봉 적전 제자 출신인 이들은 단지 고개만 한 번 까딱거릴 뿐이었다. 아무리 비류연과 그 일행이 학관 후 배라지만 이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매우 건방지고 도도한 척하길 좋아하는 인물들임이 분명했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이들의 행동이 일행의 마음에 들 리 없었고, 당연히 오는 인사도 없는데 가는 인사가 뭐 필요 있겠느냐는 생각에 비류연 일행도 단지 고개를 까딱거려 보였을 뿐이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 들어온 것이냐?”
다짜고짜 사형 종리학이 추궁하듯 물었다. 이런 곳에서 같은 동문끼리 만났다면 서로 기뻐하고 반가워해야 정상인데 이들에게서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피맺힌 원수지간처럼 냉랭하고 싸늘하기 그지없는 게 아닌가.
“어떻게 네놈 따위가 여기에 들어올 수 있었느냐?”
마치 위압하는 것 같았다.
“사… 사형…….”
종리학이 언성을 높이자 마음 약한 윤준호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종리학은 쥐를 모는 고양이처럼 윤준호를 궁지로 몰아세우며 핍박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 의 동문 사제가 학관에 입학한 사실이 달갑지 않다는 듯 말하고 있었는데, 동문의 입관 합격은 곧 사문의 영광으로 여겨야 함에도 그가 불만을 품고 달갑지 않게 느
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흥, 보나 마나 태사부님께 온갖 추잡한 아양과 아부를 다 떨어서 되지도 않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들어왔겠지.”
윤준호를 몰아세우는 종리학을 응원이라도 하듯 추가연이 냉소하며 말했다. 그녀 역시도 윤준호의 입관이 달갑지 않은 듯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당치도 않은 오해입니다.”
윤준호는 애써 변명을 해 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의 사형과 사저는 처음부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긴 뭐가 아냐? 화산파 시절부터 태사부님의 귀여움을 받더니 이제는 태사부님을 부추겨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감히 이곳 천무학관에 들어와? 너 따위 놈은 우리 화산파의 수치야, 수치!”
종리학과 추가연은 윤준호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몰아붙였다. 자신의 동문 사형과 사저인 종리학과 추가연에게 번갈아 가며 질타를 받은 윤준호는 금세 울상이 되어 버렸다. 그의 여린 마음으로는 사형과 사저의 심한 추궁이 견딜 수 없이 슬펐던 것이다. 더군다나 반격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윤준호는 입을 봉 합당한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그때 보다 못한 장홍이 옆에서 윤준호를 거들고 나섰다.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언뜻 이야기를 듣자 하니 준호의 태사부님이 그를 아끼는 마음에 없는 실력에도 승룡패를 주었다는 것처럼 들렸는데, 틀렸습니까?” 장홍은 마음에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미우나 싫으나 재수 없으나 두 사람이 선배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일단 존칭을 써 주었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들면 언제 반말 로 바뀔지 모를 일이었다. 서열에 얽매여 예의나 따질 장홍이 아니었던 것이다.
“틀리긴, 아주 정확하네. 이 녀석이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태사부님께 아양을 떨어 부끄럽게도 승룡패를 손에 넣은 것이지. 창피스러운 놈!”
종리학은 마치 침이라도 내뱉을 기세였다. 다시 장홍이 물었다.
“제가 알기로는 현재 화산파에서 준호에게 태사부님이라고 불릴 만한 분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혹시 전대 화산파 장문인이셨던 매화검선 유환권님이 아 니십니까?”
“맞다!”
종리학은 싸늘하게 대답했다.
“이상하군요?”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
“매화검선 유환권님이면 50년 이래 화산 최고의 검법 고수로 검의 경지가 조화경에 들었다는 분이 아니십니까? 그런 분이 한낱 인정에 얽매여 사물을 그릇되이 보고 선택을 잘못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그분은 화산파의 정신적인 지주나 다름없는 분! 그런 분의 선택에 이의를 달고 임의적으로 해석한 후 믿지 못한다면 그분을 의심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닥쳐라! 불경스럽게 감히 태사부님을 함부로 입에 담다니, 무엄하다.”
