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연의 회상
아무래도 내가 기억하기론
그때가 아마 열다섯 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제법 몸이 커진 나는 그날 오래간만에
사부랑 함께 고급 주루인 홍아(紅阿樓)에 놀러 갔다.
갑자기 돈이 굴러온 것이다. 사부가 산책 나갔다가 대뜸 왕호(王) 한 마리를 잡아 왔던 것이다. 이상했다. 물론 왕호(王虎)는 팔면 큰 돈이 된다. 때문에 그런 사 치도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간만에 사부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천제일주 옥루(玉漏)를 마시러 이곳에 오른 것이다.
사부로서는 간만에 해 보는 사치였던 것이다. 우리 사문(師門)은 꽤나 가난한 편인데다, 내가 혹독한 산업 노동 전선에서 돈을 벌어 와도 벌어 오는 족족 사부의 술 값으로 날려 버리기 일쑤였다. 다른 데는 짠데 술값만은 아끼지 않는 게 사부의 크나큰 낭비벽이자 단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문의 경제 상태에 있어서는 치명타 에 가까웠다.
그래서 일맥단전(一脈單傳)은 할 게 못 된다. 사제가 들어오질 않으니 모든 일을 내가 떠맡아야 했다. 왜 하필이면 일맥이었을까? 이맥쌍전(二脈雙傳)이면 어디 덧나기라도 하나?
언제가 한 번 사부에게 이맥쌍전(二脈雙傳) 하면 안 돼요, 라고 물었다가 눈을 부릅뜨고 광분 상태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절대로 안 된다는 말에 포기하고 말았다. 나도 설마 사부가 그렇게 광분할 줄 미처 예상치 못했었다. 나중에는 좀 생각해 봐야겠다.
일맥단전은 여러 모로 불편한 게 많다. 단지 제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하나밖에 없으니 들어오는 돈도 없고, 게다가 무슨 일 터지면 나 혼자 뒤집어써야 했다. 사부 의 책망도, 사부의 기분도, 사부의 낭비도 나 혼자 다 뒷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아아! 불행했던 나의 청춘이여……!
여하튼 각설하고 내가 이상하게 여겼던 점은 아직도 뒷산에 호랑이가 남아 있었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부에게 덤볐다는 것 자체가 의아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아마 그 왕호(王虎)는 다른 산에서 온 멍청이인 모양이다. 그러니 바보같이 사부에게 덤볐지…….
왕호가 어흥거리며 나타났을 때 사부의 희열에 찬 얼굴은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아마 다음과 같이 외쳤겠지.
“이게 웬 떡이냐!”
그리고 단번에 때려잡았을 것이다. 주제도 모르고 덤벼든 왕호의 잘못이 컸다.
더욱더 다른 산에서 온 멍청이라는 심증이 굳어진다. 우리 뒷산 아미산으로부터 시작해서 이 주위에 있는 맹수(猛獸)들은 절대 사부에게 덤벼드는 법이 없다. 200 장 밖에서 냄새만 맡아도 부리나케 도망친다. 만일 사부가 먼저 냄새를 맡거나 낌새를 알아채면 그놈들은 그 시간부터 사부의 밥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그들의 생명은 돈으로 환원된다. 100장 밖에서 도망가도 사부를 뿌리칠 수 없다. 200장 밖에서 얼른 도망가야 생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이 산중의 왕(王)은 덩치가 산만한 백호(白虎)였다. 근데 그놈이 얼마 전에 겁도 없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눈 앞의 횡재수를 그냥 보낼 만큼 난 어 리석지 않았고, 실력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난 그날 백호의 뼈 하나, 간 부스러기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알뜰살뜰하게 처분해서 모두 돈으로 바꾸었다. 그때의 뿌듯함이란……!
그렇게 백호가 저세상으로 간 후 아무래도 산 중의 왕 자리가 공석(空席)으로 빈 모양이다. 그때부터 아마 왕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야수들 간의 다툼이 시 작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소문이 다른 산까지 퍼졌는지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이 산의 왕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맹수들이 모여들었다.
