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5권 14화 – 당문천과 비류연의 대결
당문천과 비류연의 대결
“설마 이번 비무(武)에서 독(毒)을 쓸 작정입니까?”
설마 하는 심정으로 당삼이 물었다.
“어떨 것 같으냐?”
당삼은 물어 보는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묻지 않아도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원래 당문에선 비무시에 독을 사용하지 않았다. 해독(解毒)도 힘들뿐더러 그런 짓 해 봐야 비겁자 정도로 낙인찍힐 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문인들은 비무 대 회에서는 독(毒)을 자제하고 암기(暗器)나 유엽비도(柳葉飛刀)를 사용하거나, 혹은 묵편(墨鞭)만을 이용했다.
당문의 편법(鞭法)이나 비도술(飛刀術) 또한 암기(器)와 독(毒) 못지않게 강호에서 알아주는 일절로 유명했다. 헌데 비무 대회든 결투든 가리지 않고 독과 암기 를 은밀히 부려대는 망종이 바로 눈 앞에 있는 당문천이었다. 당문천은 그런 묵계가 통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의 하독(毒) 솜씨는 하도 은밀해 누구도 그가 독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게다가 대회의 규정에는 독을 쓰면 안 된다는 조항이 없었다. 물론 암기 를 쓰면 안 된다는 조항도 없었다. 그저 상대를 죽이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을 뿐이었다. 나머지는 각자의 재량권에 달려 있었다. 특히 독을 재미삼아 쓰는 사천당문 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했다.
그렇긴 하지만 이번에 당삼이 걱정되는 쪽은 오히려 당문천 쪽이었다. 같은 가문의 사람만 아니었어도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입고 있는 진녹의(眞綠衣)가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자신의 눈 앞에 앉아 있는 당문천도 자신과 똑같은 색깔을 지닌 의복을 입고 있었다.
사천당문의 정예에게만 허락된 옷이었다. 당문천이 호되게 당하는 건 대환영이었지만, 진녹색 무복을 입은 당가 사람이 공개 망신 당하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사 형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독을 썼다는 걸 알면, 10배로 되돌려주려 할 게 분명했다. 물론 독에 당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였다.
“후회할 겁니다.”
당삼이 진심으로 충고했지만 당문천은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관심이 전혀 없다는 태도였다. 마이동풍이 따로 없었다.
“흐흐흐! 어릴 적부터 나에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 녀석의 입에서 충고라니! 가소롭구나.”
당문천의 경멸스런 조소에 당삼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의 말대로 당삼은 소싯적부터 당문천에게 항상 패하는 역할만 해 왔다. 그것도 아주 충실하게.. 그러니 지금 당문천이 그를 깔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기회가 된다면 자신이 얼마나 변했는지 몸으로 느끼게 해 줄 요량이었다. 옛날엔 꽤나 두렵게 보였지만, 오늘 보니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져 본인으로서도 의외였다. 솔직히 현재의 당문천은 자신에게 아무런 부담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후회할 거라고 난 분명히 경고했소. 빠른 시간 내에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게 좋을 거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형은 분명히 그 사람에게 질 거요.” 당삼의 칼날 같은 말에 당문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감히 네 녀석이…….”
그의 손에서 세 개의 동전이 앞으로 뿌려졌다. 직계자손끼리 피를 부르는 암기를 쓸 수 없어 대신 징계의 의미로 동전을 사용한 것이다. 평범한 동전이라 해도 당 문천의 손에 들린 이상, 어떤 암기보다 무서울 수 있었다. 당문천은 자신이 뿌린 세 개의 동전은 당연히 건방진 당삼에게 징계의 손길을 내려 주리라 여겼다. 아직까 지 당삼은 자신을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세 개의 동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요란하게 허공을 선회하며 좌우에서 시간차를 두며 당삼을 노리고 날아 들어갔다. 회선표의 요결을 가미한 삼환비선(三環飛 旋)의 묘기였다. 허나 동기들에게 당삼이라 불리는 당철영은 이미 옛날의 당삼이 아니었다.
