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대통 격타금
비류연이 위지천과 원치 않는 재회를
한 것은 나예린의 준결승전 시합 때였다.
물론 만나고 싶어서 만난 건 아니었다.
나예린 옆에 꼽사리처럼 끼여 있어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마주했을 뿐, 비류연에게는 더 이상의 큰 의미가 없었다.
나예린의 비무를 보기 위해 눈요기차 몰려든 다른 이들은 위지천의 시선이 두려워 함부로 그녀의 주위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일 간 크게 그런 짓을 벌였다간 위지천이 무슨 처벌을 내릴지 익히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꽃을 넘보기엔 위지천의 수비가 너무 철벽 같았다. 하지만 그 사선(死 線)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이가 있었다. 그것을 본 위지천의 얼굴이 당장에 구겨졌다. 독고령의 얼굴도 살짝 일그러졌다. 나예린만이 여전히 무표정한 신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 소저. 좋은 날씨죠.”
넉살 좋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이는 바로 비류연이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나예린이 조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언제 들어도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비류연은 더욱 즐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은요! 나 소저 응원하러 왔지요. 열심히 하세요.”
언뜻 보면 별거 아니지만, 비류연처럼 그녀의 시합 전에 바로 코 앞까지 와서 응원의 말을 건넨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기엔 주위의 시선이 너무 많았고, 수비 또한 막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류연은 이 모든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태연스럽게 그녀에게 접근해 말을 건네는 것이다. 그녀도 외면하지는 않았다.
“고마워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말을 받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성과였다. 이 정도도 좀처럼 없는 특혜였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보는 위지천의 얼굴이 더욱 시뻘 겋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어라? 이게 누굽니까? 에…, 그러니깐…, 이름이 뭐였죠?”
이제야 겨우 눈에 들어왔다는 듯 위지천을 바라보며 비류연이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비류연의 질문을 받은 위지천의 얼굴이 또 시뻘겋게 변했다. “네놈! 벌써 잊었단 말이냐?”
자기 볼일 다 마친 다음에야 아는 체한 것만 해도 분할 지경인데 이름마저 기억 못 하다니! 위지천의 복장을 한 마디로 뒤집어 놓는 비류연이었다.
“청성파의 제자이자 빙봉수호영화대 대주인 선풍검룡 위지천이다!”
꽤나 장황한 소개였다. 그제야 언뜻 스쳐 지나가는 말들 속에 위지천의 이름이 들어 있었음을 깨달은 비류연은 손뼉을 탁 쳤다.
“아아! 맞아, 맞아! 바로 위지천 선배였군요.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라 했어요.”
사실 위지천을 만난 건 초봄에 만난 이후 이번이 겨우 두 번째였다. 그러니 근 8개월 만의 재회였다. 봄의 꽃은 이미 지고, 지금은 열매가 맺는 수확의 계절 가을이 었다. 위지천의 존재는 애초부터 비류연의 머릿속에 별 볼일 없는 인물로 인식되어 있었던 까닭에 기억이 희미할 만도 했다.
패배의 충격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하던 위지천은 그날의 치욕을 씻기 위해 폐관수련을 결심하고, 그 어렵다는 백일연무(百日練武)에 들어갔다. 오직 비류연을 쓰러뜨리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수행이었다.
각고의 고련 끝에 성과를 얻은 위지천은 천무삼성무제에 참가하기 위해서 얼마 전에야 폐관수련을 끝내고 출관한 참이었다. 그리고 그는 비류연에 대한 소식을 듣고 쾌재를 불렀다.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짓을 저지른 천고의 죄인 비류연이 삼성무제에 참가한다는 소문이었다. 그는 즉시 그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고, 곧 그 소문이 사실이라 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잠깐의 방심으로 당한 치욕을 갚아 줄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마침내 뼈를 깎는 수행의 성과를 보여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검을 주로 쓰는데도 불 구하고 삼성무제에 참가 신청을 냈다.
오직 비류연과 싸우기 위해서……. 그리고 가장 처참하게 쓰러뜨리기 위해서……. 그런 다음, 땅에 떨어진 명예를 다시 세우리라. 그는 그렇게 결심하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이네요! 어디서 본 것 같다 했더니 아는 얼굴이었군요. 그건 그렇고 잘 살고 계시니 반갑네요.”
위지천이 누군지를 기억해냈으면서도 태연하기만 한 비류연이었다.
“무슨 뜻이냐?”
애써 터져 나오는 분노를 억누르며 굳은 얼굴로 위지천이 반문했다. 비류연의 낯짝만 봐도 가슴 속에서 열불이 끓어오르는 위지천이었다.
“전 또 그날의 일을 참지 못하고 자결이라도 하셨나, 걱정 많이 했죠. 좀처럼 모습을 볼 수 있어야죠.”
