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3권 3화 – 매화 과민증 환자

비뢰도 3권 3화 – 매화 과민증 환자

매화 과민증 환자

식사를 마치자마자 효룡과 장홍, 그리고 멀뚱히 서 있던 비류연은

윤준호를 끌다시피 하여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강제적으로 의자에 앉힌 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서로가 만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 내성적인 순둥이가 답답해 보였던 차에

그 원인의 실마리를 잡고야 말았던 것이다.

원인이 있다는 것은 해결책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더 나아가 원인의 제거가 바로 해결 방안이라는 것은 다시 거론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 만 불가능을 모르고 지낸 비류연으로서는 당연히 시도해 보는 쪽을 택했다. 그것은 효룡과 장홍도 마찬가지였다.

“왜 매화 검법을 쓰지 못하지?”

호기심 왕성한 눈을 빛내며 효룡과 장홍이 동시에 물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두 사람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뭐라고?”

이런 해괴망측한 일은 도무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농담도 이 정도면 너무 지나쳐 칭찬해 주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전대 장문인의 추천으로 천무학관에 입관할 정도의 화산파 제자가 화산파 무학의 간판이자 정화인 매화 검법을 펼칠 수 없다니, 지나가던 개가 사레 들릴 정도로 웃 기지도 않는 썰렁한 농담이었다.

이런 고약한 농담을 고안해 낸 사람은 분명 만인으로부터 따가운 눈총과 함께 본인의 재치와 재기를 의심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윤준호 자신도 그 사실이 못내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깔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저, 그게…….?”

윤준호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하나 둘씩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는 구구절절 비탄이 흘러 넘치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뭐라고!”

윤준호의 목소리는 기어 들어갈 듯했지만, 혹독한 무공 수련을 통해 타인보다 수십 배 뛰어난 청력을 획득한 바 있는 비류연과 효룡, 장홍은 다시 한 번 눈이 휘둥 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우릴 두 번씩이나 아무렇지도 않게 경악시키다니 칭찬해 줄 일이로군.”

침통한 얼굴에 약간은 푸념이 섞인 듯한 말투로 장홍이 말했다. 그의 어조엔 어쩐지 약간의 허무감마저 서려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 녀석은 참으로 맹랑하 기 짝이 없는 녀석이었다.

과민증(過敏症)이라니…….

매화 과민증이라니…….

이게 무슨 지나가던 똥개 광소사(狂笑死: 미친 듯이 웃다 죽는 걸 말함)할 일이란 말인가. 매화를 빼고 나면 주변에 남아 있는 꽃이 있기나 한지 의문스러운 화산 파 제자가 매화 과민증 환자라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이보다는 현실감 있을 것 같았다.

“웃다가 죽은 개는 끓여 먹어도 맛은 고사하고 영양가도 없다던데……”

장홍이 정말 심각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는 나름대로 웃겨 보려고 애쓴 모양이었다. 물론 노력에 비해 그 결과가 참혹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저씨, 그런 농담 하나도 재미없네요.”

이야기를 가로막지 말라는 뜻이 다분히 함축된 눈빛으로 효룡이 장홍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아저씨라니……

아저씨란 말은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였다. 장홍은 약간 기분이 상했다. 더군다나 자신의 탁월한 유머 감각이 단숨에 도매가로 넘어간 듯 한 기분이 들어 더욱 우울했다. 물론 착각은 자유라는 전제하에서의 이야기였다.

윤준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기막힌 얘기뿐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실소가 나올 정도로 한심하기도 했다. 참으로 어 의가 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사람들의 고개를 젓게 만드는 이상한 힘(?)이 내포되어 있었다.

윤준호, 그는 매화, 특히 그 향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한 과민증이 있어서 냄새를 맡기만 해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심하게는 몸이 마비되는 황당한 체질이었다. 처음에는 사문에서도 그런 이상 체질의 소유자인 그를 포기하려고 했었다.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으면서, 아무리 개선해 보려고 노력해도 바꿔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에게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구파의 거두 화산파도 두 손 두 발 다 들 고 말았다. 하마터면 퇴문 권고당할 뻔한 것을 울고불고 매달려 간신히 무마시킬 수 있었다. 그때,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태사부 매화검선 유환권 대협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파문의 위기는 간신히 막았지만, 체질 덕분에 그는 화산 중에서도 산 전체가 모두 매화로 붉게 뒤덮여 있다시피 한 낙안봉 근처에는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 했다. 그래서 그는 매화가 만발하는 시기만 오면 매화나무 분포 빈도가 적은 낙안봉 옆 검무봉에서 혼자만의 수련에 몰두해야 했다.