당문천, 그가 아는 당삼은 아미산에 갔다 오기 전의 당삼이었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당삼은 아미산에서 지옥을 보고 온, 게다가 요즘도 수시로 지옥을 보고 있 는 당삼이었다. 그 실력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아미산(峨嵋山)에서 뼈를 깎는 고련(苦鍊)을 하고, 지금도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구슬을 꿰고 있는 당삼에게 이 정도 변화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린애 장난처 럼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삼환비선은 자신도 이미 알고 있고, 이제는 두 배는 더 복잡하게 펼칠 수 있는 수법이었다. 자리를 수시로 바꾸며 날아오는 세 개의 동전 이 마치 허공에 정지한 것처럼 똑똑히 보였다. 자신의 성취에 오히려 당삼이 놀랄 지경이었다.
당삼은 세 번 몸을 돌리며, 세 번 손가락을 튕겨내는 것으로 당문천이 펼친 삼환비선의 묘기를 파해(破解)시켜 버렸다.
당삼의 돌연한 무위에 당문천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네, 네가 감히 나의 삼환비선(三環飛旋)을 막아내다니…….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철영!”
“별것 아닌 일에 놀랄 거 없소.”
당삼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문천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분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가봐라! 꼴 보기 싫다.”
축객령이 내려졌다. 당삼도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미 용무는 다 마친 터였다.
“핏줄의 정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 찾아 온 길이었소. 이걸로 핏줄에 대한 나의 책임은 모두 끝난 거요.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경고하지만 내일 독(毒)은 쓰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거요. 그리고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시오. 그게 그나마 명예를 지키는 길이 될 것이오.”
할 말을 다 마친 당삼은 내 할 일은 다 끝났으니 더 이상 용무가 없다는 듯 몸을 휭 돌려 바람처럼 사라졌다.
등뒤로 ‘으드득!’ 당문천의 이빨 가는 소리만 아스라이 들려올 뿐이었다.
“성질 하고는…….”
한 마디 해 주는 걸 잊지 않는 당삼이었다.
사부를 보면 제자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당문천은 매우 위험했다. 당문천이 자랑하는 독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아미 산에서 분한 마음에 독을 써 볼 결심을 안 해 본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약한 독(毒)으로 예행연습까지 해 봤다. 허나 소용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전혀 독(毒)이 효과가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대신 그 대가로 죽을 뻔한 경험이 있기는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부는 단번에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했던 것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끔찍한 기억이다. 비무 대회에서 독을 쓰는 건 금지된 일이 아니지만,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더 이상 자신의 사촌형인 당문천이 가문에 먹칠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당삼의 바람이었다. 그의 걱정은 별도로 하고 어 쨌든 준결승전 날은 돌아오고야 말았다.
“이길 수 있을까? 상대는 바로 4학년생 중에서도 악명 높은 독랄수 당문천이야. 1학년 애송이에게 질 상대가 아니지.”
이제 곧 준결승전이 시작되려는 비무대 위를 바라보는 외눈의 주인공. 왼쪽 눈에 안대를 찬 당찬 기도의 여인, 독고령이 옆자리에 고요하게 앉아 있는 사매 나예린 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흉하게 보일 왼쪽 눈의 안대가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승부는 아직 모릅니다. 이번 시합에서 꼭 당문천 선배가 이기라는 보장은 없죠.”
나예린은 독고령의 의견에 찬성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말에는 의외로 단호한 면이 있었다.
“호오……, 뜻밖이구나. 보는 데 있어 누구보다 정확한 눈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그렇다면 과연 저 1학년 놈이 당문천과 무를 겨 룰 충분한 실력의 소유자라는 말이 되겠구나? 사실 독랄수 당문천은 무공 말고 다른 수법에 능하지. 그게 상대하는 자에게는 더 까다로운 문제지. 게다가 비무 대회 라고 해서 아끼거나 자제하거나 하지는 않아. 그런데도 겨룰 만하단 말이냐?”
나예린은 침묵한 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호오!”
나직한 감탄성과 함께 독고령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자신의 사매가 절대로 허언(虛言)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다.
“하지만, 저 1학년생! 마음에 들지는 않는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그녀가 알기론 독고령이 저 비류연이라는 사내와 만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저런 이상한(불쌍하게도 현재 비류연에 대한 나예린의 평가는 이 정도가 고작이었 다) 남자와 교류를 가질 위인도 아니었다.
