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4권 11화 – 검룡대 승급 시험
검룡대 승급 시험
검룡대(劍龍臺) 안에 마련되어 있는 비무대는
가로 세로의 길이가 열 장으로 된 정팔각형 구조를
지니고 있고, 각변의 꼭지점 부근에는
도합 여덟 개의 기둥이 서 있었다.
시작부터 정팔각형의 비무대는 단대풍이 뿜어내는 살기로 가득 찼다. 칼날을 벼리어 놓은 것 같은 날카로운 살기가 비무대 안에 가득 차 그 기세는 사뭇 흉험하기 짝이 없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닙니까?”
심사위원 중 한 명인 검법 담당 이권 노사가 옆에 있던 도법 담당 장청 노사에게 물었다. 역시 강호 바닥에서 굴러먹은 지가 한참이나 오래된 만큼 눈치도 빨랐던 것이다.
“일이 간단히 끝나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풍이가 저렇게 살기를 뿜어내는 것은 처음 보는군요.”
장 노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같은 관도끼리 서로 살기 뿜어내는 것은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풍이가 손속에 사정을 두도록 빌 수밖에요. 인명에 피해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이 커지지 말아야 할 텐데…….?”
옆에 있던 창법 담당 강후 노사도 역시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미 비무 시작을 알린 이상 중도에 그만 두게 할 수는 없었다. 인명에 손상이 가지 않는 한 은 말이다. 현재 평가단 중 그 누구도 이 시합에서 백호단의 인재인 단대풍이 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들 세 명은 모두 비류연의 무모함에 혀를 찰 뿐이었다.
비무대 위의 두 사람의 기운은 정반대였다. 단대풍의 기도는 비류연을 잡아먹기라도 하듯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반면, 비류연은 예리한 살기에도 불 구하고 어디 뉘집 개가 짓느냐는 식으로 태평스럽기 짝이 없었다. 단대풍이 뿜어내는 살기가 아까울 지경이었다.
‘누구 앞에서 감히 살기를 풀풀 뿜어내는 거야?’
징계의 손속에는 사정을 두지 않는 법. 이제는 징계의 일격을 날리는 일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점점 짙어져 가는 살기의 소유주답게 먼저 달려들어 비류연의 정수 리 백회열에 일검을 내려친 것은 단대풍이었다. 그의 검에 실려 있는 기세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비류연의 머리통이 당장이라도 두 쪽 난 수박처럼 갈라져 붉은 속이 훤히 드러날 듯 보였다. 그런데…….
“팅!”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장내에 배석해 있던 심사 위원단도 달구어진 가시방석을 깔고 앉은 사람처럼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노라 하는 절정 고수인 그들조차도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비류연은 무방비 상태로 서 있었다. 미친 거 아니냐고 의심될 정도로 반격의 기미도 없었다. 손을 빛보다 빠르게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소맷자락은 아까부터 미동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의 시력으로 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손치더라도 소맷자락의 움직임 정도는 포착되었을 것이다. 허나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놀라기로 따지면 심사 평가단의 놀라움은 당사자 단대풍의 경악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분명 상대에게선 아무런 낌새도 없었는데 내리 찍어진 단대풍의 일검이 마치 보이지 않은 막에 막힌 것처럼 그의 정수리 한치 밖에서 퉁겨져 나간 것이었다. 무거운 공기를 헤치고 들어가 부드러운 솜을 친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었다.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망연자실해 있는 단대풍을 향해 비류연이 싱긋 웃어 보였다.
“궁금해요?”
무의식중에 단대풍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가르쳐 줄까요?”
비류연은 은근한 어조에 단대풍은 또다시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갑자기 단대풍이 얼굴이 확 붉어졌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인가! 자신의 무의 식적인 행동을 깨달은 단대풍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적 앞에서 약세를 보인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비류연이 혀를 삐죽 내밀며 말했다.
“메롱, 안 가르쳐 줄래요.”
그제야 단대풍은 자신이 놀림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단대풍이 다시 검을 내리쳤다. 허나 이차 시기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여전 히 무형의 힘에 의해 그의 검이 밀려난 것이다. 귀신 곡할 노릇이었다.
“이놈! 이놈! 이놈! 이놈!”
