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5권 16화 – 도성전 결승
도성전 결승
뜨거운 열기와 환호가 비무대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비무대 위에서 절정의 도가 부딪쳤다.
여태껏 수많은 무인들을 무릎 꿇리며 올라온 무패의도였다.
도광이 난무하는 가운데 전 학관도의 시선이 도성전 우승 향방에 집중되었다.
“과광!”
“오오오오!!”
도성전 결승전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방금 전의 격돌은 훌륭한 것이었다.
신도문(神門)의 폭풍도(暴風刀) 하윤명과 청성파의 청류도(淸流) 유엽성이 이번 도성전 결승전의 주역들이었다. 모두에게 의외였던 것은 검을 중시하는 청성 파(靑城派)에서 도(刀)를 들고 나와 결승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이었다. 이전까지 유엽성이 사용한 도법은 청성파의 사일검법을 도법으로 변환시킨 것에 불과했지 만, 이번 결승전에서 보여 준 그의 도법은 절대 청성파의 사일검법(射日劍法)에서 변형된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백도제일도문(白道第一刀門)인 신도문(神門)의 적전 제자인 하윤명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도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달려 들었다가 지금 이런 낭패를 당했던 것이다. 격돌의 충격이 예상보다 컸는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내장도 많이 상한 것 같았다. 부딪칠 때의 감각으로 미루 어 보아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호오! 방금 그것은!”
도성전 결승에서 벌어진 최절초의 격돌을 보며 청흔이 터뜨린 감탄성이었다.
“그렇다네. 알고 계셨던가?!”
“알다마다. 불패도(不敗刀)라고 불리는 청성파(靑城派)의 유일한 비전 도법 청류흔(淸流痕)이 아닌가!”
“맞네! 역시 자네의 안목은 놀랍기 그지없군. 단번에 그것을 알아보다니 말일세. 세간에는 거의 절전되었다고 알려져 있을 텐데 말일세. 청류흔(淸流痕)! 도성전 에서 우리 구정회를 우승으로 이끌어 줄 도법이라 생각했는데 좀 무리한 기대였나…….”
청류흔(淸流痕!
청성파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비전도법(秘傳刀法)!
검에 비해 도가 많이 발달된 군웅팔가회로부터 우승을 거머쥐게 해 줄 바로 그런 도법이라 여겼었다. 때문에 백무영이 이 청류흔(淸流痕)의 전수자인 유엽성에게 기대하는 바가 매우 컸던 것이다.
“청성(城)에서 꼭꼭 꼬불쳐둔 걸 잘도 빼내 왔군. 함부로 시연하기도 힘든 비전(秘傳)의 절기(絶技)가 아닌가. 타인에게 함부로 보여지는 게 꺼려졌을 텐데 말일 세.”
청흔이 신기하다는 투로 한 마디 했다. 언제 보아도 백무영의 수단은 고명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비무대회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이처럼 화려한 대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것이 직접적인 참가든, 옆에서 지켜만 보는 관전이든 비무 대회는 많은 사람들의 안목을 넓혀 주고 실력을 증진시켜 준다. 가히 배움의 보고라고 할 수 있었다.
허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절기(絶技)의 유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한 번 선보여진 기술은 그 위력이 3할 정도 반감된다는 게 강호의 일반적인 상식이다. 게다가 주변에는 수많은 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비단 관중석만 의식해야 될 게 아니다.
따지고 들어가면 심사 위원석에 앉아 있는 장로와 타 문파 출신의 노사들 눈까지 걱정해야 될 처지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고수들은 이런 대회에서 함부로 절기를 노출시키지 않고 되도록 아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비밀이 새어나갈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한 순간의 실수로 나중에 문파 전체에 불이익이 돌아갈지도 모른다. 때로는 일부러 가짜 허점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것은 진짜 허점이 아니다. 완벽한 함정인 것이다.
강호는 이처럼 험난한 곳이기 때문에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특히 비전된 봉인기(封印技)란 그만큼 기밀을 요하는 기술이다. 금방은 그 파 장이 나타나지 않지만 그것이 언젠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돌아와 타격을 입히는 수도 많았다.
구명절초 또한 마찬가지다. 남에게 모두 까발려진 기술이 최후의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생명을 구하는 구명절초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미 알려진 기술은 자격 이 없다. 허나 점점 더 대전 상대의 수준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진신절기를 감추기란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런 비무대회나 영웅 대회에서는 각 문파 소속 정보 단체들의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는 것이다.