“쌍귀 녀석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지. 들리는 소문에는 한 패라고 하더군!”
“그러셨군요.”
그녀는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패라는 것은 저 비류연이란 사내가 애소저회(愛少姐會)의 일원이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것은 애소저회에 들어가 검을 휘둘러 본 경험이 있는 그녀였기에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독고령이 그곳을 얼마나 싫어하는지에 대해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평소 애소저회 회원들 을 벌레 이하로 취급하던 그녀였던 것이다.
애소저회(愛少姐會)! 그녀도 그곳에 대한 상당히 높은 악명(남성들은 물론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에 대해 귀가 따갑게 들은 적이 있었다. 비단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는 그들의 집요한 표적이 되기까지 했다. 어디에서도 찾아 보기 드문 경국지색의 미녀를 애소저회에서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들의 손길 은 그녀의 친위대에 가로막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당연히 그녀로서도 그곳을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애소저회 하면 여성 관도들의 제일의 공적 취급까지 당하고 있는 곳이 아닌가!
게다가 며칠 전 자신의 방에 들어온 침입자가 가져간 물건이 문득 떠올랐다. 겉으로 나타나진 않았지만 슬그머니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거렸다. 그녀도 여성인 이 상 그 일에 무관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류연은 그때 방 안에 남았던 자취를 볼 때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안타까운 것은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운 향정에서의 사건도 있었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 저기 비무대 위에 서 있는 비류연이란 사내는 그때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저기 올라가 있는 것이다. 그 약속이 본인에게 상당히 불리한 것임 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솔직히 이야기를 꺼낸 그녀 자신도 비류연이 여기까지 해 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자신의 용안에 포착되지 않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자라는 것은 거의 본능으로 느꼈지만, 설마 여기까지 해 낼 줄이야……. 역시 그때 선풍검룡 위지천을 쓰러뜨린 것은 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만일 그 실력이 진짜라면..”
그는 정말로 자신과 약속을 지킬지도 모른다.
“…..”
“핏줄의 정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 찾아 온 길이었소. 이걸로 핏줄에 대한 나의 책임은 모두 끝난 거요.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경고하지만 내일 독(毒)은 쓰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거요. 그리고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시오. 그게 그나마 명예를 지키는 길이 될 것이오.”
할 말을 다 마친 당삼은 내 할 일은 다 끝났으니 더 이상 용무가 없다는 듯 몸을 휭 돌려 바람처럼 사라졌다.
등뒤로 ‘으드득!’ 당문천의 이빨 가는 소리만 아스라이 들려올 뿐이었다.
“성질 하고는…….”
한 마디 해 주는 걸 잊지 않는 당삼이었다.
사부를 보면 제자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당문천은 매우 위험했다. 당문천이 자랑하는 독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아미 산에서 분한 마음에 독을 써 볼 결심을 안 해 본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약한 독(毒)으로 예행연습까지 해 봤다. 허나 소용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전혀 독(毒)이 효과가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대신 그 대가로 죽을 뻔한 경험이 있기는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부는 단번에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했던 것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끔찍한 기억이다. 비무 대회에서 독을 쓰는 건 금지된 일이 아니지만,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더 이상 자신의 사촌형인 당문천이 가문에 먹칠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당삼의 바람이었다. 그의 걱정은 별도로 하고 어 쨌든 준결승전 날은 돌아오고야 말았다.
“이길 수 있을까? 상대는 바로 4학년생 중에서도 악명 높은 독랄수 당문천이야. 1학년 애송이에게 질 상대가 아니지.”
이제 곧 준결승전이 시작되려는 비무대 위를 바라보는 외눈의 주인공. 왼쪽 눈에 안대를 찬 당찬 기도의 여인, 독고령이 옆자리에 고요하게 앉아 있는 사매 나예린 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흉하게 보일 왼쪽 눈의 안대가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승부는 아직 모릅니다. 이번 시합에서 꼭 당문천 선배가 이기라는 보장은 없죠.”
