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5권 20화 – 무주공산 어부지리

비뢰도 5권 20화 – 무주공산 어부지리

무주공산 어부지리

비류연이 연주하는 곡조는 서서히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반면 당하는 입장인 위지천은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한 번 심마(心魔)에 빠진 이상 빠져 나오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때문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팅!”

위지천의 뇌리를 강타하는 탄현 소리와 함께 절정에 이르던 곡조가 순간 끊겼다.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 분명했다. “우웩!”

곡조가 순간 끊기자 위지천은 피를 한 사발이나 토했다. 음률에 휩쓸려 가던 몸과 마음이 순간 끊어진 음에 적응하지 못하고 속이 진탕되어 피를 토한 것이다. 허나 위지천에게는 그나마 여기서 끝난 게 다행이었다. 피를 한 사발쯤 토하자 속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비류연이 계속해서 자신의 음률을 이어 갔으면 종래에는 심마(心魔)에 빠지고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들어 기혈(氣血)이 뒤엉켜 폐인(人)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류연이 손속에 사 정을 둔 것이지만,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한 위지천의 눈에 그런 게 보일 리 없었다.

몸이 제 상태로 돌아왔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을 할 차례였다. 위지천은 무시무시하고 푸르스름한 검기(劍氣)를 내뿜으며 비류연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조금 전 입은 내상 때문에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 검강(劍剛)을 함부로 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런, 이런! 은혜도 모르고…….?”

내심 괘씸한 생각이 드는 비류연이었다. 사정없는 검기(劍氣)의 다발이 비류연의 온몸에 쇄도했다. 죽지 않으려면 몸을 빼야 했다. 살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것이 비무대 위에서 쓰기엔 너무 사나운 검초였다.

“저런, 저런!”

생사를 가를 때나 쓰는 흉맹한 검초(劍招)가 위지천의 검 끝에서 줄줄이 뿜어져 나왔다. 목숨을 노리려는 살기가 듬뿍 담긴 검초들 일색(色)이었다. 비류연도 그 의 흉맹 무자비한 검망(劍網)에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봉황무(鳳凰舞)를 이용해 피해내고 있었다. 탄금행(彈琴行)만으로 피하기에는 위지천의 검기가 너무 사나웠 던 것이다.

“이거 괜찮겠습니까?”

검기(劍氣)의 사나움과 그 속에 담긴 살기를 읽은 문일기가 걱정이 앞섰는지 옆에 있던 염도에게 의견을 구했다. 이쯤에서 중지시키는 게 어떠냐는 물음이었다. 더 이상 진행되다가는 정말 피를 볼지 모르는 일이었다. 제대로 끝난다 해도 위지천의 징계는 피할 수 없을 듯 했다.

“걱정 마시오! 저 정도에 죽을 녀석이 절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염도가 말했다. 문일기나 다른 무사부들의 걱정스런 얼굴과 다르게 그는 태연 작작하기만 했다.

‘그래도 팔 하나쯤……, 상처 한두 개쯤이라도 입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염도는 잠시 자신의 소박한 꿈을 생각해 보았다. 저렇게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면 혹시라도 성공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살짝 들었다. 문제는…….

‘너무 이성을 잃고 있군! 저래서야 어찌 제대로 된 일신공력을 발휘할 수 있겠나! 쯧…….?

역시 염도답게 현재 위지천의 문제점을 단번에 파악해내는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아무래도 하늘은 그의 자그마한 소망을 들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저 아이는 참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하는군요. 아직 위지천의 사나운 검기가 한 번도 그의 몸을 상하게 하지 못했군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문일기가 감탄성을 터뜨렸다. 그의 말대로 아직 위지천은 비류연의 몸에 약간의 손해도 입히지 못하고 제 풀에 지쳐 가고 있었다. 그 답지 않게 이렇게 빨리, 쉽게 지치는 것을 보니 알게 모르게 음공에 당한 타격이 작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벌써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었다. 무리 하게 진기를 운용시켰다는 증거였다.

“곧 결판이 날 것 같군요.”

염도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위지천의 눈이 번뜩였다. 다시 한번 그의 입에선 대갈성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 선풍우뢰旋風雨雷)!”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처럼 위지천의 검이 비류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흥!”

비류연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동시에 손을 한 번 휘두르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기세 좋게 비류연을 향해 날아가던 검기는 허공 중에서 소멸되어 버리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막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크윽!”

