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6권 13화 – 나예린의 굳게 닫힌 마음의 창
나예린의 굳게 닫힌 마음의 창
“이…이봐, 나 죽을 것 같네!”
번(경계)을 서고 있던 표사 한 명이
동료 표사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이러다간 미쳐버리겠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릴 수가 없으니…….”
“자네 눈이 벌겋군?”
“사돈 남 말하나? 자네 눈은 어떻구? 눈 밑에 시꺼멓게 기미까지 끼었군!”
“밤마다 끙끙거리는 신음 소리가 그치지 않으니 말일세!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이러다가 우리 모두 쓰러지는 게 아닌가 모르겠어, 어휴!”
“아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두 사람은 처량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은 제대로 잘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또다시 선녀의 얼굴이 눈 앞에 어른거렸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선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눈알을 굴렸다.
사팔뜨기처럼 몰래 돌아간 두 사람의 시선이 또다시 몽롱하게 변했다.
수면 위로 부서지는 빛의 편린을 받으며, 햇살 속에 앉아 있는 나예린의 모습은 가히 천상의 선녀라 해도 믿을 만큼 빼어난 려태(麗態)였다.
선녀의 아름다움을 방불케 하는 그녀의 눈부신 자태는 보는 이들을 숨막히게 하고 있었다. 표선 주위에서 경계를 서는 표사들과 쟁자수, 그리고 선원들도 힐끔힐 끔 단 한 번이라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곁눈질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얼마 못가 모두들 사팔뜨기로 변해 버릴지도 모를 정도였다.
항상 일상적인 생활만을 해 오던 그들에게 있어서 나예린을 비롯한 이진설, 남궁산산, 진령의 아름다움은 가히 천상미(天上美)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벌써 나 예린과 나머지 세 명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표사들만해도 부지기수였다.
늙다리 아저씨인 남창지국주 장강교룡 수장해와 수풍도 수상해 마저도 넋을 빼앗길 만큼 그녀들의 용모는 미려(美麗)했다.
햇살을 한껏 머금은 칠흑漆黑) 흑단(黑檀)같은 머릿결이 눈부시게 새하얀 목덜미 위에서 사르르 퍼져나간다. 월광을 붙잡아 백옥에 담고 조각한 조각상도 무색하 리만치 그녀의 려태(麗態)는 빼어났다.
그녀의 주위만이 마치 이 세상에서 격리된 듯한, 이계(異界)의 풍경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움과 신비함이 있었다.
비류연은 그런 그녀의 여태에 한편으론 즐거우면서도, 마음 다른 한 켠으로 슬펐다.
그는 그녀의 모습에서 세상과 어울리기를 거부하는, 세상과 단절된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의 마음에 자물쇠를 걸어놓 고 있었다. 그 점이 비류연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렇다고 스스로 세상과 어울리기 거부하는 그녀의 마음을 강제로 돌려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비류연이 햇살 속에 녹아 세상과 동떨어진 세계에 머무르고 있는 나예린에게 다가가 미소지으며 말을 걸었다.
“비가 올 것 같지 않아요?”
“무슨 소리죠???
나예린은 무의식중에 하늘을 쳐다본 자신의 행동을 후회해야만 했다.
현재 천기는 절대로 비가 올 수 없는 상태였다. 햇빛은 시위라도 하듯 화사하게 지상 세계를 내리쬐고 있었다.
“실없는 소리죠.”
비류연이 싱겁게 웃었다. 나예린은 순간이나마 그의 화술에 말려든 자신이 싫었다.
“그럼 용무가 끝난 건가요? 그럼 이만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어요.”
여전히 그녀의 반응은 북풍한설이 무색할 정도로 싸늘했다.
“이런, 이런! 저한테 열쇠를 맡길 수는 없나요? “
“무슨 열쇠 말입니까? 전 열쇠가 필요한 자물쇠를 채워 놓은 기억이 없습니다.”
나예린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류연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없다니요?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물론 나 소저의 굳게 잠긴 마음의 문을 열 열쇠죠. ”
비류연의 미소가 햇살 속에 환하게 빛났다. 그의 말에 나예린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지껏 아무도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해 준 사람은 없었다. “지금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라는 건가요?”
당연히 의심해 봐야 할 일이다.
“이런! 제가 사실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었나 보죠? 처음 알게 된 사실이네요. 야옹!!”
차가운 나예린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비류연은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이런 말 한 마디 가지고 상처받을 만큼 그의 마음은 말랑말랑하지 않았다.
거기에다 덤으로 오른쪽 손을 들어올려 오무려쥐고는 손등으로 눈가를 부빗거리며 고양이 흉내까지 내보였다. 제 딴에는 귀여워 보이라고 한 행동이었으리라. “쿡!”
순간 나예린으로부터 약간의 반응이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발전이었다. 비류연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더 환해졌다. 이런 우호적인 반응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우웨에에엑!”
그러나 간신히 내보인 작은 웃음도 잠시 잠깐뿐이었다. 반대편 난간에서 들려온 결코 아름답지 않은 소리가 다시 그녀를 현실로 불러들였다. 나예린은 다시 정색 하며 표정을 굳혔다.
비류연의 시선이 미확인 괴(怪)의 출처를 찾기 위해 돌려졌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범인은 이번에도 역시 모용휘였다. 그의 장대한 배멀미는 아직도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전생에 배하고 뼛속깊이 원한 관계를 맺은 모양이 다. 갑자기 모용휘를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드는 비류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