다시 그는 검을 들어 힘차게 내리쳤다. 그의 그런 노력이 가상하긴 하지만 연속적인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역시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이 철벽처럼 그의 검 을 가로막고 있었다.
‘저…… 저놈은 도깨비라도 된단 말인가?’
그의 간담이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그에 따라 배를 뚫고 나올 듯이 부풀어 있던 그의 간담도 점점 쪼그라들었다. 역시 부종에는 냉찜질이 뭐니뭐니해도 최고였다. 십여 차례의 공격이 모두 영문을 모른 채 무위로 돌아가자 그는 이제 허탈해서 공격할 힘도 없었다. 기이한 공포감이 그의 수양을 허물어뜨리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서 생겨났다. 사람은 미지의 것에 대해 종종 두려움을 느끼는 법이다.
“어라? 끝났나 보네요. 그럼 이쪽 차례인가요? 역시 저의 결계(結界)를 깨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네요. 좀더 노력하세요. 그럼 이제 각오는 되어 있겠죠?”
비류연의 붉은 입가에 짙은 미소가 배였다. 비류연의 사정없는 주먹이 그의 흉곽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일격을 맞은 그의 흉곽이 압박 골절을 일으켰다. 본인 에겐 매우 다행한 일이라면, 운 좋게도 부러진 뼈가 폐를 찌르지는 않아 간신히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뼈가 폐를 찔러 구멍난 돼지 방광처럼 쪼그라들어 버리면 소생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도 이번 일격에 한해서였다. 다음 일격에서는 어떻게 될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일이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예상 그대로, 미리 짜여진 각본이나 계획표 대로 실행되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 다양성과 변화야말로 세상을 유지하는 법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류연의 두 번째 상대로 지목되었던 무산파의 영취검 강현추는 기권하고 말았다. 자신보다 강한 단대풍을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쓰러뜨린 비류연을 이길 자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흉부 압박 골절을 일으키고 전신을 무지막지하게 얻어맞은 단대풍의 모습은 약간이나마 남아 있던 그의 분노에 의한 투지마저 앗아가 버렸 던 것이다. 무엇보다 단대풍의 검을 막은 비류연의 비밀스런 한 수가 무엇인지 옆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아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비밀을 알아내지 못한 다면 이미 싸우기도 전에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모용휘와 함께 비류연도 육검룡이 되어 삼성제 참가 자격을 손에 쥐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남들이 모두 입을 모아 불가능이라고 합창하고 있는 삼 성제에 참가해서 우승하는 것뿐이었다.
여름도 지나가고 염도의 맹렬한 지도 하에 주작단원들의 실력은 날로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일취월장의 대가로 날마다 초죽음이 되어야 했지만 말이다. 아미산 합숙 훈련에서 비류연에 의해 기초가 다져질 대로 다져진 주작단에게 필요한 것은 좀더 자신들의 잠재된 실력과 수행 성과를 끌어내 줄 수 있는 고수들과 의 대전 경험이었다. 이제 하수들과의 싸움은 백날 천날 해 봤자 일정치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때문에 염도라면 충분히 그 녀석들에게 고수와의 실전 적(?) 대련 감각을 익히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바로 비류연의 생각이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주작단을 염도에게 맡긴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그 염도에게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일이 상대해 주는 게 매우 귀찮다는 또 다른 이유가 잠재되 어 있기는 했다.
어찌되었던 주작단에게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비류연의 계산은 얄미울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맞아 버렸다. 염도는 주작단을 교육함에 있어서 실시한, 교육 대 련을 빙자한 비무는 거칠고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었다. 염도는 구타에 가까운 몸놀림을 선보이며 주작단원들을 흠씬 두들겨 패 버린 것이다. 그 동안 비류연에게 쌓 인 감정의 앙금이 두껍긴 두꺼웠던 모양이었다. 그의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도(刀) 밑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주작단 전원은 발버둥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점점 더 고조되는 만인의 흥분 속에서 삼성제의 개막일이 다가왔다.