분노를 억누르며 참고 있는 위지천에게 서슴없이 염장을 질러버리는 비류연이었다.
“네, 네놈이…….”
울화통이 터져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예린 앞만 아니었으면 당장에 칼부림이 났을 것이다.
“사람이 성의를 가지고 대하는데 그런 태도를 취하시면 안 되죠, 그건 결례가 아닐까요?”
위지천의 인상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혼자서 염장 다 질러놓고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희희낙락하고 있으니 눈이 안 뒤집힐 수가 없는 것이다.
“그날의 치욕을 갚아 줄 것이다. 결승전에서 보자.”
위지천은 한 마디 쏘아 보내듯 툭 던져 주고는 더 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태도를 취했다.
“왜 결승전에서 선배님과 만나게 되는지요? 의아하네요?”
천진난만을 가장한 비류연의 반문에 다시 한번 위지천의 인상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비류연의 말은 자신의 존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었기 때문 이다. 아니면 자신을 갖고 놀고 있거나…….
삼성대전 최대의 난관(難關)이자, 우승 후보로 꼽히는 자신의 존재를 이토록 완벽하게 무시하는데,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내가 삼성무제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네놈하고는 조(組)가 갈려서 중도에는 만나지 못하지만, 만일 네놈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결승에서 만날 수 있겠지. 내 손 아래 꺾일 때까지 지지 마라.”
비류연은 그 누구의 손도 아닌 자신의 손으로 꺾어야 한다. 그것도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호오, 선배가 결승전까지 올라갈 실력이 되는가 보군요. 이야~, 이거 대단한 발견인데요. 전혀 몰랐습니다. 그 동안 뭐 좋은 거라도먹었나 보죠?”
이건 완전히 작정하고 조롱하는 것이 아닌가? 위지천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옆에 서 있는 이상 함부로 경거망동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여전히 그의 발목과 이성을 붙잡고 있었다.
“저야 당연히 올라갈 테니 그쪽이나 신경 많이 쓰세요. 그럼…….”
더 이상 위지천하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그는 싱글거리며 이내 시선을 나예린 쪽으로 돌렸다. 위지천이 중간에 끼는 바람에 이야기도 제대로 못한 것이다. 그 러나 나예린은 준결승 시합에 진출하기 위해 비무대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비류연은 아쉬움이 남았는지 비무대 위로 올라가는 그녀의 등을 향해 외쳤다.
“나 소저, 잘 해요!”
이미 나예린이 비무대 위로 올라간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 비류연은 위지천에게 손 한 번 흔들어 주고 제자들을 시켜 자신이 맡아 놓은 자리로 돌아갔 다.
이미 위지천의 복장은 뒤집힐 대로 다 뒤집혀 있었다.
“휴우!”
비류연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위지천은 깊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짐짓 태연을 가장했지만 절로 몸이 움츠러들고 긴장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보지 않아도 지금 주먹 안은 식은땀으로 가득하리라.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명성에 비할 때 터무니없이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비류연이 더 욱더 증오스러웠다.
“위 공자!”
어느새 다가온 빙봉영화수호대 똘마니 녀석들이 물었다.
“어째서 저따위 무례한 녀석을 그냥 보내 주십니까?”
“결승 비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립니까? 1학년 애송이가 제 주제를 알아야지요.”
“맞습니다. 우승이야 당연히 위공자의 몫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그럼!”
세 사람은 너도나도 질세라 입을 나불거렸다.
“큭! 너희들은 저 녀석의 무서움을 모르는군!”
굳어진 얼굴로 위지천이 내뱉듯이 말했다.
“예에?”
“두고 봐라! 곧 녀석의 가면을 벗겨 줄 테니 말이다. 저 비무대 위에서…….”
직접 겪어 본 자신으로서는 비류연의 실력을 과소 평가하는 녀석들의 말에 쉽사리 동조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런 녀석에게 진 자신은 어떻게 되겠는가! 부정 하고 싶지만 이미 벌어진 과거를 부정할 방도는 없다. 그의 인생에 있어 최대 최악의 오점을 남겨 준 비류연.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그날의 치욕, 수치, 분노! 아직도 뼈에 사무치게 기억하고 있다. 각오해라, 비류연!’
무섭게 전의를 불태우는 위지천이었다!
검후전의 준결승전은 모두의 예상대로 나예린의 가벼운 낙승으로 끝을 맺었다.
“자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준결승전을 이틀 앞두고 장홍은 그 동안 별러 왔던 말을 하고야 말았다.
그 동안 궁금함을 참은 채 미루어 왔지만, 더 이상은 한계였다.
“생각?”
“그래, 생각! 설마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것은 아니겠지?”
장홍은 추궁하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의 눈에 걱정의 빛이 어려 있었다.
