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5권 8화 – 가죽 자루 속의 모의

비뢰도 5권 8화 – 가죽 자루 속의 모의

가죽 자루 속의 모의

비천룡(飛天龍) 청흔의 시합 또한 모용휘의

시합 못지않게 많은 인파가 운집해 북새통을 이루었다. 모용휘가 도전자라면 청흔은 제왕이라 할 수 있었다. “휴우! 내 상대는 운이 없게도 청흔 형이구려.”

종자허의 반응은 이미 졌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청흔 형과 검을 섞어 보다니 영광이오!”

자신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하는 종자허였다. 같은 3학년이지만 종자허는 자신과 청흔의 실력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청흔은 감히 자신이 넘보지 못하는 저편에 존 재하는 사람이었다. 인정할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찬의 말씀이오.”

겸양의 미덕 또한 가지고 있는 청흔이었다.

“비록 실력이 모자란다고는 하나 본인도 무인의 몸! 쉽게 승리는 내주지 않을 생각이오!”

종자허는 자신의 애검을 뽑아들며 결연히 외쳤다. 그 또한 대청성파(大靑城派)의 직전 제자인 몸이었다. 쉽게 당해서야 체면이 서지 않았다.

“당연한 말씀! 오시오!”

오라고 했다. 고수가 하수에게 쓰는 말이었다. 그리고 종자허는 가야만 했다.

질 때 지더라도, 꼴사납게 질 수는 없었다. 지는 데도 품격이 있는 것이다. 투견판에서 진 개 꼴이 되지 않으려면 전력을 투구해야 했다. 이번 일격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다음 기회는 절대 오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흔의 비무 내용은 모용휘에 대한 시위 같았다. 청흔 또한 단 일 검으로 종자허의 검초를 부수고 그의 인후혈에 가 닿았던 것이다. 모용휘가 노렸던 곳과 똑같은 혈(穴)이었다.

검을 쥔 종자허의 오른손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검을 놓치지 않은 것만 해도 천행이었다.

“졌소!”

종자허는 순순히 시인했다. 아직 자신의 실력으론 청흔의 벽을 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단 일초에 패배를 인정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감사하오!”

청흔은 검을 회수한 후 정중히 읍(揖)하며 예의를 표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사방에서부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구대 문파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청흔의 무위에 순수한 감동을 표현하는 사람들 도 개중에는 있었지만, 구대 문파 사람들에 비하면 미미한 수에 불과했다.

강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기뻐만 할 수 없는 게 군웅팔가회의 애매한 입장이었다.

“검도의 오의(義)를 느낀 사람이로군.”

무표정했던 모용휘의 얼굴에 감탄과 경악의 빛이 일렁거렸다.

모용휘의 손에 식은땀이 촉촉이 배어 나왔다. 등줄기에 벼락이 떨어진 줄 알았다. 그만큼 강력한 충격의 전율이 그의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던 것이다. 단 일검 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무서움을 보기에는 충분한 일검이었다. 그 많은 기세(氣勢)를 단 일검에 담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 기 때문이다.

“헤헤, 자네가 동요하는 건 처음 보는데… 오늘 좋은 구경하는군 그래! 천하의 얼음덩이, 냉면썰렁(비류연은 모용휘를 이렇게 불렀다) 모용휘가 동요하는 일 이 다 있다니. 천하인이 알면 까무러칠 기사로구나.”

남 심각한 줄 모르고 여전히 히죽거리는 비류연이었다. 천하태평이 따로 없었다.

모용휘의 시선이 흘깃 비류연을 쓸고 지나갔다. 저런 무시시한 일 검을 보고도, 긴장되지 않는단 말인가? 최소한 무인다운 감탄이라도 보여 주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훑어봐도 비류연의 몸 어느 구석에서도 그런 낌새는 발견할 수 없었다.