위지천은 신음 소리를 흘렸다.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눈 앞에 있는 상대의 실력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겨우 그 정도 검기가 저한테 먹히리라고 기대하신 건 아니겠지요? 다음 순번이 준비되어 있는 걸로 아는데 제가 잘못 알았나요?”

“선풍참혼(旋風斬魂)!”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번 열여덟 줄기의 검기가 질풍처럼 검 끝에서 뻗어 나왔다. 이번에는 그로서도 최선을 다한 일격이었다. 그러나 위지천의 이번 일격도 역부족인 듯했다. 비류연이 신형을 한 번 장난처럼 흔들자 위지천의 검기는 비류연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허무하게 날아갔다.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상대 에게 일단은 맞아야 타격을 줄 수 있다. 아무리 위력이 있다 해도 목표에 맞지 않는 검기는 쓸모가 없었다.

“아직, 아직 멀었습니다. 좀 더 힘내세요.”

적에게 응원당하고, 격려당하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도 드물다. 얼마나 여유만만하면 상대에게 격려 전언을 흘리고 있겠는가.

“크으으으으!”

위지천은 너무 분해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무시당해 본 적이 태어나서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오기가 치솟아올랐다. 이번에야말로 죽든 말든 상관 없이 비장의 절초를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한 번 사용하면 반드시 피를 부르는 검기이기에 비무 대회에서는 결코 사용하지 않던 살인기였다.

그러나 이미 눈이 뒤집힌 그에게 그런 게 보일 리도 없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리도 없었다.

“받아라! 천풍마뢰참(天風魔雷斬)!”

“허엇! 위험하오! 저런 살초를..

심사 위원들 중 청성파 출신의 강하윤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천풍마뢰참(天風魔雷斬)은 청성파의 비검인 선풍검법십이식(旋風劍法十二式) 중에 서도 함부로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살초(殺招)였다.

설마 위지천씩이나 되는 사람이 비무 대회에서 저런 무지막지한 살초를 전개하리라고는 그도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비류연은 무시 무시한 살초 앞에서도 여유만만이었다.

“이래야 좀 재미있지!”

회오리 같은 무서운 검기가 위지천의 검 끝에서 뿜어져 나왔다. 섬뜩한 백색 검기가 비류연의 허리를 두 동강 낼 듯 쓸어왔다. 관전 중인 모두의 눈에 곧 비류연의 허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보이는 듯했다.

이런 무시무시한 검기(劍氣)를 눈 앞에 두고 비류연은 가장 무모한 선택을 했다. 모든 것을 베어버릴 듯한 검기에 대한 방패막이로 손에 들고 있던 묵금을 선택한 것이었다. 비류연은 묵금의 현이 달린 쪽을 바깥으로 하여 자신의 오른쪽에 우뚝 세웠다.

모두들 곧 두 동강 난 묵금과 함께 비류연의 허리도 피를 뿜을 거라고 생각했다. 위지천의 검기 앞을 막아선 묵금은 너무 초라해 보였던 것이다.

“쩌정!”

귀청이 찢기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무로 만든 묵금과 백련정강(百鍊精鋼)으로 만든 검이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소리였다. 관중 전체 가 이 믿기지 않는 사실에 눈을 부릅떴다.

모두의 예상은 빗나갔다. 비류연의 뇌금(琴) 묵뢰(墨雷)는 당당하고 오연하게 흠집 하나 없이 위지천의 검기를 막아낸 것이다.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 그의 검을 튕겨내기까지 했다. 반탄진력을 견디지 못한 위지천은 다섯 발자국이나 뒷걸음질쳐야 했다.

위지천은 이 놀랍고 한편으로 어이없는 반격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듯한 충격이었다. 회심의 일격, 최후의 절초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긁어 봐야 나올 것도 없었다.

“뇌령신공(雷靈神功)이 운기된 뇌령사(雷靈絲)는 어떠한 날카로움으로도 절대 끊을 수 없지요. 이제 놀이는 끝입니다.”

동시에 비류연의 눈이 불꽃을 토했다. 묵금을 잡은 우수를 그냥 둔채 비류연의 좌수가 앞으로 쭈욱 뻗어졌다.