백이십 년 전, 태극신군 무신(武神) 혁월린과 함께 천겁혈신(天劫血神) 위천무와 맞서 싸운 무림의 세 영웅! 천무삼성을 기념하기 위한 천무삼성무제의 개막일 아 침이 밝았다. 줄여서 삼성제라 불리는 이 비무 대회의 우승자에겐 명예와 함께 여러 가지 막대한 부상이 돌아간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의약전(醫藥殿)에서 제조한 일급 영단이다. 천무학관 소속의 의약전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하나는 그 이름 그대로 평소 부상자와 환자의 진료를 전담하는 일이고, 두 번째는 바로 전래의 비방과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영단을 제조하는 일이다. 천무 의약전에서 조제되는 영단은 강호에서도 그 약효가 영 험하다고 소문이 나 있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의약전에는 이 영단 제조의 일을 위해 전담 부서인 영약 영단 제조부를 산하에 두고 있다. 이 영약 영단 제조부는 밑으로 관리부와 조제부 그리고 수집부, 이렇게 세 곳으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좀더 원활한 유지 관리를 위해서이다. 천무학관에 비치된 영단과 영약의 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엄청난 것으로 철통같은 경비와 보호로 엄중하게 관리된다. 영약과 영단은 온도, 습도, 통풍, 일조량에 매우 민감하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엄중한 관리를 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영약들을 보관하고 있다 보니 수량과 개수 파악에도 엄청나게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훔쳐 가거나 몰래 주어 먹기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
천무학관에서 지니고 있는 영약 영단은 우선 세 단계로 나뉘어 분류 보관된다. 우선 삼급 영단(三級靈丹)은 급속 피로 회복제의 효과가 있는 활심단이나 회생단 같은 여러 가지 영단이 이에 해당한다. 일이 급에 비하면 가치가 떨어질지도 모르나 강호를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유용한 물건이다. 직방으로 피로가 회복되기 때 문에 특히 궁지에 몰렸을 때 효용이 좋다. 수훈 치하용으로 많이 이용된다고 한다.
이급 영단은 특정 분야에 특정 효능이 있는 영약 영단들이 주를 이룬다. 즉 성능 우수한 해독단이나 상처 치유력이 매우 우수한 소생단이나 내가치상단 등이 이에 속한다. 내상에 효험이 좋은 영단들 중에 이 이급에 속하는 것이 많다.
삼성제의 우승자에게 복용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일급 영단은 강호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내공 증진의 효험을 볼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약효를 지닌 영단으로 가 장 그 가치가 높은 영약 영단이다. 물론 한 알만 먹고 하루아침에 뚝딱 천하제일의 내공을 지닐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지만, 강력한 내공 속성 효력이 있기 때문에 누 구나 복용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일급에 속하는 영단 중 가장 유명하고 효험 좋은 영단을 꼽으라면 소림사의 대환단(大環丹)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일급 영단은 아무리 천무학관이라도 그 수가 매우 적고 한정되어 있다. 구하기도 어렵고, 기증 받기도 어렵고, 만들기는 더욱더 어려운 천금의 가치를 지닌 물 건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소문으로는 의약전의 영단 보관소 심(深處)에는 겹겹이 엄밀하게 보호되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고 한다. 그곳에는 특급 영단으로 분류된 극소수의 영 단이 있는데, 이것들은 엄중하게 따로 보관되고 있어 그 실체의 진위 여부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들리는 풍문으로는 그 효능이 죽은 이도 살릴 수 있을 정도라는 데, 아직까지도 그 진위는 입증된 바가 없다.
이처럼 삼성제 우승자에게는 강호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내공 증진의 효험이 있는 일급 영단이 부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우승자에게는 의약전에서 제 조한 일급 영단말고도 전대 고수들이 남긴 무공 심득의 일부가 부상으로 주어진다고 하니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 대회에서의 우승은 곧 천무학관뿐 아니라 강호 전체에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을 빛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에 전 천관도는 물론 강호의 여러 문파까지 덩달아 떠들썩해진다. 이때가 되면 강호의 모든 이목이 천무학관에 집중된다. 그만큼 삼성제는 천무학관뿐만 아니라 백도 무림 전체의 큰 행사였다.
이제 조금 있으면 그런 삼성제의 개막식이 거행되려 하고 있었다.
삼성제 개막 행사장인 대연무장 안으로 털레털레 걸어 들어오는 비류연을 본 장홍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유는 그가 등에 멘 한 가지 물건 때문이었다.
“자네, 지금 등에 지고 있는 게 무언가?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한 번 물어 보고 싶군.”