그 왕호(王虎)도 덩치나 격으로 보아(가죽을 벗겨 온 걸로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다) 다른 산자락에서 왕 노릇 하던 놈임이 분명했다. 쯧쯧! 과욕이 화를 부른 것이 다. 그러니 백호도 300장 밖에서 기척만 느껴도 피해 가던 사부의 산책로를 가로막았지!
어쨌든 옛 속담대로 죽은 호랑이는 교환 가능한 가죽과 기타 등등 값나가는 물건들을 남겼고, 예상치 못한 고수입을 올린 사부는 기분 한 번 내 본다고 이 비싼 홍 아루(紅阿樓)에 오른 것이다.
늙은 영감탱이가 주책이라고 그 비싼 홍아루에 올라 사천제일주라는 옥루주(玉漏酒)면 충분하지, 풍류를 한답시고 기녀까지 불렀다. 노력하지 않아도 사문의 경 제 상태가 빈곤한 판에 거기에 박차를 가해 가속도를 붙이니, 기가 막힐 수밖에…….
허무하게 날아가는 돈뭉치가 무지무지 아깝긴 했지만, 가끔 그럴 수도 있나 보다 하고 굳게 마음먹고 무시했다. 그런데 여기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웬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불러오는 기녀들마다 날 한 번 힐끗 보고는 고개를 팍 숙이는 것이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난 맹세코 아무 짓도 안 했다. 그냥 어딜 쳐다보냐고 한 번 슬쩍 쳐다봤을 뿐이었다.
불려 온 기녀가 고개를 팍 숙인 채 부비부비, 몸을 비비꼬고 있으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러니 흥이 날 리가 있나! 그래서 사부는 할 수 없이 동작 불능 상태 에 빠진 기녀 대신에 다른 기녀를 불러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는 것 아닌가. 그렇게 무안했던 적도 참 드물었다. 그 여자 얼굴 이 왠지 발갛게 변한 것 같기는 했는데 열이라도 있었나?
이유도 없이 한 번 보고는 외면하다니 예의 범절이 상당히 불량했다. 할 수 없이 사부는 그 기녀 소저 대신에 다른 기녀 소저를 불러들여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똑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뭐야, 저 여자? 기분 나쁘게??’
일곱 번인가 여덟 번인가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사부도 더 이상 기녀를 포기하고 말았다. 별실까지 빌려 기분 좀 내 보려 그랬는데 모두 망치고 만 것이다. 그러 더니 멀뚱히 앉아서 홀짝홀짝 술만 마시며, 간만에 차려진 호화찬란한 술상 앞에서 이런 사치 또 언제 하나’하는 생각에 안주발을 세우고 있던 나에게 불호령을 터 뜨리는 게 아닌가. 그때만큼 억울했던 적도 별로 없었다.
“이놈!류연아!
“예, 냠… 사부 냠….”
나는 먹고 있던 우양육(牛肉)을 우물우물 씹으며 물었다. 방금 전까지 기분이 하늘을 찌를 듯하던 사부가 갑자기 분위기 돌변하여 노기(怒氣) 등등한 눈으로 째 려보는 게 아닌가. 이유를 알 수 있어야지…….
“이놈아! 너 때문에 아가씨들이 다 도망가지 않느냐! 어떻게 책임질래?”
“따악!”
‘음! 매우 감정적인 일격이었어!’
여러 번 맞아 본 경험이 있는 나는 금방 그 차이를 파악해 냈다. 이건 매우 감정적으로 후려친 것이다.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입을 열어 바른 소리를 했다. “미성년이 그런 것도 책임져야 합니까?”
바른 소리 하는데 꿀릴 게 없는 나는 당당하게 의견을 개진했다. 그러자 사부가 금세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으음……. 어린 내가 참았다.
