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6권 9화 – 공손일취의 밀명

비뢰도 6권 9화 – 공손일취의 밀명

공손일취의 밀명

-마천각에 싹트는 모략

천무삼성무제(武三聖武祭)의

삼성대전 결승전에서

치러진 비류연과

위지천의 대결을 본 이후, 불안한 마음에

검존(劍尊) 공손일취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과거의 악몽이 바로 자신의 눈 앞에서 되살아나려고 하는 이때, 어떻게 마음 편하게 두 발 뻗고 누워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의 높디높은 수련 경지에도 마음 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불안을 해소시키기엔 역부족인 모양이었다. 그 공부란 게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백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대로는, 앞으로의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았다. 그날 이후 계속해서 정체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던 공손일취는 마침내 이대로 손놓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결정 을 내렸다.

정체를 알아봐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은밀하게 비류연의 뒤를 따라다니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력을 알아낼 필요성이 있었다. 그 일을 해 줄 곳은 천관 내에서 오직 한 곳뿐이었다.

그래서 검존은 사람 한 명을 은밀히 불렀다.

원로원 원주실!

천무삼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일무이한 무인 검존 공손일취의 거처로 한 명의 흑의인이 부름을 받고 들어왔다.

“원주님! 천리추종 수독거, 명을 받고 여기 대령했습니다. “

검존 공손일취의 앞에 선 비영각 추혼대의 대주 천리추종(千里追從) 수독거는 최대한의 경의를 담아 예의를 표했다. 그는 정보와 추적, 첩보를 담당하는 자답게 전신에 밤처럼 어두운 흑의를 두르고 있습니다.

수독거에게 있어 검존은 태산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언제나 이 거인 앞에만 서면 초라해지는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네.”

부탁! 검존 공손일취와는 별로 어울릴 법하지 않은 말이었다. 수독거의 고개가 더욱 더 아래로 숙여졌다.

“하명만 하십시오. 속하 그 어떤 일이든 봉행(奉行)하겠습니다.”

마천각(閣)!

백도에 천무학관(天武學館)이 있으면, 흑도에는 마천각(魔天閣)이 있다는 말이 있다. 흑도의 모든 기재들이 모인, 엄한 규율과 엄정한 가르침으로 이름 높은 곳이 기도 했다

방금 이 마천각의 은밀한 심처(處)로 추상 같은 기상이 가득한 노인이 들어섰다.

“이 늙은이를 부른 이유가 뭔가?”

퉁명스런 어조로 무웅(武雄) 뇌종명이 물었다. 그는 최고 원로 중 한 명으로 천겁혈세 때 마천각주를 보필하던 사람이었다. 별호는 언외도(外刀)! 말보다는 칼이 빠르다는 평이 자자한 도객으로 마천각 원로 중에서도 서열 5위 안에 드는 5대 원로의 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마천각의 군사 사영뇌(邪影) 치사한이 마천각의 제반 업무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다고는 하나, 감히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사영뇌(腦치사한 그는 마천각에서 군사 제반 업무를 담당하는 자로서, 귀계묘산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자였다. 하나 그 행사가 평소 너무 음침하고 사이하 다 하여 마천각 내에서도 극히 기피되어지는 인물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성격은 더욱 더 음침해지고, 점차로 냉혹, 비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악순환의 무한 연속 인 것이다.

먼저 운을 뗀 사람은 치사한 쪽이었다.

“뇌 원로께 상의 드릴 일이 있어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치사한은 역시 맡은 직위에 어울리게 돌아가는 혀가 매끄럽기 그지없었다. 간사하다는 생각마저 들어 되려 뇌종명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속다르고 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결단코 없는 굳센 성격의 소유자 뇌종명의 말투는 자연 퉁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용건이나 들어 보지.”

“예! 다음 그것에 출전할 확률이 가장 높은 인물들이 단체로 무당산으로 이동한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검성 모용정천 대협의 손자까지 끼여있다고 하 더군요. 뇌 원로께서도 이름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모용휘라는 아이지요.”

“몇 년 전 비무행한다고 흑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칠절신검 모용휘 말인가? 노부도 소문은 들어 보았네. 그런데 그게 노부하고 무슨 상관인가?”

“네, 이번에 그 새싹들이 자라 열매를 맺기 전에 쳐야 될 일이 생겨 원로의 힘을 빌리고 싶습니다.”

“쾅!”

뇌종명의 주먹이 거칠게 탁자를 내리쳤다. 분노 때문인지 그의 얼굴은 벌겋게 물들어져 있었다.

“할(喝)! 겨우 새싹 치는 일 따위로 이 늙은이의 고달픈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단 말인가? 언제부터 우리 마천각이 그런 추잡하고 조잡한 뒷수를 쓰게 되었단 말인 가? 대답하게!”

뇌종명의 호통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흑도에 속한 몸이지만 여지껏 비겁한 짓을 해 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런데 새싹 짓밟기라니……. 그의 자존심이 용 납하지 않는 일이었다.

뇌종명의 불 같은 분노 앞에서도 군사 치사한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믿는 게 있었다.

“하지만 대공자께서 원하십니다. 부탁한다 하시더군요.”

그 말 한 마디로 충분했다. 뇌종명은 온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정말인가?”

“물론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이런 일로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어려서부터 자신의 손으로 기저귀를 갈아 온 분신 같은 사람의 명령 아닌 부탁이었다. 뇌종명은 그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뇌종명은 침묵한 채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은 것은 이야기를 듣겠다는 무언의 허락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현 상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한 태연자약(泰然自若)한 표정으로 말하는 군사 사영뇌 치사한이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까스로 진정시 키며 뇌종명은 속으로 다짐했다.

‘사갈 같은 녀석! 감히 대공자의 귀에 무슨 독을 불어 넣은 거지? 내 언젠가는 네놈에게 본때를 보여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