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6권 3화 – 결전의 날에도 아침 해는 뜬다

비뢰도 6권 3화 – 결전의 날에도 아침 해는 뜬다

결전의 날에도 아침 해는 뜬다

-결전 비무의 시작

결전 당일!

비류연은 의심할 여지없는 강압적인 협박조로

주작단 아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심각한 비류연의 얼굴에는 한 줄기 비장감이 강을 이루어 흐르고 있었다.

“난 너희들을 믿는다.”

“예! 맡겨 주십시오. 대사형!”

주작단원들이 가뭄에 콩나듯 오랜만에 보여 준 비류연의 신뢰에 감동해 기운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류연은 좀더 자신의 신뢰에 대해 표출(表出)하고 싶은 모양 인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난 그동안 너희들이 청룡단을 상대하기 위해 절치부심(切齒腐心), 노력하는 것을 항상 옆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왔다.”

그러고 보니, 청룡단과 주작단이 피할 수 없는 한 판 승부를 벌이게 된 계기가 뭐였더라? (아무래도, 그때 비 모군의 입김이 있었던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데…….)

“그래서 난 너희들에 대한 나의 지극한 사랑과 태산 준봉보다 드높은 신뢰를 증명하기 위해 내가 말이다, 너희들 앞에다 전 재산을 걸었거든…….”

당당하고 우렁찼던 앞부분과 달리 마지막은 지나가는 듯한 말투였다. 하나 주작단의 귀엔 그 목소리가 천둥보다 더 크게 들렸다. 마지막에 가장 최고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며 짓는 미소가 왜 그리도 가증스럽게 보이는지……. 일장 연설의 최후 부분이야말로 지금 그들이 듣고 있던 이야기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임이 명약관화 했다.

“그렇다면… 너희들이 지면 내가 돈을 잃겠지! 그렇지?”

이제는 주작단 전원의 몸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이 줄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난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알거지가 되어 길거리로 쫒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 거야……. 그럼 나중에 개방 애들이랑 밥그릇을 놓고 싸워야 할지 도 모르고……. 그럼 난 무척 슬퍼지겠지?”

빈곤으로 점철된 불행이 자신의 눈 앞에 현실로 들이닥친 양 벌써부터 애잔하면서도 비통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비류연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마 내 이성이 남아 있지 않을 거야. 그때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고 너희들도 모르지! 참 별 것 아닌 얘기지?”

비류연은 생긋 웃으며 말을 마무리했지만, 절대 대수롭게 받아들일 말이 아니었다.

비류연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만일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만일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는 확실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 이번 비무에서 결코 져서는 안 된다는,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절대적인 명제가 있을 뿐이다. 설령 살을 베이고 뼈가 끊어지는 한이 있 더라도!

“그러니깐, 꼭 이겨야 돼요! 하지만 만일 지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면, 그 호기심에 경의(敬意)를 표하며 패배한 후에 그 의문을 가장 성대한 방식으로 풀어 줄 용 의가 있어요. 기대해도 좋아요.”

비류연 딴에는 독려라고 한 말인 듯한데, 그 말을 듣는 주작단원들의 기분은 매우 찝찝했다. 절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독려였고, 마음 속에 천 근 만 근의 부담 감만 더하는 한 마디 한 마디였다.

대사형 비류연의 돈에 대한 남다르고 과도한 집착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즉 지면 절대로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경고나 다름없었다. 자신들의 승패 에 대사형의 돈이 걸려 있다는 그 말 한 마디가 그 어느 경고나 협박보다도 그들을 두려움 속에 빠뜨렸다. 동시에 절대 질 수 없다는 오기와 신념이 그들의 마음 속 에서 용솟음쳐 올랐다.

이걸 지금 비류연은 정신 교육이랍시고 하고 있는 것이다.

“풀어라!”

“예!”

“쩔그렁!”

“털썩!”

비류연의 말에 주작단원들은 너도 나도 자신들의 손과 발에 채워져 있던 묵환(墨環)을 끌러 내려놓았다.

“가볍군!”

“기분이 묘한데?”

“이야! 날아갈 것 같아!”

손오공을 5백 년 동안 찌그러뜨려 놓았던 삼천오백만 근짜리 족쇄,오행산(五行山) 같던 묵환을 끌러 버리자 육신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힘이 단전으로부터 용 솟음쳐 올랐다. 용기 백 배, 두려울 게 없는 무한한 자신감이 뭉클 솟아올랐다.

“가라! 그리고 전력으로 부딪쳐라!”

“예! 다녀오겠습니다, 대사형!”

주작단원들의 대답은 당당하고 우렁찼다. 드디어 그동안의 수련성과를 시험해 볼 때인 것이다.

32명이 동시에 맞붙을 수 있게 특별히 주문 제작된 특설 비무대 주위로 사람들이 승(僧), 도(道), 속(俗)을 가리지 않고 바글바글 몰려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불 구경과 싸움 구경이라고 들 한다.

인간은 자신의 신체와 자신의 주변에 피해가 미치지 않는 이상, 남의 불행을 안전한 곳에서 즐겨줄 만한, 즉 타인의 불행은 곧 나의 기쁨이라는 공식을 성립시킬 수 있는 넓은 아량이 구비되어 있었다.