“앞으론 앞머리를 길러 그 두 눈을 감추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왜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 잘생긴 얼굴을 가릴 수야 없지 않은가. 그러자 처음엔 사부도 뭔가 할 말을 생각해 내는 듯했다.
“사부가 하라면 잔말 말고 할 것이지, 웬 불만이 그리 많으냐. 네 녀석 눈은 여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앞으로는 가리고 다녀라. 너도 보질 않았느냐. 기 녀 아가씨들이 네 녀석 보고 슬금슬금 외면하며 도망가는 것을.”
난 그게 늙은 사부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젊고 싱싱한 나 때문이었나?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나도 좀 진지해 졌다.
“그래서요?”
나는 사부의 말을 오래간만에 경청하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사부 또한 나의 기특한 태도를 보고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그게 다 너의 그 눈 때문이니라. 설마 뇌령신공(雷靈神功)과 영사심결(靈絲心結)의 효과가 눈에 그런 식으로 나타날 줄은 나도 생각지 못했다. 앞으로 네 녀석 눈 만 보면 여자들이 모두 달아날 것인즉, 앞머리를 길러 가리고 다니도록 하여라.”
“예! 사부!”
왠지 좀 속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이 착각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후로 머리를 길러 눈을 가리고 다녔다. 이미 안력에 의존하는 경지는 지난 터라 좁혀진 시야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머리카락 한 올 정도의 두께는 별다른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시력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이 월등히 발달하게 되었 다.
그 후로 가끔 가뭄에 콩 나듯 사부를 따라 주루(酒樓)에 오르거나, 여자들이 나를 만나도 얼굴을 피하는 일은 없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여태껏 앞머리를 기르게 된 것이다.
더 이상 회상 해봐야 끔찍한 과거밖에 생각날 게 없으므로, 비류연은 퍼뜩 회상의 호수에서 정신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니, 아직도 엉거주춤 한 상태로 서 있는 전옥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는지 비류연이 한 마디 했다.
“빨리 안 덤벼들고 뭐해요?”
한심하다는 듯이 비류연이 말했다.
“상대가 한눈 팔고 있으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이때다 하고 달려들었어야죠? 내가 이렇게나 정신을 다른 데 놓고 허점을 만들어 줬는데, 그 많던 허점이 보이 지 않던가요?”
비류연의 가차 없는 면박이었다. 물론 전옥기의 눈에도 비류연의 허점이 확연하게 들어왔었다. 시선은(머리카락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지 왠지 상태가 이상했다. 하지만 그는 달려들지 않았다. 별것 아닌 놈에게 먼저 출수할 수 없다는 소위 명문의 자존심이란 것이없었다.
“명문의 제자는 남의 약점을 찌르거나 하지 않는다. 언제나 정정당당히 정면으로 승부한다.”
“입 발린 소리하기는……. 이제 정신차렸으니 빨리 덤벼들어요. 아직까지 안 덤벼들고 뭐했어요! 시간 아깝게, 쯧쯧!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오히려 허점을 드러낸 자신에게 덤벼들지 않은 것이 불만이라는 말투였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감히 이름도 없는 문파 제자 주제에…….’
내심 어처구니가 없는 전옥기였다.
허나 비류연의 말대로 그의 발걸음은 선 자리에서 한 걸음도 떼어지지 못했다.
“번쩍!”
날카로운 예기(氣)와 함께 그의 콧등에서 핏줄기가 흘러 나왔다. 그도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팅’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콧등에 섬뜩한 느낌이 전해졌고, 이윽 고 시뻘건 핏줄기가 콸콸 흘러 나와 얼굴과 온몸을 적셨다.
홍란은 심사위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영문인지 그녀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눈은 경악으로 가득 물들어 있었다.
“말도 안 돼! 설마 벌써 탄음상인(彈音傷人)의 경지에 올랐단 말인가?”
허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팅하는 첫 음파에는 별다른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탄음상인(彈音傷人)!
