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공은 아무나 하나!
“아니 저 아이는!”
비류연이 처음 비무대 위에 올라왔을 때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천음선자 홍란은 눈을 동그랗게 떠야 했다.
그녀는 비류연을 알아보았고, 그의 등 뒤에 걸려 있는 묵금(墨琴)도 알아보았다. 해서 그녀는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런 무모한!”
천음선자 홍란은 막 비무대 위로 올라오는 비류연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더군다나 그가 지닌 신기에 가까운 명기 묵금(墨琴)은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홍란이 었다. 비록 비류연의 얼굴은 잊어먹을지라도…….
“아는 아이입니까?”
옆에 있던 한 노사가 물었다. 홍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서린 의아함은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이상하군요. 현재 저 아이의 수준으로 미루어 볼 때, 저 아이가 실전에서 음공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한데요……. 저런 무모한 짓을!”
배운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엄청난 고수들이 몰리는 수준 높은 비무 대회에 묵금(墨琴) 하나만 달랑 메고 나온단 말인가! 별다른 무기가 없는 걸로 봐서 분명 등에 메인 묵금을 병기로 사용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의지임이 분명했다. 때문에 그녀는 무모하다고밖에 평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고, 염두를 굴려 보아도 자신의 수업 시간에 보인 비류연의 진지하지 못한 수업 태도를 미루어 보았을 때 벌써 음공을 실전에 응용할 수준일 리가 없었다. 확실히 첫 인상에 비해 의외로 기본 음률에 재능과 실력이 있어서 홍란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간간히 보이는 실력은 한두 해 습득한 실력이 아님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현재 1학년 천자조 중에서는 음률 면에서는(음공이 아니라) 모용휘와 함께 으뜸일 것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백날 금 연주를 잘 한다 해서 음공을 제대로 펼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었다.
음률은 음악이고 음공은 무공이다. 분야가 하늘과 땅만큼 다른 이야기였다. 헌데 고작 1년 배워 무엇을 펼칠 수 있겠는가!
음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홍란은 결과가 그런 식으로 나타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비류연이 오늘 저질렀던 끔직한 만행을 생각하자 그녀는 절망에 빠져 깊은 탄식을 토해내야만 했다. 자신이 직접 거두어들인 문하 제자라면 당장 사문으로부터 쫓 아냈을 터였다. 허나 여기는 천무학관이었고 저 자식은 자신의 직전 문하가 아니었다. 무수히 빛나는 별의 바다가 그녀의 시름에 빛을 잃어 갔다. 최소한 문일기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사람 죽이는 데는 꼭 아름다운 소리가 필요하란 법은 없지만, 그런 만큼 음문(音門)에는 지켜야 할 덕목(德目)이 있다. 멋과 낭만, 그리고 품위야말로 음문에 몸담 은 악사가 지켜야 할 삼대덕목(三代德目)인 것이다. 음공사(音功)는 긍지 높은 당당한 무인이지 시정잡배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살인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 은 멋과 예와 낭만을 찾아 떠도는 풍류객인 것이다.
오늘 낮, 하마터면 홍란은 비틀림 때문에 옥소를 못 쓰게 될 뻔했다. 악기(樂器)는 섬세하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소리가 어긋날 수 있다. 만약 소리가 어긋난다면 그것은 곧 악기의 생명이 끝났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자신이 너무 힘을 꽉 준 탓이기도 했지만, 만일 자신의 애기(愛器)가 종언을 맞이하기라도 했다면, 천음선자 는 당장에 비류연을 때려 죽이려고 뛰쳐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검객에게 있어 검이 곧 자신의 생명이듯 악사에게 있어 악기는 곧 자신의 생명인 것이다.
그 생명이 어처구니없는 제자놈 덕분에 끝장날 뻔했으니 더욱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비류연이 저지른 일은 더욱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이러니,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그녀가 어찌 진정할 수 있었겠는가.
저런꼴사나운 비무를 보고도 가만히 있어야 하다니. 차라리 깨끗하게 졌으면 보기에도 좋았을 것을……. 그러면 1년도 안 된 녀석의 만용이었다고 웃어넘기기라 도 했을 것 아닌가.