장홍이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다. 비류연의 등에 길쭉하게 달려 있는 게 그렇게 신기한 것이란 말인가? 그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물건이 지금 있을 장소가 아니라 는 사실이었다. 무공의 고하를 가늠하는 자리에 왜 악기가 필요하며, 무슨 소용이 있는가?
“보면 모르나? 내 묵금일세. 내가 언제나 쓰던 거잖아?”
비류연의 손에 들린 건 뇌금 묵뢰였고, 그가 항상 사용하던 물건이었다.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뇌금 묵뢰의 오늘 용도였다.
“자네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른단 말인가?”
“물론 잘 알고 있네. 삼성제 개막식 겸 일차 예선전이 아닌가? 내가 오늘 출전하기로 되어 있는 날이기도 하지.”
비류연은 무척이나 자세히 알고 있었다.
“자네는 그런데도 그걸 들고 나왔단 말인가? 빈손으로 다른 무기는 하나도 없이? 설마 그걸 무기로 쓸 생각은 아니겠지?”
비류연의 표정이 겨우 그걸 물어 보는 거였느냐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왜 아니겠나. 당연히 무기로 쓰려고 들고 나왔지. 세상엔 금(琴)뿐만 아니라 옥소나 피리를 무기로 쓰는 음공의 고수들도 많다고.”
물론 그런 음공의 고수들이 많다는 건 비류연보다 장홍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예외였다.
“헌데 자넨 음공의 고수가 아니잖아?”
“무슨 소릴. 나도 이제 어엿한 음공의 고수라고. 예선전 정도는 이 뇌금 묵뢰만으로도 충분해. 그러니 편히 앉아서 구경이나 하시라고.”
장홍과 효룡은 출전 자격이 안 되기 때문에 자격 미달을 이유로 이번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비류연의 조언자 내지는 훈수꾼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자넨 음공을 배운지 이제 반 년을 겨우 넘겼을 뿐 아닌가? 자넨 지금 삼성제가 무슨 어린애 장난인 줄 아나?”
장홍이 홧김에 소리쳤다. 아무리 세상을 모른다지만 이건 너무했다. 자신의 진신 절기를 모두 펼쳐 보여도 부족할 판에 아직 대성은커녕 소성도 이루지 못한 무기 와 무공을 들고 나오다니. 일 년 가까이 지내 왔지만 여전히 그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비류연을 앞에 두고 장홍은 답답했다.
“걱정하지 말라니깐. 그 정도는 나도 충분히 알고 있는 일이야. 구경만 하라고. 그 동안의 성과를 오늘 여기에서 보여주지. 첫 공개니깐 두 눈 똑바로 뜨고 봐. 날이 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라고.”
그 동안 비류연의 음공 상대는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식물들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멀쩡히 살아 움직이면서 말까지 할 줄 아는 제법 똑똑한 지능 을 지닌 동물들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그 동안 기숙사 앞 화단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내 실력을 보여주지.”
주먹을 불끈 쥐며 비류연이 말했다.
“뭐? 그럼 기숙사 앞의 화단이 완전 폐허로 화(化)한 일이 자네가 행한 일이란 말인가?”
“아, 자연은 언제나 변화하는 법 아니겠는가.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지. 그러니 비밀은 지켜 달라고. 철혈무정검 강하윤 사감한테 불려 가고 싶지는 않으니깐 말일 세.”
비류연이 두 사람에게 그 일은 불문율에 붙여 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 일이 새어나가면 강 사감의 두 눈에 불똥이 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자신을 회계동에 처 넣겠다고 길길이 날뛰며 윽박지르는 강 철혈 사감을 만나는 것은 사양이었다.
검혼관 옆 화초밭을 비쩍 마르게 만든 성과가 이제 만인 앞에 선보여지는 것이다. 비류연의 호언 장담에 장홍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제삼자인 그로서는 더 이 상 참견하기가 껄끄러웠다.
‘맘대로 해라. 이제 나도 포기했다…….’
언제나 예측을 불허하는 비류연 때문에 한숨이 절로 쉬어져 나오는 장홍이었다.