방 안을 청결히 하는 데 최대의 적이긴 하지만, 비록 교류가 적었다 해도 반 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였다. 하지만 아직도 비류연은 그에게 있어서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저자가 바로 삼절검(三絶劍) 비천룡 청흔! 무당파의 신룡! 구정회의 무절(武絶)인가!“

당당하게 비무대를 내려가는 청흔을 바라보는 효룡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그 빛은 너무나 찰나지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려 다른 사람은 눈치챌 겨를이 없 었다.

“이런, 이런! 안 되지!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투기를 끌어올린 모양이군!’

목 뒷덜미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느낌을 받은 것은 비단 효룡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심각하긴 마찬가지지만 더욱더 심각 해진 얼굴에, 굳은 표정으로 청흔을 뚫어질 듯 응시하는 모용휘의 동요 또한 피부로 생생히 느껴졌다. 그 옆에서는 천하태평인 듯한 비류연이 효룡의 눈에 들어왔 다.

‘하긴 이대로 이겨 나간다면 결승전 상대인가!’

과연 삼절검 청흔은 그 어느 누구보다 모용휘에게 두꺼운 벽과 높은 절벽과 험난한 장애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먼 훗날을 생각했을 때 그것은 자신 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 인사를 받고 있는 청흔에게로 다시 한번 시선이 가는 효룡이었다.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듯 효룡의 눈에는 기광이 일렁이고 있었 다.

“분위기가 왜 이렇게 썰렁해? 모두들 뭐 잘못먹었어?”

다시 한번 청흔을 자세히 관찰하는 효룡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공 비류연에게로 향했다. 심각한 얼굴로 상념에 빠져 있는 모용휘 옆에서 비류연은 쉴새없이 입을 놀리고 있었다. 모용휘는 아마 다시는 비류연과 같이 관전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저 녀석은 인간의 기본적인 감성이 결여되어 있나? 아니면 단순한 바보일지도……..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아직도 불가해(不可解)의 대상인 비류연은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쾅!”

탁자가 커다란 충격에 세차게 흔들렸다.

꺼져 버릴 듯 펄럭이는 촛불이 탁자를 내리친 자의 감정이 얼마나 격앙되어 있는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설마……. 배반하잔 말인가? 대사형을…..”

남궁상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배반이라니! 이 친구 말을 너무 험악하게 하는군. 그런 참담한 말 함부로 하지 말게나. 그저 대세(大勢)에 따를 수도 있다는 그 말이지……. 다른 뜻은 별로 없네. 게다가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질 않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신중을 기하잔 말일세.”

금영호가 투실투실한 목살의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여전히 얼굴과 영 어울리지 않는 보라색 비단 무복을 고집하고 있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대사형을 배신…….”

“허어! 아니래도! 말을 가려 하게나!”

남궁상의 계속 이어지려는 말을 금영호는 중도에 단칼로 내리치듯 끊어버렸다. 들어서 좋을 게 없고, 입에 담아서 득될 게 없는 말이었다. 상인의 자손답게 언제나 방실거리던 평소의 그와는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현저히 다른 단호한 모습이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네. 우린 지금 소위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어! 여론에 따를 것이냐, 아니면 좀더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불쾌하긴 하지만 판단의 잣대로 삼아 모험을 감행하느냐 하는 중대한 갈림길일세!”

이제 중지를 모아 결정을 내릴 순간이었다.

어두운 밤, 어느 한 밀실 안에서 촛불 하나가 미약한 바람과 사람의 호흡에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촛불 아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16명의 사람들 모두 우 측 가슴에 한 마리의 비상할 듯 나래를 편 주작 한 마리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들은 바로 열여섯의 주작단원들이었다.

이들 16명이 이 야심한 밤중에 한자리에 모두 모인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남녀가 유별함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 얼굴이 굳은 채 말이 없었다. 평생의 대적을 기다리는 듯한 심각한 모습이었다. 무엇이 천무학관 최고의 기재들로 손꼽히는 이들을 이리도 긴장시킨단 말인가.

