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5권 6화 – 탄금행

비뢰도 5권 6화 – 탄금행

탄금행

천음선자 홍란의 예상은 반 정도만 맞아떨어졌다.

어쨌든 비류연에게 있어 오래간만의 계산 실수였다. 처음 음공을 실전에 도입해 보는 입장에서

그 자신도 거리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의외로 음공이란 것은 창이나 활보다도 거리감에 신경을 써야 하는 무공이었던 것이다. 거리는 승패와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거리에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안 쓸 도리가 없었다. 허나 이미 때는 늦었다. 비류연이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

상대에겐 자신의 금음(琴音)을 들을 여유와 그만한 아량이 없었다. 도량이 부족한 놈은 억지로라도 잡아서 부족한 만큼 늘려 줄 필요가 있었다.

단평의 검초는 제대로 교육받은 명문의 제자답게 그 변화가 빠르고 날카로웠다. 게다가 흥분한 채로 달려들고 있어 감히 소홀히 대할 수 없는 광기(狂氣) 같은 예 기(氣)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검초를 피하는 비류연의 행동은 너무나 간단했다.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오는 쾌속한 일검을 고개 한 번 숙이는 것으로 흘려보낸 비류연의 몸이 빙판을 미끄러지는 것처럼 앞으로 쭈욱 움직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의 후방을 점하고 있었다. 그는 단 두 번의 움직임으로 단평의 검초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를 점했던 것이다. 누가 봐도 감탄할 만한 운신법 이었다.

분노 속에서 성급하게 내지른 혼신의 일검이 빗나가고, 실수를 채 수습하기도 전에 단평은 뒤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 아무런 낌새 없이 앉은 채 몸을 움직이는 비 류연의 운신법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것이었다.

“탄금행彈琴行! 저 아이가 언제 저것을……!”

천음선자 홍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입에서 오래간만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가 보기에도 비류연의 탄금행은 하자가 없는 매끄러운 것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탄성을 터뜨리는 것이 당연했다. 그녀는 그것을 아직 가르쳐 준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함부로 가르쳐 줄 수 없는 비전 중의 비전이기 때문이다. 홍란 이 눈이 튀어 나올 만큼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탄금행彈!

옥소(玉簫)에 비해 운동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금음공(琴音功)을 익힌 자가 반드시 익혀야 하는 것이 바로 그 고도로 어렵다는 비전(秘傳)의 운신법(運身法), 탄 금행(彈琴)이다.

탄금행이란 말 그대로 금(琴)을 탄주하며 몸을 움직이는 운신 비법 일체를 말한다. 전승(傳承)에 의하면 그것은 마치 빙판에 미끄러지는 구슬처럼 몸을 정좌한 채 움직이는 비법으로, 무릎과 허벅지, 그리고 골반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보법이라고 하여 음문의 제일 비전(秘傳)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탄금행이라는 비전의 운신법이 있는 금음무공(琴音武功)이란, 단지 다리 불구인 신체장애자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탄금행, 그것은 아무에게나 전수되는 게 아니다. 음문(門)의 밑천 중의 밑천인 것이다.

그것을 홍란이 가르쳐 준 기억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비류연이 펼쳐 보인 것이다. 홍란의 놀라움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비전을 도둑맞은 장문인의 심정이 었을 것이다.

만약 비류연의 다음 한 수가 없었다면, 그는 이 탄금행(彈琴行) 하나만으로도 극찬받기 충분했다. 비록 시합에 패한다 할지라도 홍란은 비류연을 칭찬했을 것이 다. 하지만 비류연의 다음 한 수를 본 사람은 이 탄금행의 훌륭함을 기억에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홍란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분노했다. 비류연의 다음 한 수는 그만큼 세인들을 경악의 도가니에 빠뜨리는 어처구니없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비류연이 무슨 신공비기를 선보인 것은 아니었다. 그의 한 수는 매우 단순하고 또한 무식했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5척(1척은 약 33센티미터) 길이의 묵금(墨 琴)을 양손에 들고 상대인 단평의 뒤통수를 시원스럽게 후려갈긴 것이다.

거무튀튀한 색상 덕분인지, 제법 중량감까지 느껴지는 묵금이 맹렬히 선회하며 조자후의 뒤통수를 그 예리한 모서리로 후려갈긴 것이다.

단평이 냉큼 고개를 숙여 이 한 수를 피하기만 했더라도 그나마 그림이 좀 되었을 테고, 그 자신도 꼴불견을 면할 수 있었을 텐데 이 녀석은 고수(高手) 소리 듣는 놈답지 않게 몸이 어찌나 굼뜬지 미처 피하지 못했다. 그 대가는 참혹한 것이었다.

“쾅!”

하늘을 울릴 듯한 요란한 격타음과 함께 단평의 몸이 지면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고꾸라졌다.

“퍽!”

결과는 참혹했다. 그 동안 천무학관에서 꾸준히 단련해 온 단평이었지만 이번 일격을 견디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그는 거대한 충격에 정신을 놓쳐버렸다. 비 류연은 금(琴)에 이런 쓰임도 있다는 것을 홍란에게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알려 준 것이다.

관전하던 세인들의 눈이 이 의외의 사태에 동그랗게 떠졌다. 그들도 저런 식의 싸움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황당무계한 것이었다.

이겼지만 칭찬받지는 못할 그런 시합 내용이었다. 모두들 어이없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뿐 누구 하나 감탄이나 박수를 보내는 이가 없었다.

비류연의 무식하기 짝이 없는 천박한(그녀가 보기에) 한 수를 본 천음선자 홍란은 까무러칠 듯 놀랐고, 그 다음에는 미칠 듯이 분노했다. 이성이 다 날아갈 버릴 정

도로 그녀는 분노했다. 얼마나 그녀가 분노했으면 목숨처럼 아끼는 그녀의 애기(愛器) 천음소(天音簫)가 그녀의 움켜쥐는 손 힘에 손상을 입을 뻔했겠는가.! 장내는 싸늘할 정도로 냉각되었다. 누구도 함부로 말하는 이가 없었다. 묵직한 침묵이 비무대 주위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세인들도 이번 비무에 섣부른 판단을 내 릴 수가 없었다. 이기긴 이겼는데 뭔가 찝찝한 것이다.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박수 소리나 함성이 들려오지 않자 갑자기 시시해진 모양이인지 비류연은 그냥 비무대 위에서 내려와 버렸다. 이제 비무대 위에는 폐사한 개구리처럼 대(大)자로 꼴사납게 널브러져 있는, 한때 쾌환검이라 불리며 칭송받던 남자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 빛나는 별이 아름답기만 하다. 하지만, 그 별을 보고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휴우……”

홍란은 처연한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마음이 혼란스러운지……. 이유야 뻔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입장과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삼성제 규칙이 원 망스러웠다.

이렇게 해서 비류연의 2회전 진출은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