한숨 섞인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눈 앞이 캄캄하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오늘 하루 만에 절절이 깨우치는 그녀였다.
그렇다면 비류연이 처참하게 패했느냐?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이겼다. 하지만 이번엔 이겼다는 게 문제였다.
비류연의 첫 상대는 해남파 출신의 단평이었다.
단평은 검에 내재된 변화가 출중하다 하여 노사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해서 사람들은 그를 쾌환검(快幻劍)이라 불렀다. 그만큼 그의 검에 담긴 변화가 빠르고 무섭다는 뜻이었다.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을 연상케 하는 은실 자수가 수 놓아져 있는 쪽빛 바다를 연상케 하는 진청색 무복은 바로 해남파의 상징이며 오직 해남파 문인들만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쾌환검 단평, 그가 속한 해남파(海南 派)는 구대 문파(九大門派)이면서 구대 문파가 아니기도 했다.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하면, 구대 문파는 아홉 개이기도 하면서 아홉 개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림(少林), 무당(武當), 화산(華山), 아미(峨嵋)의 사대 대파(四代派)를 제외한 나머지 칠파(七派)는 항상 그 자리를 바꾸어 왔기 때문이다.
구대 문파의 아홉 자리 중 사대 대파의 네 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자리를 놓고 항상 경쟁을 벌여야 했는데, 이 경쟁 상대는 항상 일곱 문파로 정해져 있었다. 그들이 바로 청성파(靑城派), 곤륜파(崑崙派), 종남파(終南派), 공동파, 형산파(衡山派), 점창파(點蒼派), 해남파(海南派), 이렇게 일곱 문파였다. 이들은 항상 사이 좋게 번갈아가며 구대 문파 안에 들었다 나왔다 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보이지 않는 인연의 고리가 이들을 묶게 된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합쳐 열한 개 문파이면서도 자신들을 구대 문파로 부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웃기는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묶여 있었다.
절대 부동의 사대 대파를 빼고는 항상 그 자리를 바꾸어 왔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문파와 잘 어울릴 만큼 그들의 자존심을 꺾은 것은 아니었다. 매번 그 자리를 바 꾸어 왔다는 것은 다들 실력이 고만고만하다는 뜻이었고 사대 대파를 빼고는 운으로 결정되는 수가 종종 있었다. 이럴 경우는 결과에 승복하기가 더욱 힘든 것이 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끼리 암암리의 불문률을 만들어낸 것이다. 비록 5년마다 한 번씩 있는 구대 문파 대회에서 구대 문파(大門派)의 명예를 차지하지 못하는 문파라 하더라도 그들을 대우해 줄 때 같은 구파의 일원으로 대우해 주는 것이 이제는 전통으로 굳어진 일이었다.
구대 문파의 회합이 있을 때도 모이는 것은 항상 이 열한 개 문파이다. 정확히 아홉 문파만 모이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러면서 내거는 이름과 간판은 항상 구대 문 파 회합이다. 언뜻 보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면을 살펴보면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언제 자신이 그 자리에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은 두려운 것이다.
이들은 가끔씩 구대 문파의 자리에서 밀려난다고 해서 구파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구대 문파도 그들을 외면할 수 없다. 언제 자기 자신이 그 자리에 떨어져 똑같 은 신세가 될지 모르는 일 아닌가! 이들은 이처럼 구파에서 몸을 뺄 수는 없는 처지이기에, 또 그렇다고 다른 군소 문파와 어울리기엔 그 자존심이 너무나 크고 높기 때문에 명분만이라도 서로를 구대 문파(九大門派)라 칭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구대 문파 이외의 타문파와는 어울릴 수가 없었다. 아니, 어울리지 않았다. 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맥락으 로 인해 구정회(九正會)에 소속된 문파도 9개가 아닌 11개 문파였다.
때문에 이들 11개 문파는 자기들끼리는 모두 구대 문파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스스로 호칭할 때도, 그리고 남들이 호칭할 때도! 강호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 주는 처지였다.
강호엔 이처럼 눈 가리고 아옹하는 일이 많다. 어처구니없는 일로 다투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일부러 격식을 찾아 억지로 갖추기도 한다.
