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3권 7화 – 우뢰매라고 불러 줘
우뢰매라고 불러 줘
장홍의 도움으로 무사히 수강 신청을 끝마친
비류연 일행은 별다른 일이 없으므로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거기 남아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문제 건(염도 수업 수강 신청)으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이들 틈에 끼는 것은 비류연으로서는 사양할 일이었다. 혹 준호 나 효룡이라면 질식사할 위험 부담을 끌어안고 그 경쟁 틈 사이에 끼여들고 싶어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비류연은 절대 아니었다. 제자한테 배우려고 기를 쓰는 사부 를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숙소로 돌아가던 네 사람은 문득 미세한 공기의 파동을 감지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꽉 찬 대기를 날카로운 속도의 검으로 휘저어 놓은 듯한 느 낌. 더불어 찢어질 듯한 울음 소리가 그들의 귓전에 울렸다.
그들의 시야 안에 하늘로부터 막 지상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 내려오는 매 세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절대 자연산(自然産)이 아니라는 사실에 전 재산을 걸어 도 좋을 만큼 확신할 수 있는, 인간의 손길로 길들여진 매 세 마리는 모두 담 넘어 한쪽에 위치한 건물로 날아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담이 높아 대략의 위치만 어 림짐작할 뿐 건물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사실 건물의 위치보다 궁금한 것은 바로 방금 전 내린 매들이 가진 의미였다.
“저게 뭐지?”
“어, 몰라?”
놀랍다는 눈길로 효룡이 비류연을 쳐다보았다. 이제 그만 적응할 때도 되었건만 그는 아직도 비류연의 경악해 마지않는 몰상식을 대할 때면 종종 놀라곤 하였다. “응.”
“저건 천무학관의 유명한 전서응(傳書鷹)들이야. 서신과 소식, 혹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특별히 훈련된 특수 매들이지.”
“그래? 처음 들었어.”
비류연은 요즘 매일매일 새로운 정보를 대하고 있음에도 끈질기게 자신의 몰상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서신이나 정보는 보통 비둘기(전서구)를 이용하지 않나요?”
윤준호의 질문에 장홍이 책망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자네도 만만치 않군, 각성하게.’라는 의미의 눈빛이었다.
“요즘 강호는 모두 전서구(傳書鳩)에서 전서응으로 흘러가고 있는 추세야. 연약한 전서구보다 위험도는 훨씬 적고, 안전성은 훨씬 높은 전서응을 모두 선호하는 거지. 그래서 요즘은 이름 있는 무인치고 전서응을 지니지 않은 이들이 드문 형편이지.”
“그러니깐 일종의 유행이군요.”
윤준호의 말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제는 유행을 넘어 거의 보편화되었다고 봐야 옳겠지.”
이제 전서구는 한물 간 과거의 유산이었다. 요즘 누가 소식을 전하는데 주위의 강대한 비웃음을 무릅쓰고 전서구를 날리려 하겠는가. 명예와 체면을 소중히 여기 는 이라면 감히 그런 모험을 할 생각을 품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서찰을 전하지 않을 때는 매사냥도 즐길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 해야겠지. 매사냥은 강호에서도 매우 고급스런 취미라네.”
매사냥은 말 그대로 매를 이용한 매우 사치스런 사냥 법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치스런 취미에 이용되는 것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경향이 있 다. 매를 이용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사냥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냥에 사용되는 매 값만으로도 일반 평민 다섯 식구가 석 달을 먹고 살 수 있는 액수가 족히 되었다.
“나도 저거 하나 갖고 싶어. 어떻게 하면 되지?”
장난감 사 달라 조르는 아이처럼 비류연이 말했다. 또다시 그의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사면 되지.”
“참 고맙군. 그렇게 간단히 얘기해 줘서.”
“난 항상 핵심을 찌르는 것을 즐기지.”
장홍이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게. 무슨 일 당할까 봐 무섭네.”
