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6권 17화 – 수중전에 능한 주작단원
수중전에 능한 주작단원
“어라? 너희들은 지금 뭐 하니?”
진령이 물 속으로 뛰어들자
비류연은 고개를 들어
남아 있는 주작단원들을 훑어보았다.
그 말과 눈빛은 “너희들 장난치니? 지금 친구가 홀로 전장(戰場)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너희들은 지금 뭐하는 거냐?”라는 의미가 분명했다. “번쩍!”
비류연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이자 주작단원들은 오싹한 공포를 느껴야 했다.
더 이상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풍덩! 풍덩! 풍덩! 풍덩! 풍덩!”
열다섯 개의 풍덩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튀어오르며 뱃전을 적셨다.
바람에 살랑이는 머리카락 사이로 순간적으로 보인 비류연의 눈빛 한 번에 주작단 전원이 묵환을 끌러 둔 채 진령을 따라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 치의 주저함 도 없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뛰어든 이는 마음 다급한 궁상이었다. 지금 강물 속은 전장(戰場)이었다. 사랑하는 님을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염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 속은 누가 보더라도, 습격당하는 일행들에게 불리한 최악의 장소였다.
원래 수적들이 강호 고수들을 만나면 궁리하는 것은 대부분, 어떻게 그들을 물 속으로 유인하여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까 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가장 불리한 최악의 장소로, 자칫 잘못하면 죽음과 같은 위험이 항시 상존하고 있는 곳으로 서슴없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주작단원들을 밀어넣은 것이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미쳤습니까?”
염도가 이런 말을 큰 소리로 추궁하듯 외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비류연은 고막이 얼얼했다.
“미치다니요? 정신 말짱한 사람한테 말이 너무 심하네요. 나는 현재 매우 지극히 정상이니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한단 말입니까요? 내가 걱정하는 건 당신께서 사지로 밀어넣은 아이들입니다.”
염도의 얼굴이 흥분으로 인해 불그락푸르락 변화 무쌍한 색조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혹독하게 단련시켜 놓고도, 이 정도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니 그동안 정(情)이 들기는 든 모양이었다.
“날씨가 참 좋죠. 낚시하기에 좋은 날씨네요. “
아이들 생사 걱정으로 눈에 핏발이 벌겋게 선 염도를 앞에 두고 이게 웬 엉뚱한 소리인가?
“지금 낚시 얘기 따위나 할 때입니까? 왜 자꾸 아까부터 낚시 얘기만 찾는 겁니까?”
“왜요? 낚시하기 좋은 날씨를 낸 하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천기에 그런 불만을 품으시나요?“
염도는 눈을 까뒤집고 싶은 심정을 가까스로 참았다.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비류연이랑 입씨름하는 동안에도 그의 제자나 다름없는 애 들은(배분으로 따지면 사제라는 이상하고도 애매한 관계지만.) 생사의 기로에서 발버둥치고 있을 게 눈에 훤히 보이는 탓이었다.
염도는 비류연으로부터 몸을 돌리며 남아 있는 이들에게 외쳤다.
“남아 있는 아이들은 혹 있을지 모를 암습에 대비하라.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
염도의 지시에 따라 남아 있던 천검조가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우! 난 염도 노사가 비류연을 때려잡는 줄 알았네!”
효룡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장홍의 표정은 얄궂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저 성질 급하다는 염도 노사가 이런 일에 얼굴만 붉히고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고도 못믿겠군!’
방금 전 염도와 비류연의 대화는 전음(傳音)으로 나누어진 관계로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마치, 분노로 인해 얼굴이 시뻘게진 염도가 비류연을 때려잡으려는 듯 한 상황으로 보였던 것이다.
누가 감히 미치지 않고서야 비류연과 염도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겠는가. 지금 속이 시꺼멓게 타고 있는 이는 비류연이 아니라 오히려 염도였다.
“너도 갔다 와!“
비류연의 이 말과 함께 등 떠밀린 윤준호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가 이내 강물로 떨어졌다.
“풍덩!”
“헉!”
갑작스럽게 타의에 의해 전혀 생소하고 이질적인 세계로 내동댕이쳐진 윤준호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미지의 환경은 그에게 상당한 공포를 가져다 주었다.
수면 밑바닥, 차갑고 어두운 공기 없는 세계에서의 실전을 처음 접한 윤준호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때 냉철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심지는 굳 지 않았다.