백무영은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하기로 했다. 도성(聖) 하후식의 일맥이라 할 수 있는 신도문(神門)과 하북 팽가(河北 彭家)가 버젓이 버티고 있는 군웅팔가회에서 우승을 빼앗아 오려면 비장의 수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실 구대 문파만큼 도(刀)와 인연이 없는 곳도 참 드물다. 소림사를 제외한 구파의 대부분은 수련과 득도를 위해 검(劍)을 잡고, 실전용의 도(刀)는 저만치 멀리하
였기 때문이다. 아예 눈에 넣지도 않았다. 그래서 매번 치러진 삼성제에서 항상 다른 대전에선 승리를 차지했지만, 도성전만은 군웅팔가회에게 승리를 넘겨 주어야 했다. 때문에 도성전은 군웅팔가회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자 최후의 보루였다.
그것을 백무영은 어떻게든 공략해 보고 싶었다. 도성전마저 이긴다면 군웅팔가회를 완전히 눌러버릴 수 있으리라 여겨졌던 것이다. 이번에 심혈을 기울여 청류흔 (淸流痕)을 꺼내 온 것이다.
신도문(神門)의 표류무상도법(飄流無上刀法)과 하북 팽가의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에 대항하기 위한 도법을 찾기란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겨우 찾아내어 까다로운 겹겹의 절차를 걸쳐 허락을 받아낸 것이 바로 비전도 청류흔(淸流痕)이었던 것이다. 들어간 노력만큼이나 거는 기대 또한 컸었 다.
우승을 기대했건만.. 아쉽게도 무승부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도성전의 벽은 높았다. 사실 무승부라 해도 따지고 보면 구정회의 승리나 다름없었다. 도성전에서 무승부를 이루었다는 것은 군웅팔가회 최후의 자존심을 꺾은 것이기 때문이다.
“만족할 만한 성과일세. 더 욕심을 부린다면 과욕이겠지…….?”
이미 끝난 일이다.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않는 게 현명한 행동이었다.
“하하하! 자네의 지혜엔 언제나 탄복을 금치 못하겠네! 저런 비장의 수를 숨겨 두었다니 말일세.”
청흔은 솔직히 감탄했다.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친구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 매사에 빈틈이 바늘 구멍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도성전에서의 무승부!
지룡(智龍) 백무영에게 있어서는 그럭저럭 만족스런 결과였다. 그의 경쟁 상대인 단목기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매우 흥미가 이는 백무영이었다. “이…, 이럴 수가! 우리가 도성전에서 우승을 놓치다니요!”
천기룡 단목우는 작금의 사태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안색은 눈에 띄게 창백해져있었다. 그가 지금 얼마만큼 심적 타격을 받았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 이었다. 함께 있던 섬룡(閃龍) 천야진의 동요도 눈에 띄게 확연했다.
설마 그가 출전하지 않았다고 해서 도성전의 승리가 물거품처럼 사라질 줄은 꿈에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으스러질 듯 움켜쥔 그의 손등 위로 푸른 핏줄이 툭 툭 불거져 나왔다. 비통함을 속으로 참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근 10년 동안 항상 패해 왔던 삼성제였지만, 그건 종합 평가의 이야기고, 도성전에서만은 승리를 넘겨 준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도성전의 승리만은 확신 했었다. 하지만 예상을 뒤집고 무승부에 그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군웅팔가회로서는 진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설마 검의 명가 청성파가 도(刀)를 들고 나올 줄이야! 일의 시작부터가 모두의 예상을 뒤집어엎는 일이었다. 청성파 유일의 도법이자 비전무공이라는 청류흔(淸流 痕)은 과연 그 위력이 무서웠다. 설마 신도문(神刀門) 절기 표류도법(飄流刀法) 중 최절초인 표풍무상(飄風無常)을 막아낼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일이라면, 이쪽도 이기지 못했지만 저쪽에도 승리를 넘겨 주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였다. 하지만 엄밀히 따진다면, 도성전만큼은 구정회에게 승리를 넘겨 주지 않고 항상 우승해 왔던 군웅회에겐 결국 패배나 진배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단목우의 낙심이 하늘이 무너질 듯 컸던 것이다.
이제 믿을 건 모용휘밖에 없었다.
검후전(劍后戰)도, 도성전(刀聖戰)도 모두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이것은 천무학관 역사 이래로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제 모든 것은 검성전의 승패에 달려 있었 다. 이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우승은 위지천일 것이라고 확정해 놓은 삼성대전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