“하하! 그건 소중한 우정에 금이 가는 소리로군.”
비류연이 웃으며 말했다. 장홍은 애써 비류연의 말을 무시했다.
“금 갈 우정이 있다는 전제하의 이야기겠지?”
“자네와 나 사이에 금 갈 우정이란게 존재했다니 실로 놀라운 발견이로군.”
“이제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안 그랬다간 영원히 그 존재를 몰랐을지도 모르지 않나.”
장홍은 웃으며 전서응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호에는 요즘 전문적으로 전서응을 훈련시켜 파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네. 그 덕분에 가격도 많이 내렸지. 대중화가 되었다고나 할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천응방, 천응방의 최대 수익원이 바로 이 전서응 판매 운영 사업이라네. 요즘은 무공보다 그 사업 쪽으로 더 유명하지.”
천응방은 천응팔조공이란 조공(功)을 성명 절기로 하는 무림 문파로 요즘 한창 성세를 드높이고 있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작은 군소 방파에 불과한 곳이었지 만 전서응 열풍이 강호를 휘몰아치면서 급부상하기 시작해 요즘은 대문파 부럽지 않은 초거대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전서응 판매 사업과 함께 전서응을 통한 신 속한 정보 이동 교환 능력을 이용하여 정보 매매 조직으로 변신을 꾀해 큰 성공을 거둔 특이한 이력을 지닌 문파였다.
“운영?”
“그래. 아무리 전서응이라 해도 중원 전체를 다 돌아다니며 소식을 전할 순 없잖은가. 어떻게 이 넓은 중원 땅을 다 돌아다닐 수 있겠는가 말야. 아무리 날개 달린 매라 할지라도 힘든 일이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래서 그들은 매가 쉴 곳을 군데군데 마련해 두었다네. 천응방에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24개의 거점을 마련해 두고 운영하고 있다네. 만일 특정 지역의 주변에 소식을 전할 일이 있다면 그 곳을 이용하는 거지.”
“전서응의 훈련 정도는 발목의 고리 수로 나타낸다네. 고리가 많을수록 많은 훈련을 거친 최상품이지.”
“저 매는 고리가 7개니깐 상위 품목인가?”
그 먼 곳에 떨어져 있는데도 비류연의 눈에는 매의 발목에 달린 고리 수가 잘 보였던 모양이었다.
“물론 저건 7개의 비행 경로를 훈련받았다는 표시일세. 12개가 최곤데, 전서응은 경로 표식에 따른 신호음으로 비행 경로를 선택해 날아가지. 신호음으로 특정 장소에 대한 방향을 지정해 주는 걸세.”
“빙 둘러 가지 않도록 말인가?”
“맞았어. 직선 경로로 갈 수 있는 것을 굳이 빙 둘러서 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거야말로 시간 낭비지.”
“그 낭비란 말엔 동의해.”
“흐흠, 정말 갖고 싶은데…….”
칭얼대는 아이처럼 비류연이 말했다. 설명을 들으니 갖고 싶은 욕구가 더욱 불끈불끈 솟아올랐던 것이다.
“정 가지고 싶으면 사면 돼.”
“정말? 어떤 방법으로?”
“아마 천무학관 내에 천응방 분타라는 이름을 지닌 판매 유통망 지점 같은 곳이 있지. 친절하게도 말이야. 이곳은 백도 무림의 중심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에 이름 난 문파라면 모두들 이곳에 연락소 같은 거점을 두고 있지. 특히 천응방의 전서응은 강호 생활의 필수 품목이라 전서응 교육 훈련과 더불어 팔기도 한다네. 천응방 의 가장 큰 사업이지. 그리고 덧붙이자면 천응방의 전서응들은 모두 머리가 좋다고 정평이 나 있어.”