“휴우!”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이 일제히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가는 내뱉었다. 호흡으로 긴장을 약간이나마 풀고, 근육을 이완시키려는 의도가 그곳에는 포함되어 있었다. 마음이 성급하면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모두의 눈은 매의 그것처럼, 검 날에 맺힌 한광처럼 빛났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에 일렁이는 촛불이 모두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야심한 밤에, 은밀하게 자리를 마련하고 쓸쓸히 놓여 있는 흔들리는 촛불 하나를 한가운데 두고 심각한 얼굴로 마주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코 여유로운 한담은 아닌 모양이었다.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이의 왼쪽 허리 근처에 일곱 송이 매화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일곱 송이 매화수와 연적색 무복은 바로 화산파의 표식이었고, 말한 이 는 바로 화산파(華山派)의 검귀라 불리는 조천우였다. 일곱 송이 매화 장식은 장로 바로 아래의 직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이긴단 말인가?

“글쎄… 그건 모르지! 감히 장담할 수 없네.”

금영호 자신의 말대로 이 일은 함부로 장담할 수 없었다. 장담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이 자리에 모여 고민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넨 과연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 사람에 대해선 자네가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자네 의견을 듣고 싶네.”

조천우의 말대로 현운은 그 사람에 대해서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기도 했다.

“조금 무리가 아닐까 싶군! 그렇게 간단한 상대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조차도 사형의 진경이 어디까지 성취를 이루었는지 알지 못한다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우리 중 당삼이와 노거지가 나가떨어진 걸 두 눈으로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난 그 사람이 그렇게 간단히 둘을 제압할 실력을 지녔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 아.”

백색과 흑색이 조화되어 마치 학의 깃털을 보는 듯한 무복을 걸친 곤륜파 제자 이자룡이 약간 신경질적인 말투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눈이 보통 사람보 다 훨씬 작고 날카롭게 찢어져 있어 더욱 인상이 날카롭게 보였다.

당삼과 노학, 둘의 이름이 불명예스러운 일과 더불어 거론되자 분위기가 더욱 우울하게 변했다. 둘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런 건 좀 무시하고 은근슬쩍 넘어 가면 안 되나? 꼭 이름까지 또박또박 들먹일 필요까지야 없잖은가.

“자룡의 말도 맞네. 둘을 한 호흡에 묵사발로 만든 사람이야. 대사형은……. 아무리 그라도 그렇게 쉽사리 장담하진 못하지. 내 검(劍)을 걸고 맹세해도 좋아!”

“…..”

청성파 제자인 청문도 동의하고 나섰다. 검의 명예를 건다는 것은 목숨을 건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였다. 그만큼 자신의 의견을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 이곳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는 평소부터 과묵하기만 한 일공뿐이었다. 소림사에서 엄한 규율 아래 생활하던 그에게 이런 자리는 버겁기만 했다. 중 이나 스님, 조금 더 고급스럽게 표현하면 불제자인 그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자리 중 하나가 오늘 같은 자리였다. 친구들 때문에 할 수 없이 끼긴 했지만, 이 자리 에서 그가 할 역할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침묵으로 일관한 채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할 뿐이다.

여자들 또한 일공과 별다르지 않았다.

“신중해야 하네. 그렇다고 검(劍)의 명예(名譽)까지 걸 일은 아닌 것 같군. 결코 섣불리 결정할 일이 아니지.

그의 실력은 나도 인정하네. 그의 검기(劍氣)는 모두 보여 준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상상 이상으로 놀랍지. 솔직히 아직은 나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어. 같은 구 룡(九龍)의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하지만 과연 우리가 대사형의 실력 전부를 봤다고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였다. 남궁상의 지적은 옳았다.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 봐야 할 문제였다.

“음음..”

남궁상의 정연한 이야기에 금영호는 헛기침이 흘렀다. 오늘의 이 회합을 주재한 것도, 현재 장내를 주도하는 것도 금호상회의 후계자인 금영호였다. 모두들 그의 능력에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묵이 방 안 전체에 고요의 장막을 쳤다. 아무도 말을 내뱉는 이가 없었다. 그들이 지금 침묵 속에서 주시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그들이 빙 둘러싸고 앉아 있는 탁자 한가운데서 흔들리는 불빛 아래 덩그러니 놓여 있는 가죽 자루가 하나! 모두들 그것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하고 남궁상이하고 함께 덤벼도 그를 이기고 삼성제에서 우승하는 건 아직 힘들지도 모르지. 자존심은 상하지만…….”