나예린은 독고령의 의견에 찬성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말에는 의외로 단호한 면이 있었다.
“호오……, 뜻밖이구나. 보는 데 있어 누구보다 정확한 눈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그렇다면 과연 저 1학년 놈이 당문천과 무를 겨 룰 충분한 실력의 소유자라는 말이 되겠구나? 사실 독랄수 당문천은 무공 말고 다른 수법에 능하지. 그게 상대하는 자에게는 더 까다로운 문제지. 게다가 비무 대회 라고 해서 아끼거나 자제하거나 하지는 않아. 그런데도 겨룰 만하단 말이냐?”
나예린은 침묵한 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호오!”
나직한 감탄성과 함께 독고령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자신의 사매가 절대로 허언(虛言)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다.
“하지만, 저 1학년생! 마음에 들지는 않는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그녀가 알기론 독고령이 저 비류연이라는 사내와 만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저런 이상한(불쌍하게도 현재 비류연에 대한 나예린의 평가는 이 정도가 고작이었 다) 남자와 교류를 가질 위인도 아니었다.
“쌍귀 녀석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지. 들리는 소문에는 한 패라고 하더군!”
“그러셨군요.”
그녀는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패라는 것은 저 비류연이란 사내가 애소저회(愛少姐會)의 일원이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것은 애소저회에 들어가 검을 휘둘러 본 경험이 있는 그녀였기에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독고령이 그곳을 얼마나 싫어하는지에 대해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평소 애소저회 회원들 을 벌레 이하로 취급하던 그녀였던 것이다.
애소저회(愛少姐會)! 그녀도 그곳에 대한 상당히 높은 악명(남성들은 물론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에 대해 귀가 따갑게 들은 적이 있었다. 비단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는 그들의 집요한 표적이 되기까지 했다. 어디에서도 찾아 보기 드문 경국지색의 미녀를 애소저회에서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들의 손길 은 그녀의 친위대에 가로막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당연히 그녀로서도 그곳을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애소저회 하면 여성 관도들의 제일의 공적 취급까지 당하고 있는 곳이 아닌가!
게다가 며칠 전 자신의 방에 들어온 침입자가 가져간 물건이 문득 떠올랐다. 겉으로 나타나진 않았지만 슬그머니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거렸다. 그녀도 여성인 이 상 그 일에 무관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류연은 그때 방 안에 남았던 자취를 볼 때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안타까운 것은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운 향정에서의 사건도 있었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 저기 비무대 위에 서 있는 비류연이란 사내는 그때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저기 올라가 있는 것이다. 그 약속이 본인에게 상당히 불리한 것임 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솔직히 이야기를 꺼낸 그녀 자신도 비류연이 여기까지 해 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자신의 용안에 포착되지 않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자라는 것은 거의 본능으로 느꼈지만, 설마 여기까지 해 낼 줄이야……. 역시 그때 선풍검룡 위지천을 쓰러뜨린 것은 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만일 그 실력이 진짜라면..”
그는 정말로 자신과 약속을 지킬지도 모른다.
“…..”
비류연이 물었다
“독을 쓴다면서요?”
당문천은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듯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걸 왜 물어 보느냐는 그런 태도였다.
“아항! 그럼 바보네요!”
그러나 이어지는 비류연의 막가는 한 마디에 당문천은 분기탱천했다. 당문천은 살다살다 자신 앞에서 이렇게 막가자는 식으로 행동하는 놈은 처음 보았다.
“이놈!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당문천은 눈을 부리부리 빛내며 노호성을 터뜨렸다. 얼마나 그가 분노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비류연은 그런 당문천을 보며 내심 실소가 흘러 나왔다. 여기 전옥기랑 똑같은 놈이 또 하나 있었던 것이다.
“그게 뭐요? 댁의 배경이나 권력, 혹은 신분을 내가 알면 당신 무위가 20배 정도 세지거나, 아니면 내가 100분의 1 정도로 약해지기라도 한답니까? 만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크나큰 착각이자 지대한 오산이니, 냉수 먹고 속 차리라고 충고해 주고 싶군요.”
비류연의 혀 끝은 독사처럼 신랄하기 그지없었다. 듣고 있던 당문천의 얼굴이 점점 더 시커멓게 변해 갔다.
