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6권 4화 – 당삼의 실수, 자만이 부른 화!
당삼의 실수, 자만이 부른 화!
-노학의 몸으로 배운 기공(奇功: 기이한 공부)
부족한 자신감은 사람의 마음을 소심하게 만들고,
용기를 잃게 해 동작을 굼뜨게 만든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감이 지나치면
자만심이란 괴물이 장애가 되어 눈을 흐리게 만들고
판단력을 상실하게 하는 무서운 위력을 발휘한다.
솔직히 당삼은 너무 방심했다. 자만이 호출(呼出)한 방심은 언제 어디든 가리지 않고 반드시 절친한 친구인 화(禍)를 부르는 법! 이 공식은 여지껏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는 불멸의 진리였다.
얼마 전 어릴 적부터 항상 자신을 괴롭히던 사촌형 독날수 당문천의 코를 철판에 찍어누른 빈대떡처럼 납작하게 만들어 준 것이 오히려 화가 된 꼴이었다.
그날 사촌형이자 웬수 덩어리이던 당문천에게 시원스레 한 방 먹여 준 당삼은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그때만 해도 당삼은 자신의 암기 수법에 자신감이 붙어 이 제 누구랑 싸워도 지지 않을 것만 같은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날의 자신감이 오늘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는 건 좋은데, 그 자신감을 믿고 너무 날뛴 게 끝내는 화를 부른 것이다.
너무 감정에 휩슬려 기분 내키는 대로 날뛰다 보니 주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잊은 것이 문제였다. 특히 암기류는 실패했을 때 돌아오는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 에 여타의 무공에 비해 훨씬 더 신중을 기했어야 함이 옳았다.
자신만만하게 던진 삼환비선(三環飛旋)과 최강 수법 중 하나인 칠성연환(七星連環) 비격선(飛擊旋)이 청룡단주 천수룡 맹연호의 검에 무위로 돌아갔을 때 그의 전신은 상대방의 검 아래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기회를 잡은 맹연호의 검은 화산파의 기대주답게 당삼에게 회피할 틈을 줄 만큼 어설프지 않았다. 무수히 떨어지는 매화 꽃잎 속에 숨겨진 집요하고 매서운 검기 가 당삼의 몸을 거세게 훑고 지나가자 당삼의 옷은 걸레 쪽이 더 양호해 보일 지경이었다.
목숨이 붙어 있는 걸 보니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봐 준 것도 아니었다.
“커억!”
맹연호의 매서운 검기에 당한 당삼이 끓어오르는 기혈을 억누르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아무래도 지독히 당한 모양이었다. “당삼!”
주작단에서도 당삼과 가장 절친한 노학이 괴성을 지르며 당삼 쪽으로 달려왔다.
“어딜 가려 하시나? 어차피 가지 못할 길!”
“챙!”
“윽!”
하나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는 노학의 발걸음은 한 명의 청룡단원에게 막혀 더 이상의 행보가 불가능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청룡단원의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자신의 앞길을 막고 있다는 그것뿐! 성깔 있는 거지의 두 눈에 불똥이 튀 었다.
“으아아아아! 삼재구타봉법(三才狗打棒法)!!! ”
“파바바박!”
괴성과 동시에 노학의 손에 쥐어진 녹색 타구봉(打拘棒)이 무지막지한 변화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족쇄 같던 무거운 묵환(墨環)을 떼어 버린 노학의 손에서 펼쳐지는 타구봉의 변화 무쌍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낭창낭창 휘어지는 봉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변화는 영활하기 그지없었다.
“헉!”
청룡단 부단주 철검비룡 하세인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노학의 공격은 상식을 초월하는 괴이한 변화를 보이며 그의 전신 요혈을 향해 쇄도해 들어오고 있었 다.
그도 그동안 개방의 타구봉법을 상대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까지 그 누구도 노학 같은 괴상하고 무지막지한 변화를 보인 이는 없었다.
‘삼재구타봉법(三才狗打棒法)!’
노학에겐 여지껏 친구들인 주작단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비장의 무공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삼재구타봉법 (三才狗打棒法)이란 무공으로서 비류연에게 죽 도록 얻어맞으면서 깨우친 비장의 무공이었다.
원래부터 개방에는 여염집 아낙네의 속곳처럼 은밀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전의 봉법이 하나 있다. 그 이름하여 거룩한 타구봉법(打拘棒法)!
가장 효과적으로 개를 때려잡기 위해 창안되었다는 전설이 달라붙어 있는 이 오묘하기 짝이 없는 봉법은 개방의 수뇌부 사이에서도 내연의 관계에 있는 불륜의 연 인 사이만큼이나 극비리에 은밀히 전해져 오고 있다.