조천우는 솔직히 시인했다. 진정한 고수는 함부로 호기를 부리지 않는다.

“우린 참가도 못 하잖아.”

그것 또한 자룡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불만이었다.

“젠장 왜 우리가 그 녀석들과의 일전 때문에 삼성무제에 참가할 수 없단 말이야?”

이자룡이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노학에게는 뒤지지만 그의 성격도 꽤나 급하고 거친 편이였다. 황량한 무림의 끝자락에 위치한 곤륜파(崑崙派)에서 생활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곤륜파는 무림의 중심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사실 교류가 매우 힘들었다.

“그럼 이 공자는 삼성무제에 신경을 쓰면서 청룡단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조용한 목소리로 진령이 물었다.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음…, 그건 불가능하겠지요.”

청룡단의 이름이 나오자 그와 다른 이들의 불평이 위장 안쪽 깊숙한 곳으로 쏙 들어갔다. 그들에겐 삼성무제 말고 어찌 보면 더욱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청룡단과의 승부였다. 누가 사신단(四神團) 중 최고 인가를 가리는 승부, 그것을 위해 주작단은 삼성무제를 포기했다. 정확히 말하면 염도가 빙검 관 철수와의 말다툼 끝에 의견도 묻지 않고 함부로 결정한 것이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것은 청룡단도 마찬가지였다. 두 노사의 합의에 의해 청룡단, 주작단 모두는 이 번 삼성무제 출전권을 포기했다. 모두들 출전 자격이 충분히 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절대로 질 수 없지!”

이자룡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졌다간 대사형은 물론이고 노사부님까지도 아미산에서 뛰쳐나올지도 모르지요.”

진령의 말이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군. 진 소저! 그런 무섭고 끔찍한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오! 말이 씨가 되면 어찌 하려 그러시오?”

당삼이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노학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구질구질한 몸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연신 긁어 대고 있었고 때가 한 무더기 긁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지켜보기 두려울 정도였다. 남궁상은 얼른 외면해 버렸다.

“그런 재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 하네! 내일 있을 수련에도 최선을 다하자고. 요즘은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일은 면했으니깐 말일세! 장족의 발전이지.”

남궁상의 말대로 맹렬한 특훈으로 피를 보는 이는 기초 훈련을 따라가기도 벅찬, 현재 이 자리에는 없는 윤준호뿐이다. 그렇다 해도 변명 한 번 없이 죽을힘을 다 해 뒤쫓아 가는 노력이 가상하긴 했다.

“사실 아직 1회전만 본 것이기에 딱히 뭐라고 확정적으로 말할 만한 근거는 없어. 그러니 다시 한 번 의견을 듣고 최후의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네. 무엇보다 선택 의 향방을 가를 사람은 현운이라고 생각되는군. 그의 의견을 듣고 최후의 결론을 내리도록 하세.”

어수선해진 장내를 조율하며 금영호가 말했다. 그것이 현재 그가 맡고 있는 역할인 것이다. 그의 말 한 마디에 따라 모두의 시선이 현운에게로 쏠렸다.

현운은 친구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과연 삼절검 청흔을 이길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바로 승부의 관건이자 핵심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현운을 향해 있었다. 조금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비록 같은 학년에 있다지만, 사문인 무당파의 족보(族譜)로 따지면, 삼절검 청흔은 현운의 사형 이었던 것이다. 청흔은 어려서부터 무당파에서 키워졌기 때문에 현운의 항렬에서는 꽤 높은 위치에 속해 있었다. 그만큼 빠른 나이에 입문식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 것도 바로 손위 사형으로 현운과는 어릴 적부터 항상 함께 수련하며 지내 왔던 사이였다. 때문에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비천룡 청흔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도 바로 현운이었다. 그리고 현운은 그를 설명할 때 항상 이 말을 빼놓지 않았다.

