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6권 25화 – 현명진인 무진자의 시간 지키기

비뢰도 6권 25화 – 현명진인 무진자의 시간 지키기

현명진인 무진자의 시간 지키기

“이보게 사제! 저기 현명 사조께서 지나가시네!”

높이 세워진 망루에서

번을 서고 있던 무당파 2대 제자 유강이 사제 유망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의 3대 제자는 계파 조사 때부터의 항렬 계산이 아니라, 장문인의 아래 배분을 1대로 보고 계산한 것으로, 장문인 운(雲)자 배의 제자의 제자가 되는 유(有) 자 항렬 제자를 뜻하는 말이다.

이들이 지금 맡아 하는 일은 산불이나 침입자를 감시하고 제 시간에 맞추어 종을 울리는 일이었다. 원래는 그날 그날 일월성신의 운행을 보고 시간을 어림잡아 종 을 울리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지만 무당산에는 다른 곳에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비법이 있었다.

“앗! 그렇군요. 사조님이 오후 산책을 마치신 걸 보니 벌써 유시초(酉時初 : 오후 5시)군요. 빨리 타종을 해 시간을 알리도록 하죠.”

유망이 성급한 행동을 보이자 유강이 나무랐다.

“쯧쯧! 사람이 급하기는! 잘 보게. 사조님께서 아직 연무장의 중문을 지나시기 전이질 않나! 사조님의 발이 저 문지방에 닿을 때가 바로 신시말(申時末 : 오후 4시) 에서 유시초(酉時初 : 오후5시)로 넘어가는 시간일세. 그리고 다시 처소에 드실 때가 정확히 유시 정각(酉時 : 6시)일세!”

역시 손위 사형은 경험에 있어서 사제를 압도한다. 그것이 비록 일년 차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제가 깜빡했군요! 죄송합니다, 사형!”

유망이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했다.

“괜찮아! 다음부턴 조심하게!”

사형다운 너그러움을 보여 주는 유강이었다.

“데엥! 데엥! 데엥……!”

무진자의 발이 정확히 중문턱에 닿자 유망은 유강의 지시에 따라 열 번 타종했다. 유시를 알리는 소리였다. 저녁 밥 때를 알리는 행복한 소리였다.

무진자는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사람이었다. 취침과 기상 시간! 산책 시간, 수련 시간 어느 것 하나 한 번도 어긋나는 적이 없이 칼날 같이 정확했다. 게다가 무진자는 보폭도 항상 일정한 폭으로, 발걸음도 일정한 속도로 걸었다. 신법을 발휘하기 전에는 결코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법이 없었다. 특별한 일이 생기 지 않는 한은 말이다. 그래서 무당산에서 그를 걸어다니는 시간 알림이라고 불렀다.

무진자가 행하는 것은 무변행(無變行일심(一心之功)이라 불리는 수행법으로, 항상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항상 같은 행동을 하는, 언뜻 보면 쉽지만, 행하기는 어려운 수행법이다. 현 무당파에서 이 수행법을 실시하는 사람은 오직 무진자 한 사람밖에 없었다.

이런 행동이 10년을 넘어가니 그때부터는 무당파 사람들이 무진자의 행동을 보고 그날, 그때의 시간을 파악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무당파는 시간을 알기 위해 천지(天地) 일월(日月) 성신(辰)의 움직임을 보는 데 소홀히 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다음 날이면, 무진자가 행동으로서 그때의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루는 무당파에 긴급 회의가 열렸을 때도, 오늘 당신의 일과표에는 회의가 없다고 참석하지 않은 인물이 바로 무진자였다.

물론 무진자가 자신의 일과표를 만들고, 거기에 더함도 뺌도 없이 지키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별로 좋은 처신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남들이 그와 같은 절처한 시간관념을 지킬 리가 만무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오직 무진자만이 가능한 일이었고, 이미 무당파 내에서도 타인의 행위 모 방에 대한 불가능성을 인정받은 터였다. 하지만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그가 시간지키기뿐만 아니라, 검술에도 조예가 깊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금년도 천무학관 무당산 합숙 훈련조의 천검조(天劍組) 담당 사부가 되었다.

비류연 일행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인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무당산에 도착한 주작단 일행은 이번 합숙 훈련 담당 사부가 무진자 현명진인이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작단에게 있어서 담당 사부가 통칭 사부님 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천만 다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따분했다.

도사들도 아닌 그들에게 합숙 훈련 담당 사부 무진자는 너무나 규칙적이고, 원리 원칙에 사로잡힌 딱딱한 수련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매일 하루도 걸르지 않고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것만 똑같이 시키는 무진자의 가르침은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인 그들에겐 너무나 따분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지독하다는 표현이 옳을 정도로 무진자의 시간 관념은 철두철미했다. 게다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문제는 그것을 천검조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주작단은

염도의 관할 하에 있어서 무진자의 시간지키기 마수에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원래 이런 합숙 훈련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비류연이 심통이 날 만도 했다.

헌데 이런 딱딱하고 원리 원칙적인 수업이라니……. 저 사람이 과연 고수 소리 듣는 사람이 맞는지 의문시될 정도였다. 어쨌든 절대 자신과는 맞지 않는 답답할 정도로 꽉 막힌 수업 방법이었다.

무진자는 지금 자신의 잣대로 타인을 측정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중이었다.

십인십색(十人十色)이라 했다.

자신에게 맞는 옷이라 해서 타인에게까지 그 옷이 맞으리라고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미처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발은 예정된 것이 나 다름없었다.

“뭔가 대형 사건이라도 하나 안 터지나?”

원래 질서나 규칙하고는 담을 쌓은 이가 바로 비류연인지라 이런 마음을 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