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6권 35화 – 혈류도 갈효봉

비뢰도 6권 35화 – 혈류도 갈효봉

혈류도 갈효봉

한때 마천각을 수석 졸업하여,

전무림인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사내. 허나 어느 날부터 그는 갑자기 돌변하여 한 마리 제어할 수 없는 살인귀가 되었다.

무엇이 앞날 창창한 흑도의 별이라고까지 불린

그를 돌변시킬 수 있었을까?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모든 존재를 쓸어버리는 살인귀! 그의 칼은 무지막지할 정도로 날카로웠고 아무도 그것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마천각의 십대 장로 중 네 명이 나서고서야 그를 제압할 수 있었다. 십대 장로들은 차마 그를 죽이지 못했다.

옛정이 그들의 손속에 사정을 두게 한 것이다. 한때 그들의 밑에서 수업받고, 최고의 기재라 불리며 사랑 또한 한 몸에 받았던 촉망받던 인재였다. 어찌 과감하게 살수를 펼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그는 무신마 갈중혁의 손자였다. 독단적인 처리란 있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천마뢰에 갇히는 죄인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9년이 지났다. 이제는 하나 둘씩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잊혀져 가는 존재였지만, 아직도 그와 그의 끔찍한 손속을 기억하는 자는 많았다.

만일 갈효봉이 천마뢰를 탈옥하여 사단을 벌인다고 해도 변명하기는 쉬울 것이라는 게 치사한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9년 동안 천마뢰(天魔牢)에 갇혀 있던 자였 다. 탈옥 기도가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성이 견정하지 않더라도, 자유에 대한 욕구는 변함이 없는지 그는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했다. 흡사 우리에서 빠져 나가려고, 이빨로 철창을 물어뜯고 벽을 할퀴는 한 마리의 야수 같았다. 벌써 몇 번째 독방 문을 갈았는지 모른다. 끊어진 쇠사슬을 교체한 것도 셀 수가 없었다. 독 방도 벌써 열두 번이나 바꿨다.

갈효봉에게 점혈을 하고 금제를 가해도, 어느 새 그는 가해진 금제를 풀고 탈출을 시도했다. 특히 한 번 피가 끓어 광분하기 시작하면 그를 구속하던 쇠사슬도 썩 은 새끼줄마냥 맥없이 끊어지기 일쑤였다. 그의 무위(武威)는 들쑥날쑥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단전(丹田)을 파괴하고 근맥을 끊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다만 한 번의 탈출이 있을 때마다 좀더 쇠사슬의 숫자가 늘어나 고 굵기가 더 굵어졌을 뿐이다.

그러니 한 번 더 탈출을 기도한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물론 이번에는 그 탈출이 성공하는 게 지금까지와는 다르지만 말이다.

수옥 관리자 몇 명만 처벌하는 것으로 일단 양쪽의 눈을 덮을 수 있을 것이다.

갈효봉은 일종의 제물이었다. 갈효봉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해도 혼자의 몸으로 목표물 전부를 모두 죽이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치사한이 필요한 건 그의 실력보다는 오히려 그의 신분 쪽이었다. 그가 어떤 이유로든 백도인의 손에 죽는다면 흑천맹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는 누가 뭐라 고 해도 전 흑천맹주(黑天盟主) 무신(武神魔) 갈중혁의 손자이자 현 흑천맹주 패왕도 갈중천의 장남이었던 것이다.

치사한은 지금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는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었다.

무신마 패천도 갈중혁의 손자 혈류도 갈효봉의 죽음! 그의 죽음에 관련된 천무학관의 제자들!

그의 죽음은 정사 간의 문제로 비약될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 일만 성공적으로 끝나면 무신마 갈중혁의 피는 여기서 끊긴다. 후계자가 사라지는 것이다. 치사한이 노린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그리고 뇌종명이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자를 쓰겠다니? 자네 흑천맹의 권위(權威)에 정면으로 도전이라도 할 셈인가? 그분의 분노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백 년 전 갈중혁의 신위를 직접 지켜보았던 뇌종명은 누구보다도 그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계획에 그자를 쓰는 이유 중 반 이상이 그의 출신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그자는 더욱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제물로서의 가치가 말입니다.”

뇌종명은 치사한의 얼굴에 떠오른 사악한 미소를 보자 온몸에 한기가 치미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침 뇌옥도 가깝고 하니 더욱 더 변명하기가 편하겠군요!”

