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3권 13화 – 사고뭉치 천무쌍귀영

비뢰도 3권 13화 – 사고뭉치 천무쌍귀영

사고뭉치 천무쌍귀영

애소저회 건물 안으로 들어온 2명의 남자는 사천당문 출신의 당철기와 천기문(天奇門) 출신의 천소해였다. 둘 모두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만면에 띄우고 있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임성진이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들도 이곳의 회원인 모양이었다.

“소개하지. 사천당문의 당철기와 천기문의 천소해일세. 모두 기관 진법의 대가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천무쌍귀영(天武雙鬼影)이라 불리는 희대의 사고뭉치이자 두통거리지. 인사하게.”

“안녕”

“안녕.”

당철기와 천소해가 손을 흔들며 익살스럽게 인사했다. 예의범절은 그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닌 모양이었다. 당철기가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띄우며 한 장의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번에 드디어 비연검 백 소저의 삼부 수치(쓰리 사이즈)를 알아 냈다네. 간만의 쾌거였지.”

“오오, 정말인가?”

비연태의 굵은 입가에 흡족한 웃음이 번졌다.

“게다가…….”

당철기의 손이 그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곳에 들려 있는 건 나비 문양의 연녹색의 비단 천 조각이었는데 아까 비연태의 수집품에서 봤던 거랑 같은 용도 의 것이었다.

“오오오오오, 이… 이것은?”

당철기와 천소해는 그 입수 경로를, 세상을 구한 영웅 협객의 무용담처럼 떠벌렸다. 잠자코 듣고 있던 비류연이 불쑥 물었다.

“그런 짓 하면 주변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나요?”

“무척이나 싫어하지.”

당연하다는 듯 당철기가 대답했다.

“그런데도 계속해요?”

“물론.”

당철기가 주먹을 불끈 쥐며 결연하게 말했다. 이게 그 정도로 의지를 불태울 만한 일인가?

“주위의 하찮은 시선에 일일이 신경을 쓴대서야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나. 그런 거는 애초부터 신경 끊고 살고 있다네.”

“그건 맞는 말이군요.”

그제야 비류연은 눈 앞에 있는 인물들이 자신과 부분적으로 같은 동류임을 알 수 있었다.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식대로 밀고 나가는 그런 사람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그들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런 곳에 있으면서 그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한창 지루한 요즘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 줄 것 같은 기대감도 들었다.

“우리는 천하 제일미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아 내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을 걸세.”

또 그는 쓸데없는 일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말려서 될 일 같지는 않았기에 비류연은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기로 했다.

“흐흐흐… 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값비싼 돈이 되지.”

당철기가 은밀한 시선으로 소곤거렸다. 갑자기 비류연의 귀가 솔깃해졌다.

“정말 이게 돈이 되나요?”

“물론. 자넨 잘 모르겠지만 수많은 남정네들이 이런 정보들에 혈안이 되어 알고 싶어하지. 우린 그들의 그런 충동 해소를 봉사 활동 차원에서 도와 주는 거야. 물론 약간의 사례는 빼 놓을 수 없지.”

“가입하죠.”

당장에 비류연이 대답했다. 비류연의 갑자스런 태도 변화에 쌍귀도 놀랐다. 순식간에 가입 신청서란에 이름을 써 넣은 비류연은 자신과 함께 온 일행들도 반 협박 하여 가입 신청서에 서명하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가입 수속을 모두 마친 비류연은 당철기에게 순수한 호기심 차원에서 물었다.

“근데 누가 천하 제일 미인이죠?”

강호에 문외한인 비류연도 일단은 남자이기에 아까부터 자꾸 화제로 거론되고 있는, 천하가 인정하는 천하 제일미가 누군지 궁금했다. 근데 대답은 의외였다. “그건 우리도 모르지.”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당철기의 대답에 비류연 일행은 모두 의아했다.

“예에? 그게 말이나 돼요? 어떻게 강호 모든 미인들의 뒤를 캐는 애소저회에서 그걸 모를 수가 있어요?”

아무리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들은 여자의 모든 것을 변태적이고 광적으로 수집하며 기쁨을 느끼는 비뚤어진 욕망의 소유자들이었다. 물론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데 가장 많이 알아 내고 몇 권이나 되는 자료 목록을 수집해 놓았어야 할 천하 제일 미인의 자료가 없다니,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우리로서도 매우 아쉬운 일이지. 하지만 우린 점쟁이가 아니야.”