그 봉우리는 수많은 동혈이 한꺼번에 뚫려 있는 절경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곳은 종종 화산 문하 제자들의 수련 장소로 애용되는 인기 있는 곳이었다. 때문에 동 혈 곳곳에서 선배 동문들의 수련 흔적을 심심치 않게 접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도 그곳에서 연무동을 하나 잡아 매화가 질 때까지 검법을 수련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한 곳에서만 혼자 수련하는 게 너무 식상해져 차츰 이곳 저 곳 여러 동혈들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동혈 바깥에서 여느 때처럼 검법을 수련하고 있는데 무심코 휘두르는 검에 그만 그가 수련하던 언덕 한쪽 귀 퉁이가 느닷없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무너져 내린 흙무더기 뒤로 작은 동혈 구멍이 나타났다. 오랜 세월 흙더미에 입구가 묻혀 있던 동혈이 그의 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 작고 어두운 구멍은 젊은 그를 유혹했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그는 동혈 안으로 자신의 몸을 밀어 넣었다. 동혈의 입구는 다른 곳보다 턱없이 좁았지만 그럼 에도 불구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안쪽은 입구보다 세 배 정도는 넓은 곳이었다. 동혈의 깊이도 다른 곳보다 서너 배는 더 길어 보였는데 그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 어 마침내 동굴을 탐험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딱히 다른 할 일도 없었기에 시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동혈 탐험이 시작 될 수 있었다.

무작정 한참을 걷고 나서야 그는 간신히 종착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혈의 끝은 그의 감탄을 자아낼 만큼 넓고 매끄러운 반구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의 눈썰미가 아무리 빈약하다 하지만 그곳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곳이 아닌 인간의 손길이 가미된 곳이라는 것쯤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놀라움은 더할 수밖에 없었 다.

반구형 광장의 중심에 서서 횃불을 높이 치켜들고 매끈한 벽면을 살펴보자 실핏줄 같은 미세한 선이 거미줄처럼 덮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도 명색이 명문 검문인 화산파의 적전 제자였기에 그 무수한 선들이 놀랍도록 지고한 경지의 검기에 의한 흔적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놀라운 경지의 흔적을 목격한 그는 온몸에 벼락 같은 전율이 흐르는 충격에 휩싸인 채 넋을 놓고 한참 동안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바닥을 살펴보니 거기에는 이곳에서 수련을 쌓은 선배 검객이 남긴 자취인 듯한 발자국이 일정한 무리(武理 : 무학 도리)에 따라 만들어져 있었다. 그는 바닥의 자국들이 바로 보법에 의한 흔적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지러운 보법 변화를 운용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가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발견한 것은 바로 벽면 한 귀퉁이에 적혀 있는 신원 미상의 고인이 남긴 검법 구결이었다. 검법의 이름은 바로 칠매검(七梅劍), 끝내 이 름을 남기지 않은 고인의 마지막 유물이자 가장 소중한 흔적이기도 했는데 어림잡아도 족히 2백 년은 넘은 듯했다. 이름을 남기지 않은 고인도 아마 여러 화산 문 하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매화 검법의 새로운 해석과 더 높은 경지로의 득검을 위해 뼈를 깎는 수련과 인내를 참아 낸 선배 가운데 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 순간부터 그는 문제의 칠매검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미친 듯 밤낮으로 침식마저 잊고 구결에 몰두했다. 반구형 천장에 남긴 그 무수한 검선들을 자신의 몸으 로 직접 재현해 보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선배 검객이 계속해서 같은 장소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었기에 반구형 벽면의 검선들도 두서없이 얽혀 있지 않 고 동일한 하나의 궤적을 따라 여러 겹 겹쳐져 있었기에 그가 수련하는 데 매우 용이했다.

그의 무공에 대한 이해 능력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쩌면 범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자질을 가지고 있을 확률도 매우 높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나이 에 검향의 경지에 들기는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해 겨울은 몽땅 그 칠매동(七梅洞)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칠매검의 구결은 고인의 만년에 깨달음을 통해 터득한 이론과 이치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감각으로 이해하기에는 난해하고 어리둥절한 구 석이 많았다. 해석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론대로 실행했을 때의 효과가 의문스러웠던 것이다.