정말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은자의 지출이 유발되는 건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꼭 갖고 싶은 것이었기에 장홍을 재촉해서 천응방 분타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비응각 옆에 위치하고 있는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 바로 옆에 생도들과 관의 전서응을 통괄 관리하는 비응각이 있어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었다.
그 비응각은 일종은 전서응 전용 숙사 같은 곳으로, 비류연이 이곳에서 가장 감동받은 점은 뭐니 뭐니 해도 관도들의 매를 공짜로 보살펴 준다는 사실이었다. 개인 이 매를 돌본다는 것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므로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수고를 대신해 주는 그곳이 얼마나 필수 불가결하며 유용한 곳인지는 굳 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분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 결코 작지는 않지만 그래봤자 큰 가게 수준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새장 속에 많은 수의 전서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 생김새나 모양이 조금씩 달랐다. 이토록 다양한 색깔과 종류의 매가 있는지는 비류연으로서는 그곳에서 처음 보았다.
찬찬히 분점 안을 살피던 비류연의 눈에 한 마리 전서응이 들어왔다. 온몸의 깃털이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특이한 놈이었는데, 예리하게 벼리어진 칼날 같은 눈동 자를 빛내며 고고하게 앉아 있었다. 비록 좁은 새장 속에 갇혀 있었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는 하늘의 제왕 같은 기개가 엿보였다. 비류연은 처음 보자마자 그놈이 마 음에 들었다. 양 발목에 가는 금빛 고리가 12개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최상품의 매임이 틀림없었다.
“아, 손님. 그놈은 너무 사나워 아무도 길들이지 못한 놈입니다. 너무 자존심이 세고 고고해서 데려가려던 사람이 모두 실패했죠. 저쪽 동방의 고려라는 나라에서 들여온 해동청이란 놈인데 너무 사납지요. 그리고 자신이 인정한 사람이 아니면 따르려 하질 않아요.”
“그래요?”
그 동안 30명 이상의 사람들을 4~5개의 할퀸 자국과 함께 돌려보낸 맹금 녀석에게 비류연이 관심을 갖자 점주가 미리 주의를 주고 나섰다.
비류연이 그의 주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기하려 들지 않자 점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누구나 다 시작은 좋았으나 결말은 처참하 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호언장담하며 도전했지만, 볼썽 사납게도 의복이 찢기고 피를 흘리는 상처를 부여잡고 고개를 내저으며 포기했었다. 이번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을 거라는 것이 점주의 견해였다.
“소… 손님!”
점주가 잠시 시선을 딴 데 두었다가 비류연을 다시 쳐다보았을 때, 그의 눈동자는 접시만큼 큼직막하게 커졌다.
“왜요? 참 얌전하기만 한데.”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비류연의 팔목에는 그 푸른 깃털의 해동청이 우아한 자태로 서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주인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새장의 문을 열고 매를 꺼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그 사나운 매가 달아나기라도 한다면 무슨 수로 잡으려고 함부로 새장 문을 열었단 말인가. 양식 있는 인간이라면 절 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손님의 무단 새장 개방에 대해 어느 정도 경악스러운 마음이 진정되자 그는 엄중히 항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팔목 보호대가 없는데도 매의 발톱은 비류연의 팔뚝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물론 해동청이 갑자기 없던 자비심이 생겨 움켜쥔 발톱의 힘을 빼고 있는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고려 해동청의 명예를 걸고 맹세할 수 있었다.
아무도 길들이지 못하고 실패의 쓴 고배만을 마시게 만들었던 푸른 깃털의 해동청을 얌전한 병아리처럼 다루는 비류연을 본 그의 눈은 감탄의 빛으로 가득했다. “그것 참 신기한 일이군. 그렇게 사납기 그지없던 놈인데… 주인이 정해진 것 같습니다, 손님.”
“얼마죠?”
“원래 값비싼 품종의 진짜배기 녀석이지만 주인을 찾지 못해 헤매던 놈이니, 주인 만난 기념으로 싸게 해 드리죠.”
