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6권 1화 – 회상
소위 예절이라고 불리우는
고리타분한 관습과 전통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들의 한계를 설정하고
실천하고 있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렇게 해 가지고는 천 년 만 년 가도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모든 틀을 부수어 줄 한 명의 천재가 나오기 전까지…….
회상
-과거
강해지는 법에 대한 간단하고도 심도(深度) 깊은 사부님의 견해.
“정녕 강해지고 싶으냐?”
3년전!
혹시 내가 거짓부렁이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
사부가 확인 차원에서 되물었다.
어느 쪽으로 바람이 잘못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류연은 무게 뚝뚝 떨어지게 말하는 사부를 새삼스레 쳐다보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참새는 황새 따라잡기를 애당초에 포기해야 한다. 뭐든지 무리하면 몸에 안 좋은데…….
오늘의 사부는 왠지 뭔가 있어 보였다.
“당연하죠!”
물론 당연한 대답이었다. 이렇게 당연한 대답을 하려 하자 자동적으로 입이 아팠다. 그다지 경제적이지 못한 행동을 저지른 부작용이었다. 불행히도 자신의 몸은 현실과 타협하거나 세상과 야합하지 못하고 너무 정직한게 탈이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매우 매우 간단하지.“
여전히 자신을 등진 채, 떠오르는 새벽의 여명을 마주 바라보며 사부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어떤 반론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기세였다.
“이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까지!’
이제야 겨우 사부다워 보이는군! 비류연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뭐냐? 그 눈빛은?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그런 눈빛이구나!”
헉! 역시 사부는 눈치가 빠르다. 뒷통수에 몰래 숨겨둔 눈이라도 있단 말인가. 이런 때만 쓸데없이 신경과 주의력이 발달되는 사부였다.
“그럴 리가요!”
생명을 유지 보존하기 위한 이런 말을 선의의 거짓말이라 한다. 혹자는 불가항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비류연은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어느 새 새벽 햇살을 피해 고개를 돌린 사부의 시선과 비류연의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이런 때 켕기는 게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회피하는 것은 하수(下 手)나 저지르는 실수!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를 만큼 비류연은 순진하지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그동안 단련되어 온 시간이 아깝다.)
저 의심스러운 눈초리! 사부는 아직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은 모양이다. 역시 늙은 생강은 지나칠 정도로 매운 게 탈이다. 늙은 생강이 말했다.
“강해지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한계를 두지 않는 것이다!”
제자의 머리 속에 각인이라도 시켜 놓으려는 듯 또박또박한 목소리였다.
“사부보다도요?”
확인 절차상 비류연이 물었다. 역시 이런 것은 확답을 들어야 나중에 실제에 적용할 수 있다. 아무래도 예측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나중에 가서 증거가 될 수 없 고, 또한 반박의 여지가 될 수도 없다.)
“물론이다.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말아라. 자신의 한계를 두지 않을 때 넌 끝없이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문파의 아해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한계를 정 한다. 아니, 사문에서 계획적으로 한계를 조장한다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하늘보다 더 높고, 바다보다 더 넓은, 엄청나게 위대하기 짝이 없는 사조님들 이하 사부 님들을 능가하려는, 불순하기 짝이 없는 시건방지고 얼토당토않은 망념(妄念)을 어찌 감히 언감생심 품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이다. 웃기지도 않은 농담이지.” 냉소적인 어조로 난도질하듯 말하던 사부의 목소리가 갑자기 세 살배기 코흘리개나 내뱉을 듯한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돌변했다. 그야말로 꿈에 들을까 두렵고 가 증스럽기 짝이 없는 엽기적인 목소리였다.
“응애, 응애! 난 사부님보다 강해질 수 없어. 그러니 당연히 사조님 보다 강해질 수야 없지. ‘내가 어찌 감히 본문의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개파 조사님보다 감히, 행 여나, 혹시라도 강해지는 불미스런 일을 저지를 수 있겠어…….’라고 말이다.”
말을 잇는 사부의 얼굴에는 한심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 개뿔인가요?”
비류연은 매우 논리적인 사고 끝에 도출된 결론의 확인 절차를 밟아 보았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끝에 나온 판단이었다.
“물론이다. 그래서야 퇴보밖에 더 있겠느냐. 소위 예절이라고 불리우는 고리타분한 관습과 전통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들의 한계를 설정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지.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게해 가지고 천 년 만 년 가도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모든 틀을 부서줄 한 명의 천재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흐흠!”
비류연은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자신은 사부에게 질 생각이 원래부터 없었지만 말이다. 자신이 사부보다 지금 이 순간엔 약한지 몰라도 계속해 서약한 채로 머무른다는 것은 자신의 사고 방식상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부의 열띤 일장 연설은 계속해서 비류연의 마음을 후벼 팠다.
“누가 하늘은 무한하여 찢지 못한다 하였느냐? 누가 땅은 넓어 뒤엎을 수 없다 했느냐? 네가 해 보았느냐? 도전이라도 한 번 해 보고 결론 내린 것이냐? 아니면,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이라도 쏟아부어 보았느냐?”