그는 칠매검이 아직 검증조차 안 된 검법이었으므로 나중에 이것이 제대로 된 검법임이 밝혀지면 사문에 알리기로 마음 먹고 먼저 수련에 열중했다. 구결 아래에 따로 적혀진 주의사항에 따르면 수련 정진의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빠른 속성법인 까닭에 자칫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주의가 친절 하게 적혀 있었다. 게다가 웬만하면 남에게 권유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적혀 있었고 혹시나 주화입마에 빠져도 이미 경고했으니 부디 원망하지 말라는 발뺌 까지 적혀 있었다. 그러니 어디 사문에 보고할 엄두가 생겼겠는가.

다행히 처음엔 수련을 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구결의 내용은 대부분이 매화 검법에 대한 새로운 측면에서의 이해와 응용을 주축으로 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두 뇌를 원망해야 할 만큼 난해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 수련은 진행되어 갔고 그는 자신의 실력이 나날이 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남모를 희열에 들떠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 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희열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의 기쁨과 넘치는 행복에 운명의 여신이 열렬한 질투를 보냈는지 절망은 너무나 엉뚱한 방향에서 느닷없이 찾아왔다. 그 저주스런 악몽의 날 이후, 그는 칠매 검법은 고사하고 매화 검법도 제대로 펼치지 못할 참혹한 지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천상 끝 기쁨과 행복의 화원에서 단숨에 나락 저 끝의 절망의 가시밭으로 아무런 보호대나 완충장치도 없는 맨몸뚱이 상태로 굴러 떨어진 것이었다. 그 후로 매화 검법도 펼치지 못하는 얼간이 바보로 사문에 낙인이 찍힌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화산파 적전 제자가 매화 검법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기문 괴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동문 사형제의 모멸과 멸시, 비웃음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열 번을 더 들어도 믿기 힘든 일이야.”

장홍이 반신반의한 얼굴로 윤준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윤준호의 얼굴은 부끄러움에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 다.

“하, 하지만 사실입니다.”

“누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이야길 진짜라고 믿겠나? 나부터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난 지금 자네의 진실성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느끼고 있는

중일세.”

장홍이 어처구니없는 해학극의 주인공 윤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문에서도 아무도 저의 이런 이야길 믿어 주지 않았지요.”

효룡, 장홍과 마찬가지로 그의 사문 동문들도 그의 이러한 신체 고민을 믿어 주지 않았던 것이다. 모두 엉터리 변명으로 치부해 버리고 더욱 비웃었을 뿐이었다. “저도 그런 사실들이 모두 허구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죠. 그런 바보 같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는 자체가 남 보기 부끄러운 일입니다.” 윤준호는 지금 매우 낙심해 있는 상태였다. 사형과 사저와의 만남이 그의 의욕을 대부분 빼앗아 간 모양이었다. 하지만 의지해야 마땅할 대상인 사문의 사형제로 부터 외면을 당했으니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었다.

“처음엔 매화 검법을 익히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죠. 그런데 그러기를 몇 년, 어느 날 검을 펼치는데 환상처럼 매화가 만개하고 매화 향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것 이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며 쓰러질 뻔했습니다. 그 다음은 뻔했죠. 순식간에 온몸은 두드러기에 침식되었고 신경은 마비되어 버렸지요. 끝내 검 을 놓치고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가려워 잡고 있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 후로는 칠매검은 물론이고 매화 검법조차도 펼칠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마치고 이제 시작될 상대방의 웃음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항상 그의 이야기가 끝나면 들려 오는 비웃음이 오늘따라 들려 오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진지한 분위기가 방 안 전체를 지배했다.

효룡이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장홍을 바라보았다. 장홍도 그의 눈빛에 응답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나와 같은 생각인가?”

장홍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효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바로……..

“검향(香)의 경지지.”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말하며 서로의 의중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짧은 한 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깊고도 무수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검향의 경지? 그게 뭔데?”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비류연이 물었다. 자신만 모르는 이야기를 둘이서 쑥덕거리며 맞장구치는 모습은 비류연에게는 별로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 다. 괜히 왕따 당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장홍이 이렇게 운을 떼며 말을 시작했다.