판매 담당자는 꽤나 화통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싸게 해 준다는 말이 비류연의 마음을 더욱 흡족하게 만들었다.
“고맙군요.”
하지만 그 다음에 제시된 액수는 그의 구매 욕구를 밑바닥까지 떨어뜨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딱 잘라서 은자 15냥만 내슈.”
액수를 듣자마자 비류연이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전 이런 금전적 농담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요.”
비류연이 애써 웃음 지으며 말했다. 은자 15냥에 구겨진 안면 근육을 미소 상태로 바꾸기 위해서 그는 엄청난 의지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비류연의 심 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중년 사내가 말했다.
“농담이라니요, 손님. 저희는 항상 공정 가격으로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희 천응방의 신용도는 이 바닥에서는 최고입니다.” 물론 곧이곧대로 다 믿을 수는 없는 말이었다.
“그걸 믿으라고 하시지는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절 호구로 보지 않는다면 말이죠.”
“정말입니다, 손님. 원래는 30냥을 받아도 부족할 놈이지만 특별히 반 값으로 해 드리는 겁니다.”
물론 어느 상인이나 늘 그렇듯이 이 30냥은 거짓말이었다. 상인은 언제나 상대방 손님이 이득을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수작을 부려 줄 의무가 있었다. 그 이득이 금전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심지어는 환상일지라도… 환상만으로 상대방의 이익에 확신을 줄 수 있다면 그는 최고의 장사꾼 재질을 갖춘 인물일 것이다. “10냥.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은자 10냥도 그로서는 빈혈을 감수한 대대적인 출혈이었다.
“절대 안 됩니다.”
점주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비류연의 날카로운 시선이 사내의 눈에 가서 정면으로 꽂혔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 비록 장사치에 준하지만 점주도 명색이 무림인이었다. 이 정도 협박에 굴할 수는 없었다. 방의 이익을 지키고, 이윤의 극대화를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그렇게 쳐다보셔도 안 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비류연의 몸에서 무형의 압력이 무럭무럭 솟구쳐 나와 사내의 몸을 은근히 압박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그의 눈빛에 담긴 집념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아… 안 됩니다.”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압력을 견뎌 내며 사내가 말했다. 그의 투철한 상인 혼이 환한 빛을 발하며 타오르고 있는 중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고른 셈 이다.
“에누리 없는 장사는 없는 법이지요. 가격을 깎는 것이야말로 손님의 특권. 전 절대로 그 특권을 양보할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비류연의 의지는 금강석처럼 견고하고, 태산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누군가는 양보의 미덕을 발휘해야만 했다. 그러나, 문제는 둘 다 그 대상이 되는 걸 꺼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정된 값을 깎는 것에는 시간과 정열이 필요하다. 에누리된 값, 가격 인하율의 상승은 투자된 시간과 끈질긴 정열에 비례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류연은 이쪽 방면 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독한 놈이었다. 그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는 주인은 지금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가격 흥정 없이 물건을 사 본 기억이 없는 비류연이었다. 사부로부터 끊임없이 단련을 받아 온 금전 감각을 그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패배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점주는 비류연과의 무모한 정면 대결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힘껏 당겨진 현처럼 팽팽한 두 사람의 신경전은 이제 장기전으로 돌입하고 있었다. 서로 자신의 위치에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사태가 이 지 경까지 이르게 되면 이제 승패의 행방은 기가 약한 쪽이 지기 마련이다. 정신력이 모든 걸 좌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의 충만함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 는 비류연이었다. 게다가 돈에 대한 집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는가.
“14냥!”
점주의 정신력 저하와 함께 가격도 한 단계 밑으로 내려갔다.
“11냥!”
“13 냥!”
“11냥 25문!”
이제 흥정 단계가 은자에서 동전으로 넘어갔다. 실로 훌륭한 솜씨였다.
“절대 안 됩니다.”
