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7권 11화 – 무당괴담전(武當怪談傳)

비뢰도 7권 11화 – 무당괴담전(武當怪談傳)

무당괴담전(武當怪談傳)

– 초혼오귀검과 명부오귀장의 수난

“어떻게 된 거냐?”

세상에는 가끔 해답을 알고 있어도

선뜻 답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의 대답이 자신은 물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에 차마 정답을 입 밖에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예견된 파국을 자진해서 불러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도 그 중 하나였다.

하늘같이 높은 상관이자 공포의 상징인 천살 초혼검이 몸소 질문하는데도 불구하고 대원 이십칠호(二十七號)라고 불리는 종평창은 말문이 막혀 선뜻 대답하지 못 했다. 만일 바른 대로, 이실직고한다면 최소 불호령에 최대 즉각 사형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귀신이 때리고 지나갔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입 밖에 낼 수 있겠는가. 절대 죽어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에… 저… 그것이… 그러니깐… 뭐냐 하면…….”

얼굴이 시퍼렇게 멍이 든 이십칠호는 혀가 꼬여 쉽사리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천살의 잔혹무쌍한 손속은 심약한 그에게는 너무도 무서웠다.

“죽을래? 빨랑 대답 안 하냐?”

천살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참을성이란걸 길러 본 역사가 없는 사람이었다.

“네… 넷! 귀신이 때렸습니다!”

“그래? 나한테도 한 대 맞아라!”

뻑! 하는 소리와 함께 이십칠호는 의식을 놓아 버려야 했다. 이 정도면 가장 잘 풀린 경우였다. 죽지 않고 끝날 수 있었던 그는 행운아였다.

“에잉! 부하라고 있는 것들이 어디 가서 얻어터지고나 오고! 속시원히 죽지는 못할망정 꼴사납게 얻어맞고 오다니…….”

“죽여 버릴까?”

쓸모 없는 놈을 곁에 두고 있자니 영 못마땅했다.

“귀신은 무슨 귀신? 바보 얼간이 같은 놈들!”

천살은 화를 삭이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지르며 신경질을 부렸다. 수하의 무능함이 그의 화를 더욱 부채질했다.

천지쌍이 이끄는 천지쌍살대에는 두 개의 물과 기름 같은 우두머리 집단이 존재하고 있다.

천살 초혼검 휘하의 초혼검대를 이끄는 다섯 명의 검객 초혼오귀검(招魂五鬼劍)과 지살 명왕도 휘하의 명왕도대를 이끄는 다섯 명의 도객 명부오귀장(冥府五鬼 將)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초혼오귀검과 명부오귀장은 사이가 무척이나 안 좋았다. 앙숙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정도로 이들의 사이는 견원지간 (犬猿之間)이었다.

사파에게, 아니 그들에게 있어서 경쟁자란 기회가 되면 반드시 제 1순위로 가차없이 제거해야 할 방해물에 불과했다. 결코 서로의 발전을 도우며 함께 앞으로 나 아가야 할 생의 동반자가 아니었다.

두 곳 다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수하들을 관리하는 입장인데다 금상첨화로 이 조직 사이에도 미묘한 경쟁 심리가 존재하고 있었으니 사이가 좋을 리 만무했다. 하 나의 세력 안에 두 개의 조직이 붙어 있는 것이다. 아니 조직 두 개가 붙어 하나의 세력이 된 것이다.

견원지간이란 말을 완벽하게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애초에 화기애애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들이 한 가지 물건을 두고 동시에 욕심을 내게 되었다. 음심(淫心)이 동해 탐이 나고 갈증이 나는데, 목표는 하나였다. 당연히 이들의 사이가 불구대천의 원수로 발전하는 데 긴 시간이란 무의미했다.

이들의 관계는 불씨가 남아 있는 화약고 같은 상태였다. 언제 어디서 터지든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 없는 곳에 떨어진 거대한 불씨!

그것은 바로 나예린이란 존재였다. 갈효봉이 처음으로 합숙 훈련소를 덥쳤을 때, 그 혼란의 와중에서도 그들은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희대의 우물이라 불리기에 손색없는 절대미(絶對美)! 숨막힐 듯한 여태(麗態)!

그들의 독사 같은 눈이 재수 없게 번뜩이며 입에선 침이 한 말이나 쏟아져 나오는 게 당연했다. 목표는 하나인데 경쟁자는 둘이었다. 싸움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이들은 갈효봉이 회복되고 금제가 완전해질 때까지 대기하라는 명령을 한 귀로 듣고 흘려 보낼 정도로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려 있었다. 지금껏 그래 왔던 수천 명 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녀의 미태(美態)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있어 왔던 남자들 중에서도 특히나 폭력적이고 위험한 늑대들이었다.