“무모하다니? 뭐가? 보란 듯이 이겼잖아! 그럴 땐 무모하다는 표현을 쓰는 게 아니야! 잘 했다고 그래야지.”
“지금까지 그건 그저 단순한 운(運)이었을 뿐이네!”
비류연과 반년 이상을 함께 지낸 장홍조차도 그런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비류연을 1학년 애송이라 얕보고 있는 상대의 허점을 묵금(墨琴)의 변칙적인 공격으로 적중시켰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다른 관도들이 자네를 뭐라 부르는지 아나?”
“아니!”
비류연은 고개를 도리질쳤다.
“운수대통(運數大通) 격타금(擊打琴)이라고 부른다네. 휴우…….”
장홍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멀뚱한 표정으로 장홍의 말을 듣고 있던 비류연의 입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하하! 왜 멋진 이름이잖아! 운이 좋다는데 뭐가 불만이야?”
장홍의 얼굴은 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 그게 웃을 일인가? 다들 자네를 운만 억세게 좋은 애송이라고 부르고 있다네. 왜 자네의 장기를 쓰지 않는 건가?”
“장기? 그게 뭔데? 잊어버렸어!”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비류연이 반문했다.
“뭐야?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장홍은 비류연의 반문에 어이가 없었다. 깊게 생각해 볼 것 없이 비류연이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게 확실했다.
“자넨 혹시 기억하고 있어? 내 장기가 뭔지?”
비류연은 장홍 옆에서 지원 사격이라도 할 듯 서 있는 효룡을 향해 물었다.
“그야 당연히..
뭐라고 한 마디 쏘아붙여 주려던 효룡은 순간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비류연이 사용한 무공이 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제대로 보여 준 무공이라고 해 봤자 입관일 날 기숙사에서 보여 주었던 일권(一拳)뿐이었다. 문(門路)를 탐색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정보였다. 게다가 그것이 진짜배기가 아니라는데 전 재산을 걸어도 좋았다.
“그것 봐! 자네도 모르잖아. 나도 잊어버려서 기억 안 나!”
비류연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아무것도 몰라요’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야기해 줄 마음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들이 보기에는 더 없이 쪼잔해 보였다. 하긴 부모 형제간에도 숨겨야 하는 문파도 있다고 하니 말해 줄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사문을 묻는 것은 심한 결례였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무모해 보이는 짓을 하는 건가? 이유나 좀 암세! 답답해서 그러네!”
장홍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답답해해? 고민할 것도 없어. 그냥 실험이야, 실험(實驗)!”
“실험?”
효룡과 장홍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래! 일종의 자기 실험이지! 과연 내가 음공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하는 실험!”
장홍과 효룡은 그냥 듣고 있자니 점점 더 어이가 없어졌다. 지금 그 말을 자신들 보고 믿으라는 것인가? 게다가 지금까지 그가 펼쳐 온 무공을 과연 음공(功)이 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도 들었다. 차라리 그것은 격금술(擊琴術)이라고 명명해야 할 신종(種) 무기술이었다.
“휴우, 역시 무모한 게 맞았어!”
효룡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내뿜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금(琴)을 들고 비무대 위에 섰단 말인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장홍이 따지듯 물었다. 항상 큰형 역할을 하려고 하는 장홍이었다.
“겨우라니! 그건 실례라구! 난 이 몸 나름대로 심각하다구! 날 실험대상으로 삼기가 쉬운지 아는가! 이 얼마나 거룩한 희생 정신인가!”
“쳇! 자네랑 설왕비무(舌往比武: 혀로 하는 비무, 말싸움)를 벌인 내 잘못이 크네.”
장홍이 마침내 항복 선언을 했다. 설왕비무의 승리는 비류연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하나만 경고해 두겠네.”
장홍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청하지!”
“저번처럼 악기(樂器)만 휘두르다가는 백 날 가도 음공(功)의 음자도 얻지 못할 걸세.”
“충고, 뼈에 사무치는구먼. 잊지 않겠네! 그런데 이론과 실전의 차이가 생각보단 큰 걸 어쩌겠어? 다음엔 좀 나아지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자구.” 여기에 더 이상 무슨 희망을 가진단 말인가. 자신들은 걱정과 고심의 구렁텅이에 밀어넣고 혼자 태연작작하기만 한 비류연이 얄밉기만 했다.
“그런데 자네 다음 상대가 누구지?”
“이런, 이런! 친구의 다음 상대 정도는 기억하고 있으라고. 우정에 금가지 않으려면 말일세. 아아, 우정에 균열이 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군!”
다시 한번 과장된 몸짓을 하는 비류연이었다.
“그래서 누구냐니깐?”
비류연이 장홍을 똑바로 쳐다보며 당당히 선언했다.
“나도 몰라!”
“뭐어어!”