“천재죠, 청흔 사형은!”

그것이 현운의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이기도 했다. 그는 한 번도 이 대답을 망설인 적이 없었다.

“으음…….”

장내는 더욱더 심각한 상태로 돌입했다. 현운이 뱉은 신음 같은 소리가 더욱 심각함을 증대시켰다. 묵직한 침묵이 그들 사이를 눌렀다. 금영호가 물었다. “자네하고 비교해 보면 어떻겠나? 자네도 명색이 천무구룡 중 일인이 아닌가.”

현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비록 같은 구룡이라 해도 사형의 실력은 내가 감히 따를 수 없을 정도지.”

“그 정도란 말인가?”

현운의 뛰어난 실력은 여기 모인 열여섯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요즘 들어 나도 점점 강해지고 있지만 승패를 가늠한다면 오백 초 내로 나의 패배로 끝남을 장담하지.”

자신의 패배임을 시인하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한 가닥의 부끄러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상대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으음! 자네에게 그 정도로까지 평가를 받다니. 그의 실력이 그 정도란 말인가?”

금영호는 신음성을 흘렸다.

같은 천무구룡이 중 일인인 현운이 스스로 패배를 장담하는 상대. 삼절검 청흔은 바로 그런 존재였다. 때문에 감히 그에 대해 소홀히 하지 못하는 것이다.

“뭘! 그 정도 가지고! 예전에는 200초 안에 작살이 났는데… .검법 하나 만은 정말 독보적인 존재지. 무당파의 신룡(神龍)은 내가 아니라 사형을 이르는 말이란 걸 다들 알지 않나!”

마침내 현운이 필패(必)를 선언했다. 그의 판단이니 틀릴 리가 없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그들은 하지 않으면 안 되 었다. 그들의 모든 것을 걸고,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기억 저편에 묻어 두고 싶은,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그들의 대사형 비류연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곳에 집중시키다니 너무 위험한 것 아닌가요? 그렇게 걱정된다면 두 곳으로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태껏 조용히 보고만 있던 남궁산이 한 마디 했다. 그녀는 요즘 들어 여관도들은 물론 칠봉(七鳳) 사이에서도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성 격만은 여전히 신중했다.

“하하! 그건 남궁 소저께서 잘 모르시고 하는 말씀이지요.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기회라고 하지요. 아직 대사 형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그런 면에서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우리는 남들이 모르는 걸 하나 더 알고 있죠.”

금영호가 씨익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금영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대사형의 실력!”

“네, 맞습니다. 그리고 그 실력이란 대회의 승패를 가름할 정도의 큰 변수이죠. 이게 바로 기회란 녀석이죠. 잘만 이용하면 대박이고, 아니면 쪽박이죠. 때문에 우 리는 최대의 변수라고 할 수 있는 삼절검 청흔에게 이렇게 신경 쓰는 것이죠. 그가 과연 대사형을 막을 수 있을지 여부를 말입니다.”

과연 들어 보니 금영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지나쳐 버린 사실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군요! 금 공자는 이번 대회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는 사실을 잊었나요?”

순간 금영호의 얼굴은 뒤통수에 벼락 맞은 사람 같았다.

“칠절신검 모용휘!”

그제야 금영호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소리로 봐서 인정사정없이 후려친 것 같았다.

“이런, 이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그처럼 중요한 제2의 변수를 잊고 있었다니.”

노학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이번엔 모용휘가 이기기라도 하는 거야?”

금영호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휘젓고 있는 중이라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촐랑거리는 노학을 한 번 째려봐 주는 것으로 끝냈다. 그 이유를 좔좔 강의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쪽에 심력을 소모할 때가 아니었다.

“아닐세. 대사형에게 전부 걸도록 하지.”

금영호가 선언하듯 말했다.

“왜? 아까까지만 해도 배신의 오명을 무릅쓰고 청흔에게 걸까 망설이던 자네가 아니던가? 그런데 갑자기 대사형에게 걸기로 했단 말인가? 모용휘가 봉이라도 된 단 말인가?”