튀어도 자신의 피가 아니요, 잘려도 자신의 살이 아닌 것이다. 인간은 보편적으로 타인의 아픔에 대해 대부분이 무감각하기 때문에 강 건너 불 구경쯤으로 생각하 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특히 자신의 능력을 개발, 발전 함양시키는 데 특별한 취미가 없는 이들에게 삼성무제 이후 오래간만에 찾아온 싸움 구경이란 무척이나 흥미 진진한 축제이자 유 익한 여가 선용이 아닐 수 없었다.

천무학관 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를 보여 주기라도 하듯 새까맣게 몰려든 인파들로 장내는 발디딜 틈 없는 북새통이었다.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은 저마 다 흥미 진진한 눈빛으로 지대한 눈요기거리를 지닌 채 잠시 후 벌어질 청룡단과 주작단의 비무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었다.

특히 긴급히 열린 안목 품평회(眼目品評會)에서 자신의 주머니를 턴 사람들의 눈빛은 남달리 더욱더 강렬했다.

이번 비무는 모두 공개전으로 만인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진다. 으슥한 곳에서 은밀히 치루어지는 대결 같은 건 공정성과 대외 신용도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만 인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

우레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바글바글한 인파들 사이로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청룡단주 천수룡 옥룡신검 맹연호를 위시한 15명의 청룡단 원과 주작단주 뇌전검룡 남궁상을 위시한 15명의 주작단원들이었다.

염도와 빙검 관철수는 천관주 무적철권 마진가와 함께 특별 관람석에서 자신들의 가르침을 전수받은 학생들을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드디어 절정 고수 두 사람의 자존심과 한 학생의 목돈이 달린 결전(戰)이 시작된 것이다.

주작단원들은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청룡단주 맹연호를 비롯한 이름을 기억할 필요 없는 몇몇과 함께 정면으로 격돌했다. 여기에 속임수나 꽁수가 끼여들 여지 (餘地)는 전무했다. 오직 진정한 힘과 기술, 그리고 무학에 대한 이해만이 실력의 고저를 가늠하는 잣대로서의 유용성이 인정될 뿐이다.

사력을 다한 힘과 힘, 기(技)와 기(技)가 한 곳에서 성대하게 격돌했다.

“우와아아아아!”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당사자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결전인지 몰라도 지켜보는 이에게는 흥미진진한 한 판 승부일 뿐이었다.

보통 비무대보다 열다섯 배나 큰 드넓은 특설 비무대 위에서 격돌하는 무공의 정수들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검광이 난무하고 도광이 충천했다.

빙검 관철수로부터 검을 사사받은 청룡단들의 검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고 정교했다. 그들의 초식(招式)은 마치 한 자루의 면도(面刀)를 연상케 할 만큼 날카롭 게 연마(硏磨)되어 있었고, 또 그만큼 정련(精練)되어 있었다. 즉, 형(形)의 완벽(完璧)에 다가가고 있었다.

반면 염도에게 사사받은 주작단원들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또한 무지막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폭발적일 정도로 맹렬했다.

극과 극의 대립이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만장단애(萬丈斷崖)의 끄트머리에서 벌어지는, 자존심을 건 대결이었다. 그리고 비류연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지상 최고의 가치인 ‘돈’이 걸려 있었다.

무인들뿐만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전을 중요시한다.

실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비류연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사전에 실전이란 말은 없었다. 실전을 할 바에는 차라리 죽는게 낫다. 어찌 감히 돈을 잃어 벌받을 생각을 다 할 수 있단 말인가…….

비류연에게 있어 사망(死)이 있을지언정, 돈이라는 매우 귀중 무쌍한 가치를 잃어버리는 통탄할 만한 행위인 돈을 잃어 버리는 실전(錢)이란 용납되지 않는 행위였다.

대립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초반에 보여 준 주작단원들의 실력은 눈부실 정도였다. 개개인의 실력 향상에 주력해 온 청룡단과는 달리 주작단은 항상 협심하여 싸우는 법을 터득해 왔다.

최근 무지막지한 염도의 칼날 아래서는 물론이고, 아미산에서부터 피의 귀환길까지 그들은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위하며 협심해 왔다. 그러니 개개인의 실력 향상 에 주력해 온 청룡단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청룡단의 다른 이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역시 문제는 마지막 남은 다섯 명이 문제였다.

꽤나 대단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것도 이젠 과거지사에 불과할 뿐이었다. 역사는 오늘부로 다시 쓰여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직접 맞붙어 본 청룡단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천하오검수의 일인인 빙검 관철수 밑에서 놀고만 있지 않았음을, 오늘 선보이는 초식의 정교함을 통해 여 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그들과 맞붙어 대결하는 주작단원 또한 전혀 꿀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들도 이미 천하 오대 도객의 한 명인 염도 로부터 실전을 방불케 하는, 뼈와 살이 작살나는 단련을 해 왔던 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겐 또 한 가지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비류연 대사형이 안겨 준, 천 근 만 근보다 더 부담감이 가는 기 억하고 싶지 않은 독려가 그것이다.

청룡단원들이 지닌 자만이 오만이 되었을 때, 그들이 받은 대가는 크나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