사파에 속하는 남자 전부를 비하할 마음은 없지만, 일반적인 통계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이 지닌 성(性)에 대한 욕구나 갈망의 제어력은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치명 적일 정도로 빈약했다. 여기에는 환경적 영향도 크게 한몫을 했음은 두말 할 것도 없는 일이다. 저질러 놓은 일이 있으니 사파인들이 자신들을 도매금으로 넘긴 데 대해 항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음욕의 제어는 정파 사람들도 혈기 왕성한 남자라면 종종 실수를 저질러 폐가망신하거나 후안무치한 인간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살인이나 폭력을 밥 먹듯 일삼는 놈들에게 그런 자제력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그릇된 일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않는 게 목뼈 건강에 좋은 일이었다.

여자만 보면 환장하는 놈들에게 도덕을 강요한다는 것은 본인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겠는가! 이런 경우 타협의 여지라는 것은 절대로 찾아 볼 수 없으니 말보다 주먹으로 해결하는 게 깔끔하고 수월한 방법이다.

특히 살인, 방화, 약탈, 강간을 주특기로 하고 있는 쌍살대의 윗대가리들이라면 더 이상 논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이들은 전원이 짐승과 별로 구분이 안 가는, 아니 짐승보다 못한 놈들로 빈틈없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절제와는 전혀 무관한 다섯 명은 지금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한 가지 망상을 위해 저돌적으로 돌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정신 연령이 미성숙한 사내들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돼서 움직이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그건 바로 여자였다. 특히 이 정도로 극도의 흥분 상태를 보이고 있 는 것으로 유추해 볼 때 미인 중의 특상급 미인이 분명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이 정도로 광분하는 것은 이들에게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런 때 사내는 이 세상에서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이 된다. 혹시라도 주변에서 이런 사내들을 목격한 여성이 있다면 그 즉시 몸을 피하는 것이 건강하고 평안 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탁월한 선택일 것이다.

여자들이여 주의하라!

남자란 기본적으로 늑대에 속하는 인종이다. 그것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니 섣불리 믿지 말지어다. 남자를, 특히 단둘이 있을 때 신용하는 어리 석은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초혼오귀검들의 흥분은 교배기의 종마(馬)처럼 식을 줄 모르고 있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그녀는 희대의 우물이야. 난 대가리 혈관이 파열되는 줄 알았어! 흐흐흐!”

귀영살검 상중하가 소름끼치는 음소(淫笑)를 터트렸다.

“맞아! 머리가 핑 돌 정도로 아름답더군! 그런 미녀가 이런 곳에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둘째 귀령검 강중약이 전폭적인 동감을 표했다.

“크흐흐흐흐! 나도 소문은 들었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우와, 미치겠구만!”

색을 하도 밝혀 색색이(色色異)라 불리는 색마(色魔) 귀명검 강약약이 발정 난 수캐처럼 폴짝펄짝 뛰며 주위를 산만하게 했다.

“약약! 네녀석 그 애에 대해 알고 있었냐?”

네놈도 아는 게 다 있느냐는 그런 말투였다. 그만큼 둘째 귀령검 강중약은 신기해하고 있었다.

“아, 물론이죠! 그런 특급 미녀에 대한 정보를 이 풍류남아 강약약 님이 모를 리가 없잖소. 형제들은 천하제일 미는 이미 10년 전에 정해져 있었다는 말도 못 들어 봤소?”

맨날 여자 때문에 사고만 치는 녀석이 잘난 척을 하는데 다른 이들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서… 설마?”

그 얘기라면 다른 네 명도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들이 지금껏 거쳐 온 수많은 술자리에 여자 이야기와 음담패설이 빠질 리 없었으니 어딘가에서 다 한 번씩 주워 들은 기억이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설마라고! 정말 대단하지 않아? 아… 이런 기회가 내 눈 앞에 나타날 거라곤 난 꿈도 못 꾸었소.”

색색이 강약약의 눈이 황홀하게, 그리고 몽롱하게 변했다. 현재 이녀석의 눈은 전혀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중이었다. 이런 때 타인의 말이 귀에 들어올 녀석이 아 니었다. 눈 앞에 여자만 어른거리는 모양이었다.

“쳇! 우리야 자네처럼 색욕이 주관심 분야가 아니었으니 여자 정보에 소홀할 수도 있는 일 아니겠나!”

강중약이 투덜거렸다.

“그녀가 바로 스무 살이 되면 분명 천하제일미가 되리라 판단되어 강호의 전 풍류남아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던 정천맹주 나백천의 금지옥엽(金枝玉葉) 빙 백봉 나예린 소저지!”

강약약이 성질나게 또 잘난 체했다. 잘난 척하는 만큼 남들보다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운 놈이 이뻐 보이는 건 절대 아니었다.

“자네가 강간마 내지는 색마 내지는 호색한인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풍류남아라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네그려!”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강중약이 말했다. 강약약이 풍류남아면 이 세상 풍류남아는 다 작살 났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여성의 의견도 묻지 않고 무작정 폭력이 개입된 관계를 갖는 것이 취미인 녀석이 무슨 얼어 죽을 풍류남아란 말인가. 지나가던 똥개가 코웃음치며 설사할 이야기 였다. 하지만 그는 풍류남아의 기준에 대해 더 이상 논의가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부언을 그만두었다.