“이제까지 제 연주를 들어 준 답례(答禮)와 작별 선물로 저의 마지막 연주를 들려 드리죠. 광휘(光輝)와 침묵(沈默)의 연주를…….”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살짝 날리는 가운데 위지천은 자신을 오싹하게 전율시키는, 뇌광(雷光)처럼 번뜩이는 무언가를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삼성무제가 시작되고도, 그 동안 한 번도 뻗어 본 적이 없는 비류연의 왼손이 앞으로 쭉 뻗어 나왔다. 세 줄기 은빛 광선이 광시(光)처럼 그 안에서 뛰쳐나왔다.

비뢰도(飛雷刀) 오의(義) 검기(劍氣)

풍운뢰명(風雲雷鳴)의 장(章)

뢰광류하곡(雷光流河曲)

류연의 손가락이 금을 연주하듯 은빛 현 위를 누볐다. 그의 손놀림에 따라 세 가닥의 은빛 섬광이 춤이라도 추듯 그의 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지나간 후, 허공 중 에 스며들 듯 사라졌다.

위지천은 도대체 자신의 눈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챙!!”

먼저 무인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검이 손아귀에서 떨어져 날아갔다. 뭔가 눈 앞에서 빛이 번쩍였을 뿐이었다. 이 의외의 사태에 본능적인 위험을 느낀 위지천은 신 형을 날려 몸을 빼려 했다. 때론 무인의 본능만큼 믿음직한 친구도 없기 때문이다.

“헉!”

허나 그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임이 무형의 밧줄에 묶이기라도 한 듯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크아아아아!”

봉쇄된 움직임을 느낀 그 순간 벼락 같은 충격이 전신을 때렸다. 하늘에 이는 벽력(霹靂)이 자신의 한 몸에 떨어지는 듯한 거대한 충격이었다. 어제 새로 해 입은 비단 무복이 수천 조각으로 찢겨져 나가고, 이윽고 피가 튀었다.

치사량에 이를 만큼 많은 피는 아니었지만 그의 온몸에는 거미줄 같은 상처가 종횡으로 그어져 있었고 그 상처들 사이로 조금씩 선혈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힘을 조절해 피부만 베어 버렸지만 이미 그의 눈은 생명을 잃은 듯 초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누가 봐도 승 리의 행방은 분명했다.

“털썩!”

그의 무릎이 힘없이 굽혀졌다.

저편에서 여전히 미소짓고 있는 비류연의 모습이 그의 시야 가득히 들어왔다. 완벽한 패배였다.

“저…저, 저 무공은!”

관전석 제일 상석에서 관주 철권 마진가와 함께 관전 중이던 검존 공손일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수양이 깊기로 소문난 그답지 않게 그의 눈은 찢어 질 듯 부릅떠져 있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스리려 했지만 떨림이 멎질 않았다. 그의 이런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무사부들은 눈만 멀뚱거린 채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원주님, 혹시 아는 기술입니까? 저도 오늘 처음 보는 무공이군요. 사문을 짐작할 수 없군요. 허허!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적에게 타격을 주는 사검 (絲劍)이라…….”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지 관주 마진가의 물음에도 공손일취는 금방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 된 일이라도 있습니까, 원주님?”

입을 쩍 벌리며 비류연의 놀라운 일격을 지켜보던 관주 마진가가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대해 물어 왔다. 천하에 그 어떤 것이 이 사람을 놀라게 했는지 궁금증이 치밀어올랐던 것이다.

“아, 아니외다. 이 늙은이가 잠시 착각을 한 것 같소이다, 관주. 허허허허! 저 아이들의 비무를 보다 보니 갑자기 잊었던 옛 생각이 나서말이오. 잠시 상념에 빠져 장소를 착각한 듯싶소이다.”

“하하하! 원주님답지 않습니다. 착각이라니요. 그렇게 놀라신 걸 보니 나쁜 기억이었습니까?”

““나쁜 기억이라……. 허허허!”

슬쩍 웃어 보일 뿐 공손일취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이때 그의 눈이 심연보다 더 깊게 가라앉아 있었고, 가라앉은 두 눈은 현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나쁜 기억이라! 두 번 다시 기억하기 싫은 끔찍한 기억이지. 한낱 어린아이의 한 수에 묻어 두었던, 절대로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옛 기억을 떠올리다니……. 정 말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섣불리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반드시 확인한 후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

“비류연! 승(勝)!”

심판관의 판정과 함께 비류연의 최종 승리가 확정되었다. 이리하여 천무삼성무제 삼성대전 우승의 영광은 비류연에게로 돌아갔다. 그 어느 누구도 예기치 못한 승 리였다.

“이야호! 정말 이겼어!”

“사형 만세! 이게 꿈은 아니겠지?”