“11냥 50문!”
비류연이 압력의 강도를 조금씩 높여 갔다. 상대가 움츠러들도록 하는 예리한 감각을 흘려 보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 방법은 효과 만점이었다. 이것을 사용하여 지금껏 실패를 맛본 경험은 없었다.
“11냥 75문!”
드디어 점주도 포기하고 동전 단계에서의 흥정에 합의했다. 이미 대세는 판가름난 것이나 다름없다.
“11냥 50문 50푼!”
이 수준까지 이르면 이제 완전히 날강도나 다름없다.
“제가 졌습니다. 11냥 50문 50푼에 팔겠습니다.”
더 이상 심력 소모를 견디지 못한 점주는 마침내 항복을 선언하고 가격을 깎아 주기에 이르렀다. 철저하게 깎고 또 깎아서 11냥 50문 50푼으로 낙찰된 것이다. 무 려 은자 3냥하고도 49문 50푼을 절약한 셈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비류연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그는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둘의 대결을 지켜본 장홍과 효룡과 준호는 그만 그의 에누리 행태에 질려 버렸다.
이미 타결된 가격에 미련을 갖는 것은 훌륭한 장사꾼으로서 지닐 수 있는 덕목이 아니었다. 점주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비류연에게 말했다.
“이름을 지으셔야죠?”
“어, 아직 이름이 없어요?”
“이곳은 주인의 작명 특권을 뺏을 만큼 비정한 곳이 아닙니다.”
점주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원래 애완 동물의 이름을 짓는 것은 주인이 가지는 특권 중 하나라고 보아야 한다.
“뭐라고 짓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뭔가 획기적인 이름이 떠오른 듯 손바닥을 탁 마주치며 고개를 들었다.
“우뢰매라고 짓는 게 좋겠군요.”
하늘의 제왕 같은 고고한 기상과 시린 듯 푸른 깃털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감도 좋으니…….
“우뢰(宇雷)라… 좋은 이름이군요.”
점주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볼일이 끝난 비류연 일행은 새로이 그들의 일행이 된 매 한 마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문 밖을 나서는 그들의 등 뒤로 점주의 목 소리가 들려 왔다. 잠정 고객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는 끝까지 친절을 잊지 않았다.
“연애 사업에도 그만입니다. 잘해 보세요.”
점주는 손까지 흔들며 그들을 배웅했다.
비류연이 치열한 가격 협상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우뢰를 데리고서 의기양양하게 나설 때, 동시에 한 청년이 들어와 계산대 앞에 섰다. 용맹하게 생기고 매서운 눈 을 가진 두 마리의 매를 어깨 위에 얹고 있는 이십대 청년. 두 마리의 매를 어깨 위에 올린 청년의 견갑골 부근에는 가죽으로 된 보호대가 착용되어 있었고, 그것은 매의 발톱에 신체가 상처 입는 것을 보호해 주고 있었다. 그의 허리에 검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팔뚝에 찬 단단한 강철 비구(팔 보호대)로 보아 권법이나 조공(爪 功)의 달인 같았다. 검게 단련된 청년의 열 손가락으로 보아 아마도 조공의 달인인 듯싶었다.
그를 본 점주가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의 격식을 갖춘 인사는 결코 보통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삼 공자님, 오셨습니까.”
“잘 있었나, 하 총관.”
가슴에 황금빛으로 매가 수놓아져 있는 청년이 아는 체했다.
그는 천응 방주 비응왕(飛鷹王) 응성현의 세 번째 애제자 귀응조 우성찬이었다. 그러기에 하 총관의 태도가 깍듯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방금 나간 사람들은 누군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예, 금년에 입관한 1년생들이지요. 아마 입관 기념으로 전서응을 한 마리 구입하러 온 것이겠지요. 매년 있어 온 일이니까요.”