비류연은 지금 천하 제일미에 대해서 알고자 했지, 연예운을 점치러 온 것은 아니었다. 점쟁이랑 천하 제일미랑 무슨 상관 관계가 형성된다고 저러는 걸까? 비류 연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당철기가 설명을 계속했다.

“천하 제일미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절대적인, 그리고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천하 제일미로 칭송받는 여성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즉, 앞으로 일 어날 일이라는 뜻이야.”

때문에 점쟁이가 아닌 이상 앞으로 될 천하 제일미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항, 그렇군요.”

그제야 납득이 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정해져 있다면 한번 꼬셔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없다니 아쉬울 뿐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반드시 정해질 거야. 꽃 중에 꽃, 미의 여왕이 말일세. 우리 천관에도 천하 제일미를 겨룰 미의 극치인 여성들이 꽤 있지. 그 중에서도 빙백봉(氷百 鳳)나 소저가 상당히 유력한 인재지. 정말 그녀의 아름다움은 환상이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천소해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빛났다. 그만큼 그녀의 아름다움이 대단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어?”

그때 문득 비류연은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의아함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걸 느낀 사람은 자신 혼자만이 아닌 것 같았다. 특히, 천무쌍귀영 당철기와 천소해 의 절대로 어두워질 것 같지 않던 얼굴의 명암이 낮아졌다.

“이렇게 벽을 뚫고 전해질 정도의 살기를 풍기는 그녀는 누구죠?”

비류연이 궁금해서 당철기에게 물어 보았다. 아무래도 밖에 있는 여인을 아는 눈치였다.

“호오, 밖에 있는 상대가 여인인 걸 금세 알아차리다니 굉장한걸. 글쎄 나를 열렬히 사모하는 묘령의 여인일지도 모르지.”

“그것만은 절대로 아닌 것 같은데. 그녀가 백 소저의 절친한 친구란 걸 깜빡 잊었군.”

옆에 있던 천소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해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하나뿐인 동호회 건물이 부서지기 전에 자진해서 목을 들이미는 게 현명한 처사인 것 같군.”

두터운 석벽을 뚫고 전해져 오는 살기는 여차하면 건물이라도 때려부술 매서운 기세였다. 당철기와 천소해는 그 동안 모아 놓았던 수많은 보물 같은 수집품들의 파손을 원치 않았으므로 미리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쌍귀영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임성진과 비류연 일행도 함께 밖으로 나갔다. 애소저회 건물 바로 밖에는 의외로 아름다운 여인이 서릿발같이 매서운 살기를 내뿜으며 서 있었다.

“이런 이런, 독고 소저께서 이런 누추한 곳엔 웬일이십니까?”

당철기가 능청스럽게도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네놈! 다 알면서 묻지 마라.”

독고령은 지금 인사를 받을 기분이 아니었다.

“자꾸 그렇게 화만 내면 하나밖에 없는 눈가에 주름 잡힌다구요. 미용을 생각하셔야죠.”

살기 풀풀 날리는 그녀의 기세에도 위축됨 없이 당철기가 능글맞게 말했다. 애초에 그 정도로 기죽을 천무쌍귀영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쓴 반성문만 책으로 엮는 다 해도 10권은 족히 넘을 대전집이 될 터였다. 게다가 그 동안 무단으로 사용해 부셔 먹은 기관 수만 해도 수십이 넘었다. 그들은 그런 녀석들이었다.

“네놈 죽인다.”

그녀로부터 북해 한설 같은 얼어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름다운 그녀의 용모를 해치는 단 하나의 오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왼쪽 눈을 가리고 있는 1개의 검은 안대였다. 그녀는 특이하게도 애꾸였던 것이다.

“누구죠?”

비류연이 눈 앞에 있는 매우 흥미로운 여인에 대해 임성진에게 물었다.

“모르나? 그녀는 바로 천관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 중 한 명인 독안봉(獨眼鳳) 독고령일세. 얼음장처럼 차가운 마음과 불 같은 성격이 대조적인 특이한 여장부지. 원한을 쌓아 적으로 만든다면 매우 껄끄러운 최악의 상대 중 한 명이야.”

“음… 근데 상황 전개를 보아하니 적으로 만든 것 같은데요?”