“하하하! 맞네! 봉이야! 봉이고말고!”

“답답한 친구로군, 누가 상갓집 자손 아니랄까봐 음흉하기는! 궁금해 죽을 지경이니 빨리 그 속내나 털어놔 보게.“

노학이 재촉했다. 아무리 구타당해도 그의 화급한 성질은 불치의 병인 듯 고쳐질 기미가 없었다.

“나도 궁금하군!”

꿋꿋이 처음부터 대사형에게 표를 던졌던, 그래서 잠시 동안 금영호랑 의견이 갈렸던 남궁상도 그를 재촉했다.

“그건 말일세…..”

금영호는 그들에게 왜 대사형에게 전부를 걸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처음엔 의구심 가득한 얼굴로 그의 설명을 듣던 주작단원들의 얼굴 이 점점 밝아지더니 끝내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과연 그렇군, 과연 그래. 그 간단한 이치를 왜 생각 못 했을까!”

“이의 없네.”

““나도 이의 없네.”

“저도요!”

“나도 그렇네!”

“…..”

모두들 감탄 섞인 목소리로 한 마디씩 했다. 잠깐의 소란이 가시자, 금영호가 의자에서 앉은 자세를 바로잡은 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마침내 결정되었군! 긴 장정이었네.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어. 이런 난해하기 짝이 없는 양자택일(兩者擇-)의 결정은 두 번 다시 내리기 싫군.”

모두의 시선이 금영호에게로 모아졌다. 이번 건은 모두 그의 판단에 따르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있던 터였다. 때문에 그만큼 그의 책임이 무거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일 대사형이 이기는 쪽에다 전부 걸도록 하겠네!”

“으음!”

금영호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를 표시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없었다. 드디어 의견이 하나로 수렴된 것이다.

여태껏 이것을 위해 그토록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왔던 것이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일단 모험을 해 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나중에 대사형에게 돈을 걸지 않은 게 알려지면 그들에게 닥칠 후환이 두렵기도 했다. 솔직히…….

“아아! 남들이 입을 모아 미친 놈이라 하겠지!”

금영호가 툴툴거렸다. 안 봐도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감수해야지, 뭐!”

현운의 말이었다. 그도 역시 모든 결정이 끝나 홀가분한 심정이었다.

“애초에 각오한 일을 아닌가! 주위의 시선이 무서우면 이런 일 어떻게 하겠나.”

남궁상이 단호하게 말했다. 항상 우유부단하기만 하던 그도 아미산 수련 이후 몰라보게 달라져 이제는 결단력마저 느껴졌다.

“저도 남궁 공자의 말에 동감이에요.”

진령까지 남궁상을 거들고 나서자, 그의 얼굴이 금세 벌겋게 변했다. 주위에서 갑자기 휘파람 소리가 나며 요란해졌다. 그럴수록 남궁상은 더욱 무안한지 고개를 푹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아직 그의 성격이 완전히 고쳐지려면 한참은 먼 듯하다.

“전부(全部)냐? 아니면 전무(全無)냐! 그것이 문제로다! 무량수불(無量壽佛)!”

여전히 전혀 도사임을 못 느끼게 해 주는 현운의 한 마디였다.

“영호, 그럼 내일 부탁하겠네!”

남궁상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맡겨 주게.”

금영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큰 결정을 마친 후라 그런지 그의 얼굴은 그 동안 쌓였던 중압감을 털어버린 듯 밝았다.

그리고 다음 날!

금영호는 사람들이 벌떼처럼 바글바글 모여 있는 한 장소에 와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의 열기(熱氣)와 소음(音)으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소란스러움보다는 생명이 약동하는 활기가 그 안에서 느껴졌다. 그는 이런 분위기가 언제나 마음에 들었다.

그의 손에는 어젯밤 그들이 빙 둘러싸고 있던 탁자 위의 가죽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주작단 전원의 생활비가 고스란히 담긴 주머니였기에 그것을 다루는 그의 손 길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