연중 행사처럼 항상 이맘때면 이곳 천응방 지부는 자신의 전서응을 구입하러 온 손님들로 붐볐다. 그만큼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근데 혹시 방금 전 손님이 가져간 건 혹시 그놈 아닌가?”
우성찬의 관심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들고 간 매에 있었다. 일단 우성찬은 해동청의 새 이름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놈이라고 불렀다. 그가 지 칭하는 것은 분명 비류연이 치열한 에누리 끝에 구입해 간 우뢰가 분명했다.
“예에, 맞습니다. 그 녀석이 드디어 제 짝을 만난 거죠.”
“그 녀석은 사부님 이외에는 누구도 손을 대지 못했던 천덕꾸러기가 아닌가? 그런 놈이 순순히 손님을 따라갔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군. 그것도 1학년 풋내 기 애송이들을 말일세.”
“예, 저도 쉽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방주님 이외에는 누구 앞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던 놈이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 손님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다소 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정말 예상 밖의 일입죠.”
“호오, 그거 정말 흥미로운 일이로군. 자네 방금 나간 손님의 이름을 알고 있겠지? 가르쳐 주게.”
전서응이란 서신을 주고받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파는 곳에서는 전통에 각자의 개인 번호 표시와 지역 표시를 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야만 전서가 뒤바뀌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천응방 지부에서는 전서응들의 주인도 장부에 기록해 두고 있었다.
천응방은 전서응의 판매도 판매이지만 전서 사업 운영으로 막대한 부를 비축한 문파였다. 전서응이 전서구를 밀어내고 강호의 창공을 장악함에 따라 천응방도 함 께 힘과 부를 키워 온 것이다.
하 총관이 장부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다.
“여기 있습니다. 비류연이라고 하는군요.”
“그래? 처음 듣는 인물이군. 강호 후기 지수 중에 그런 이름을 가진 인물이 있었던가?”
청년은 잠시 머리 속의 인명록을 들추어 보았지만 자신의 머리 속 리스트에는 그런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명 도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 였다.
“어쨌든 나중에 알아 보면 되겠지. 녀석을 얌전하게 만든 녀석이라……. 누군지 궁금해서 그런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나. 그놈은 성질이 고약하기는 하나 능 력만은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 녀석이지. 오죽하면 사부님께서 직접 훈련시키셨겠는가.”
“맞습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내 정신 좀 보게. 내 취아의 목걸이 때문일세. 새 걸로 바꿨으면 해서 말야.”
그제야 청년은 자신의 용건을 꺼내 놓았다. 취아는 그가 소유한 두 마리 중 왼쪽 어깨에 앉아 있는 갈색 송골매의 이름이었다. 대부분 매는 주인의 취미에 따라 목 걸이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목걸이에는 매의 이름과 소유주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이것은 소유주를 나타내 주는 역할 이외에 요즘은 다른 용도로도 자주 애용되고 있는 형편이었다.
“아니, 저번 목걸이는 어떻게 하시구요?”
점주 하 총관의 질문에 우성찬은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말을 늘어놓았다.
“아… 그거 말인가……. 그건 잃어버렸네.”
갑자기 하총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축하합니다, 도련님. 성공하셨군요. 근데 어느 소저 분입니까?”
눈치도 빠르기는……. 우성찬은 잠시 하 총관을 흘겨보고는 말을 돌렸다. 그런 것까지 일일이 다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허흠… 그런 것까진 알 것 없고, 그냥 새 목걸이나 마련해 주게나.”
아차하고 하 총관은 자신의 경망함을 책망했다. 젊은이들의 연애 사업에 자신 같은 폐물(廢物)이 끼여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괜히 상대에게 점수 깎이는 짓에 불 과한 것이었다.
“어이쿠, 이런. 이 늙은이가 잠시 주책을 부렸습니다. 그럼 맡겨 주십시오. 내일까지 확실히 만들어 놓겠습니다.”
“그럼, 부탁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