5년마다 한 번씩 자격을 논하는 대회에서 결정된 금번 구대 문파는 소림(少林), 무당(武當), 화산(華山), 아미(峨嵋), 청성(靑城), 형산(衡山), 곤륜(崑崙), 종남(終 南), 공동이 차지했다. 아쉽게도 해남파(海南派)와 점창파(點蒼派)는 제외되고 말았다. 하지만, 제외되었다 해도 이들은 항상 무림의 대들보라 불리는 구대 문파의 후예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능히 그럴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쾌환검(快幻劍) 단평은 그 구대 문파이자 구대 문파가 아닌 해남파의 직전 제자였다. 명문 정파의 제자답게 녹록한 실력일 리가 없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익숙 하지도 않는 금(琴)을 들고 나오다니……. 비류연의 행동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음공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그리고 단평을 완전히 깔보는 처사이기도 했다.
음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한 곡조의 음률을 무기로 들고 나오는 것까지는 좋았다. 여기까지야 누가 뭐라고 토를 달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비류연은 자신의 통찰력이 부족하다고 비난받아도 입을 조개처럼 다물어야 할 판이었다.
비류연이 자신만만하게 묵금을 들고 비무대 위에 올라섰지만, 음공이란 것은 참으로 비효율적이고 비능률적이며, 또한 골이 뒤흔들릴 정도로 복잡 난해하기 때문 에, 그만큼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현재 강호상에서도 음공만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며 무위를 떨칠 수 있는 사람은 열 손가락으로 꼽으면 손가락이 남 아돌 지경이었다.
왜 백일도(百日刀), 천일창(日槍), 만일검(萬日劍)이라는 이야기가 있겠는가. 그만큼 검이 배우는 데 비효율적이고 난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흑도엔 검객이 적 다.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배우는 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한 그것을 실전에서 써먹으려면 시간이 한참이나 더 걸리기 때문이다. 마도의 검도 고수는 그 야말로 고수 중의 고수라고 보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멋만 부리는 껍데기거나…….
음공은 1만 일이 문제가 아니다. 대충 인심 써서 적게 잡는다 해도 한 2만 일쯤은 배워야 제대로 위력을 발휘한다. 사실 2만 일이면 60년에 가까운 세월이다. 이때 까지 음공만 익힐 수는 없지 않은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것은 음공으로 입문하여 음공만을 익혔을 때의 일이다. 왜냐 하면 음률도 음률이지만 음공이 본래의 최대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내공이라고 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바대로 이 내공이라는 것은 참으로 연성하기가 힘들고 까다롭기 때문에 음공연성이 더욱 힘든 것이다. 물론 내공을 일정 수준 이상 가진 채 시작한다 면 훨씬 빠른 성취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200일도 채 안 되는 반년은 너무 짧은 게 아닌가 하는 감이 든다. 비류연이 아무리 그 동안 음률에 대 해 미리 공부해 둔 게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실 음률 공부만 따지자면 벌써 8년 가까이 된 비류연이었다. 묵금을 들고 연습한 지도 거의 7년 정도 되었다. 사부가 음공 쪽은 잘 몰라도 음률에는 조예가 있었
다.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을 테니 아마 심심풀이로 익힌 모양이었다. 자신도 사부가 도대체 몇 살이나 먹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단지 무지무지 많이 지겹도록 먹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사실 사부에게 음공 따위는 전혀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사부에겐 사람을 잡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이 넘치도록 많이 있었던 까닭이다. 역시 연습과 실전은 천양(天壤)지차가 있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인 모양이다. 음공은 익히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웠 다.
음…, 역시 이번 비무의 최대 계산(計算) 실수는 자신의 상대가 움직이지 않고 얌전하기만한 식물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 사실이다. 그야 물론 매우 상식적인 이 야기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때문에 상대는 생각보다 우아하게 싸워 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게다가 거리에 따른 계산 오차가 생각보다 컸다. 다 시 한 번 음공이란 상당히 비효율적인 녀석이라는 것을 새삼 느껴 보는 비류연이었다.
푸념은 푸념으로 끝내고 지금은 섬전처럼 달려와 검질을 하려는 적을 상대해야 할 때다.
앞머리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비류연의 눈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미 연주 따위를 할 시간적 여유는 비류연에게 주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