기쁨의 함성이 터져 나온 곳은 비류연에게 돈을 걸었던 주작단원들과 그의 몇 안 되는 친구인 효룡과 장홍이었다.

“아아! 좀 무리했나?

비무대 위에서 내려온 비류연이 몸을 비비꼬며 투덜거렸다.

“사형! 수고하셨습니다.”

비류연이 비무대 위에서 내려오자 모두 우르르 몰려든 이는 주작단원들이었다. 진심으로 비류연의 우승을 기뻐해 줄 만큼 그들은 기쁨에 들떠 있었다.

“역시 무리했나 봐! 몸이 찌뿌둥한걸!”

“그렇게 치열한 격전을 치렀으니 당연하지요! 수고하셨습니다.”

웃으며 수건을 건네 주는 남궁상의 말이었다. 헌데 비류연은 그런 남궁상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야? 내 얘긴 그런 얘기가 아니야! 역시 힘을 약하게 조절해 손속에 사정을 두려고만 하면 몸에 부담이 간단 말씀이야. 근육도 뭉치고……. 역시 죽이지 않고 이기기란 무척 어렵다니까!”

쉬지 않고 계속해서 투덜투덜대는 비류연이었다. 투정도 남들이 들었으면 당장에 졸도할 이야기들뿐이었다. 듣고 있던 주작단원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냥 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후훗! 어쨌든 이겼으니 약속은 지킨 건가?”

나예린을 생각하자 절로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지는 비류연이었다.

삼성무제 종합 우승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언제나 매번 천무학관 전체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올해는 누구도 이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텅 빈 비무대 위는 말 많고 탈 많았던 비류연이 홀로 서 있었다. 종합 결승전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상대는 없었다. 이번 삼성제 최대 이변 중 하나였던 도성전은 무 승부로 인해 우승자를 확정짓지 못했다. 검후전 또한 마찬가지로 우승자를 가리지 못했다.

게다가 매번 언제나 거의 변함없이 종합 우승을 차지하던 검성전의 우승자도 무승부로 인해 결정되지 못했다. 게다가 모용휘와 청흔 두 명 다 그때 입은 상처 때문 에 아직 요양 중에 있었다.

우승자가 갈린 곳은 오직 한 곳 삼성대전뿐이었다. 해서 이번 종합 결승전의 참가자는 삼성대전의 우승자인 비류연밖에 없었다. 종합 결승전 출전 자격을 지닌 이 가 오직 비류연 한 명밖에 없는 희한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운영회 측도 이 의외의 사태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생길 리 없었다. 할 수 없이 종합 우승의 영광을 비류연에게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비류연의 입장에선 거저먹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아무도 이곳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비류연에게 천무삼성무제 종합 우승의 영광이 돌아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지금도 비류연 홀로 비무대 위에 서 있지만, 아무도 올라올 사람이 없다는 것은 몇 안 되는 관중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비류연이 올라가 있는 이유도 조금 있 으면 시작될 시상식 때문이었다. 세인들의 눈에 비류연이 마치 어부지리를 얻은 운수대통한 놈으로 비쳤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혹은 날도둑놈처럼 보였을 것이 다.

이런 이유로 젊은 구대 문파의 대표 구정회(正會)와 젊은 군소방파와 팔대세가의 대표인 군웅팔가회(群雄八家會)! 천무학관 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진 두 집단의 자존심을 건 이번 승부는 그 어느 누구의 승리도 아닌 무승부로 돌아가고 말았다. 도저히 승부를 가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우승하여 구대 문파라 뻐기는 녀석들의 콧대를 뭉개 주겠다던 군웅팔가회의 야욕은 수포로 돌아갔고, 이번에도 이겨 군웅팔가회의 희망을 와드득 꺾어 놓겠다던 구정회의 야망 또한 빛을 보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묻히고야 말았다.

쌍방 모두에게 타격을 입힌 검성전의 무승부, 그리고 도성전과 검후전의 무승부! 그리고 모두들 어처구니없어했던 천무학관 삼성제 최대 이변인 삼성대전의 우승 자이자 종합 최종 우승자인 비류연!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이번 삼성제는 결국 어느 누구의 승리도 아니면서 동시에, 어처구니없는 제3자 녀석에게 영광을 안겨 준 채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서로 내심 칼을 갈고 있던 두 집 단에게는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한 일이었다.

무주공산(無主空山) 어부지리(漁父之利)!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두 개의 옛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