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30권 3화 – 산(山)을 낚는 어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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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30권 3화 – 산(山)을 낚는 어부-(1)

3화 산(山)을 낚는 어부-(1)

사람들은 보통 인기가 있길 바라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존재가 사람들 속에 확산되며 생기는 어떤 종류의 ‘힘’, 이른바 존재력이라 불리는 것을 얻을 수 있어서다. 그러니 모두들 그렇게 꾸미고 단련하는 게 아닐까. 자신의 존재력을 키우기 위한 본능의 발로로.

그런데 불공평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선천적으로 그런 힘을 타고나는 이들이 있다. 이성과 동성의 시선을 동시에 끌어당기는 천부적인 힘. 그런 힘을 가진 자는 지도자가 되어 남 위에 서지 못할 경우 제거당하고 만다. 잘난 사람을 보면 질투가 나는 것은 극히 평범한 감정이니까.

더구나 인간은 약간의 정정당당함만 포기하면 상대를 간단히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럿 알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인간 특유의 생존전략이라고 해도 좋은 ‘무리 짓기’다. 하나로 안 되면 셋, 셋으로 안 되면 열로 덤비면 되는 것이다. 치명적인 경쟁자를 먼저 제거하기 위한 암묵적인 합의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미 그 합의를 충분히 마친 듯한 장정들을 보며 장홍은 속으로 외쳤다.

‘아, 이런 쫀득쫀득한 엿 같은 일을 봤나!’

지금 그들에게 불필요함을 넘어 독이 되는 것은 바로 타인의 관심이었다. 인기 따위, 지금 그들에겐 안 그래도 쓰라린 위장을 벅벅 긁어대는 악마의 손길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일이 꼬이고 있었다. 그들 앞에 앉아 있는 자칭 둘째라는 이 남자가 스스로의 존재력을 사방에 무차별로 뿌려대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최악은, 걸어 다니는 ‘국지적 사건 사고 발생원’이라 할 수 있는 비류연이 그 바로 앞에 앉아 있다는 점이었다.

‘대체 저 둘째라는 인간은 정체가 뭐야? 이런 시기에 여기엔 왜 나타난 거지?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하지만 그 인간은 눈앞의 술에 몰두 중이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자신이 바라보는 술잔 안의 술이 이 세계의 전부라도 되는 것처럼.

둘째가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뭔가 그를 덮고 있던 것이 씻겨 나오는 것 같았다. 깊이 숨기고 있던 본질이 밖으로 꺼내지기라도 하듯, 진흙에 감싸여 있던 황금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둘째는 잔을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고, 비류연도 계속해서 빈 잔을 채워주며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자꾸만 내용물이 줄어드는 술병을 보고 아깝다며 말리지 않는 게 오히려 비류연답지 않을 정도였다.

“이거 소생이 너무 많이 마시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두 병째 술병이 기울어질 때쯤에야 둘째가 미안한 투로 말했다.

“전혀요. 전혀요. 술주정 같은 것만 안 부린다면 얼마든 마셔도 좋아요.”

“하하하. 그런 버릇은 없으니 다행이군요. 음, 그러고 보면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절대 많이 마시지 말라’는 셋째 누님의 엄명이 있긴 했지만………….”

약간 난감한 얼굴을 하며 둘째가 말끝을 흐렸다.

“왜요? 그거 참 이상하네요. 지금도 아무 일 없는데요?”

비류연이 어깨를 으쓱하자 둘째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몰라서 늘 자제하고 있는 덕이지요.”

두 사람의 대화에 장홍이 기가 막혀 속으로 궁싯거렸다.

‘아니, 이미 충분히 많이 일어났거든? 엉?’

자제해서 이 정도면 자제를 안 하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장홍은 골이 띵하고 아파지기 시작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이놈이고 저놈이고. 쿵!

때마침 장홍의 말을 대신하듯, 비류연과 둘째 사이에 놓인 식탁이 부르르 떨렸다. 덩치 셋이 여봐란 듯이 커다란 발로 바닥을 쾅 찍었기 때문이다. 꼴에 위협하려는 것이리라.

하지만 비류연과 둘째는 별 반응이 없었다.

“하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깐요.”

그저 맞장구를 친 비류연이 빙긋 웃으며 두부를 한 조각 입안으로 날름 던져 넣었을 뿐이었다.

자신들 셋을 완전히 개무시하는 태도에, 세 사람의 얼굴에 나 있는 칼자국이 지렁이처럼 흉하게 꿈틀거렸다.

‘이들 셋은 전위로군.’