장홍의 예리한 반격에 그들은 순간 당황했다. 가장 아픈 곳을 가장 예리하게 찔러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당황한 사람의 상투적인 수법으로 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자신들의 동요가 남에게 드러나는 것을 염려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장홍이 당당하게 냉소했다.
“후, 불경이라니, 그건 미처 생각지 못했군요. 그런 위대한 분의 선택을 보잘것없는 안목으로 의심하는 당신들이야말로 지금 더 큰 불경을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니 겠소?”
‘보잘것없는 안목’이란 대목을 특히 힘주어 강조하며 장홍이 말했다.
“그런 억지가 어디에 있느냐? 썩 닥치지 못할까!”
종리학이 시뻘게진 얼굴로 외쳤다. 정곡을 찔린 인간의 한심할 정도로 전형적인 반응이었다.
“억지란 것은 그쪽이 먼저 부렸다고 생각하는데요?”
장홍의 날카로운 시선이 종리학의 얼굴에 가 닿자 종리학의 얼굴은 모욕감으로 붉게 물들었다. 감히 후배 주제에 하늘 같은 선배에게 대들다니, 건방진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미 윤준호가 재능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벌써 싸움은 시작된 것이고 한 번 벌어진 싸움, 이대로 간단히 물러설 수는 없었다. 자존심을 걸레 쪼가리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이미 화를 주체하지 못해 풀무질을 한 쇠처럼 뻘겋게 달구어져 있었다.
“모르는 소리 함부로 지껄이지 말아라. 매화 검법도 쓰지 못하는 얼간이 녀석을 어찌 화산파의 적전 제자라 할 수 있겠는가? 내 입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뿐이 다.”
이게 무슨 소리야? 효룡과 장홍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청력과 언어 독해 능력을 심각하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방금 그들은 도무지 이해 불가능한 말을 상대로부터 들었던 것이다. 오직 비류연만이 두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사태의 추이를 잠자코 지켜볼 뿐이었다.
다시 종리학의 매서운 시선이 자신의 사제 – 그 자신이 사제로 인정하고 있는지 상당히 의심스러운 윤준호를 향했다.
“매화검 한 초식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너 같은 화산의 저능아가 이 신성한 천무학관에 들어왔다니 사문의 수치이자 학관의 오욕이다. 양심이 있고 아직 수치심 이 남아 있다면 당장 짐을 싸서 이곳을 떠나라.”
종리학의 폭언은 인정 사정이 없었다.
“사… 사형!”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형편없이 재수 없는 녀석이군. 면상을 한 대 후려갈겨 줄까? 그러면 답답한 속이 좀 시원하고 상쾌해질 텐데. •효룡은 그렇게 곰곰이 생각 해 보았다.
“만일 너에게 더 이상의 수치심이 남아 있지 않아 여기 그대로 머물겠다면 사문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라! 뭐 네 녀석의 존재 자체가 폐가 되긴 하지 만 말이다.”
그는 오만했다. 그의 말과 행동, 표정 등의 모든 것에서 자신이 윤준호 따위보다야 확고한 우위에 서 있다는 자만심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그의 오만한 언행이 비 류연 일행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을 리 만무했다.
“말 조심 하시오!”
상대의 오만하고 무례함에 참다 못한 효룡이 나섰다. 그러자 종리학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호, 선배한테 무슨 말버릇이지? 화산 지진아와 그의 친구들?”
종리학의 말투에 효룡과 장홍은 표정을 굳히며 분개했다. 하지만 비류연은 아직 별다른 반응을 내보이지 않고 있어 그 속내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사람을 깔보 는 듯한 시선, 왠지 뼛속 깊은 곳과 머리 속 끝까지 권위와 오만과 독선으로 똘똘 뭉친 놈인 것 같았다. 한마디로 왕 재수, 상대할 가치도 없는 놈이 분명했다.