“그건 화산파 매화 검법만의 독창적인 특징이자 독자적인 경지로 그 원인과 이유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다네. 단지 전승에 의하면 몇몇 체험담을 포함해 서 – 매화 검법이 어느 일정한 경지, 즉 엄밀히 말하면 엄청 높은 경지에 다다르면 검기(劍氣)로부터 미묘한 매화 향이 뿜어져 나온다고 전해지고 있어. 즉 검이 흡 사 매화나무라도 되어 버린 듯 향기를 내뿜는 것일세. 보기 드문 기사(奇事)지. 그 놀랍고 신기하기 짝이 없는 경지를 가리켜 화산파에서는 검향의 경지劍之境) 라고 한다더군. 이에 대해서는 무수한 억측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이론이 바로 매화 정기 만발한 화산파 안에서 익힌 화산의 독문 내공심법인 자하신공과 무관하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거지.”

자하신공은 화산파 최고의 독문 내공심법으로 오직 적전 제자에 한해서 전수된다는 희대의 신공(神功)이었다. 이 신공이 자하신공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 신공의 내공 성취 수위가 높아 가면 높아 갈수록 발출되어지는 기가 자색을 띤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매화 검법과 함께 화산파를 지탱하는 두 가지 신공 가운데 하 나였다. 매화 검법이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자하신공을 일정 수준 이상까지 익혀야만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비류연의 질문이 날아들기도 전에 장홍은 자하신공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매화 검법도 모르는 녀석이 자하신공에 대해서 알 리 만무하다는 생각 에서였다. 당연히 그의 짐작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장홍이 미리 다 이야기해 준 덕분에 비류연은 애써 질문할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잘 모른다면서 알 만한 것은 모두 설명해 주는 장홍이었다. 강호 상에서도 아는 이가 몇 없는 검향의 경지를 그는 너무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윤준호의 이야기만 듣고 검향의 경지를 추측해 낸 효룡 또한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래? 참 신기하네. 인간이 꽃도 아니고 향기를 뿜어 내다니 말이야. 인간 방향제로 사용해도 되겠는걸.”

비류연이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윤준호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순간 윤준호는 자신의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으스스한 오한이 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원인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게다가 그 검향의 경지라는 게 아직 화산파 출신 검객 이외에는 누구도 체험한 경우가 없어. 아직은 그 경지가 화산파에 국한된다는 이야기지. 화산파에서도 이 것에 대해 아는 사람은 드물걸.”

“왜?”

“그만큼 검향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희소하기 때문이지. 근 백 년 안에도 검향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일걸.”

“매화검법의 창시자는 매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매화 광이었던 모양이야?”

비류연이 장홍을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그렇겠지.”

마지못한 듯 장홍이 수긍했다.

“혹시 그 사람은 자신이 매화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매화나무가 되고 싶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무공을 일부러 만들어 낸 게 아닐까?

아마 틀림없이 그럴 거야.”

매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매화나무 그 자체가 되길 바랐던 사람. 분명 그런 사람이 매화 검법의 창시자일 거라고 비류연은 단정 지어 버렸다. 그런데, 그럼 어째 서 매화라면 귀신 보듯 질색하며 기피하는 저런 이상 과민증 환자 녀석이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단 말인가? 이래서 세상은 재미있는 곳인지도 모른다.

“검향의 경지라…….”

장홍과 효룡은 이 경지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일반인은 결코 쉽게 들어서지 못하는 꿈 같은 경지, 검에서 꽃처럼 향기가 난다는데 그게 어디 범상한 경지 이겠는가. 자하신공의 얕은 성취와 매화 검법에 대한 빈약한 깨달음으로는 절대 다다르지 못할 경지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저 허약해 보이는 녀석이 그 경지의 주인 이라니……. 역시 믿음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과민증이라면 특정한 물질이나 향에 노출되었을 때 생기는 일종의 육체적 부작용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인과율에 따라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법, 향이 없는 데 부작용이 나타났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두드러기를 유발시키는 향은 어디서 나왔겠는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겠는가, 아니면 땅에서 불쑥 예고도 없이 솟아 올라왔겠는가?