묵금을 등에 멘 비류연도 천관도 일학년들이 도열하고 있는 곳에 가서 일행과 함께 자리했다. 모두들 천무학관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행사 시각이 다가오자 하나 둘 행사에 초대받은 강호 고인들이 준비된 자리에 와서 앉았다. 모두들 강호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선배 고인들이었다. 그들을 이렇게 한 번 보는 것만으로 안계를 크게 넓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구대 문파 중에서도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 장문인들은 자신들의 대리인을 보내 왔다. 그 대리인 또한 결코 강호의 배분이 낮지 않은 비중 있는 고수들이었 다.
이때 단상 귀빈석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선풍도골의 노인이었다. 그의 기도는 장내의 모든 사람들을 압도할 만큼 뛰어났다. 그 리고 연달아 두 명의 남녀가 이어 따라 들어왔다. 그들의 기도도 앞서 들어온 백의노인의 기도에 버금갈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저길 봐! 천무삼성이시다!”
그렇다! 그들도 이 대회에 참관인 자격으로 초대받은 것이다. 천무삼성을 한자리에서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하긴 천무삼성을 기 리는 대회의 개막식에 천무삼성이 빠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저기 봐! 검성(聖) 모용정천 대협이야.”
“저기 도성(聖) 하후식 대협도 계셔.”
“오오, 검후(后) 이옥상 여협도 오셨군.”
장내 전체가 모두들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현 백도 무림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천무삼성이 한날 한시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반 신선(神仙)이나 다름없는 그들을 한 번이라도 먼발치에서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그들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기 위해 목을 빼는 이들이 늘어났다. 초상화가 아닌 실물로는 좀처럼 쉽게 보기 힘든 거물들이었다. 안목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자세히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허나 천무삼성뿐만 아니라 식장에 모인 이들 모두가 삼성무제 기간 내내 이곳에서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삼성무제는 그 거대한 규모만큼이나 진행 기간도 길어 거의 반 년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이다. 삼사 일 일정으로 끝나는 간단한 게 아니었다.
진행되는 경기만 해도 합이 수십 개나 되기 때문에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고 최상의 상태로 각각의 비무를 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반 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비 무를 펼치는 것이다.
개막식에 초대받은 이들이 아마 다음에 모일 때는 삼성무제의 절정(絶頂)을 알리는 결승전 날이 될 것이다. 검성전, 도성전, 검후전 그리고 삼성대전, 이렇게 각각 의 결승전에 올라간 도합 팔 명의 무인들은 모두 결승전을 미루어 두었다가 한 번에 치르게 된다. 이때가 바로 삼성무제에서 최고의 절정을 이루는 때다.
천무삼성을 위시한 여러 강호 고인들과 귀빈들이 자리에 모두 앉자 드디어 천무삼성무제 개막식 행사가 시작되었다. 요란한 의식용 나팔과 북이 웅장하게 울려 퍼 지고, 불어오는 바람에 비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수백 기의 깃발이 나부꼈다. 그 깃발들은 하나 하나가 무림맹 소속 정도 문파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것들이었다. 대무사부 빙검 관철수가 의식 전반을 진행했고, 마지막으로 대회의 개막을 선언하기 위해 천무학관주 철권 마진가가 단상 앞으로 나섰다.
먼저 천관도 대표 삼절검(三絶劍) 청흔이 앞으로 나와 대표로 맹세했다.
“저희 천무학관도 전원은 앞으로 있을 천무삼성무제의 모든 비무에 임함에 있어 도(道)를 잃지 않고 신의를 잃지 않으며, 생명을 경시하지 않으며, 정정당당하게 혼신의 힘을 다하여 시합에 임할 것을 천무삼성 이하 여러 선배님들 앞에서 엄숙히 맹세합니다.”
“엄숙히 맹세합니다.”
대표 맹세가 끝나자 도열해 있던 모든 관도가 입을 모아 외쳤다. 장내가 떠나갈 듯 그들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천무학관주 철권 마진가도 오른손을 들어올리며 말 했다.
“나 천무학관주 마진가는 오늘 이 시각부로 제 삼십 회 천무삼성무제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각자 모든 재능과 기량을 발휘하여 정정당당히 싸워 줄 것을 부 탁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철권 마진가의 선언이 끝나자 장내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드디어 천무학관 이대 무제 중 하나인 천무삼성무제의 화려한 막이 열린 것이다.
<『비뢰도』 5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