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6권 10화 – 새싹 짓밟기

비뢰도 6권 10화 – 새싹 짓밟기

새싹 짓밟기

-치사한의 음흉한 흉계

생각보다 치사한의

상황 보고는 길었다.

뇌종명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잠자코 듣기만 해야 했다.

“여지껏 말씀드렸다시피 그 비류연이란 아이에 대한 건 뭐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어차피 모인 정보로 판단해 볼 때, 그 실력이야 미미한 정도에 불과한 것 같더군요. 문제는 이번 합숙 훈련에 동행하게 될 청흔과 모용휘입니다.

그들의 실력은 웬만한 최절정 고수에 비할 만하니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목적은 필살. 아니더라도 팔 하나나 다리 하나쯤 끊어 놓는 것도 괜찮겠지요. 하지만 후환이 없으려면 뭐니뭐니해도 필살(必殺)하여 입막음을 하는 것이 좋겠지 요. 가장 안전한 방법이고, 추천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흑도라고는 하나 그건 좀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아직도 어린 아해들을 재능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자의 세계로 보내다니…….

만일 주군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런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자신은 무인이기 이전에 주군에게 매인 몸이었다. 그것은 맹세로든 정으로든 결 코풀리지 않는 인연의 굴레였다.

.찝찝하군.”

“다 우리 각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인정이 앞설 수는 없겠지요.”

“자네 저번엔 이러지 않았지 않은가?”

“이번엔 틀립니다. 저번은 실력으로 동수를 이루었지만, 이번엔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

“그 일만 없었어도 이러지는 않았을 것을……. 알겠네! 모든 것은 각을 위해서.”

마침내 뇌종명의 마음 속에 결심이 섰음을 눈치빠른 치사한은 알아챌 수 있었다.

“부탁드립니다!”

간단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그의 입가에 사이한 미소가 걸렸다. 뇌종명은 미처 놓쳐버리고 보지 못한 사이한 미소였다.

“필요한 것을 말하게!”

“네, 이번 행선지가 무당산이라고 하니 암혼전(暗魂殿)의 전력을 빌렸으면 합니다.”

“암혼전 전체를 말인가?”

뇌종명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였다.

“네! 우선 암혼전 휘하에 있는 암룡대(暗龍隊)를 투입했으면 합니다.”

“암룡대까지 투입할 필요성이 있다는 건가?”

솔직히 믿기 힘든 일이었다.

“전 오히려 부족한 느낌이 들지만 할 수 없지요. 남창에서 호북성으로 가는 길이니 암룡대의 존재는 필수입니다.”

“맘대로 하게! 모든 권한을 주겠네! 더 이상 이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군! 심정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이지만, 대공자의 명인 이상 따르겠네. 하 지만 한 가지만은 죽더라도 잊지 말게. 난 자네의 명령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일세!”

더 이상 상대하기 귀찮다는 투로 뇌종명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못마땅하지만 대공자의 부탁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힘을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대공자를 위해서.”

고개를 숙이는 치사한의 입가에 사이한 미소가 가득히 번졌다. 뇌종명은 영 못마땅하기만 했다. 불쾌지수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점점 더 올라가고 있었다.

일은 원하던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꼿꼿한 강철 대나무 같은 뇌종명을 구슬리는 일은 애초부터 포기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 주는 것은 기 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뇌종명은 그저 보고도 못본 척 묵과해 주기만 하면 족했다.

필요한 것은 그의 침묵과 그의 휘하에 존재하는 강력한 무력 집단 암혼전(暗魂殿)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군사, 원로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선 앉으시지요.”

“그러지요.”

암혼비영대(暗魂飛影隊) 대주 흑살도 구창이 자리에 앉자, 치사한이 마주보고 앉으며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구 대주가 할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치사한의 설명이 계속됨에 따라 잠자코 듣고 있던 구창의 눈은 점점 더 확대되어져 갔다.

“정말 그 일을 뇌 공께서 허락하셨단 말입니까?”

부여된 임무라면 최선을 다해 수행할 터이지만, 그가 아는 뇌종명의 성격상 절대 있을 수 없는 성격의 일이었다.

“물론이오. 설마 내가 거짓된 명령을 내리겠소? 뇌 원로의 허락은 이미 구해 놓았소. 모든 것은 대공자를 위한 일이오. “

암혼비영대는 뇌종명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곳이기에 뇌종명의 뜻은 곧 암혼비영대 전체의 의지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설마 각주께서도 허가를 내리셨단 말입니까?”

“그럴 턱이 있겠습니까! 그분의 자존심이 있으신데 그런 일을 번거롭게 몸소 명령하셨을 턱이 없지요! 하나 아랫사람이라면 마땅히 윗 사람의 심기를 헤아리고, 알아서 굴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대공자를 통해 무언의 허락을 받아 두었습니다.”

“아하! 그렇게 깊은 뜻이! 군사의 고견에 감복했소이다.”

뇌종명이 구창의 이 헛소릴 들었다면 냅다 뒤통수를 성대하게 후려갈겼을 것이나, 애석하게도 이곳에는 뇌종명의 눈과 귀가 없었다.

“허허허! 과찬의 말씀을! 그럼 구체적인 사안을 논의해 봅시다. 될성부른 떡잎은 새싹일 때 밟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지요!”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구창이었다. 구창은 치사한의 꾀임에 완전히 넘어가 버린 것이다.

“이제 그것이 얼마 안 남았소. 그것이 치루어지기 전에 조속한 시일 내에 사안을 처리하도록 합시다. ”

“무슨 기막힌 생각이라도 있습니까? 무슨 복안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먼저 대주 휘하에 있는 암룡대를 투입했으면 합니다.”

기다렸다는 듯 치시한이 말했다.

“암룡대! 그 정도 전력까지 투입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뇌종명과 마찬가지로 구창의 입에서도 경악스런 외침이 토해져 나왔다. 그만큼 그 역시 지금 놀라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제정신입니까? 암룡대는 마천각 최고의 특수 기습 전문 집단입니다. 그들을 모두 투입하잔 말입니까?”

지금 나랑 농담 따먹기하자는 겁니까라는 의사 표현이 강하게 담긴 시선을 받고도 치사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증거를 남기지 않고 가장 깨끗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치입니다.”

오싹할 정도로 사이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번졌다. 내심 이를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흐흐흐……. 누군지 모르지만 그들이 안됐군요. 절대로 암룡대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깐 말입니다”

이미 뇌종명으로부터 명령이 내려온 터였다. 이제 실행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목표물이 한꺼번에 몰린 이 때를 놓치기엔 하늘이 준 기회가 너무 아깝지요. 장소가 무당산이라고 하니 가는 길에 수렵(狩獵)을 하도록 하지요.”

“수렵이 아니라 어로(漁勞)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치사한과 마주보고 웃으며 흑살도 구창이 말했다. 꽤나 날카로운 지적임을 치사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그렇군요. 그들은 유능한 어부들이죠. 물이라면 가장 믿을 맏한 인물이라 여겨집니다.“

“하하하! 과연 빈틈이 없으시군요! 군사는 무서운 사람입니다.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모든 무력을 빌려 드리지요. 모든 것은 각주를 위해!”

“부탁하오, 대주”

치사한은 고개를 숙여 사의를 표했다. 어차피 닳는 것도 아닌지라 고개짓 한 번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에겐 티끌만한 가치도 의미도 없는 행위였다. 이렇게 해서 음모의 밤은 깊어 갔다. 역시 음모와 계략, 그리고 만리장성 건축은 야밤에 이루어지는 것이 고래(古來)로부터의 진리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