물론 그의 검 내지는 몸에서 나왔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해서 그가 검에서 매화 향기를 뿜어 낼 수 있는 검향의 경지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검향의 경지 가 아니고서는 인간의 맨몸뚱이에서 저절로 매화 향이 나게 하는 방법은 전무했다. 그 이외의 다른 방법이나 사례는 아직 보고된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검향 지경

다른 방법은 죽을 때까지 세상 속을 뒤져 봐도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境)이외의

‘정말 그 환상의 경지가 맞긴 맞는 건가? 내가 지금 꿈을 꾸거나 심각한 착각에 빠져 있는 건 아냐?”

재차 동의를 구한다는 시선으로 장홍이 효룡을 쳐다보았다. 역시 효룡도 장홍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홍을 엉뚱한 미친 놈 취급한 게 아 니라 윤준호가 체험한 것이 환상의 경지인 검향지경에 올랐다는 추측에 동의한다는 것이었다.

화산파 적전 제자인 녀석이 왜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매화 향이 환상적으로 피어오른다는 검향의 경지는 매화 검법과 이를 보좌하는 자하신 공이 10성 이상 연성되어야 접해 볼 수 있는 높은 경지였다. 게다가 향기와 함께 검을 휘두르자 매화가 만개하는 헛것까지 봤다고 본인은 주장하고 있었다.

매화 만개의 환상이라니!

검기로 그려지는 매화의 환상은 매화검의 경지가 검기 검화(劍氣劍花)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나 몇 송이 겨우 구경할 수 있다는, 범인은 결코 쉽게 도달하지 못하 는 높은 경지였다. 필시 검기 검화의 경지보다 더 높은 경지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놈은 지금 엄청나게 대단한 일을 저질러 놓고도 정작 자신은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화산파 원로들이 알았다면 신동 기재가 났다고 기뻐 날뛰었 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그것을 펼치지 못한다면 일신상에 가지고 있어 봐야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무용지물이겠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윤준호가 현재의 실력은 몰라도 재능만은 덜 떨어지지 않는 우수한 인재라는 사실이 확실히 입증된 셈이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익혀 놓고도 쓸 수 없다 는 그 사실인데…….

“이럴 땐 어쩌면 좋지?”

장홍이 별 생각 없이 주변의 의견을 물었다. 오음절맥이나 구중 폐맥 같은 심각한 선천적 질환이나 불치병도 아니고, 겨우 과민증 같은 시시하기 짝이 없는 병 때 문에 절정 고수에서 한심스런 하수로 단박에 추락해 버린 엉뚱하면서도 난해한 문제였다. 당연히 이런 일일수록 자신 혼자서 모두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 신이 신이나 초인이 아닌 다음에야 주변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사고와 그에 따른 대책의 증진을 위한 침묵이 얼마 동안 계속되었다. 이런 일이 단번에 아무런 고민 없이 해결되길 바라는 게 상식적으로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 가.

“이럴 땐 바로..

일련의 대화에서 아는 것이 없는 관계로 참관의 위치를 고수하던 비류연이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즉시 세 사람의 시선이 비류 연의 입을 향해 쏠렸다. 설마 그의 입에서 가장 먼저 해결 방안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 만큼 이 대화에서 비류연은 무용지물, 방관자의 취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뜸들이지 말고 계속하라는 무언의 압력이 비류연에게 가해졌다.

“인간 개조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건설적인 의견과는 매우 동떨어진 대답인 것 같았다.

“뭐, 인간 개조?”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비류연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자 장홍과 효룡은 ‘저 녀석, 지금 제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주 엉뚱한 이야기만은 아니라 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인간 개조. 신체가 매화 향에 악성으로 반응한다면 방법은 바로 신체를 개조하는 수밖에 없지. 잘못된 걸 바로 잡는 것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 아니 겠어?”

뭔가 목에 걸린 것처럼 찜찜하게 들리긴 했지만 나름대로 타당한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엉뚱하고 황당하게 들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들을 단 번에 납득시키기에는 문제가 많은 해결책이었다.

“길을 잃어 미아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겠네.”

“절벽에 떨어지거나 가시덤불 길을 걷게 되거나 말이야.”

“그런 시답지 않은 제안 말고 좀더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방법을 모색해 보게.”

두 사람 모두 아직 비류연의 의도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허,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니깐. 뭐 다르게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물론 그딴 게 있을 리가 있나.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한 번 속는 셈 치고 그쪽 방면으로 긍정적인 검토를 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그들은 한 번 방향 을 정하면 저돌적이고 과감하게 전진하는 성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