장홍은 그들의 어깨 너머로, 객잔 북서쪽 귀퉁이를 통째로 차지한 엄청난 거구 셋을 바라보았다. 탁자 앞에 와 있는 덩치 셋도 충분히 거구라 할

만했는데, 저 셋의 덩치에 비하면 장정과 어린아이 정도로 큰 차이가 났다. 그만큼 그들의 몸집은 비정상적으로 거대했다.

‘저렇게 특징 있는 거구들은 드문데……

흑천맹 주변의 흑도문파들과 유명 무림인들에 관련된 정보 목록들이 장홍의 머릿속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후루룩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곳은 누가 뭐래도 흑천맹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대로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 호랑이굴 앞에서 보란 듯이 뻐길 만한 이들, 게다가 하나같이 옷 왼쪽 가슴에 뫼 산(山)자를 삼각형 꼴 문양으로 수놓은 이들.

‘산처럼 커다란 몸집이 하나도 아니고 셋, 그럼 거산방(巨山幇)의 세 산 덩어리들인가?’

거산삼괴(巨山三塊)!

육척(180cm)이 넘지 않으면 문파 가입도 안 되고, 칠 척이 넘지 않으면 간부가 될 수 없으며, 팔 척이 넘어야 장로급을 넘볼 수 있다는, 크고 아름다운 것을 정의로 생각하는 기괴한 습성의 문파였다. 그래서 그들을 이끄는 이는 키가 구 척(약 270cm)에 달하고 덩치는 산만 한, 걸어 다니는 산(山) 덩어리[塊]라 불리는 거산삼괴였다. 바로 저 뒤에 앉아 있는 이들 같은.

‘그럼 이 시비는 우연인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십 리 밖에서도 눈에 띌 것 같은 자들을 매복에 쓴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상식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거산삼괴가 좀 전부터 계속해서 이쪽을 쏘아보는 이유는, 제각기 양쪽에 끼고 앉은 도합 여섯 명의 여인이 이쪽을 넋 나간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의 신분을 파악했다고 생각하자 장홍은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정체를 알았으니 대응 방식을 정하는 것도 간단했다. 무림에서 덩치가 가지는 위상이 얼마나 낮고 덧없는지를 보여주면 끝나는 일이었다.

더구나 지금 눈앞에 와 있는 덩치들은 키가 많이 쳐줘봐야 칠 척 반 정도니 아직 말단일 게 분명했다.

“야, 멀쑥이! 남의 여자한테 수작 좀 작작 걸지 그래?”

“그 반반한 얼굴에 금 좀 그어줄까, 엉?”

하품 날 정도로 식상한 협박이었다.

“이봐, 형씨, 기둥서방 노릇으로 이 험한 세상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말라고, 어엉?”

쾅!

허벅지가 통나무만큼 굵고 근육이 울퉁불퉁한 사내들이 다시금 발을 굴렀다.

덜그럭! 덜그럭! 삐걱! 삐걱!!

그 힘이 제법 대단한지, 나무 바닥과 식탁이 지진이라도 만난 것처럼 요동쳤다. 흔들거리는 음식들을 보며 비류연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긴 앞머리에 가려져 있었지만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는지 세 장한이 움찔했다.

[음, 일단 벨까요?]

흉흉해진 분위기에, 모용휘가 조심스런 어조로 전혀 조심스럽지 않은 일을 물었다. 장홍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흑천맹의 외부 주변 경계 정도나 가끔 맡는 조그만 문파네. 되도록 피를 보지 말고 조용히 해결하는 게 좋겠지. 조용히. 자네, 조용히가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겠지?]

마지막으로 다짐하듯 물은 것은 비류연을 향해서였다.

[에이, 그럼요, 알죠. 그것도 모를까 봐.]

[그래? 그럼 말해보게.]

저렇게 확답을 주는데 어째서 안심감보다 불안감이 더 커질까?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야 당연히 쫄따구는 놔두고 우두머리부터 때려잡는 거죠.]

[그게 정말 조용한 방법입니까?]

방금 끼어든 전음은 남궁상의 것이었다.

[류연, 여기선 좀 더 온건한 방법을 택하는 게 낫지 않겠나?]

좀 전에 대뜸 ‘벨까요?’라고 물어보던 인물의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아니, 이번엔 류연 이 친구 말대로 하세.]

누구보다 반대할 것 같던 장홍이 동의하자 모용휘와 남궁상은 깜짝 놀랐다.

비류연처럼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시선으로 두 사람이 쳐다보자 장홍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어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런 오합지졸들은 우두머리를 단숨에 제압한 다음 자존심 때문에 입을 함부로 열지 못하게 하는 게 최고일세.]