“……”
하지만 윤준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종리학의 모욕적인 발언에 한마디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분위기가 점점 더 험악하게 변해 가고 있을 그때, 안 절부절못하는 윤준호를 흘끔 쳐다본 비류연이 효룡에게 물었다. 그는 올해 갓 입관한 신입생답지 않게 이것저것 아는 게 많아 질문하기 아주 편했기 때문이다. 그런 데 그의 질문은 좌중을 단숨에 충격의 도가니로 밀어 떨어뜨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근데 매화 검법이 뭐야?”
비류연은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12대 검법 중 하나인 매화 검법을 두고 이 세상에 그딴 게 있었냐는 투로 효룡에게 물었다.
“아니 자네, 그것도 모른단 말야?”
효룡이 놀라 되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12가지 검법 중 하나를 모른다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류연이 만약 그에게 ‘해 뜨는 쪽이 어느 쪽인지 혹시 알아?”라고 물었어도 이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종리학과 추가연도 매섭지만 어의가 없다는 눈빛으로 비류연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강호에 몸담고 있는 자 중에 만일 화산파의 매화 검법을 모르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십중팔구 얼간이 내지는 바보 천치가 틀림없을 것이다. 버젓이 상식이라는 게 존재하는 세상에서 어 디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하지만 비류연의 질문은 농담도 장난도 아니었다. 그는 진짜로 아는 게 전혀 없었기 때문에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소박한 욕구에서 정중하게 물었을 따름이었 다.
비류연이 비록 아미산 시절에 화산파 출신의 화설옥과 조천우를 제자로 둔 적이 있었다지만, 합숙 훈련 기간 중에는 그들에게서 매화 검법의 매(梅) 자도 들어 보 지 못한 처지였다. 견식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시킨 것 대부분이 그들의 절기와는 눈곱만큼도 상관없는 가사 노동과 부업이 대부분이었고, 가르침 – 아직도 비류연은 그것들을 가르 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또한 거의 일방통행이었기 때문에 화산파는 물론 주작단 제자들 전부의 절기에 대해서는 백지나 다름없었다.
주작 단원 16명 모두 한결같이 밥하랴, 빨래하랴, 나무하랴, 구슬 꿰랴, 떠넘겨진 일이 산더미 같은데 언제 자신의 무공 절기를 되돌아 볼 시간이나 가질 수 있었겠 는가. 개인의 여가 시간을 남겨 줄 정도로 호락호락한 비류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질문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황당무계하고 어처 구니없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더라도 말이다.
그 질문의 황당무계함에 관계없이 효룡은 어이없음에 뒤틀리는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며 친절하게도 그의 물음에 답해 주었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는 것처 럼 느껴진 것은 비류연의 착각이었는지는 모른다. 혹은 그가 정확하게 제대로 봤던가…….
“매화검법이란 말이야, 화산파의 독문 검법(獨門劍法)으로 매화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양을 본 떠 창안되었다고 전해지지. 매화 검법의 역사는 화산파의 역사나 다름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고 오래된 검법이야. 총 36절 72초 864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로부터 수많은 갈래의 아류 검법들이 창안되고 연구되어졌지. 하지 만 아직도 이 매화 검법의 끝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없어. 역대 화산파 역사 중에 수많은 검의 명인들이 끊임없이 배출되었지만 아무도 당당히 매화검의 끝을 보았다 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 그만큼 난해하고 심오한 검법이라는 이야기지.
이건 내 추측인데, 아마 화산파에는 현재 강호 무림에 알려진 일반적인 매화 검법 외에 그들에게만 비전되는 또 다른 매화검이 있을 거라고 추측돼. 현재 알려진 매화 검법만으로는 사실 화산파 역대 검객들의 자존심을 꺾기에는 턱없이 무리가 있거든. 이 매화 검법을 계승 발전시킨 수많은 발전 개량형의 검장법(劍掌法)들이 화산파엔 아주 많이 존재해.