당연히 그런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최종적으로 땡전 한 푼 생기지 않는 일을 비류연이 할 리가 없었다.
“아뇨! 미쳤어요?”
“딱!”
“아야! 우쒸!”
당장에 사부의 손찌검이 날아왔다. 성질도 급하시긴……
“내가 방금 전에 얘기한 금과옥조(金科玉條)는 모두 환전(換錢)해 먹었느냐? 한계를 두지 말라 분명히 일렀거늘! 인간에게는, 특히 인간의 마음에는 한계가 없다 고 이 사부는 생각한다. 아니, 실제로 한계가 없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마음의 힘이란 것은 무한하다. 네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인 게다.
하늘은 분명히 찢을 수 있고 땅은 확실히 뒤엎을 수 있다. 빛보다 빠르게, 해일보다 거칠게 움직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해라. 부정부터 하는 것은 이미 한계를 결정 짓는 일이다. “
‘우쒸! 말 한 번 딥따 어렵게 하네.’
하지만 매우 불만스럽게도 사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류연의 마음에 화살촉을 박고, 몸 전체에 짜르르 전율을 일으켰다.
“결과를 생각하지 마라, 과정을 중요시해라. 그것이 더욱 중요하다.”
“흐흠!”
이제야 사부의 말이 좀 이해가 된다. 하늘을 찢기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실제로 하늘을 찢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에 준하는 상식을 뛰어넘는 가공할 위력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물론 실제로 하늘을 찢을 수도 있겠지. 누가 해 보기라도 했더냐?
그때 돌연 비류연의 머리 속에 번뜩이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잠깐! 근데 왜 하늘만이야? 하늘보다 더 넓은 건 없나? 사부가 하늘이면 내가 하늘에 머무를 수야 없지! 사부가 번천지복(飜天地覆: 하늘을 뒤흔들고 땅을 뒤집 는다는 뜻)의 위력을 지녔다면 내가 나중에 못이기잖아.
그렇다면 나는 좀더 배포 크게 우주, 아니 뇌신(雷神)의 힘을 얻어야 겠군. 그래야 만일에 사부가 하늘을 찢는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중에 이길 수 있지 않겠는 가!’
현재 자신의 매서운 눈으로 보아하니 사부는 하늘마저도 찢어버릴 위력이 있었다. 비류연은 파천(破天)한다는 사부의 말이 속된 허언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하늘을 찢는 힘으로는 사부를 이길 수 없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비로소 비류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사부가 나의 한계를 이렇게 교묘하게 설정하려 하다니… 으음… 역시 방심할 수 없는 사람이야, 사부는!’
한계를 정하지말라면서, 교묘한 언변으로 무의식중에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려 하다니……. 과연 자신의 사부다운 면모였다. 그러기에 자신은 더욱 강한 힘을 손 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류연이었다.
이렇게 생각이 줄줄이 곱창처럼 이어지는 와중에도 제자의 정신 교육을 위한 사부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노부는 말한다. 이길 자신이 있으면 언제라도, 네가 이 사부를 꺾을 자신이 있다면 언제든지 너의 시도 때도 없는 도전을 받아 주겠다. 너는 해 보겠느 냐?”
사부의 묘한 눈빛, 세상에선 심술궂다라고 표현되는 눈빛으로 비류연을 쳐다보았다. 사부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사부의 꼬임대로 넘 어가 “네! 그러지요!’ 라고 대답했다간 결과는 명약관화(明若觀火)했다.
“이놈이 감히 건방지게 하늘과 높이가 동급이신 사부에게 대들 생각을 품어!’라고 외치며 죽도록 팰 게 분명했다. 이럴 땐 절대 꼬투리를 잡히면 안 된다. 자신은 이제 어린애가 아니었다. 사부의 속임수나 사탕발림에 넘어갈 유아적이던 때는 이미 지나지 않았는가!
“나중에요!”
비류연으로서는 가장 신중한 대답이었다.
“허허허허! 짜아식! 그래야 본문의 제자라 할 수 있지! 한계를 정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자신을 파악하고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 또한 중요한 수업임을 잊지 않다니 기특하구나. 개죽음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한계를 모르는 능력 획득은 현재일 수도 있지만, 미래일 가능성이 더욱 크다. 그러니 현재와 현실을 파악하는 것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공부인 것이다. 생명 보존 신공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공부가 바로 나와 상대의 실력차를 파악하는 안목 공부인 것이다.
“별말씀을요! 저에게 이 정도야 당연한 거 아니었던가요.”
이런 나를 보며 사부는 딱 한 마디만 더했다.
“녀석, 자존 광대하기는! 많이 컸구나!”
그리고, 3년! 그동안 한 번도 그 가르침을 잊지 않았던 비류연이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일부는 그의 제자들 겸 현 사제들인 주작단으로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