“뭐, 뭐… 뭐시라! 너 말 다했느냐?”
“아직 다 안 했으니 좀 기다려요.”
퉁명스러운 비류연의 대답이었다. 당문천의 분노는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러고 보니, 사부가 그랬었지!’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하나도 틀린 게 없지 않은가!
독(毒)이라……!
그러고 보니 옛날에 비류연이 독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었다.
비류연의 의식이 눈 앞의 당문천이란 존재는 깡그리 무시한 채 8년이란 시간의 강을 훌쩍 뛰어넘었다.
비류연이 14살이 되던 해, 사부에게 물었다.
“사부! 독(毒)을 쓰는 놈들은 어떤 놈들이에요?”
사부는 서슴없이 대답해 주었다.
“바보!”
“그럼 암기에다 독을 발라 쓰는 놈은요?”
“약골 바보!”
“암수를 쓰는 놈은요?”
“멍청이!”
“그럼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정면으로 달려드는 놈은요?”
“얼간이!”
명쾌한 대답이었다. 이해하기도 무척 쉬웠다. 사부의 이런 점만은 역시 본받을 만하다. 이런 점만……, 다른 건 빼고!
“아항! 그렇구나!”
비류연은 손뼉을 딱 쳤다. 뭔가를 하나 이해하고 깨달았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니까 다음에 통하지도 않는 독(毒)이랑 암기(器)를 함께 쓰는 약해빠진 바보, 얼간이, 멍청이 놈을 만나면 알아서 손봐 줘라 그 말이죠!”
사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귀를 잘 알아먹었다고 칭찬도 해 주었다.
“그래! 무척 간단하지. 어차피 하독 따위야 첫 시도가 실패하면 끝장이야. 특히 독(毒)이 안 통하는 상대인 줄도 모르고 독을 써서 승리를 잡으려는 놈들은 정말 바 보지.”
“왠지 사부하고 비슷하네요.”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비류연이 말했다.
“뭐야?”
“딱!”
어김없이 기다렸다는 듯 날아온 주먹이 비류연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
괜히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고 말았다. 그 대가로 저 녀석은 죽음이다.
“뭘 보고 싶어요?”
붉은 입술에 걸린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비류연이 물었다.
“무슨 도깨비 놀음이냐?”
대치 상태에 있던 당문천이 의아한 듯 반문했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이 건방진 애송이를 작살내 버리겠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4일 전 것으로 할까요, 아니면 5일 전 것으로 할까요?”
상대방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류연은 계속해서 당문천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질문을 했다.
“헛소리 그만 하고 어서 덤벼라! 귀찮다!”
영문도 모를 질문에 대답해 줄 당문천도 아니었거니와, 대답할 말도 없었다.
“원하는 대로 해 준다고 그랬잖아요.”
씨익, 웃어 보이는 비류연을 당문천은 못내 불쾌해했다.
“해 주긴 뭘 해 줘?”
“그러니깐 4일 전에 먹은 걸 보고 싶은지, 5일 전에 먹은 걸 보고 싶은지 댁의 의향을 친절하게 물어 봐 주고 있잖아요. 저의 이런 친절은 그렇게 깡그리 무시해도 되는 겁니까? 이런 건 경우가 아니라구요.”
당문천의 쌍심지가 단숨에 하늘로 솟구치고 눈에 불똥이 튀었다.
보긴 뭘 본단 말인가? 5일은 고사하고 3일 전에 먹은 것도 아직까지 소화가 안 된 채 남아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비류연의 말뜻은 네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 낼 만큼 패주겠다는 그런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당연히 당문천의 눈에 불똥이 튀고 꼭지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뚜껑이 열렸으니 사람 말이 먹힐 리가 없었다. 이성 따위는 이제 아무 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에 반해 비류연은 여전히 유유자적, 여유만만이었다. 도대체 저 터무니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당문천은 의문스럽기만 했다.