자신이 잘났다고 떠들면서 나대는 녀석일수록 한번 코가 깨지면 누구보다 조용히 찌그러지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우두머리를 어떻게 불러오죠?]

[일단 물고기를 낚으려면 떡밥을 던져야지.]

그 와중에도 평범한 하급 악당 세 명은 탁자 앞에서 열심히 재잘거리고 있었다.

“이봐, 어르신들 말이 들리지 않아, 엉? 귀가 먹었나? 아니면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만들어줄까?”

하! 흐합! 하흐으합!

세 악당은 못생긴 얼굴을 어떻게 하면 더 못생기게 만들어 보인 다음, 못생긴 걸 공포와 두려움으로 승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중이었다.

[떡밥이 좀 부실하지 않나요?]

[큰 고기를 낚으려면 큰 미끼를 써야 한다고 배웠습니다만.]

쯧쯧쯧, 부실한 떡밥을 어떻게 요리하여 맛있는 떡밥으로 만들 것인가가 바로 요리사, 아니, 좋은 낚시꾼의 역할이라네. 자네들은 두고 보기만 하게.]

아무래도 그 좋은 낚시꾼 역할은 장홍이 맡을 모양이었다.

“이런, 이런, 대체 무슨 일이신데, 그렇게 화를 다 내고 그러십니까?”

장홍이 비굴한 웃음을 지은 채 양손을 비비며 앞으로 나섰다. 부잣집 도련님을 뼈 빠지게 모시며 그 뒷수습을 해가는 총관 역에 몰입한 채,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별 볼일 없는 악당 찌끄래기 님들께서.”

비굴할 정도로 생글생글 웃으며 하는 말이었지만, 내용은 표정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조곤조곤한 어투에 순간 넘어갈 뻔했던 세 하급 악당은, 잠시 후에야 그 내용을 눈치채고 얼굴을 푸르르 떨며 눈을 부릅떴다.

“이 자식, 방금 뭐라고 했어?”

“어이쿠, 이제야 반응이 오다니 역시 말단 악당답게 머리가 둔하시군요. 당당한 잡졸의 자세, 훌륭하십니다.”

장홍이 다시 한 번 양손을 비비며 싱글벙글했다.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른 사내들이 칼을 뽑으려고 도병에 손을 올려놓았다.

파바밧!

순간 장홍이 손가락이 재빠르게 세 번 튕겨졌다.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는 지법, 무영무흔지(無影無痕指)였다. 삼류 잡놈들에게 쓰기엔 너무 고급인 무공이기도 했다.

단숨에 혈도를 제압하자 세 하급 악당의 몸이 목각 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쯧쯧쯧, 아무리 훌륭하신 한 사람의 잡졸들이시라도 식당에서는 조용히 하셔야지요.”

아혈도 함께 제압한 덕에 세 사람의 떡 벌어진 입은 동굴처럼 열린 채 닫힐 줄을 몰랐다.

‘위험해, 위험해..

비류연과 함께 있다가 성격만 나빠진 게 아닌가 문득 염려되는 장홍이었다.

툭툭툭! 딱딱하게 굳은 세 명을 향해 다가간 장홍이, 신경을 써주는 척 어깨 위의 먼지를 털어주며 무릎 뒤쪽을 슬쩍 찍었다.

쿵! 쿵!쿵!

그러자 세 명의 칼자국 사내가 일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이 빠개질 것 같은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가 뒷골을 흔들었지만, 그들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아아, 하급 잡졸들의 몸이라 그동안 쓸데없이 덩치만 크고 머리에 든 것도 없는 윗대가리 세 명에게 부림당하느라 힘드셨나 보네요. 이럴 때는 보약이라도 먹으면서 보양하는 게 최고죠. 잡졸들도 사람인데 힘들 때는 쉬엄쉬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이쿠, 이런 데 천연 보약이.” 언제 집은 것일까. 장홍의 손에 들린 젓가락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왜애애애애애애애애앵!

그 끝에 잡힌 것은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서 끙차끙차 힘차게 날갯짓을 하는 파리였다.

“자, 공짜예요, 공짜. 제가 특별히 내는 거니까 맘 편히 드셔도 됩니다.”

장홍은 웃으면서 젓가락 끝을 가운데 칼자국 사내의 입으로 가져갔다.

뻘뻘뻘뻘

턱이 마비된 채 굳어 있던 칼자국 사내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다.

조용해진 객잔 안에서 파리의 힘찬 발버둥만이 묘하게 큰 울림으로 다가올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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