말 그대로 음파를 튕겨 사람을 상하게 하는 음공(功)의 최고급 기술을 자신이 못 알아볼 리 없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 의문은 비류연의 한 마디에 곧바로 풀어졌다. 그러나 새로운 의문이 생기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런, 이런! 현(絃)이 끊어져 버렸네요!”
뒤통수를 긁적이며 미안한 듯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전옥기는 그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끊어진 현(絃)이 그처럼 깔끔한 반원을, 섬뜩한 예기까지 품으며 날아 온단 말인가. 게다가 그 현은 이미 비류연의 손에 언제 그랬냐는 듯 회수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명백한 고의가 분명했다. “만일 저 현의 끝자락이 내 목을 노렸다면 과연 피해낼 수 있었을까??
전옥기의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베어진 콧등으로부터 핏물이 샘솟듯 흘러 나왔다. 이윽고 그의 얼굴에서 색소가 급속도로 빠져나가면서 시체처럼 창백해 졌다.
“쿵!”
자신의 심장 떨어지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천둥소리만큼 크게 울려 퍼졌다.
“헉! 그럼 내가 어제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전옥기의 안색이 단번에 시체를 능가할 정도로 핼쑥하게 변했다. 어제 주루에서 벌어진 일이 주마등처럼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이것이 만약 악몽(惡夢)이라면 어서 빨리 깨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직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넋 이 나간 듯 멍하니 서 있는 전옥기를 향해 비류연이 물었다.
“혹시 충격 요법이라고 알아요?”
“그…. 그게 뭐냐?”
“그러니깐 간단히 설명하자면, 약간의 충격을 인체에 가함으로써 특정 증상의 호전(好轉)을 꾀하는 치료 요법의 일종이죠!”
비류연의 입가에 맺힌 웃음의 농도가 점점 더 짙어져 갔다. 조금 있으면 매우 위험한 일이 일어난다는 증거였다.
“무슨 증상을 말이냐?”
아직 전옥기는 비류연이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역시 바보한텐 약이 없다고, 둔하긴 여전했다. 지혈은 생각도 못하고 있던 터라 그의 콧등에서는 여 전히 핏물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거의 만병 통치약이죠! 여러 가지 증상에 다양하게 효능이 있어요. 특히 댁 같은 명문 우월증에 걸린 자의식 과잉 환자한테는 말이죠.”
“닥쳐라! 건방지다! 이놈!”
전옥기가 버럭 외쳤지만, 그런다고 중도에 그만 둘 비류연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 전옥기의 전의는 반 이상이 상실된 상태였다.
“훗훗! 이런 불치병에 아주 잘 듣죠! 그런 계통의 증상에는 거의 현존하는 유일한 치료법이라고나 할까요?”
전옥기의 안면은 화로 속에 달구어진 쇠처럼 붉게 변해 있었다. 거기에다 핏물까지 흘러 나오고 있으니, 괴기하게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효과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비류연이 몸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의 동작은 눈부실 정도로 빨라 미처 방비할 틈도 없었다.
“직접 확인해 보시길!”
말이 끝나는 동시에 비류연의 묵금이 날아들었다. 이제 비류연도 탄금을 포기한 듯 연주할 기색조차 없었다. 아예 작정하고 묵금을 휘두를 모양이었다.
항복(降)을 선언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비류연의 묵금(墨琴)이 주둥이를 사정없이 뭉개버렸다. 틀어박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거대한 충격에 전 옥기의 이빨이 핏물과 함께 몽땅 부러져 나갔다. 순식간에 그는 당분간은 죽 이외에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러기에 만악(萬惡)의 근 원인 세 치 혀를 조심해야 한다고 옛 성현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다. 보통 때 같으면 이 정도로 끝냈겠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퍽! 퍽!”
좌측 뺨을 강타하는 극렬한 통증과 함께 전옥기의 몸이 우측으로 튕겼다가는 다시 좌측으로 튕겼다. 이번엔 극렬한 통증이 우측 뺨을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타악!”