두 사람은 더 이상 입이 있어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늘 비류연과의 대접전은 둘의 참담한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아무래도 비류연 이 녀석은 자기가 외우기 귀찮으니깐 남들 보고 외우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 고 사실 그가 이름 들어 봤자 아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니 들으나마나한 일이었다.
“저어 제가 알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고개가 목소리의 출처 쪽으로 향했다. 거기엔 여전히 존재감이 희미한 윤준호가 서 있었다.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준호가 입을 열었다. 얼굴도 살짝 붉어진 걸 보니 말하기가 여간 쑥스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모두들 의아해하는 가운데 윤
“이야! 너도 때론 도움이 되는구나! 누군데?”
“그러니깐 당문천이라고…….”
그가 우물쭈물하며 이름 하나를 입에 담았다.
“뭐야!”
효룡과 장홍은 이구동성으로 경악성을 토해냈다.
“으음. 정말 류연이의 다음 상대가 그 자식이란 말이야?“
장홍의 말이 갑자기 높고 거칠어졌다.
“아시는 분입니까?”
윤준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내가 그따위 몹쓸 자식을 어떻게 알아!”
버럭 소리를 지르는 장홍의 돌연한 반응에 윤준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안다는 얘기군!”
잠자코 있던 비류연이 한 마디 했다. 어차피 누구라고 해 봤자 그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옆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예의상으로라도 물어 봐야 했다. 안 물어 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뽐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혹은 알고 있는 바를 가르쳐 주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 얼마나 섭섭해하겠는가. 그런 이유로 인해 비류연 이 선심 쓰듯 물어 보았다.
“누군데?”
장홍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비류연의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아주 몹쓸 놈이지! 그놈 때문에 사천당문(四川唐門)의 이름이 운다고까지 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아주 패악한 놈일세. 당문의 금기를 어기고 비무 대회에서도 독 을 함부로 쓰는 녀석이지. 그래서 별호도 독랄수(毒辣手)야! 별호만큼이나 독랄한 놈이지. 당문은 뭐 하는지 몰라 그런 녀석 안 잡아가고…….”
“꽤 재미있는 녀석인가 보네!”
효룡과 장홍의 격렬한 반응에 비해 비류연의 반응은 그걸로 끝이었다.
전혀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뭐! 독랄수 당문천!”
금영호의 부르르 살 떨리는 외침과 함께 주작단 모두의 시선이 당삼에게로 쏠렸다. 같은 당씨 집안 사람으로서 한 마디 해 보라는 의미였다.
당철영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말이 없었다. 왜 이렇게 동기들이 놀라는지 그도 싫을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당문천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독을 즐겨 쓰는 이유는 독(毒)을 반드시 써야 할 만큼 일신 무공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독(毒)을 쓰는 게 재미있고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당문(唐門)의 금기를 아주 교묘하게 어기는 놈이라 당철영에게도 매우 못마땅한 녀석이었다. 아무리 사촌 형제간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왜 그 런 녀석에게 가문의 제재가 없는지 원망스러웠다.
사실 그도 사천당문의 적손인 관계로 그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그 자질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의 포악한 성격을 덮을 만큼……. . 허나, 대 사형에게까지 당문천의 독랄한 수법이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되는 당삼이었다.
“별거 아닌 녀석이군”
한참이나 당문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후 비류연의 소감이었다.
“자넨 참 태평하구만.”
장홍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천성이야. 내버려두게나! 대신 걱정해 주는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는데 나까지 힘들게 고민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 이 몸까지 덩달아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대신 고민해 주는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말은 되는 것 같구만. 이상하긴 여전하지만!”
효룡이 피식 웃으며 한 마디 했다.
“허나 대신 걱정해 줄 순 있어도, 시합에서 대신 이겨 줄 순 없다네!”
장홍이 다시 한번 주의를 주듯 말했다. 비류연의 거침없음을 볼 때마다 아무래도 물가에 아이를 내놓는 것처럼 불안했던 것이다.
“그런 걸 보고 걱정도 팔자라고 하거나, 또는 걱정 매매라고도 한다네. 사서 고생이라고도 하고 말이야. 장홍은 가끔씩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당연한 일을 걱 정하는 나쁜 버릇이 있어. 아저씨처럼 말이야. 그런 걸 보고 기우라고 한다는 옛 말도 못 들어 봤나?”
남이 걱정해 주는 마음도 모르는지 점잖게 핀잔까지 주는 비류연이었다. 저 끝도 한도 안 보이는 자신감은 어디서 솟아나오는 건지 궁금하기만 한 세 사람이었다. 속이라도 확 잡아째고 열어 보면 좀 그 호기심이 충족될 텐데 말이야…….
일단 큰 소리친 이상 상식을 깨는 비류연의 능력을 믿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