한두 초식 정도는 나누어 전해지는 항룡십팔장과 다르게 이 봉법을 전수받을 자격이 있는 자는 방주 직계로 한정되어 있다. 방주 직계 제자 중 한 명인 노학마저도 아직 전반부만 배웠을 뿐 몽땅 전수받지는 못하고 있는 처지였다. 그나마 노학은 천무학관에 입관하게 되었던 터라 조금 더, 개코딱지만큼이라도 더 얻어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원래 개방은 전통에 따라 무공도 구걸(求乞)해서 배운다. 제대로 구걸 행위를 하지 못하면 무공도 못얻어 배우는 것이다. 무공이 다양한 만큼 얼마나 뛰어난 구걸 신공(求乞神功)을 보여 줄 수 있는가에 따라 거지의 일신에 쌓이는 무공 또한 늘어나는 것이다.
개중에는 이를 가리켜 점점 더 잡다해진다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별로 틀린 말은 아니다.)
개방은 바닥이 바닥인 만큼 장로들이라 할지라도 각자 지닌 일신상의 무공이 다르고, 복잡 다양하여 그 계보가 헝클어진 실보다 복잡했다.
지금 노학이 펼친 것은 물론 개방 비전오의(秘傳奧義) 타구봉법이 아니었다. 똑같은 개 패는 몽둥이 찜질법이라 해도 타구봉법은 좀더 우아하고 정교한 맛이 있었 다.
노학은 개방 조사님이 알면 피눈물을 흘리며 머리채를 쥐어 뜯을지 모를 만행, 즉 전수받은 반쪽짜리 타구봉법을 자기 마음대로 왜곡 변형시키는 만행을 저질렀 던 것이다.
비전 중의 비전 타구봉법을 개조 개량해 절치부심한 끝에 완성한 노학자신만의 봉법, 그것이 바로 삼재구타봉법인 것이다.
삼재구타봉법은 삼복구타권법과 마찬가지로 전 삼부(三部)로 나뉘는데 그 의미가 조금은 틀리다.
각 삼부는 인봉(人棒), 지봉(地棒), 천봉(天棒)으로 되어 있다.
우선 제3부인 인봉(人棒)은 사람을 개패듯 패서 사람을 개로 만드는 무공이고, 제2부인 지봉(地棒)은 앞서처럼 사람을 개패듯 패긴 패되 사람을 땅에 파묻을 만큼 팬다. 그리고 마지막 최절초이자 삼재구타봉법의 정화격인 제1부 천봉(天棒)은 사람을 패는데, 그 패는 정도가 사람을 하늘로 승천시킬 만큼 패는, 매우 무시무시 하기 짝이 없는 패악한 무공이었다. 마지막 천봉은 사람을 가루로 만들어 날려 버릴 정도로 패버리기 위한 용도인 것이다.
노학이 비류연에게 뼛속 깊숙한 곳, 곰탕 끓일 때 우러나오는 부분같이 깊게 물들었다는 증거였다.
삼재구타봉법은 원래 개방 최고 비전인 타구봉법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던 현묘함과 현기는 온데간데 없이 찾아볼 수 없는 미아가 되었고, 오로지 무식함과 피맺힌 처절함만이 남아 있는 무지막지한 봉법이었다. 너무 무식해서 막을 수 없는 봉법, 그것이 바로 삼재구타봉법인 것이다.
“헉!”
철검비룡 하세인은 노학의 갑작스러운 공세에 부딪치자 순간 당황했다.
노학의 봉법은 무공의 상리(常理)에서 어긋나는 점이 많아 쉽게 대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옆에서 유운검 현운까지 가세하자 더 이상 노학의 봉에만 신 경쓸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실수였다. 잠깐의 방심은 노학의 삼재구타봉법에게 그의 방어를 뚫고 들어갈 빌미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의 몸으 로 삼재구타봉법이 여지없이 작렬했다.
““빠바바바바박!”
“퍽퍽퍽!”
인정사정 따윈 애초부터 양측의 고려 사항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크아아아악!”
하세인의 입에서 돼지 멱따는 듯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이미 하세인의 어느 곳에도 천무구룡으로서의 위상은 찾아볼 수가 없는 상태였다. 저런 째지는 듯한 괴성 을 듣고 누가 곤륜파의 대제자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리하여 비류연의 눈 밖에 나, 이번 비무의 원인 제공자가 되어 버린 철검비룡 하세인은 노학의 타구봉 아래에서 삼재구타봉법을 맞고 개박살이 났다.
그러자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비류연의 입가에 비로소 만족스런 미소가 감돌았다.
눈에 거슬리는 건 절대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티끌 같은 원한도 눈덩이처럼 불려 백 배로 돌려준다!”
한 번도 사문의 금과옥조 같은 가르침을 잊어 본 적이 없는 비류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