그것들이 지금은 화산파를 지탱하는 힘이자 기둥이며 기틀이 되고 있지. 예를 들면 매화산수나 낙화장 같은 것들이지. 이들 모두가 다 매화 검법의 무리(武理)를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수법(手法)과 장법(掌法)들이야. 그래서 모두들 화산파라고 하면 으레 매화 검법을 떠올리지. 화산파 무공 절기의 모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거 든. 지나가는 세 살 코흘리개 어린애도 다 알고 있는 화산파의 매화 검법을 모르다니 자네는 정말 여러모로 사람을 경탄케 하는 재주가 있구먼. 놀랍고 신기할 따름 이야. 정말 놀라워!”
“하하, 뭐 신기할 것까지야 있나. 이 몸이 원체 뛰어나서 그런 거지. 그건 그렇고 정말 자넨 아는 게 많아서 정말 편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서 때론 그 점이 참 신 기하기도 하지만 말이야.”
“뭐, 신기해 할 것까지야 있겠나. 다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지, 하하하!”
비류연의 말에 효룡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충 얼버무렸다. 효룡은 정말 아는 게 많았다. 어떤 때 보면 마치 무슨 노련한 강호인처럼 보이기도 했고, 아니면 천무 학관에서 몇 년은 족히 생활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학관 사정이나 강호 정세에 대해 훤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도대체 화산파라는 이름을 가진 꽤 유명하다고 주장하는 문파의 발전과 비류연이 대관절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들이 비류연에게 떡을 해 줬 나, 밥을 해 줬나. 하다 못해 시중을 들어 주길 했나? 무엇 하나 해 준 게 없는 아쉬울 것 없는 처지 아닌가.
그런데 자신과 아무런 개연성도 없는 것들이 감히 본인의 성스러운 식사 시간을 방해하며 거기에 더해 자신의 입맛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저 지르고 있었다. 비류연의 마음 한 구석에서 심한 불쾌감이 뭉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과 머리가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불쾌지수 급속히 상승중. 미각 감도 하락이 우려됨. 불쾌지수 저하를 위한 조속한 긴급 조치 요망.’
비류연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아가 이러한 마음의 요청에 대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종리학의 말은 윤준호에게 결정적인 심리적 타격을 입힌 모양이었다. 그것 은 그의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쥐약이었다. 풀이 팍 죽고 의욕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윤준호는 온몸으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음 속 깊은 곳부터 쓰 라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이…….?
한없이 위축되어 가는 윤준호를 바라보는 장홍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장홍은 이런 부류의 인물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보다 못한 실력과 위치에 있는 자들을 조 롱거리로밖에 여기지 않는 그런 오만하기 짝이 없고, 싹수머리 반푼어치도 없는 돼먹지 못한 족속들. 경멸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임이 분명했다.
사람은 각기 타고난 재능과 개성이 틀린 법, 남들보다 실력이 조금 모자라고 재능이 떨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모든 이가 천재라면 이 세상은 얼마나 단조롭고 살벌하겠는가. 그런데 실력이 미천하다는, 겨우 그런 작위적인 평가 하나만으로 같은 동문이자 자신들의 사제를 쓰레기 취급하듯 몰아세울 수가 있는 것인지… 그런 그들의 인정머리 없는 태도에 장홍은 크나큰 분노를 느꼈다.
한편 차츰 분노에 사로잡히고 있는 장홍과는 또 달리 자신의 밥맛 급속 저하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저 녀석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다시 입맛이 돌아올지 그 처 리 방안을 두고 비류연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불쾌지수 하락을 위한 무슨 화끈한 방법이 없을까? 이리 저리 생각을 굴리던 비류연의 시야에 문득 식사 도중 휴식하고 있는 자신의 식판이 들어왔다. 순간, 그의 뇌리를 번갯불처럼 스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그냥 식판 모서리로 콱 찍어 버릴까??