다시 비류연의 묵금이 바람처럼 그의 다리를 휩쓸고 지나가자 종아리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그의 몸이 지면과 수평으로 허공 중에 붕 떠버렸다. 기다리기 라도 한 듯 비류연의 묵금이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반듯이 세워졌다.
“퍼억!”
전옥기는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허공 중에 1장 이상 붕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떴다가 떨어져 내리는 전옥기의 몸을 비류연은 묵금으로 시원스럽게 후 려갈겼다.
“빠악!”
요란한 소리가 비무대 위에 울려 퍼졌다.
혹시 호수면에 튕기는 돌을 본 적이 있는가? 현재 전옥기의 모습이 꼭 그러했다. 세 번이나 비무대 바닥을 호수면 삼아 튕겨 오른 전옥기의 몸은 아직도 힘의 여력 이 남았는지 장외로 날아가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틀어박혀 버렸다. 그리고는 게거품을 물며 나자빠져 버렸다. 힘 조절은 적당히(?) 했기 때문에 죽지는 않았다. 사지를 문어처럼 늘어뜨린 채 빨간색 게거품을 물고 있는 전옥기를 향해 응급 요원들이 달려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던 의약전(醫藥展 사람들이었 다.
누가 봐도 명백한 비류연의 승리였다. 결국 전옥기는 선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끔찍한 패배를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
심판관조차도 이 사태에 한동안 넋이 빠진 듯 멍하니 있다가, 한참 후에야 정신이 들었는지 깃발을 들어 비류연의 승리를 선언했다.
“비류연! 승(勝)!”
관람석에서 지켜보던 모두들 이 돌연한 사태에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믿었던 팔비신검(八臂神劍) 전옥기도 비류연의 격타금(擊打琴) 아래 제물이 되 어 버렸다.
“으하하하하하! 통쾌하다, 통쾌해! 잘 했어! 아주 잘 했어! 10년 묵은 체증이 오늘 한꺼번에 내려가는 기분이야!”
대소를 터뜨리며 칭찬을 연발하는 장본인은 바로 어젯밤 전옥기 때문에 속이 뒤집어졌던 효룡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술상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10년 묵은 체증 을 내려가게 해 준 대가로 효룡이 사는 술자리였다.
이 술자리는 오늘 비류연이 실력은 쥐뿔만큼도 없는 주제에 자만심은 고지(高地)가 보이지 않는 산이고, 허영심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골짜기인, 뺀질이 한 명을 묵사발로 만든 기념으로 열리는 자리였다.
“당연한 결과다! 그런 시시한 놈을 상대로 이 몸이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비류연이 목을 빳빳이 세우며 말했다. 현재 그의 왼손엔 닭발이, 오른손에 돼지 족발이 들려 있었다. 안주삼아 뜯고 있던 것들이었다.
“오오! 과연 천상천하(天上天下)유아독존( 唯我獨尊)!”
장홍이 어린아이처럼 박수치며 좋아했다. 아무래도 술이 양껏 들어간 모양이었다. 평소 그답지 않게 비류연의 저런 말에도 맞장구를 쳐 주는 걸 보니……. “휘이익! 우주제일(宇宙第一) 쾌남아(快男兒)!”
옆에서 휘파람을 길게 뽑으며 외치는 이는 효룡이었다. 말리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부추기는 효룡이었다. 그도 지금 한계 이상으로 술을 들이켜 이제는 술이 사람 을 먹는 단계에 와 있었다. 이런 녀석들을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오늘 주머니가 바닥나는 한이 있더라도 마시자며 효룡이 다시 술 두 병을 더 주문했다. 모두들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공짜로 먹는 술판을 마다할 비류연이 아니었 다.
“와하하하하하하!”
다시 한번 세 사람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세 사람의 흥청거림 속에 밤은 더욱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