아무리 봐도 절친한 우호적 관계로는 보이지 않았다. 비류연의 판단은 정확했다.

“맞아.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집단이 바로 우리 애소저회야 만 여성의 적이라고 단정 짓고 있거든.”

임성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순순히 인정했다. 그녀의 타도해야만 할 악적 다섯 순위에 올려져 있는 형편이었다.

“자꾸 앙탈 부리지 말라구. 자꾸 그렇게 씩씩거리면 가슴이 출렁거려 주위 사람들이 민망해 하잖아요. 우리야 뭐 좋지만.”

당철기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과용을 부렸다.

“죽여 버리겠다.”

그녀는 짙은 살기로 가득 차 올랐다.

“야, 너무한 거 아냐? 쟨 요주의 인물이라구.”

불난 집에 화약 던져 넣는 격이었다. 무모함이 어떤 것이지를 잘 보여 주는 행동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의 참신한―그리고 용기 있는―행동을 칭찬해 주 고 싶은 마음이 일지는 않았다.

‘저 녀석, 그녀의 반응을 보고 재미있어 하고 있는지도 몰라. 무서운 놈.’

임성진이 보기에 저런 무모하기 그지없는 도발 행위를 저지르는 걸로 봐서 그럴 가능성 또한 충분히 있었다.

“그렇게나 위기 일발의 작두에 목을 올려놓는 것을 좋아하는 걸 보면 칭찬해 줄 만한 건전한 취미는 아니군.’

하지만 남의 취미 생활에는 간섭하지 않는 주의였으므로 속마음을 밖으로 꺼내 보이지는 않았다.

“어떻게 될까요?”

“설마 싸우진 않을 거야. 그녀와 싸워서 득 될 건 하나도 없으니깐. 언제나처럼 삼십육계 줄행랑이지.”

“언제나처럼?”

“뭐 하루 이틀 있었던 일도 아니니깐. 걱정 마, 저 녀석들 기관 조작 실력과 도망가는 솜씨 하나만큼을 알아준다고. 게다가 우린 아녀자와 16세 미만의 연소자와는 싸우지 않는 주의라고.”

“노약자랑은 싸우나요?”

“물론. 강호 고수 중 대부분이 노약… 아니 노강자(强者)인 관계로 피해 갈 수야 없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강해지는 노괴물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천무학관에 도 수두룩하지. 그러니 노인은 예외야!”

“예에!”

임성진의 말대로 강호에서 절정 고수라 불리는 인물들의 평균 연령은 52세였고, 최절정 고수로 불리는 초고수 인물들의 평균 연령은 90세 전후였다.

천소해가 당철기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자 당철기가 알았다는 듯 품 속에서 뭔가를 꺼내,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휘두를 듯한 그녀의 하나뿐인 눈 앞에 뭔가를 하 나 던졌다.

“펑!”

뭔가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자욱한 연기가 일어나며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연기도 연기지만 냄새 또한 지독하고 자극적이어서 그녀의 오감을 한층 더 혼란에 빠뜨렸다. 눈이 따갑고 코가 매웠다. 정말 악질적인 연막 최루탄이었다.

“콜록콜록. 연막탄인가……?”

그녀는 찔끔거리는 눈물과 대책 없는 콧물을 연신 훔치며 당황했지만 이미 때늦은 감이 있었다. 이내 불어온 오후의 미풍에 연기가 날아가고 냄새는 확산되었지만 아직도 그녀의 하나뿐인 오른쪽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천무쌍귀영의 존재는 이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이놈들. 또 당했군.”

이것으로 벌써 다섯 번째였다. 하지만 포기할 그녀가 아니었다. 그런 악적을 눈감아 줄 만큼 그녀는 자비롭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남다른 오기까지 있었다. 그녀가 결심을 새롭게 다지는 동안, 옆에 있어서 좋은 꼴 못 볼 게 뻔했던 관계로 비류연과 그 일행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저런 무시무시한 여자 옆에 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천무쌍귀영 당철기와 천소해를 놓친 보복성 화풀이를 그들에게 쏟아 부을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있을 그녀 의 추적에서 당철기와 천소해의 무사 생환을 기원하며 그들은 자리를 떠났다.

이렇게 해서 우연곡절 끝에 비류연과 효룡, 장홍, 그리고 얼떨결에 윤준호까지 애소저회의 회원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