비류연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물론 표정 변화도 없었다. 넓적한 면으론 때려 봤자 타격이 적을 것 같으니 얇고 날카로운 모서리 쪽으로 정수리 부분을 찍어 버리는 게 어떨까, 비류연은 심각하게 고려해 보기로 했다.
확실히 식판의 단면보다는 모서리 쪽이 목표물에게 훨씬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힘의 집중률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봐도 매우 적절하 고 훌륭한 생각인 것 같다고 자화자찬하며 비류연은 자신의 식판 모서리를 조용히 쓰다듬어 보았다.
그는 지금 매우 솔직하고 진지했다. 또한 그럴 만한 충분한 능력과 의향이 있었다. 당장이라도 주위의 요청과학관에서 발행해 주는 한 장의 면죄부 – 본 살인에 대 해 죄를 묻지 않겠다는 간단한(?) 허락 – 만 있다면 손에 쥐고 있는 식사용 나무젓가락 한 쌍만으로 두 사람의 미간에, 그들의 저용량 불량 뇌(腦)를 식히기 위한 친 절하고 시원스런 통풍구를 뚫어 줄 수도 있었다. 그러니, 강철 제품인 식판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가운데 중지로 식판을 가볍게 때려 들리는 맑은 울림을 들어 보니 강도(剛度: 금속성 물질이 끊어지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힘의 정도로서 强度가 아님)면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대장간에서 거의 6년 간을 혹사당한 경험이 있는 숙련된 검장인 비류연은 이 식판이 마모가 적고 강도는 매우 높은 훌륭한 장인의 작 품임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모종의 위험(?)을 방지한다는 의미로 모서리 부분을 약간 둥그스름하게 만들어 놨는데 그 정도쯤은 비류연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었 다. 제작자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미리 예측하는 선견지명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식판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흉기로 돌변할지도 모른다는 예측 말이다.
식판 위의 내용물은 이제 충분히 자신의 뱃속으로 들어가 영양 공급에 성공한 사실을 확인한 비류연은 주저 없이 식판을 날릴 결심을 했다. 아쉬울 것도 망설일 것 도 없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겠지, 뭐!’라는 심정으로 비류연의 손은 어느새 자신의 식판을 잡았다. 마침내 단단한 식판이 날아가 두 사람의 정수리를 쪼개기 위 한 행동에 돌입하기 직전, 그의 손이 멈칫하며 일단 정지해야 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만두시오!”
낮지만 또렷하고 힘있는 목소리였다. 한참이나 윤준호를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 목청을 높이던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방금 들려 온 목소리의 주인 공이 서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모용휘였다. 두 사람의 천박한 말투와 안하무인격 언동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침내 모용휘가 나선 것이다.
모용휘는 자신의 실력도 하찮은 주제에 얄팍한 재주를 과신하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가장 혐오했다. 그는 정직과 도덕과 규칙 준수의 화신이 었던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그는 불치병인 결벽증을 앓고 있는 중증 환자였다. 그 말은 그가 악하고 그릇된 일을 극단으로 미워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 기와도 동일시되는 말이었다. 그의 결벽증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양쪽 모두에서 극도의 청결함을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법과 규칙의 화신이자 결벽증 환자인 모용휘의 날카롭지만 섬세한 신경이 저런 날라리 녀석들을 용납할 리가 없었다.
“넌 누구냐?”
웬 버르장머리없는 놈이 감히 선배의 대화를 방해하느냐는 책망 어린 시선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한 사내를 향했다. 뭇 여인들의 가슴을 방방 뛰게 만들기에 충분 한 준수한 얼굴, 절정 고수를 방불케 하는 다듬어진 기도, 그리고 눈처럼 흰 백색 장삼의 오른쪽 가슴에 수놓아진 일곱 송이 모란꽃.
하지만 모란꽃은 그 향기나 자태보다 어느 한 가문의 상징으로 더 유명한 꽃이었다. 그들도 강호인인 탓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금년의 신입생 중에서 일곱 송이 모란꽃의 주인으로 저 정도 기도를 뿜어 낼 인물은 그들이 기억하기론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순간, 종리학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
“네가 바로 그 유명한 칠절신검 모용휘인가?”