여기는 화산파나 천무학관에 있던 연무장이 아니었다. 실력이 모자란다고 봐 주거나 힘들다고 쉬게 해 주지는 않는다. 실력 부족이 곧 죽음과 직결되는 곳이었다. 수공에 대한 적응 수업을 통해 습득한 약간의 경험은, 이 험난한 수라의 세계에서 살아남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물 속에는 비류연의 말대로 표선을 노리고 접근해 온 암습자들이 더 남아 있었다. 그들의 수는 족히 스물은 넘을 듯했다.
“둥둥둥둥!”
공포와 긴장으로 인해 윤준호의 심장이 파열될 듯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마치 북치는 소리 같았다.
“스윽!”
여러 명의 암습자 중 하나가 손에 들고 있는 호수구(護手鉤 : 갈고리처럼 생긴 수상전 무기.)로 자신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과연 수중 암습을 전문으로 하는 자답게 그의 움직임은 물고기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인간이 물 속에서 저 정도의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아도 일단 살고 봐야 했다. 윤준호는 얼른 검을 움직여 간신히 상대의 공세를 방어했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검 또한 천근은 족히 나가 는 듯 느리게 움직였다. 하마터면 제대로 방어조차 하지 못하고 죽을 뻔했다.
“챙!”
“헉! 이런!”
그의 몸이 반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물 속에서 뒤집어졌다. 윤준호는 또 한 가지 잊은 게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수중에서는 몸을 지탱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공세에 휘말려 들어갈 수 있는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수공에 능란한 사람은 항상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동작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다. 수중전에선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하는 것이 가장 큰 화두였다.
물살을 가르며 다시 한 번 암습자의 호수구가 날아왔다. 이미 균형을 잃어버려 팔을 허우적거리는 상황에서는 도저히 방어할 재간이 없었다. 윤준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죽는 건가…….?
갑자기 태사부님과 화산의 사형제들이 그리워졌다. 심지어는 화산에 핀 매화마저도 그리웠다.
“챙!”
“어랏?”
검격(劍擊)의 여파는 물 속에서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직 목이 붙어 있었다. 상처도 없었다. 눈을 빼꼼 뜬 윤준호는 이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암습자의 호수구는 남궁상의 검에 가로막혀 더 이상의 전 진을 허락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슈각!”
손쉽게 상대의 공격을 털어버린 남궁상의 검이 암습자의 목을 꿰뚫었다. 붉은 피가 윤준호의 망막을 붉게 물들었다.
윤준호가 일견하기에도 주작단원들의 움직임엔 왠지 모를 여유가 흐르고 있었다. 그들이 보여 주는 수중에서의 움직임은 항상 그래 왔다는 듯이 자연스럽고 매끄 러웠다. 능숙하다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남궁상은 현재 세 번째 암습자의 목을 베고 있었다. 일행을 암습한 암룡대들도 주작단원들의 민첩한 수중 운신과 능수 능란한 대응에 무척이나 놀란 모양이었다. 그 놀람이 커다란 틈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들에겐 치명적인 패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때 배운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십전추뢰격(電追雷擊)!
남궁상의 검이 열 개의 변화를 보이며 합공해 오던 두 명의 암습자를 동시에 절단냈다.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물 속에서도 남궁상의 검은 상관없다는 듯 오묘한 변화를 보였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남궁상은 재작년 아미산에서 있었던 뼈를 깎는 수련을 생각했다.
수면 아래 깊은 곳에서 줄기차게 검을 휘두르던 수련!
물 속에서도 지상만큼의 위력과 움직임을 보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단련받았던 그들이었다. 그때의 수련을 생각하면 주작단원들에게 이 정도 움직임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할 일을 모두 하면서도 윤준호를 보호해 줄 여유마저 가진 실력의 소유자들이었던 것이다.
윤준호의 주위에 조금 여유가 생기자 윤준호의 신병은 다른 이에게 맡기고 남궁상은 진령의 행방을 찾았다.
“소령!”
진령은 세 명의 암습자에게 둘러싸여 약간 고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남궁상의 눈에 불꽃이 튀겼다. 단번에 진령이 있는 방향을 짚어낸 그는 그곳을 향해 물고기보 다 빠르게 신형을 움직였다. 그에게 있어 진령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