자칫 잘못하면 거대한 혈풍을 동반할지 모를 일을 계획하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 같은 미소를 짓는 치시한이 더욱더 섬뜩하게 느껴지는 뇌종명이었다. “내가 이놈을 잘못 봤단 말인가??

뇌종명은 그동안 자신이 너무 치사한을 얕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미 대공자에게 허가를 받아 두었습니다. 지금부터가 진짜 작전입니다.”

치사한의 태도는 강경했다.

이제는 말리기를 포기한 듯 뇌종명이 물었다.

“거의 5년을 손도 못대 보고 있는 처지가 아닌가! 제어를 할 수 있겠나?”

갈효봉을 제정신으로 돌릴 수단이 있었으면 아마 예전에 사용되어졌을 것이다. 아직도 그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방법이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야기였다. “제정신으로 돌리는 방법이야 없지만 심령을 제압해 우리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습니다.”

무척이나 위험한 방법이었고, 당사자에게 걸리는 위험이 너무 컸다.

“그 정도로 뛰어난 섭혼술자(攝魂術子)가 있나?”

뇌종명이 물었다.

“천지쌍살(地雙殺)을 보내도록 하죠!”

치사한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의 대답을 들은 뇌종명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백 살 넘은 노인네가 심장에 부담가게 오늘 너무 여러 번 경악하고 있었다. “천지쌍살(地雙殺) 초혼검(招魂劍) 명왕도冥王刀)를 말인가?”

뇌종명이 이렇듯 사색이 되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천지쌍살이라면 최강 전력 중 하나며 그 둘의 무력만 해도 일반 무인 3백 명을 합쳐놓은 것보다 나을 정도였 다. 그뿐인가…….

이들이 움직인다 하면 그의 휘하에 있는 초혼대(招魂隊)와 명왕대(冥王隊)가 함께 움직인다는 말과 동일했다.

그 잔인한 손속 때문에 강호의 공분(公憤)을 살까 봐 발을 묶어두고 있었는데……. 지금 치사한은 그런 자들을 쓰겠다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너무 은밀성이 떨어지지 않겠나?”

뇌종명이 보기에 지금 치사한의 행동은 의도적으로 일을 크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착각이겠지.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솟아오르는 의문을 애써 부정했다.

“괜찮습니다. 일을 끝낼 땐 화끈하게 끝내는 게 좋겠지요.”

치사한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골육상잔(骨肉相殘)이라니! 아아, 너무나 슬픈 비극이로군요!”

과장스런 몸짓을 취하며 말하는 그의 입가에 으스스할 정도로 괴이한 미소가 걸렸다. 뇌종명은 왠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치사한은 종을 울려 부하인 천리호리를 불렀다.

천리호리는 치사한이 부르자마자 냉큼 달려와 그 앞에 부복했다.

“요즘 천지쌍살(天地雙殺)은?”

“예! 요즘 수라전에서 소일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쪽은 내가 직접 만나도록 하지! 콧대가 워낙 높고 안하무인인 인물들이니 직접 상대해야겠어! 그리고 지금 즉시 쌍살대(雙殺隊)에게 총소집령(總召集 令)을 발령(發令)시키도록!”

“싸, 쌍살대 전원을 말입니까?”

천리호리가 놀라는 게 당연했다. 쌍살대라 하면 천지쌍살 직속 무력 집단 초혼대와 명왕대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었다.

이들은 흑도에서조차 공포로 불리고 있는 천지쌍살이 직접 키운 자들로, 암혼비영대가 대단하다 하지만 전면전에 있어서는 쌍살대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했다. ‘전쟁이라도 치르려는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언제부터 자네가 내 말에 반문하게 되었나?”

치사한의 어투가 냉랭해졌다.

“죄, 죄송합니다.”

“퍽!”

천리호리가 얼른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비굴하게 사죄했다.

잠시 경멸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 치사한이 품 안에서 한 통의 서찰을 꺼내 천리호리 앞으로 던졌다.

채융은 서찰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얼른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그 서찰을 천마뢰옥주(天魔牢獄主) 사망도(死亡刀) 초상유에게 보내 앞으로 찾아갈 사람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라 일러라. 가능한 한 은밀히 직접 전해라!”

“예!”

“급편으로 처리하도록!”

“복명(復命)!”

천리호리 공유국은 부복하여 예를 표한 다음 방을 빠져 나갔다. 그의 이마로부터 한 줄기 핏물이 흘러 내렸다. “흐흐흐,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모든 것은 지존(至尊)하신 그분의 뜻대로!”

치사한의 눈에 차가운 한광(光)이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