종리학은 알면서도 확인 겸 물어 본 것이었다.
“그렇소. 불초가 바로 모용휘라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오.”
진품 감정 서류에 본인의 확인까지 받자 종리학은 이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상대해도 좋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그와 그녀가 속한 구정회(九正會)에서도 이번에 가장 민감하게 신경 쓰고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거물급 존재였다. 그의 직권으로는 함부로 판단하여 상대할 수 있는 인 물이 아니었다. 종리학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계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느닷없는 칠절신검 모용휘의 출현과 돌연한 개입, 이건 도무지 예상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 다.
“선배가 되어 후배를 감싸 주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깔보고 조롱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소?”
모용휘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의사를 언제 어디서나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실력과 자격을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언행에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찾을 수 없었다.
“맞아, 맞아!”
장홍과 효룡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듯 입을 모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태도에는 명색이 선배에 대한 예의가 눈곱만큼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리고 비류연도 의외로 등장한 모용휘 때문에 식판 가격 실행 계획에 연기 신청을 내고 잠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뭔가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무의식적인 행동만은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제 대결 구도는 화산의 연놈과 모용휘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었다. 상대를 매섭게 노려보는 종리학과 추가연의 눈에 분명 독기가 느껴졌다. 모욕을 받았다고 생 각하는 모양이었다.
“이건 우리 사문 내의 문제이니 자네가 상관할 바 없네.”
독기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쏘아보는 추가연 옆에 서서 종리학이 말했다. 원래 강호에서는 무림의 묵계에 따라 다른 문파의 집안 사정에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 관 례였다. 그들은 지금 모용휘의 간섭 행위가 다른 문파의 집안 일에 끼여드는 월권행위임을 질책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용휘는 멋지게 뻗어 있는 자신의 눈 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찌 되었든 나의 동기요. 그리고 사형이 되어 사제를 핍박하기만 하다니, 남들이 알면 그 속 좁음에 두고두고 비웃을 일이 아니겠소?”
다시 종리학의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되었다. 감히 새까만 후배 주제에 뭘 믿고 저렇게 오만방자한지 믿을 수 없다는 빛이 역력했다. 아무런 장애 없이 인생의 탄 탄대로를 걸어 온 그들로서는 이런 험한 경우는 처음 당하는 터였다. 마음 약한 윤준호는 장내의 험악한 분위기에 안절부절못하며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심약 한 그가 이 험한 분위기를 쇄신시킨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본인은 식사 도중에 누가 방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학관의 선배라지만 그런 무례를 범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되는군요. 이제 그만 자리를 비켜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누군가의 무례로 못 다한 식사를 마저 끝내고 싶군요.”
들리는 말은 정중했지만 따져 보면 자신들은 모용휘 본인의 먹다 만 식사보다 덜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현재 시각, 모용휘는 자신의 심기가 매우 불쾌하다는 뜻 에서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는데 역시 잘생긴 사람은 찡그려도 멋있어 보였다.
역시 못생긴 사람이 인상을 찡그리면 두 배는 더 못생기게 보이는 것에 비해 너무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추가연은 주책없이 생각했다. 그녀의 수준은 겨우 이 정도였던 것이다. 그녀도 알고 보면 그저 성질 나쁜 보통 여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본능은 모용휘가 멋진 미남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데 실패해 버 렸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도무지 모용휘에 대한 악감정이 생기지 않는 추가연이었다. 하지만 추가연의 그런 심경 변화를 모르고 있는 종리학이 위협조로 말을 내뱉 었다.
“앞으로 두고 보지. 자네가 얼마나 잘났는지 지켜보겠네. 되도록 조심하는 게 좋을 걸세.”
두 사람은 몸을 휑하니 돌려 식당 밖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그들의 대립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주위의 다른 이들도 다시 자신의 식판으로 고개를 돌려 미처 진 행하지 못했던 식사를 재개했다. 당연히도 그들의 음식은 모두 식어 있었다.