당문천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놈을 한 줌 핏물로 만들 수 있다면, 백독(百毒)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허나 상대방에게 살수를 펼쳐 상대가 죽는 사태가 발생하 면 실격 처리되기 때문에 아쉽지만 약한 독을 사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약하다고는 해도 중독되면 온몸의 근육이 뒤틀리는 쇄근독(碎筋毒)이었다. 그는 속으로 음 흉한 웃음을 지은 채 은밀하게 하독(下毒)했다.
당문천은 비류연의 중독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치명적인 실수였다.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그는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애초에 독 (毒)을 공격의 수단으로 삼은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너…, 너…, 너…, “너…!”
당문천이 경악한 채 두 눈을 부릅뜨고 떨리는 팔로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아니 더듬거렸다는 게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왜요?”
무슨 일 있었냐는 듯한, 태연하기 그지없는 비류연의 반응이었다.
“왜, 왜 아무 일도 없는 거냐? 어…, 어떻게 그렇게 멀쩡하게 서 있을 수가 있지?”
원래 정상대로라면, 비류연은 저절로 비틀리는 근육을 부여잡고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고 있어야 했다. 헌데 지금 비류연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작작 했다. 게다가 그의 신체 어디에도 중독된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분명히 독의 선택도, 풍향 읽기도 모두 정확했다. 칭찬받아 마땅할 정도로 완벽한 하독(毒) 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그 명성이 자자한 당문의 독(毒) 앞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말했잖아요. 당신 바보라고!”
그거 보란 듯한 비류연의 한 마디였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당문천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이 정도로 제 몸을 어찌해 보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아요. 그러니까 약해빠진 바보놈 소리를 듣는 거라구요.”
잊지 않고 염장까지 지르는 비류연의 한 마디였다.
당문천은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팔대세가 중 이름 높은 사천당문의 당문천이 여기서 포기하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그가 허리춤에서 묵편(墨鞭)을 꺼내 들 었다. 독이 안 되면 이제는 암기와 무공이었다. 언제라도 상대해 주겠다는 듯 비류연은 여유로운 태도였다.
“씩씩씩!”
당문천은 이제 제풀에 지쳤는지 거칠게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독편을 휘두르고, 틈이 날 때마다 암기를 뿌리는데도, 어느 것 하나 비류연 의 몸을 스쳐 지나가는 게 없었다. 암기낭이 점점 가벼워지고, 어깨가 아파오는데도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당문천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참담함이란 감정을 맛보았다. 비류연의 몸은 그에게는 닿을 수 없는 마물이나 허깨비나 혹은 신기루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 야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비류연이 당문천을 보아하니 숨을 가쁘게 쉬고, 안색이 파리한 게 몸이 무척 안 좋아 보였다. 그것을 본 비류연은 자신에게 독과 암기를 듬뿍 안겨 주려고 열심히 노력한 당문천을 쉬게 해 주고 쉽다는 아름다운(?) 생각이 불현듯 머리 속에 떠올랐다. 역시 사람은 쉴 때 쉬어야 한다. 더 이상 무리하면 몸을 해칠 뿐이다.
비류연이 당문천의 쾌적하고 편안한, 그리고 긴 휴식을 위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걸 쓰는 건 꽤나 오래간만이었다.
““저, 저… 저건!”
지켜보던 당삼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다른 주작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걸 또다시 봤다가는 애써 잊어 가던 옛 기억이 다시 떠오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삼복구타권법(三伏毆打拳法)!
주작단의 뇌리 속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무공의 이름이었다.
“끄아아아아악!”
기나긴 비명이,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의 뒤를 이었다. 듣는 이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리하여 비류연의 거침없는 손속 덕분에 당문천은 꽤 나 긴 휴식을 얻을 수 있었다. 하늘에서 느닷없이 떨어진 것처럼 돌연한 뜻밖의 휴식이었다.
이제 당문천은 힘들게 무공 수련에 전념할 필요도 없었다. 아니,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는 최소 1, 2개월간은 꼼짝없이 침대 신세만 지게 될 것이다. 이게 다 비류연의 측은지심(?)에서 비롯된 배려 덕분이었다. 지나친 친절이었을까.. .?
과잉 친절은 남에게 상당 이상의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예였다.
마침내 비류연의 결승 진출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환호는 없었고, 적막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성과에 비해 너무나 미미한 대우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