이 다섯 중에서 그나마 겁탈 횟수가 적은 이가 첫째 상중하였다. 본인은 극구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오십보백보였다.

“그래서 말이지…….”

강약약은 자신의 전문 분야가 나오자 신이 나 계속해서 떠들어 대고 있었다.

역시 다들 남자라고 희대의 미인, 천상화(天上花)에 대해 관심이 잔뜩 동한 얼굴이었다. 인상을 한 번 찌푸린 후 상중하도 더 이상 정보를 놓치기 전에 얼른 그 대 열에 뛰어들었다. 역시 강약약 같은 호색한, 색마보다는 자신 같은 열혈남아가 희대의 미인에게 어울리는 동반자가 아니겠는가. 두말 할 가치 없으니 한마디만 해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 천살님의 명을 어겨도 되는 겁니까? 분명히 천라지망을 풀지 말고 대기하라는 명이었습니다.”

막내 하상중이 조심스럽게 의사를 타진했다. 분명 지금 이대로 미녀를 차지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은 명령 위반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끄응…”

천살의 이름이 나오자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10년 이상을 곁에서 모셔 왔지만 아직도 천살 옆에만 서면 그들은 공포를 느껴야 했다.

천살에게 있어서 그들은 언제 버려도 상관없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몰래 조용히 처리하면 누가 알겠어? 게다가 노리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야! 그날 그 자리에 명부오귀장 그 다섯 귀신도 있었다는 걸 설마 잊지는 않았겠지?”

강약약이 찬물을 끼얹은 하상중을 노려보며 모두를 설득시켰다. 이럴 때는 스스로를 저승의 다섯 귀신이라 칭하는 녀석들을 끌어들이는 게 무엇보다 탁월한 효과 가 있었다.

“게다가 다섯 귀신 중 둘째 귀신은 귀신 주제에 색만 밝히는 아주 못된 놈이지! 그놈도 이 분야의 상당한 전문가야! 그놈이 그녀의 존재를 놓쳤을 리가 없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강약약이 바로 그 꼴이었다.강약약은 명부오귀장의 둘째 인살도 고채를 같은 분야의 경쟁 상대로 여기고 있었다. 투지가 불 타오르는 모양이었다. 일생에 도움이 안 되고 민폐만 끼치는 투지였다.

모두의 시선이 첫째 상중하에게로 쏠렸다. 결정을 내려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이럴 때만 첫째를 찾는 나쁜 놈들이라고 상중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좋아! 그놈들에게 질 수야 없지!”

마침내 상중하가 결정을 내렸다. “가자!”

이들은 이럴 때만 실천이 빨랐다.

강약약의 예상대로 한 여자를 목표로 은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는 초혼오귀검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앙숙이자 영원한 호적수인 명부오귀장 또한 움직이 고 있었다. 역시 생각하는 게 똑같은 한통속인 놈들이었다.

애꿎은 한 여인만 다수 늑대들의 표적이 된 것이다.

‘좀 귀찮게 됐군!’

마음이라고까지 하기도 그렇지만 비류연은 이번 사태에 대해 전면으로 나서고 싶은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아무런 소득도 없는 일에 자진해서 나가 체력과 진 기를 소모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그렇다고 귀찮다는 핑계로 아예 외면해 버리려고 하니 알고 지낸 아이들의 생사가 걱정되었다. 쓸데없는 자비심이라, 동정심이라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알고 지낸 안면 있는 얼굴들이 쓰잘데없는 일로 죽는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비류연은 고민했다. 고민하는 데도 막대한 심력이 소모되므로 되도록 짧게 생각하고 얼른 결론을 내렸다. 동료들의 생사가 걱정 되면, 안심할 수 있을 정도 로 실력을 키워 놓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게 그의 최종 결론이었다.

단시일 내에 안정선까지 실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원래 이 비류연이란 인간은 불가능이란 걸 염두에 두고 굴리지 않는 인간이었다.

언제나처럼 계획은 자신이 세우고 실행은 염도가 맡았다. 염도가 의외로 이런 일에 재능이 있기 때문에 맡겨 놓으면 문제 없이 일을 처리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일 때까지는 주변에 꾀는 파리 정도는 잡아 줄 요량이었다. 심심풀이 소일거리 정도는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게 그 자신에게도 유익했기 때문이 다.

그는 오래도록 품 안에 간직해 두었던 인피면구를 꺼내 들었다. 이걸 쓰는 순간만은 그도 ‘노사부(老師夫)’라는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비류연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인생을 즐겁게 사는 건 죄가 아니다. 오히려 남보다 조금 더 현명할 뿐! 그때부터 비류연의 본격적인 놀이가 시작되었다.