한쪽은 천무학관에 들어오기 전부터 강호를 진동시킨 유명한 천고의 기재, 나머지 둘은 천무학관 2년차이자 세력 쟁쟁한 구정회(九正會)의 회원. 셋의 대결 구도 에 흥미가 유발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물론 이때까지도 주위의 시선에 비류연과 그의 일행(효룡, 장홍, 윤준호)은 들어오지 않았다. 좌중들의 관심사는 오직 모용휘 일인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형, 사매, 편히 들어가십시오.”
그런 모욕을 받고도 윤준호는 사람 좋게도 정중히 그들을 배웅했다.
“이봐, 준호, 저따위 수준 이하의 무례한 자들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예의란 쌍방 통행이지 한쪽의 일방통행이 아니거든.”
윤준호의 어수룩한 행동을 보다 못한 장홍이 말했다. 저런 녀석들이 용케도 천무학관에 들어와 이 신성한 무학의 터전인 천관 물을 흐려 놓는다고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되겠지.”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요만치도 안 드는군.”
“저런 녀석들을 봐서 뭐 하게? 안 보는 게 더 낫지. 혹시라도 다음에 만나면 더 이상의 만남은 없을 거라는 걸 내가 보장하지. 세 번째 만남은 절대 없을 거야. 그 점 에 대해선 안심하라고.”
저런 돼먹지 못한 재수 옴 붙은 놈 아니 연놈이라 해야 하나? – 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비류연이었다. 아니, 우연이라도 한 번 더 부딪치게 된다면 완전히 재회 불가능한 모종의 상태로 만들어 줄 요량이었다. 그들과의 세 번째 만남을 허락할 만큼 비류연의 마음은 너그럽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재수 없는 얼굴들이 휑하니 그들 앞에서 사라지자 비류연은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식판의 예리한 모서리를 쓰다듬으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쩝, 아깝네…….?
끝내 자신의 식판 모서리에 피를 묻히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듯 비류연은 입맛을 다셨다. 식판도 무채색에서 붉은 빛의 유채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새롭게 단장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갑자기 모용휘가 끼여든 이후로 마지막까지 그가 끼여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생각보다 너무 쉽게 물러났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종리학과 추가연에게는 천행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모용휘에게 천 배를 해도 부족할 판이었다. 생명의 은인인데 그깟 절 천 번이 문제이겠는가.
이렇게 해서 다행스럽게도 기숙사 식당 식판 하나가 붉게 물들 뻔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들 대화에 약간의 틈만 있었어도 비류연의 식판은 사정없이 최단 거리를 이용해 그들의 정수리로 직행했을 것이다.
사내놈은 모서리로, 계집애는 그래도 여자라고 넓적한 면으로..
‘인정사정 봐 주지 말고 그냥 찍어 버릴 걸 그랬나…….?
그의 식판이 끝내 피를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듯 비류연은 다시 한 번 입맛을 다셨다. 두 가지 방법의 타격에 따른 효율성과 효과에 대한 검증을 마치지 못해 호 기심 해결을 유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 번에 기회가 되면 반드시 실험해 보고야 말리라고 결심하며 비류연은 다음을 기약했다.
천무 식당에서 식사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온 비류연과 그의 일행인 장홍과 효룡은 자신들의 방으로 윤준호를 끌고 오다시피 한 후 거의 반강제적으로 이야기를 나 누기 시작했다.
그들의 대화에 모용휘는 끼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식당에서 윤준호를 감싸 주는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고고하 다느니, 잘난 척한다느니 하는 욕을 퍼붓지는 않았다.
“사교성 전무의 재미없는 녀석!”
모용휘에 대한 평가는 이 정도로 끝났지만 비류연은 자신의 식판에서 구사일생으로 생환한(?) 녀석들을 용서해 줄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비류연은 그 들을 좌절시키고 절망에 빠트릴 또 다른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